예정된 습격 (3)
펑!
퍼퍼펑!
“신호인가...”
록스 후작은 하늘에서 피어나는 붉은 폭죽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유렌의 말이 거짓이길 바랐지만, 그의 말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시작됐습니다.”
후작은 입술을 깨물며 옆에 있는 폴레인 록스를 보았다.
“암살자가 노리는 건 너일게 뻔하니, 난 네 주변을 경계하마.”
“감사합니다.”
록스 후작은 폴레인 록스의 호위를 받으며 축제 중인 장소로 달려가서 모든 행사를 중지 시켰다.
“몬스터들이 습격했다! 지금 당장 영지민들을 1, 2, 3 연무장으로 이동시켜라!”
“알겠습니다.”
록스 후작은 기사들과 병사들을 시켜 영지민들을 연무장으로 이동시켰다. 유렌이 미리 결계를 설치해놨기 때문에 연무장이 사람들을 보호하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수룡기사단은 병사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몬스터들의 침입을 막아라! 외부에 유렌이 있을 테니, 그의 명령을 따르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은수리 기사단은 내부를 철통같이 보호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두 기사단은 각자 주어진 역할에 따라 바로 움직였다. 수룡기사단은 밖으로 뛰어나갔고, 은수리 기사단은 이동하는 시민들을 보호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콜린! 라온!”
“네!”
“너희 둘은 각각 제1, 2 연무장으로 가서 영지민들을 지켜라.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인 록스다. 누가 나타나도 길을 열어 주지마라!”
“알겠습니다!”
록스 후작의 말에 콜린과 라온이 주먹을 꽉 쥐고 무릎을 꿇었다. 둘은 곧바로 기사들의 맨 앞으로 이동해서 사람들을 이끌었다.
“남은 기사와 병사들은 이곳...”
록스 후작이 추가적인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뒤에서 아주 섬뜩한, 등골이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늦었다...’
후작은 암살자가 자신을 노릴 거라 생각해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암살자는 영지민으로 위장한 뒤 자신을 습격하기 직전에 은신을 사용했다.
은신능력과 과감함, 극쾌의 검술까지, 놈은 평범한 암살자와 차원이 달랐다.
“에에에에에에엥!”
록스 후작이 자신의 죽음을 느꼈을 때 갑자기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등 뒤에서 터져 나왔다.
“에에에에엥!”
아이 수십 명이 동시에 우는 소음에 후작은 정신을 차렸고 암살자는 넋이 나가 움직이지 못했다.
캬앙!
암살자 마피언이 정신을 놓은 아주 짧은 순간 폴레인 록스가 록스 후작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검을 휘둘러 마피언을 밀어냈다.
“에에에에에엥!
“대, 대체 무슨!”
마피언의 몸에선 아직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그는 이 이상 현상에 당황하여 자신을 살펴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 진짜 죽을 뻔했습니다. 이런 기분 첫 출정 때 느끼고 처음이에요.”
“미안하다. 나도 알아차리지 못했어. 그때 보여준 은신이 저 놈의 전력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록스 후작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고, 폴레인은 후작 앞을 막으며 마피언을 노려보았다.
“윌링턴 록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유렌이 준비를 해놨다고 한 게 이거였군. 모든 게 내 아들의 손아귀에 있는 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군.”
“유렌 록스의 짓거리였나! 크으...”
마피언이 어금니를 갈며 검을 꽉 쥐었다. 자신의 일을 두 번이나 방해한 유렌 록스에 대한 분노가 수식으로 상승했다. 당장 놈을 죽이고 싶었다.
“그 놈이 없으니, 네놈들을 갈기갈기 찢어주마. 유렌 놈이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도록!”
“암살을 실패한 암살자 주제에 말은 잘하는군.”
록스 후작의 도발에 마피언은 눈을 감고 자세를 풀었다. 그의 몸이 신기루처럼 겹쳐 보이더니, 똑같은 모습을 가진 분신이 나타났다.
“흐음...”
“저게 분신이군.”
하지만 록스 후작과 폴레인 록스는 마피언의 분신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유렌에게 마피언이 분신을 쓴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네놈들...”
너무도 잔잔한 둘의 반응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마피언이었다.
“한 명씩 맡으면 되겠군요.”
“잘 버텨야 한다. 저렇게 멍청해 보여도 마스터에 오른 놈이야.”
“마스터와 한 번 싸워보고 싶었는데 잘 됐습니다.”
“하, 이 망할 놈들이! 내가 누군지 알고!”
마피언이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았겠는가.
삼공인 에블린조차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건만 두 록스의 도발에 마피언은 짜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솟아올랐다.
“제발 죽여달라고 빌게 만들어 주마!”
**
“미, 미친!”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수십 개의 검들은 경지에 오른 기사가 휘두르는 것처럼 여러 가지 검술을 보이고 있었다.
대검은 모든 것을 깨부술 패도적인 움직임을, 레이피어는 바람처럼 재빠른 움직임을, 롱소드는 꽃이 피는 것 같은 변화를, 곡도는 무엇도 벨 것 같은 예리함을 담은 채로 위빅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이런 기술이 존재하다니...”
“하...”
이곳에서 검들에 담겨 있는 기세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세 명의 마스터뿐이다.
“허, 마스터가 된 건 알았다만, 이정도로 성장했을 줄이야.”
첫 번째인 후라켄 공작은 멸락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고.
“또? 그 사이에 또 성장했다고?”
두 번째 파에스 사이온은 한 번 더 성장한 내게 경악을 하고 있었다.
“크아아아! 내가 이대로 끝날 거 같으냐! 내가 위빅이다!”
마지막 마스터 위빅은 이제 만검이라 부를 수 없는 반쪽 남은 대검을 풍차처럼 휘둘러 멸락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막힌다면 멸락이란 이름을 가져다 버렸을 거다.
“커허헉!”
위빅은 20개의 검도 쳐내지 못하고, 40개의 검이 전신에 박혀 무릎을 꿇었다. 그의 눈에서 생명의 빛이 급속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이런 망할 놈의 기술이...”
틀린 말은 아니다.
저 멸락이 내게 온다고 생각하면 같은 멸락을 사용하는 것 외엔 막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제 내 멸락은 명실상부 최강의 기술이 되었다.
“너, 너를 죽...커헉...”
마지막 말조차 남기지 못하고 위빅의 숨이 끊어졌다. 난 잠시 놈을 쳐다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모든 사람이 전투를 멈추고 나를 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풀려있었다.
“하, 이레아에게 듣긴 했지만, 정말 그런 사기 같은 기술을 쓸 수 있었군. 자네는 정말...”
후라켄이 앞에 있는 몬스터들을 지워버리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게 가이린을 침입했던 괴물을 죽인 기술이겠지?”
“맞습니다.”
“허어, 정말 믿기지가 않는군. 이 짧은 기간에...”
후라켄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이다.
“자네. 나와 대련할 때 그 기술 쓸 수 있었나?”
“그렇습니다.”
파에스가 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내 어깨를 잡았다.
“그 기술을 썼다면 내가 뭘 해보기도 전에 졌겠어. 봐줘서 고맙군.”
“후작님도 전력을 다하지 않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난 그런 기술은 없어. 눈앞에서 보고도 막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기술을 본 건 처음이야. 하하하!”
파에스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감탄했다는 듯 크게 웃었다.
두 마스터 모두 직접 목격한 멸락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과는 달랐다.
가이린에서 멸락을 사용한 건 내가 아니라, 당천위였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내게 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기분이 말할 수 없을 만큼 고양되었다.
그건 그렇고 에블린의 말이 없어졌군.
오비스를 보낸다고 했는데 그전에 위빅이 죽었기 때문에 에블린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졌다.
후퇴할지, 아니면 직접 나설지 나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방어적으로 움직이기로 정했다.
“수룡기사단은 영지민들을 보호해서 후작가로 향하라!”
“알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두 이곳에서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대피하지 못한 영지민들 구출해주십시오!”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후라켄이지만, 지시를 내릴 사람은 록스의 이름을 가진 나다.
“알겠네!”
“누구 말인데, 당연히 따라야지. 허허.”
“알겠어요!”
내 지시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에게 움직일 방향을 정해준 뒤 아린을 보았다.
“아린, 크라이드는 날 따라 오도록. 우리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후작가로 달려가려 할 때였다. 차원의 문이 하나 더 열린 뒤 페루가 나타났다.
“유렌님!”
“네가 왜 여길...”
브리카에게 영지를 지키라는 임무를 내려놓고 페루에겐 별말을 하지 않았다. 녀석이 갑자기 온 것에 당황스러웠다.
“브리카는 유렌님의 지시 때문에 움직일 수 없어서 제가 왔습니다.”
페루는 자신의 마법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적거렸다.
“여기 있습니다. 기라녹스가 꼭 전해드려야 한다고 해서...”
“뭐?‘
페루가 내게 내민 것은 밤하늘보다 어두운 빛을 내뿜는 하나의 철판이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서 보니 철판엔 수많은 금이 가있었다.
“천판...”
내 머릿속에 박혀 있는 천판과 거의 일치하는 형태다. 약속보다 늦긴 했지만 기라녹스는 완성도 높은 천판을 만들어서 가져왔다.
“기라녹스는 제게 그 판을 주자마자 기절했습니다. 눈 밑이 아주 잿빛이 된 게 엄청 고생한 모양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기라녹스는 자신만이 아니라, 테스테인을 포함한 드워프들까지 갈아 넣었을 거다. 그러니 이 짧은 기간이 이 정도 수준의 천판이 만들어 졌을 테고.
“여기 아주 난리가 났네요. 저희 습격당했을 때보다 심한데요?”
“그렇긴 하지.”
페루를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린, 크라이드.”
“네!”
“페루를 데리고 수룡기사단과 함께 후작가로 가는 길을 뚫어라.”
“알겠습니다.”
“네?”
“억!”
아린은 바로 대답을 했고, 크라이드와 페루가 당황하여 입을 쩍 벌렸다.
“너 심법 3성이잖아. 실전을 할 때도 됐어. 독을 퍼뜨리는 방법 알려준 거 기억하지?”
“아, 네.”
“한 번 싸워봐. 네 방식대로.”
“아, 알겠습니다!”
“아린. 맡길게.”
“네.”
아린과 크라이드에게 페루를 맡기고 옆의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있는 후라켄과 파에스에게 다가갔다.
“전 후작가로 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이곳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네.”
“당연히 집이 걱정되겠지.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고 가보게나.”
“감사합니다.”
아직 이곳엔 괴수와 라이칸, 다크엘프가 있기 때문에 두 마스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둘의 확신에 가까운 대답을 듣자 마음이 놓였다.
“기린!”
콰아아앙!
내 부름에 괴수들과 싸우고 있던 기린이 거대한 벼락을 터트리고 땅으로 내려섰다.
“아까 그놈들은 처리했어?”
-날 누구라 생각하는 건가. 그런 놈들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기린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예쁜 여자들 앞에서 폼을 잡으려는 듯 멋진 표정을 짓고 콧김을 뿜었다. 녀석의 본성을 아는 내겐 꼴사나울 뿐이었지만,
-음, 이레아가 아닌가! 오랜만이야! 저, 저 여자는...
“읏차.”
기린은 이레아에게 인사를 하다가, 일리아를 보고 헤벌쭉 해졌다. 난 그 틈에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무, 무슨 짓이냐! 이 괴물 같은 인간아!
“저기 큰집 보이지? 저기로 가자.”
-난 남자는 절대 태우지 않는...
“닥치고 가라면 가. 지가 무슨 유니콘도 아니고.”
-크헉!
기린의 뒷통수에 딱밤을 날렸다. 녀석은 움직이기 싫어했지만 목걸이의 저주 때문에 내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다.
-제, 젠장!
빠지지직!
기린은 빗살이 되어 후작가로 향했다.
**
“크어헉!”
록스 후작이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끄으으...”
암살자라고 우습게보지 않고 최선을 다했건만 마피언의 검술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놈의 검술은 기괴했고 굉장히 실전적이었다.
몸에 상처가 나지 않은 곳이 없었고, 왼팔과 오른발목이 부러져 덜렁거렸다. 중간에 폴레인 록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진즉에 사지중 하나는 날아갔을 거다.
어떻게 분신이 본체와 같은 힘을 낼 수 있는지 록스 후작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윌링턴! 버텨야 한다! 넌 록스의 주인이야!”
“알고 있습니다!”
“하! 아까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느냐! 고작 그따위 능력으로 록스의 주인? 우습기 짝이 없어! 네놈 아들이 더 어울릴 거다!”
“처음으로 맞는 소리를 하는군. 맞아. 녀석이 나보다 록스에 훨씬 잘 어울리지. 하하!”
첫째 아들 유렌은 윌링턴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잘못 된 길로 간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해주질 못했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 길을 찾고 변하기 시작했다. 그런 유렌에게 윌링턴은 오로지 고맙고 뿌듯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다.
세상은 아비보다 강한 아들이라 말하며 윌링턴을 비꼬지만, 그건 윌링턴에겐 최고의 칭찬이었다.
-마피언!
“에블린?”
-빨리 처리하세요.
“무슨 소리요?”
-유렌 록스가 올 거예요! 록스 후작을 빨리 죽여요!
에블린의 말을 들은 마피언의 눈에서 붉은 선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록스 후작에게 고통을 주며 놀던 그가 진심을 다한다는 뜻이었다.
“크윽...”
록스 후작은 마피언의 공격에 반응을 하지 못했다. 출혈이 너무 심해 눈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윌링턴! 젠장!”
폴레인 록스의 앞에 있는 또 다른 마피언의 힘도 강해졌기 때문에 그도 빠질 수가 없었다. 이대로면 둘 다 죽을 판이었다.
“유렌. 너에겐...”
콰르릉!
록스 후작이 눈을 감았을 때 하늘에서 거대한 벼락이 내리쳐 마피언과 록스 후작 사이를 갈라놓았다.
“이, 이 무슨!”
깜짝 놀란 마피언이 뒤로 물러났고 그 사이로 기린과 그의 등에 탄 유렌이 내려섰다.
“아버지!”
“허억... 미, 미안하구나. 네가 다 준비해줬는데 못난 꼴을...”
“말씀하지마세요.”
유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투성이가 된 후작의 혈도를 짚어 출혈을 막아 주고 급한 상처를 막았다.
“뒤에서 쉬고 계세요.”
후작을 뒤에 앉혀두고, 유렌이 뒤를 돌아 마피언을 쳐다보았다.
“너...”
유렌은 화를 내지도, 분노를 터트리지도 않았지만, 마피언은 그를 보는 것만으로 손이 떨리고, 마른침이 자동으로 삼켜졌다. 지독하리만큼 거북한 분위기가 전신을 내리눌렀다.
“크윽!”
마피언은 폴레인과 싸우는 자신의 분신을 불러왔다. 지금 폴레인이 중요한 게 아니다. 눈앞의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분위기에 숨이 턱 막혔다.
분신을 던져놓고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렌의 입이 열렸다.
그 말을 듣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개짓거리 할 생각 마. 네놈 본체가 뭔지 다 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