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 (4)
뱀이라고 부르기에 미안할 정도로 거대한 이무기가 몸통을 꿀렁거리며 헤엄쳐 오고 있었다.
이무기에겐 크기 말고도 기괴한 특징이 하나 더 있었는데 머리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달려있다. 황색 머리와 녹색 머리가 날카로운 이빨을 세운 채 미친 듯이 돌진해 온다.
저놈은 또 뭐야...
이무기처럼 거대한 뱀 형태의 몬스터는 알고 있지만, 저렇게 기괴한 놈은 본 적도 없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쌍두사 아모다]
대형 뱀 아모다가 특별한 힘을 얻어 등급이 올라간 몬스터다. 두 머리에서 각자 다른 독을 내뿜을 수 있으며, 몸통을 이용한 조르기는 질기디 질긴 흑철마저 찢어버린다. 대지만이 아니라,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놈의 정보를 보자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평범한 몬스터 아모다가 호수바닥에 있는 구슬에서 힘을 얻어 저렇게 기괴한 모습과 특별한 힘을 얻은 것이다.
무슨 이무기가 여의주를 품는 것도 아니고, 몬스터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참 어이가 없는 일이다. 바닥에 박혀 있던 구슬이 빠져나와 있던 것도 저 녀석 때문이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는 아니지.
아모다는 물속에서도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여기서 이러고 있다간 통째로 씹어 먹힐 거다. 허공으로 몸을 띄우는 경공 뇌충을 사용했다.
빠지지직!
퍼엉!
뇌충이 발동되자 발바닥 용천혈에서 강대한 내력이 뿜어져 내 몸을 위로 상승시켰다.
“키아악!”
내 코앞까지 다가온 아모다가 파충류의 날카로운 눈을 좁히며 방향을 바꿨다. 정말 빠르긴 하다만 그래봐야 날 쫓을 수는 없다.
퍼퍼펑!
연속으로 뇌충을 펼쳐서 물 위로 올라갔다. 허공에서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돈 후 수면위에 내려앉았다.
차악.
허공을 걷거나 달리는 허공답보, 능공천상제는 아직 불가능 하지만 물 위를 걷는 수상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촤아아악!
“키아아악!”
수명 위로 올라온 아모다의 두 머리에게서 폭발적인 살기가 쏟아진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 살기만으로 숨이 끊어질 거다.
“키아아아!”
아모라는 자신의 보물을 당장 내놓으라며 몸을 세우며 하악 거렸다.
“미안한데 이건 처음부터 내 물건이거든.”
“키아악!”
휘이이잉!
폭풍이 불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리발처럼 넓적한 아모라의 꼬리가 날아들었다.
파지지직!
콰앙!
손으로 뿜어낸 뇌벽과 아모라의 꼬리가 거세게 부딪쳤다. 호수의 물이 거꾸로 흐르는 폭포처럼 공중으로 뿌려졌다.
“키아아악!”
뇌벽에 담겨있던 뇌기의 충격 때문에 아모라가 더욱 발광을 시작했다. 시장에서 소금을 뿌린 미꾸라지를 보는 느낌이다.
챠앙!?
아모라를 더욱 자극하기 위해서 놈의 주변을 돌면서 검기를 두른 비수를 던졌다.
“키아아!”
비수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모라에게 몸 이곳저곳에 박혀서 놈의 신경을 더욱 건드렸다.
“키이이이!”
아모라의 눈이 더욱 붉어졌고, 눈동자는 칼날처럼 좁아졌다.
“이제야 쓰는 거냐. 너무 늦잖아.”
아모라는 나를 노려보며 두 입에서 각자 녹색과 황색 액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걸 기다렸다고.”
원래 아모라는 독이 없다.
빠른 속도와 강력한 힘이 장점인 몬스터지만, 창조주의 눈으로 봤을 때 저 녀석에겐 독이 있다고 나와서, 놈의 독을 보기 위해 지금까지 놈의 신경을 건드린 거다.
촤아아악!?
아모라는 두 개의 입에 모은 두 가지 독을 광선처럼 내뿜었다. 독을 쏘는 놈의 눈을 보니, 이미 날 죽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우웅.
독이 쏟아지는 순간 양 손에 흡독지력을 운용했다. 경지에 오른 흡독지력은 아모라의 독을 모조리 흡수해서 내 내력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흡독지력이 대상에서 독(아모라)을 흡수합니다.]
[흡독지력이 만독자전신기의 운용을 돕습니다.]
[흡독지력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충귀은소(衝鬼隱沼)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충귀은소의 숙련도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충귀은소가 은괴작(隱怪灼)으로 변화합니다.]
푸른 머리에서 나온 독은 충귀은소와 같은 속성의 독이었던 모양이다. 충귀은소의 숙련도가 한계까지 오르며 새로운 독으로 변했다.
은괴작은 충귀은소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기 때문에 더욱 은밀하고, 지독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진화골산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진화골산의 숙련도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진화골산이 골유진왕(骨流塵王)으로 변화합니다.]
화골산의 경험치도 한계에 이르러 골유진왕이라는 독으로 변해버렸다. 골유진왕이라는 독은 화골산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언데드를 지워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천독불침(千毒不侵)의 조건이 이루어졌습니다. 특성 백독불침(百毒不侵)이 특성 천독불침으로 변화합니다.]
천독불침...
아모라의 두 독을 모조리 흡수한 덕분에 천독불침까지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독의 개방에 천독불침까지. 생각지도 않던 기연이 쏟아졌다.
앞에 있는 징그러운 아모라가 너무나도 예뻐 보였다.
“키이이...”
자신의 독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아모라가 길쭉한 혀를 부르르 떨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넋이 나간 것이다.
고오오오.
내가 진정한 기세를 드러내자 아모라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느낀 거다.
챠앙!
귀왕살을 뽑아들고 역수로 잡았다. 검으로 아모라를 겨누자, 놈은 그 거대한 몸체를 움찔 거렸다.
“미안하다만 공짜 영약을 놓칠 순 없거든.”
**
“흐음, 내단은 없네.”
아쉽게도 영물로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모라에게서 내단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두 머리에서 가지고 있는 독의 양이 많아 내단 이상으로 많은 내력을 모을 수 있었다.
“이게 기연이지.”
이제 내력만큼은 조화경 중급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만천화우를 써도 탈진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정도는 됐다.
“근데 이놈은 왜 여기 있던 거지?”
많은 선물을 준 쌍두사 아모라가 고맙긴 하지만 이놈은 원작에 없는 놈이다.
예상을 해보자만 원작보다 빨리 열쇠가 있던 동굴이 털려서 숲의 균형이 무너졌고 숲에서 쫓겨난 아모라가 이곳에 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 이유가 딱히 중요하진 않으니까. 이 녀석이 아낌없이 줬다는 게 중요한 거지.”
필요한 구슬을 얻었고, 아모라에게서 예상 못한 기연까지 받았다. 거기다 녀석은 또 하나의 큰 도움을 줄 거다.
“포메라.”
혼의 구슬을 꺼내 포메라를 불렀다. 바로 나타나던 녀석이 웬일로 나타나지 않았다. 10분정도 기다리자 회색 연기가 피어나며 포메라가 나타났다.
“지금도 주인이 부탁한 일을 하고 있건만 또 무슨 일이...헉!”
포메라는 내 뒤에 자빠져있는 아모라의 시체를 보고 혼이 스르르 빠진 얼굴이 되었다.
“이, 이건 또 뭐요.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는 거요...”
“아모라는 알지?”
“알고 있소. 거대한 뱀 몬스터 아니오.”
“이게 그 녀석이야. 좀 돌연변이 같은 놈이지만.”
“허어...”
포메라는 나를 보고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어디까지 전했어?”
“엘루나의 로디엔에게 전하고 왔소. 그녀가 무조건 갈 테니, 기다리라고 전해달라더군.”
“그래. 수고했어.”
“돌아갈 거요?”
“그 전에 이 녀석으로 할 일이 있어.”
“언데드로 만들라는 거 아니오?”
“잘 아네.”
포메라는 아모라의 시체를 한 번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마음에 드는 듯 흠흠 거리는 소리를 냈다.
“시체가 통이라 예전보다는 편하고 빠를 것 같군. 바로 시작하겠소.”
포메라에게 아모라를 언데드로 만드는 작업을 시켜 놓고 호수에서 얻은 구슬을 꺼냈다.
“그게 뭐요?”
“이 구슬 때문에 여기 온 거야.”
“오, 대단한 물건인가 보오?”
“대단하다기보다는 한 가지 일에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어. 내가 아는 에블린이라면 분명 다른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그걸 위한 대비다.”
“그녀가 무엇을 준비할지 알고 있다는 거요? 그런 건 예언에 없지 않았소?”
내 말을 들은 포메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걔가 뭘 할지는 뻔하거든.”
**
포메라는 1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쌍두사 아모라를 언데드로 만들었다. 녀석에게 부탁해서 록스로 이동한 뒤 후작가의 담을 넘었다.
역시 기사나 병사들론 안 돼.
대낮인데다가 바로 뒤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사와 병사들은 날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후작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할 때 은밀하고 빠르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유렌?”
“할아버지.”
정원손질용 검을 들고 무서운 표정으로 달려오던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입을 벌리셨다.
“네가 담을 덤은 게냐?”
“아버지와 할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아버지를 부르는 신호가 있다고 하셨죠.”
“그, 그래.”
“그걸 사용해서 아버지를 데려오실 수 있나요? 전 지금 정체를 드러낼 수 없어서요.”
“알겠다. 내 숙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할아버지는 묘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시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의 숙소에 가서 30분정도 기다리자 두 사람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이렇게 보니까 신기하네요.”
“흠...”
“그렇긴 하구나. 허허.”
아버지는 황당한 표정을 할아버지는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셨다.
“네 말대로 정말 다시 오긴 왔구나. 그런데 왜 여기서 보자고 한 거냐?”
“일단 앉으세요. 얘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의자에 앉았다. 둘은 내 진지한 표정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입만 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내용에 거짓은 없습니다. 제가 데리고 있는 사람 중에 예언자가 있습니다.”
“예언자? 지금 예언자라고 한 거냐? 미래를 보는?”
“그렇습니다. 예전 가이린이 습격당했을 때도 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 예언자 덕분이었죠.”
“허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넋이 나간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래. 그래서 사상자가 극적으로 적었던 거군.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었어.”
“맞습니다. 습격당할 걸 미리 알고 있어서, 많은 걸 준비했었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다.
“가이린이 습격당하는 예언을 한 예언자가 다른 예언을 했습니다.”
“네가 긴급 호출을 받아서 간 이유가...”
“맞습니다. 예언이었습니다. 이번에 예언자가 예언을 한 장소는... 이곳 록스였습니다.”
“록스라고?”
“무, 무슨...”
“지금부터 그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습격 날짜는...”
둘에게 마이라가 예언한 내용과 내가 해석한 것들을 모두 이야기 해 주었다.
“믿을 수가 없군.”
“허, 저,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냐?”
아버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입술을 깨물며 사실이냐고 계속 물으셨다.
“무조건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럼 이럴 때가 아니야. 당장 왕궁에 연락해서...”
“안 됩니다.”
“뭐?”
당장 밖으로 달려 나가려던 아버지를 불러 세웠다.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왕궁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에 놈들의 눈과 귀가 깔려 있습니다. 계획이 알려지는 순간 우리 쪽에 예언자가 있다는 게 들키게 됩니다. 거기다 그 놈들은 록스에 병력들이 몰린 걸 이용해서 다른 곳을 공격할 겁니다. 놈들은 바보가 아니에요.”
“제기랄! 그럼 어떻게 해야...”
“제가 예언을 들은 이후부터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인연 맺은 강자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그들이 수락했으니 습격이 발생하는 순간 도우러 와줄 겁니다.”
“유렌. 혼자 그걸 준비했단 말이냐?”
“허, 넌 정말...”
할아버지가 말을 잇지 못하셨고, 아버지는 감동받은 눈빛을 보냈다. 두 분 다 내 행동력에 감탄한 상태였다.
“습격을 막을 수는 있을 겁니다. 다만...”
“뭐 걸리는 게 있느냐?”
“습격이 발생하는 순간 많은 백성들이 죽거나 다칠지 모릅니다.”
“그렇군. 그럼 네가 가이린에서 했듯이 훈련이라고 하면...”
“습격할 놈들은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훈련이라고 하며 사람들을 빼는 건 가이린에서 이미 사용했던 방법이다. 에블린은 분명 알아차릴 거다.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건 어떨 까요?”
“어떤 거 말이냐?”
“제가 마스터에 올랐다고 아버지께서 대놓고 광고를 하셨으니, 후작가에 축제를 열어서 그 안에 백성들을 받는 겁니다.”
“그게 되겠느냐?”
“네. 예언에서 몬스터들은 성벽 밖에서 나타났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반인 사상자를 극적으로 줄 일 수 있을 겁니다. 그믐달이 뜨는 날 습격이 있으니, 대략 3일 정도 저녁마다 축제를 열면 될 거 같습니다.”
“유렌. 문제가 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손을 올리셨다.
“뭔지 알겠습니다. 그 침입자 때문이죠?”
“그래. 너도 생각하고 있었구나. 놈이 시민들 사이에 섞여 들어온다면 윌링턴이나 다른 아이가 암살당할 수도 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 말에 할아버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암살자에 대한 대비도 미리 해놨습니다. 놈이 은신을 하는 순간 알아서 정체를 드러낼 거예요.”
사람사이에 숨던, 벽을 넘던 마피언은 무조건 은신을 사용해서 아버지를 암살하려 할 거다.
은신이 발동 되는 순간 울음인형이 발동할 테고, 놈의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후작가에서 은신을 사용할 놈은 그놈밖에 없을 테니.
“그것까지 미리 생각한 거냐?”
“유렌 너란 녀석은...”
암살자에 대한 대비까지 했을 줄은 몰랐는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귀신에 홀린 표정이 되었다. 감탄을 넘어서 감동받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정말 고맙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거다.”
“맞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런 습격을 받았다간 모조리 죽었을 게야. 거기다 암살자에 대비까지 준비하다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두 분의 진심이 담긴 말을 가슴 속에 새기며 씩 웃었다.
“고맙다는 말은 나중에 해주시고, 지금은 세부적인 계획을 짜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