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재회 (170/241)

재회

“검술의 정석...”

후라켄이 저술하고 대륙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검술서가 사이온가의 서재에도 있었다.

“이거 본 적 있나? 내가 생각하는 검술서 중 최고일세. 하급 기사부터 우리 같은 마스터까지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야. 거기다 저자의 인장까지 들어간 한정판일세!”

“아...”

미안하지만 그거 나도 있다.

그것도 저자의 인장까지 포함된 한정판.

정말 좋은 책인 건 사실이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아! 자네는 후라켄님에게 수련도 받았으니, 이 책은 당연히 읽어보았겠지?”

“한 세 번은 읽어보았습니다.”

“하하! 그럼 다행이군. 이 책은 최소 다섯 번은 읽어야 그 맛이 느껴진다네.”

“...”

파에스는 후라켄에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파에스만이 아니라, 대륙의 모든 기사들이 기본기 한 길만 파서 마스터가 된 후라켄을 인정해주고 존경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책일세. 마법으로 만들었는지 책이 아니라, 실제로 검술시연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

“음...”

파에스는 검술의 정석을 내려놓고 그 밑에 있던 책을 보여주었다.

드디어 나왔군.

두 번째 책의 이름은 샤린 교국 기본 검술이라 되어있었고, 저자의 이름에 카볼이 적혀있었다.

“샤린 교국은 한참 전에 멸망한 나라일세. 하지만 그들의 방어 검술은 남았지. 자네의 예검의 상성이라 볼 수 있는 검술이라 가져와봤네.”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알아서 가져다주니, 진심으로 고마웠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을 때 파에스는 세 번째 책을 보여줬다.

“이 책도 앞의 책과 저자가 같아서 보기 정말 좋을 걸세.”

“네?”

하나 더 있다고?

샤린 교국 검술서 밑에 있던 티아렌 왕국 기본 검술서도 저자가 카볼이었다. 한 권을 얻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두 개를 얻을 줄은 전혀 몰랐다.

12개의 기본 검술을 모아 두 번째 초식을 개방해야 하는데, 사이온 후작가에서 한 번에 두 권을 얻다니 대박이 터졌다.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어.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티아렌 왕국 검술은 무거운 중검(重劍)일세. 자네 정도의 수준이면 그냥 알아만 둬도 훗날 중검을 사용하는 기사를 상대 할 때 큰 도움이 될 거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책은...”

파에스는 그 외에도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몇 권을 더 소개해 준 뒤 돌아갔다.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한 뒤 책상에 앉았다.

“저거 먹으면서 놀고 있어.”

“빽!”

빽빽이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샤린 교국 기본 검술서를 펼쳤다.

“섬세한 그림체와 특유의 필체. 역시 카볼의 책이야.”

실제 사진 같은 정교한 그림과 카볼의 글씨체가 보였다. 그의 검술서가 확실했다.

[창조주의 눈에 예속된 천안이 샤린 교국 기본 검술 1장 회원검을 각인합니다.]

[특성 천무지체로 인하여 회원검을 즉시 재현하실 수 있습니다.]

1장을 모두 읽으니, 검술이 각인되었다. 집중력을 유지한 채로 계속해서 책을 읽어나갔다.

펄럭.

마지막 장을 넘기자 메시지가 떴다.

[샤린 교국 기본 검술을 모두 체득하셨습니다.]

[샤린 교국 기본 검술이 특성 검인에 예속 됩니다.]

[잊혀진 제왕의 검 7/18]

[특성 검인의 경험치가 15% 상승합니다.]

[검인에 기본 검술 7개가 모인 효과로 모든 신체능력이 3% 상승합니다.]

“음...”

신체능력이 오른 순간 내 몸이 달라진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3%나 되니, 그 차이를 모를 수가 없다.

“진짜 이거 미쳤어.”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두 번째 책 티라렌 왕국 기본 검술서를 펼쳤다.

팔랑.

마음이 들떴지만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마지막 장까지 차분하게 읽었다.

[티라렌 왕국 기본 검술을 모두 체득하셨습니다.]

[티라렌 왕국 기본 검술이 특성 검인에 예속 됩니다.]

[잊혀진 제왕의 검 8/18]

[특성 검인의 경험치가 15% 상승합니다.]

[검인에 기본 검술 8개가 모인 효과로 모든 신체능력이 3.5% 상승합니다.]

“크으...!”

신체능력이 3.5%오르자 더운 여름 시원한 맥주를 마신 것 같은 탄성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오늘만 신체능력이 6.5%가 올랐다.

정말 좋은 일이지만, 한 번에 이 정도로 신체능력이 올라가면 힘 조절이 어렵다. 악기를 조율 하듯이 몸을 움직여서 직접 내 몸을 조절해야 한다.

“이거까지만 읽고 가자.”

파에스가 날 생각해 준 성의가 있으니, 그가 가져다 준 책들을 모두 읽고 돌려놓았다. 혹시 몰라서 서재의 책을 모두 뒤져 본 뒤 밖으로 나갔다.

“진짜 안 왔으면 어쩔 뻔 했냐.”

고요의 숲만 들렸다가 가이린으로 돌아갔다면 이 책들을 한참 뒤에서나 얻었을 거다. 지크에게도, 파에스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올라간 신체능력을 조절할 생각으로 아까 파에스와 대련했던 연무장으로 돌아갔는데 연무장에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있었다.

“무슨 일 났나?”

가까이 가니 크라이드와 사이온의 기사가 마주보고 서있다. 사이온의 기사는 검을 집어넣고 크라이드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졌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뭐해?”

“헉!”

“유, 유렌 록스 후작님!”

뒤에서 한 마디를 던지자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쫙 물러났다.

“아...”

“유렌님!”

기사들은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고 크라이드는 웃으며 다가왔다.

“기사 분들과 대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련?”

“네. 혼자 수련을 하고 있으니, 대련을 신청해주셔서요. 검을 나누며 친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겼어?”

“육 연승 했습니다!”

가벼운 대련이지만 부하가 이겼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다른 기사들의 표정이 별로 나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서로 만족스러운 대련을 한 거 같다.

파에스나 지크와 마찬가지로 사이온의 기사들은 진정한 기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라이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

“벌써 가실 겁니까?”

크라이드가 아쉽다는 듯 뒤에 기사들을 보았다. 그사이에 약간 친해진 모양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잖아.”

“그렇긴 하죠.”

“일정이 늦어졌으니, 돌아가야 해.”

“알겠습니다. 준비해놓겠습니다.”

가이린으로 돌아가서 밀린 일을 처리한 뒤 클로버를 먹고, 정보도 모아야 할 것 같다. 정보를 수집하는 동안 록스에도 한 번 다녀오고.

파에스 후작에게 떠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저택으로 갔지만 그는 그곳에 없었다. 그의 집사 중 한 명이 나를 후작의 개인 연무장으로 안내해주었다.

“좀 더 밀어!”

“알겠습니다!”

후작의 개인 연무장에 가니, 파에스와 지크가 서로 검을 나누고 있었다.

콰과과광!?

파에스와 지크는 나와의 대련에서 얻은 것들을 되새기기 위해 수련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집중을 하느라 내가 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김에 구석에서 신체 감각을 조율하기로 했다.

신체능력 6.5%의 상승은 정말 엄청난 변화였다. 힘 조절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조금만 힘을 줘도 생각이상으로 튀어나간다.

바뀐 신체감각에 익숙해지려고 몸을 움직이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음?”

뒤에서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어느새 수련을 끝낸 파에스가 인상을 찌푸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련은 끝나셨습니까?”

“그래. 근데 자네. 그사이에 변한 건가? 무언가가 다른데? 으음...”

파에스는 내 능력의 변화를 느낀 모양이다. 내 움직임만 보고 변화를 눈치 채다니, 역시나 마스터는 마스터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상하군. 변한 거 같은데. 훨씬 더 빨라진 느낌이야.”

파에스가 확신을 하지는 못하고 있어서, 모르쇠로 넘어가기로 했다.

“떠날 인사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뭐? 며칠 있다가 가지 않고.”

“맞습니다. 좀 더 있다가 가십시오.”

파에스만이 아니라, 지크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고요의 숲에서 습격을 당하고 이곳까지 오느라 시간이 좀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저도 영주다 보니, 영지를 너무 오래 비울 수 없어서 돌아가야 할 거 같습니다.”

“음, 그렇긴 하겠군.”

지크와 달리 영주인 파에스는 날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위븐.”

“예.”

“유렌 후작이 가이린까지 편히 갈 수 있게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후작의 집사가 고개를 숙이고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아쉽군. 자네와 몇 번 더 붙어보고 싶었는데.”

“저도 아쉽지만, 또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래. 다만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전장만 아니었으면 좋겠군.”

파에스가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면 좋고. 후후.”

파에스는 크라시스와 제국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크라시스가 엘루나와 동맹을 한 이상 전쟁은 쉽게 벌어지지 않을 거다.

“자네. 기억하고 있지?”

“네?”

“내게 부탁을 하나 할 수 있다는 거 말이야.”

“그건...”

“내 아들도 자네를 한 번 돕겠다고 했다던데? 사이온의 가주와 후계자 모두에게 빚을 지우다니 정말 대단해. 하하하!”

파에스는 지크가 석상 던전 앞에서 내게 맹세를 했던 것을 말하고 있었다.

“유렌님. 제가 한 말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꼭 지킬 테니, 필요하실 때 언제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당연히 기억하고 있소. 도움이 필요 할 때 꼭 부르겠소.”

파에스와 지크는 우리를 문 앞까지 배웅해 주었다. 정문 앞에 나가니 미리 나가있던 집사가 마차를 가지고 왔다.

“유렌님. 제가 가이린으로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언제라도 오십시오.”

“꼭 가겠습니다.”

지크의 표정을 보니 무조건 찾아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이온 후작님. 여러 가지로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그러지 말게. 자네와 만나 즐거웠어. 나중에 꼭 다시 봤으면 좋겠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파에스에게 인사를 한 뒤 마차에 올라탔다. 둘은 마차가 움직일 때까지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사이온 후작가는 내 이득을 위해 온 곳이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좋은 인연을 만들었다.

이 인연이 언젠가 큰 도움이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

후작의 집사가 미리 준비를 해준 덕에 마탑에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가이린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미 저녁이 넘었기 때문에 크라이드에게 휴식을 지시하고 빽빽이에게 과일을 챙겨준 뒤 집무실로 올라갔다.

“적당하네.”

책상위에 쌓여있는 서류를 처리 하려 할 때 페루가 품에 서류를 한 아름 들고 들어왔다.

“밀린 업무 다 가져오라고 하셔서...”

“그래. 가지고 와.”

“오늘 바로 처리하시게요? 시간이 늦었는데 내일 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하루이상 잘 거 같으니까. 미리 할일 좀 해놓게.”

“하루를 넘게 주무신다고요?”

“그래. 그럴 일이 있어.”

일을 끝내고 난 뒤 바로 개인 수련장에 들어가서 여섯잎 클로버를 먹을 생각이다.

이레아와 크라이드의 경우를 봤을 때 최소한 하루는 못 일어날 거 같으니, 밀린 일부터 처리하려는 거다.

“가신 일은 잘되셨나요?”

“사이온 후작과 많이 친해졌어.”

“네? 서, 설마 제국에 있는 화검의 사이온이요?”

“응.”

페루가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들고 가려던 서류를 떨어뜨렸다.

“사이온 후작령에 계시다고 하신 게 아니었어요?”

“아니, 사이온 후작가에 간다는 뜻이었는데?”

“어어...”

페루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다.

“나중에 말해줄 게. 시간 늦었으니, 오늘은 가서 쉬어.”

“아닙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어차피 너 할 일도 없잖아. 나도 이거 끝내면 바로 자러 갈 테니, 가서 쉬어.”

“음, 그럼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페루를 돌려보내고, 서류들을 모조리 처리 한 뒤 개인 연무장으로 향했다.

“요정의 클로버...”

마법 주머니에서 클로버를 꺼내 살펴보았다.

크라이드와 이레아의 경우를 생각해봤을 때 클로버를 먹으면 자신과 같거나 비슷한 능력을 가진 누군가와 만날 수 있는 거 같았다.

그래서인지. 난 누군가와 만날지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와 만날 수 있을 거다.

“기대되네. 이번엔 뭘 얻을지...”

씩 웃고, 클로버를 입에 넣었다. 혀끝에 닿자마자 단맛이 느껴졌다.

한 번 씹으니 약간의 쓴맛이 퍼져 나왔지만 그 쓴맛을 느낄 새도 없이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납이라도 든 것처럼 눈꺼풀이 무거워서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음...”

눈을 뜨자, 수련장의 검은 천장이 하얀 하늘이 되어 있었고, 그 하늘에서 대나무 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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