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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대비 (174/241)

대비

마이라는 굉장히 심각하거나, 위험한 예지를 보고 그것을 전하기 위해 날 찾았을 거다. 

“내용은?” 

“긴급 호출 메시지만 보냈다고 합니다.” 

“음...” 

정확한 내용을 말하지 않았으니 예지라는 게 더욱 확실해졌다. 메시지를 보낼 때 옆에서 마법사가 듣고 있었을 테니, 말을 할 수 없었을 거다. 

“어쩔 수 없군. 내일 바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같이 있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인지 아린은 내 말을 알아듣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마이라가 예지할 만한 일은 에블린의 습격정도겠지.” 

현재 에블린의 습격을 제외하곤 중요한 사건이 없다. 십중팔구는 습격에 대한 예지일 테니, 그녀의 예지를 듣게 되면 습격 장소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다. 

“잠이 달아났네...” 

조금 전만해도 쏟아지던 졸음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 상태라면 잠자기는 완전히 글러서 내공 수련이나 할까 할 때 다른 사람이 내 방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한 번도 듣지 못한 노크소리지만 누군지는 알 것 같았다. 

“들어와.” 

“전 줄 아셨습니까?” 

“그래.” 

들어온 사람은 둘째인 콜린 록스였다. 문을 닫은 녀석은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뻘쭘하게 뭘 보는 거야. 저기 앉아.” 

콜린에게 의자를 가리켰다. 하지만 녀석은 앉지 않고 가볍게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갑자기 극존칭을 쓰니 적응이 안 되네. 뭔데?” 

“어떻게 해야 강해질 수 있습니까?” 

나를 쳐다보는 콜린의 눈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녀석은 내게 생명의 빚을 지고도 나를 이기고 싶다 말했었다. 그런 내게 저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려놓은 거다. 

“예전에 제가 건방지게 굴었던 건...” 

“어렸을 때의 일은 상관없어. 왜 강해지고 싶은 건데?” 

콜린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을, 형님을 넘어서고 싶습니다.” 

“나를 넘고 싶은데 내게 조언을 구한다고?” 

“형님이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이니까요.” 

뭔가 기분이 좋으면서도 애매한 말이다. 또 그가 변했다는 걸 더욱 확실히 느꼈다. 

“음...” 

말을 한 콜린은 여전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사람의 눈에서 불이 타오른다는 말은 이럴 때를 위해 존재 할 거다. 

“록스의 검은 뭐지?” 

“네?” 

“록스가 추구하는 검이 뭐냐고.” 

“빠름입니다.” 

“그걸 알면서 왜 여기 있는 거냐?”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콜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최우수로 기사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야기는 한참 전에 아버지께 들었다. 난 네가 집에 없을 거라 생각했어.” 

“그게...” 

“집에서 허수아비를 상대로 검을 휘둘러서 네 목표가 이루어질까? 바닷가에서 허접스런 볼라크들을 학살한다고 네 검이 빨라질까?” 

“아...” 

이제야 내 뜻을 알아차린 콜린의 표정이 굳어졌다. 

“록스라는 이름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라. 많은 것을 겪고, 이겨내기 힘든 시련을 헤쳐 나가라.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뿐이야. 집에서 떠받들어주는 수련만한다면 네 수준은 또래의 평균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다.” 

기연이 아닌 이상 많은 실전을 겪는 것이 실력을 늘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콜린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래.” 

녀석은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눈을 감고 있을 때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거다. 

“누가 빙의한 수준으로 사람이 변했네.” 

질투와 시기에 잠겨 있던 콜린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사람 자체가 바뀌어버렸다. 

“그건 그렇고 진짜 잠이 다 깼네.” 

멍하니 시간을 보낼 수는 없어서 가부좌를 하고 만독자전신기 수련을 시작했다. 

만독자전신기의 내력이 요동치며 내 전신을 휩쓸기 시작했다. 대주천을 도는 내력은 자연스럽게 뿜어져 감각 영역을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조화경에 이른 내 기감은 저택을 넘어 정원까지 뻗어나갔다. 바람에 움직이는 잡초의 움직임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기감을 거두고 다시 내 몸의 내력에 집중을 하려 할 때였다. 

사람? 

벌레보다도 작은 움직임과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형체는 절대 벌레일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정원의 동쪽의 담을 넘었다. 

후작은 오늘부터 경계에 기사들을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누구도 그가 침입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놈이다...” 

할아버지가 말했던 침입자 놈이 반대편으로 침입한 것이 분명했다. 놈은 저택으로 들어오지 않고 외곽 쪽을 천천히 돌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거나 관찰하는 행동이다. 

은신을 잘 쓰는 놈들은 자신의 기척을 죽이는 만큼 다른 사람의 기척을 잘 파악하기 때문에 내 기척과 존재감을 최대로 죽인 채 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 놈이다. 

서쪽 담벼락 바로 아래에 서 있는 경비병의 뒤로 투명한 무언가가 지나간다. 거의 완벽에 이른 은신 능력이다.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경비병도, 그 옆에서 하품을 하는 기사도 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우웅. 

놈이 경비병이 없는 곳으로 이동했을 때 연위결을 사용해서 조용히 비수를 띄웠다. 비수는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바람소리조차 내지 않고 놈에게 칼날을 세웠다. 

“음!” 

놈은 뛰어난 은신 능력을 가진 자답게 비수가 박히기 바로 직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휘익! 

놈은 그 짧은 순간 곡도를 꺼내 비수를 노렸다. 예상한 수준이라 비수를 이동시켜 곡도의 궤적을 피했다. 

“허!” 

비수가 자신의 검을 피해낼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놈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부웅. 

하지만 침입자 놈 역시 보통은 아니다. 순식간에 마음을 잡고 곡도를 회수해서 비도를 쳐내려했다. 

챠쟈장. 

비수와 곡도가 만나려는 순간 비수로 곡도를 타고 올라가게 만들었다. 

퍼억. 

“큭!” 

뱀처럼 곡도를 타고 올라간 비수가 놈의 천위혈을 가늘게 찔렀다. 천결혈을 찔렸으니 놈은 마네킹처럼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될 거다. 

파악. 

쓰러진 놈에게 다가가려 할 때였다. 놈의 몸에서 옅은 빛이 반짝이더니 몸 전체가 사라져버렸다. 꼭 귀신이라도 본 기분이다. 

“분신! 빛을 내뿜으며 사라지는 분신이라고? 이건...” 

난 이 능력을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는 기술이다. 

“자아의 거울.” 

이 기술의 이름은 자아의 거울이다. 자신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분신을 소환하는 사기 급의 능력이다. 그리고 이 기술을 쓸 수 있는 놈은 딱 한 놈뿐이다. 

“세피로스의 은자... 마피언.” 

자아의 거울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세피로스 소속의 마피언 밖에 없다. 

마법사들도 마법으로 자신의 분신을 만들 수 있지만, 저 정도의 효율을 내지는 못한다. 거기다 사라질 때의 방식이 분신 마법과는 전혀 달랐다. 

놈이 쓴 기술은 자아의 거울이 확실했다. 

“설마 세피로스 놈들이 노리는 곳은...” 

이제야 감이 잡혔다. 

에블린이 어디를, 무엇을 노리는 지를. 

“젠장!” 

“유렌!” 

“할아버지.” 

정반대편의 숙소에 계셔야 할 할아버지가 이곳까지 오셨다. 

“무슨 일이...” 

“어제 할아버지가 보셨다던 놈이 나타났습니다.” 

“정말이냐?” 

“네. 놈은 담을 넘고 이곳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마피언에 대해서 말할 순 없었기 때문에 놈의 행동에 대해서만 말해주었다. 

“미안하구나. 내가 늦어서...” 

“아뇨. 놈이 서쪽에서 침입했으니, 모르시는 게 당연한 일이죠. 저도 우연히 알아차렸으니까요.” 

“음...” 

“경비를 강화하는 걸로 모자랄 거 같습니다. 기사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래...” 

내 말에 동의 하는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한동안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부상을 입혔느냐?” 

“네. 비슷합니다.” 

자아의 거울로 만든 분신에 비수를 박았다고 분신이 사라지지 않는다. 분신이 사라진 건 놈이 스스로 없앴기 때문이다. 

다만 마주보고 분신을 흡수하는 제대로 된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놈은 며칠 동안 분신을 소환 할 수 없을 거다. 

“앞으로는 주변을 더욱 꼼꼼히 살피마.” 

“부탁드리겠습니다. 전 내일 일찍 돌아 가봐야 해서...” 

“무슨 일이 있느냐?” 

“영지에서 긴급호출이 왔습니다.” 

“그렇군.” 

할아버지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침입자에 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방으로 돌아왔다. 

“포메라.” 

방에 들어오자마자 주머니에서 구슬을 꺼내 포메라를 소환했다. 

“여긴 록스 후작가 아니오? 오랜만이로군.” 

포메라는 오랜만에 온 후작가가 반가운지 침대 귀퉁이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이런 밤중에 후작가에서 무슨 일이오?” 

포메라에게 후작가에 은신능력이 강한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말을 해주었다. 

“놈의 위치를 파악할 방법이 있을까?” 

“음, 은신이 뛰어난 놈이라...음!” 

잠시 생각하던 포메라가 손가락을 튕겼다. 

“원래부터 암살자들에게 취약한 마법사들이 암살에 대비하기 위한 마법이 있소.” 

“그게 뭐지?” 

“백마법도 따로 있지만, 흑마법은 울음인형이오.” 

“울음인형?” 

“그렇소. 울음인형을 집에 설치해두면 일정 수준이상의 은신을 사용한 사람에게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오. 간단히 말해서 은신을 유지 할 수가 없게 되오.” 

“그런 게 있어?” 

“다만 문제가 있소.” 

포메라는 아쉽다는 듯 턱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인형이 마법사의 근처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오. 마력의 선을 길게 만들지 못해서 이곳에선 쓰기 힘들 거요. 난 이곳에 없으니...”

“아니야. 쓸 만하겠는데?” 

“무, 무슨 소리요?” 

내 말을 들은 포메라가 불안한지 찔끔 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너 한동안 여기 있어.” 

“억! 그게 무슨...” 

“저주인형을 설치해 놓고 여기서 살라고. 여기 내방이라 아무도 안와.” 

“주, 주인. 아무리 그래도...” 

“급한 일이니까. 그렇게 알고, 내일 밤부터 작업해라.” 

“난 흑마법사인데...” 

“됐고. 하자?” 

“아, 알겠소.” 

포메라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은 점점 막무가내가 되...” 

“여기 소드 마스터랑 최상급 기사가 있으니까. 울음인형 만들고 설치할 때 조심해라.” 

“...” 

** 

“벌써 가는 게냐?” 

“네. 급한 연락이 와있어서.” 

다음 날 아침식사 전에 후작을 찾아가 바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나도 비상호출이 왔다고 듣기는 했다만...” 

“무슨 일인지 확실하지가 않아서 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알겠다. 어쩔 수 없지.” 

“조만간 다시 오겠습니다.” 

“안 믿는다. 인마. 무슨 일 생기면 연락이나 해라.” 

후작이 피식거리며 내 어깨를 쳤다. 

“알겠습니다.” 

“아린아. 이 녀석 잘 부탁한다.” 

“네.” 

“그래. 그럼 가 보거라. 꼭 연락하고.” 

후작과 인사를 마치고 그 뒤에 있던 콜린을 불렀다. 

“콜린.” 

“네.” 

“어제 내가 말했던 거 잠시 연기해라.” 

“네?” 

“일단 잠시 연기하라고. 한동안 집에 있어.” 

콜린의 표정을 보니 오늘 당장 떠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 말해주긴 힘들지만, 있어. 너도, 가문도 도움이 될 거다.” 

“그럼 알겠습니다.” 

콜린은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정말 록스가 공격 당한다면 기사 한명 한명이 소중하다. 콜린이 바라는 강자와의 대결도 이룰 수 있을 테고.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마탑을 이용해서 바로 가이린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유렌님!” 

내가 올 줄 알았는지, 페루가 성의 입구에 서있었다. 

“마이라는?” 

페루가 고개를 숙이기도 전에 마이라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방에 계십니다. 어제 예언을 봤다고 유렌님을 찾으시다가 쓰러지셨습니다.” 

페루의 말을 듣고 마이라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고 그녀의 수호령격인 거지차림의 브래넌이 거꾸로 앉은 채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둘의 상태를 보니, 브래넌이 예지한 내용을 마이라에게 강림해서 전해주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꽤나 자세한 내용의 정보를 알 수 있을 거다. 

우웅. 

마이라의 몸에 내공을 넣어서 기력을 찾게 해주었다. 내력으로 신체 내부와 외부를 마사지 해주는 효과다. 

“으음...” 

5분정도 지나자 마이라가 가늘게 눈을 떴다. 

“유, 유렌님!” 

“괜찮아?” 

“저, 전 괜찮아요.” 

마이라는 자신은 괜찮다고 하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미래를 본 거지?” 

“네. 사실 가끔 보긴 했는데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번엔 꼭 말씀드려야 할 거 같아서...” 

“그래. 뭘 봤는지 말해줘.” 

마이라는 공중에 떠있는 브래넌을 잠시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괴물들과 동물들이 어떤 마을을 공격했어요. 시간도 밤이었기 때문에 마, 많은 사람들이 괴물들에게 죽었어요. 아이도, 어른도. 흐윽...” 

말로 듣는 나와 다르게 마이라는 예언을 이미지로 보게 되니, 저렇게 슬퍼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이라. 네가 본 걸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해줘야. 그곳의 사람들이 살 수 있어.” 

“아, 알겠어요.” 

마이라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괴물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위치다. 놈들이 노리는 곳이 록스인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위치를 알 수 있을 만한 정보들을 말해봐.” 

“일단 가이린은 아니었어요. 푸른색의 마탑이 있고, 많은 상점에서 해산물들이 있는 걸 보면 바닷가 근처 같았어요.” 

“바닷가...” 

청탑과 바닷가라는 말을 들으니, 록스일 확률이 더욱 올라갔다. 

“아, 중간은 찢어졌는지 보이지 않고 ‘스터에 오르다’라는 글씨가 적힌 찢어진 천이 바닥에 굴러다녔어요. 글씨가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났고...” 

“그건...” 

마이라가 본 ‘스터에 오르다.’는 후작이 걸어둔 ‘유렌 록스 마스터에 오르다.’라는 현수막이 분명하다. 

이제 확실히 밝혀졌다. 

에블린이 노리는 건 록스 후작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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