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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화 요정의 선물 (2) (167/241)

요정의 선물 (2)

클로버? 

렐리아의 손에 들린 것은 숲이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로버였다. 다만 잎의 개수가 평범하지 않았다. 

“여섯잎 클로버?” 

다섯잎까지는 본 적 있지만 잎이 여섯 개인 클로버는 처음 보았다. 잎끼리 서로 덮어서 선풍기 날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맞아요. 저희 차원에서 나오는 클로버죠. 여섯잎의 클로버는 그 중에서도 특별해요.” 

“의미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클로버의 의미를 아시나요?” 

“세잎은 행복, 네잎이 행운인 건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그리고 여섯 잎은 기적을 뜻하죠.” 

“기적...” 

렐리아가 내 손에 클로버를 올려주었다. 

[요정계의 여섯잎 클로버] 

요정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클로버. 기적을 뜻하는 클로버 답게 취하게 되면 자신에게 필요한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 일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달라진다. 

“저도 사람에게 드리는 게 처음이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다만 확실한 건 자기 자신의 근원에 영향을 미치는 기적이라는 거예요.” 

“근원...” 

렐리아는 내 손에 여섯잎 클로버 3개를 더 올려 주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은 3명이다. 왜 4개를 줬는지 모르겠다. 

“한 개를 더 주셨는데...” 

“아마 필요 하실 거예요.” 

렐리아는 알고 있다 말하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에게 줄 일이 생길 거라는 뜻 같았다. 

“감사합니다.” 

렐리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클로버를 크라이드와 이레아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전 한 것도 없는데, 이런 귀한 걸...” 

“맞습니다. 저도 아무 것도 한 게 없습니다.” 

“한 게 없다니요. 두 분은 기린님을 구해주시고, 숲을 지키기 위해 싸워주셨잖아요. 받아주세요.” 

“렐리아님.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둘은 렐리아에게 고개를 꾸벅이며 클로버를 받았고, 렐리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나도 뿌듯한 얼굴로 셋을 보다가 내 손에 들린 여섯잎 클로버를 쳐다보았다. 

“근원에 영향을 미치는 기적이라...” 

이 클로버는 원작에서도 나오지 않다보니, 긍정적인 효과가 날 것은 확실하지만 뭐가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유렌님. 궁금한데, 저 먼저 먹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꺼니까. 마음대로 해.” 

“그럼. 먼저 먹어보겠습니다.” 

크라이드는 씹지도 한 입에 클로버를 삼켜버렸다. 

“음...” 

날 보고 피식 웃은 크라이드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버렸다. 

“야!” 

다가가서 크라이드의 상태를 확인해 보니 호흡이 안정적이다. 잠을 자고 있을 때와 비슷한 상태다. 

“저도 지금 먹어볼게요. 궁금하네요.” 

이레아는 크라이드가 뒤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도 겁내하지 않고, 클로버를 들어올렸다. 

“그러세요.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네. 믿을 게요.” 

이레아가 방긋 웃더니, 클로버를 입에 넣었다. 

“음, 조금 단맛이 있네요.” 

맛을 음미하듯 오물거리던 이레아도 크라이드처럼 뒤로 넘어갔다. 그녀의 호흡도 잠을 자는 듯 일정했다. 

“요정들이 먹어도 이렇게 잠을 자나요?” 

“네. 다만 요정들은 반나절 정도면 일어나요. 저 분들이 언제 깨어나실 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렇군요.” 

결계까지 열린 상태고, 기린은 아직도 기절한 상태다. 나는 가이린으로 돌아가서 먹어야 할 거 같다. 

** 

하루가 지났지만 이레아와 크라이드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에게 얻어맞은 충격이 컸는지 기린도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좀 살살 때릴 걸 그랬나. 음?” 

어깨 쪽에서 회색 연기가 봉우리처럼 솟아올랐다. 

-주인. 

포메라의 목소리다. 녀석은 이레아에게 들키지 않도록 자신을 영체화한 뒤 가장 작은 형태로 변해서 나타났다. 

-서, 성녀는 어디 있소? 

-지금은 자고 있으니 괜찮아. 벌써 완성 된 거야?” 

-그렇소. 

렐리아에게 바람을 쐬고 온다 말한 뒤 결계 밖으로 나가서 포메라가 나올 수 있게 해주었다. 

“주인이 주문한 아티펙트가 완성 되었소.” 

“네 말보다 빨리 됐네.” 

“주인이 준 보석들의 질이 높아서 마력흡수와 저주 변화가 생각보다 빨랐소.” 

포메라는 내게 똑같이 생긴 목걸이 두 개를 건네주었다. 하나는 파란색 보석이, 하나는 초록색 보석이 박혀있었다. 

“파란색을 주인이 걸고, 소환할 대상에게 초록색 목걸이를 거시오. 초록색은 일부러 크게 만들었소.” 

“고맙다. 수고했어.” 

“삼일에 한 번 8시간 정도 소한되었다가 자동으로 돌아가는 방식이오. 사실 소환이라기보다는 잠시 불러오는 느낌이오.” 

“그거면 충분해. 그 짧은 시간에 이런 걸 만들다니, 역시 7서클답네.” 

“크흠. 뭐, 그 정도 가지고...커허험...” 

“그래. 그래.” 

포메라는 내 칭찬을 듣고 웃음을 참으려는 듯 헛기침을 했다. 솔직하게 기뻐하면 될 걸 이 녀석도 참 이상한 부분에서 꼬여있다. 

“다만 조건이 있소. 목걸이를 채운 대상이 주인에게 은혜를 갚아야 된다는 말을 하거나, 동의를 해야 목걸이의 효과가 발생할 거요.” 

이 목걸이를 채울 대상은 당연히 기린이다. 기린의 벼락과 육체 능력은 언제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힘이라. 필요할 때 부를 수 있게 만들 생각이었다. 이곳까지 왔으니, 그 정도는 얻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근데 이 목걸이의 원래 효과는 뭐였어?” 

“파란색 목걸이의 주인이 초록색 목걸이의 주인에게 불운과 쇠약의 저주를 거는 물건이었소.” 

“그런 게 소환으로 변할 수가 있어?” 

“불운과 쇠약의 저주가 지시의 저주로 바뀐 것이로, 흑마법으로 봤을 때 저주의 종류가 다른 거지 큰 차이는 없소.” 

“그렇군.” 

사실 잘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알아들은 척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조금 문제가 있소.” 

“문제?” 

“그렇소. 은혜를 갚는다고 말하는 대상이 진심으로 말해야 한다는 거요. 아마 쉽지 않을 거요.” 

“진심으로 은혜를 갚는다고 말해야한다라... 어렵지 않겠는데?” 

“음?” 

정말로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기린을 깨운 뒤 녀석의 잘못을 말하면서 혼내고, 살살 달래면 알아서 넘어올 거 같다.

“록스엔 별일 없지?” 

“나야 해변가에만 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알 수가 없소. 시끄럽진 않으니 큰 일은 없을 거요.” 

“그렇긴 하겠네.” 

이번에 돌아가면 록스에 가서 아버지의 얼굴이라도 한 번 봐야 할 거 같다. 가끔 통신으로 얘기는 했지만 최근엔 그것도 하지 않았다. 

“돌아 갈 때는 어떻게 하겠소?” 

“성녀님이 있으니 네 도움은 못 받아.” 

“아! 그, 그렇군. 그럼 난 가보겠소.” 

“그래. 고맙다.” 

“전에도 말했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아도 되오.” 

포메라는 턱을 들어올리더니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난 목걸이를 챙겨서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두 명과 한 마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난 씩 웃으며 기린에게 다가갔다. 내 표정을 본 렐리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악. 

초록색 목걸이를 기린에게 채웠다. 

-음... 

목걸이를 걸어주자마자 기린이 눈을 떴다. 

-으헉! 아, 악마! 

“악마는 무슨.” 

기린은 일어나자마자 땅이 파일 정도로 뒷걸음질을 쳤고 뿔이 흔들릴 정도로 온 몸을 떨었다. 

“이제 네가 얼마나 약한지 알았겠지?” 

-으윽...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대들기나 하고 말이지.” 

-그, 그건 네가 너무 많이 때려서... 

“나나 이레아님이 널 구하지 않았으면, 넌 지금 네 손으로 이 숲 전체를 파괴하고, 밖으로 나가 아무 죄도 없는 인간들을 죽이고 다녔을 걸? 

-... 

기린은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난 녀석이 생각을 정리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네 말이 맞다. 내가 냉정하지 못했고, 네게도 큰 실례를 했어... 

고개를 든 기린이 나를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곳을 홀로 지키다보니 내가 최고고, 내 말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네게도 저들에게도 정말 미안하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어.” 

-으음...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면 나도 말로 끝냈을 거다. 주먹을 나누지도 않았겠지.” 

-미안하다. 내가 머리에 피가 쏠렸던 것 같다.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거다. 

기린에게서 나오는 말은 녀석의 진심을 담고 있었다. 잔잔하면서도 진중한 느낌이다. 

“그럼 내게 빚진 것을 인정하는 건가?” 

-당연히 인정한다. 너희들에게 정말 큰 도움을 받았어. 이 은혜는 어떻게 해서든 갚으마. 

“그래?” 

기린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내 목걸이와 기린의 목걸이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두 빛은 실 같은 선이 되어 가운데에서 매듭이 생겨난 뒤 사라졌다. 

-이, 이게 무엇인가! 

“뭐긴 뭐야. 계약이지.” 

-계, 계약? 

기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목걸이의 힘에 대해서도. 

-이 무슨! 

기린은 목에 걸린 목걸이를 떼려고 발버둥 쳤지만 당연히 떨어지지 않았다. 저건 내가 떼거나 이레아가 해주를 해줘야 제거 할 수 있을 거다. 

“네 입으로 은혜 갚는다며.” 

-그, 그런 말은 했지만, 이건 강제지 않나! 

“누가 노예처럼 부린 댔냐. 정말 위험하고, 네 도움이 필요 할 때만 부를 테니 걱정 마. 평소에는 계속 이곳에 있을 거다. 왜 겁나?” 

-거, 겁은 무슨! 

기린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였지만, 그 말을 꺼내지 못하고 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바로 어제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건방졌던 놈이 저러고 있으니, 안쓰럽기도 하면서 웃음이 나온다. 

“실컷 잤으니, 일단 일어나서 결계나 다시 만들고 무너진 숲이나 정리해.” 

“숲은 제가 회복시키고 있어요. 기린님은 결계를 복구해주세요.” 

-알겠다. 그건 해야지. 

기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결계 앞으로 가서 바닥에 뇌전을 흘리며 결계를 복구시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기린이 결계를 복구하는 소리와 진동 때문에 크라이드가 몸을 움찔 거렸다. 방해받지 않도록 진동을 막아주려 했지만 그가 눈을 뜨는 것이 먼저였다. 

“어?” 

크라이드의 눈빛이 달라졌다. 육체적으로 강해졌거나, 오러가 늘은 것이 아니다. 좀 더 내부의, 안쪽의 무언가가 달라졌다. 

“크라이드?” 

“이제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크라이드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의미를 모르겠어서 그가 설멸을 해주길 기다렸다. 

“유렌님이 버서커라 칭한 상태를 이제야 통제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뭐?” 

크라이드가 저렇게까지 말한 다는 것은 버서커를 통제할 수 있다는 소리다. 

“클로버를 먹고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저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분께 수련을 받고 대화를 나누며 제 진정한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정신세계에서 만난 누군가가 크라이드에게 버서커의 능력을 개방 시켜준 모양이다. 예전 당천위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경우인 거 같다. 

“정말 통제 할 수 있어?” 

“넵!” 

크라이드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도 대답했다. 

기적이라는 게 자신의 진정한 능력을 배우는 건가? 아니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존재를 만나는 건가? 

“음...” 

클로버의 능력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을 때 이레아도 눈을 떴다. 

화아악! 

이레아의 눈에서 은빛의 광명이 비쳤다. 그녀가 사용하던 신성력과 비슷한 색이었지만 평소보다 훨씬 진했다. 은빛의 여신 그 자체를 보는 듯 했다. 

“이레아님?” 

“기적이라는 게 이런 뜻이군요.” 

“네?” 

“클로버를 먹고 나서 알 수 없는 공간에서 깨어났어요. 그곳엔 아름다운 여성분이 계셨죠.” 

“여성분이라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전 그분과 계속 대화를 나눴어요. 제가 살아온 삶, 이상, 목표 같은 것들. 그분은 조언이 필요할 땐 조언을 해주시고, 하소연을 할 때는 묵묵히 들어주셨죠. 너무 편안한 시간이었어요.” 

크라이드와 다른 방식이지만 이레아 역시 어떤 기연의 존재를 만난 것 같다. 여섯잎 클로버의 기적이란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만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 

이레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후 미소를 지었다. 

“전 단순히 그분과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신성력의 성질이 더욱 순수해지고, 그 양이 늘어났어요. 이제 쓰지 못했던 신성 능력도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크라이드와 마찬가지로 이레아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보여주었다. 여섯잎 클로버로 능력이 강해지면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도 알 수 있는 거 같다. 

“축하드립니다.” 

“유렌님과 렐리아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두 분 정말 감사합니다.” 

“도움이 됐다니, 저도 기쁘네요.” 

기린 옆에 있던 렐리아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기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고, 셋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유렌님은 드시지 않으시나요?” 

“이 둘을 보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요. 영지로 돌아가서 먹으려고 합니다.” 

“아, 그렇겠네요. 꽤나 시간이 지체됐으니, 돌아가야겠네요.” 

“좀 더 있으셔도 되는데...” 

렐리아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기린은 입가가 쓱 올라갔다. 전혀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다. 

“좋아?” 

-무, 무슨 소리냐. 

“이제 자주 볼 텐데,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걸.” 

기린이 자신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하지만 목걸이는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널 녹용이라 부르마. 마구 이용해주지.” 

-그, 그런... 

** 

다음날 우리는 렐리아와 인상이 찌그러진 기린의 배웅을 받으며 결계 밖으로 나왔다. 

렐리아의 힘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숲이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아쉽게도 이미 죽은 님프나 드라이어드는 되살아나지 않겠지만. 

“유렌님.” 

숲의 출구로 향할 때 이레아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네.” 

“앞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략 30명 정도, 단련 된 기사들로 보입니다.” 

“저도 느꼈습니다. 저쪽도 우리를 눈치 채서 조만간 조우할 거 같습니다.” 

이레아만이 아니라 크라이드도 느꼈는지 앞쪽을 노려보았다. 

난 이미 한참 전에 그들이 이쪽으로 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 

“피하시겠습니까?” 

“피해? 잘 못한 것도 없는데 왜 피해. 그냥 간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그대로 출구를 향해 직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30명 정도의 기사들과 마주쳤다. 

그들 중 가운데에 있는 자를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오랜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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