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6화 요정의 선물 (166/241)

요정의 선물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나, 나는... 

“닥치고 일단 맞자.” 

퍼억! 

빠악! 

기린의 길게 뻗은 주둥이에 주먹을 날리고 턱주가리에 니킥을 박았다. 몸이 단단해서 그런지 때리는 소리가 아주 찰진 소리가 울린다. 기분이 상쾌해질 정도다. 

“이 멍청한 노루 자식아. 너도 얼마든지 세뇌 될 수 있다고 조심해야 된다고 했지.” 

-그, 그만... 

“네가 세뇌 당할 뻔한게, 오늘만 두 번이다. 이 멍청아!” 

누워서 버둥거리는 기린을 걷어차서 날려버렸다. 

퍼억! 

-꾸에엑! 

기린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고나서 날아가 땅에 쳐 박혔다. 

“이레아님이 돕지 않았다면, 넌 지금도 저 놈의 손에서 광대처럼 놀아나고 있었을 거다.” 

나무 기둥에 묶여 넋이 나가 있는 브리더를 가리켰다. 기린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브리더를 향해 뿔을 겨누었다. 

“너 뭐하냐?” 

-저 놈은 내가 죽이겠다. 

“쟨 내 꺼야. 헛짓 말고 네 걱정이나 하시지?” 

-이 정도면 충분히 맞았다. 이제 그만해라. 나도 참는데 한계가 있으니...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기린을 보고 나도 그만하려 했다. 하지만 저런 말을 하니 꺼져가던 분노가 다시 타올랐다. 

“참지 마.” 

-뭐? 

“참지 말라고. 내가 네 목숨을 구해줬다는 거 잊어버리고, 어디 마음대로 해봐.” 

-너 진심인가? 

“그래.” 

-네가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내 벼락은 인간이 버틸 수 없는 힘이다. 

“하, 주접떨지 말고 그냥 최대로 해봐. 나중에 딴말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이놈에게 힘의 차이를 보여 줄 생각이다. 특히나 벼락을 써주길 원했다. 

-후회하지 마라! 

빠지지직! 

기린의 뿔에서 푸른색의 스파크가 튀겼다. 놈은 내게 맞은 것이 꽤나 분했는지 벼락의 출력을 꽤나 높인 상태였다. 

콰아아아! 

기린의 뿔에서 한 마리 뇌룡 같은 번개의 줄기가 쏟아졌다. 내게 쏟아지는 번개를 향해 오른 손과 왼손을 들어올렸다. 

“옛날이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겐 소용없어.” 

파지지직! 

양손에서 발동 된 흡뇌지력이 기린의 벼락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뇌전의 줄기는 내게 아무런 충격도, 어떠한 고통도 주지 못하고 고스라니 내 내력이 되어주었다. 

“좋은데.” 

텅텅 비어 바닥을 드러내던 단전에 샘물처럼 내력이 솟아올랐다. 흡뇌지력을 운용해서 기린의 벼락을 모조리 내 내력으로 만든 것이다. 

-어, 어, 어떻게! 대체 네 정체가 뭐냐! 절대 인간일 수가 없어! 이건 말이 안 돼! 

“다했지?” 

입가에 히죽이는 미소를 걸고. 경악을 하고 있는 기린에게 다가갔다. 

“아까 내가 힘이 좀 달려서 제대로 못 때렸거든.” 

-뭐? 무슨 소리냐! 엄청 아파서... 

“근데 지금은 네 덕분에 힘이 넘친다. 정말 제대로 패줄게.” 

뻐어억! 

아까와 달리 살짝 내력을 담아 기린의 몸통을 쳤다. 시원하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네 주제를 알게 해주마! 개구리자식아!” 

-으, 으아악! 막아라! 이 미친놈을 막아! 

퍼어억! 

** 

결과적으로 말하면 기린은 나한테 죽기 직전까지 쳐맞고 기절했다. 

기린의 몸에 내단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확인하려 했지만, 렐리아가 차원을 열고 나타나 제발 기린을 살려달라고 빌어서 참았다. 

만약 그녀가 오지 않았다면 기린의 삶은 오늘로 끝났을 지도 모른다. 

아린과 크라이드에게 기절한 기린을 데리고 결계로 가라고 한 뒤 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에 남았다. 한 가지 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불러볼까.” 

주머니에서 포메라의 생명의 구슬을 꺼내려 할 때였다. 갑자기 그리드가 녹아내린 땅 속에서 뭔지모를 거대한 기운이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화아악! 

땅에서 솟아오른 주황색 빛은 자연스럽게 내 오른손에 달려들었다. 

이전에 슬로스가 죽었던 곳에서 나온 보랏빛처럼 주황빛은 내 신체에서 따스한 기운을 준 뒤 사라졌다. 

[‘이름을 잃은 자’의 파편을 획득하셨습니다.] 

“이름 잃은 자의 파편이 대체 뭐지?” 

예전에 석상 던전으로 떠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슬로스가 죽은 자리에서 나온 보라색 기운이 내게 흡수되고 나타난 메시지와 완전 똑같았다. 

“설마 칠죄종을 모두를 처리해야 무언가가 벌어지는 건가...” 

이런 일이 우연히 일어날리 없다. 원작과는 다르게 칠죄종의 죽음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엔비가 죽었다는 건 또 뭔지 모르겠네.” 

엔비가 칠죄종 중에 전투담당이 아니라고 쳐도 쉽게 죽을 놈은 절대 아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정보가 없는 지금은 생각을 해도 무의미하겠지. 그리드가 그대로 죽은 게 아쉽군...” 

씁쓸한 눈으로 그리드가 죽은 바닥을 보다가 주머니에서 포라의 생명의 구슬을 꺼내 녀석을 불렀다. 

“음...” 

7서클 마스터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조그만 꼬마 해골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랜만이오. 주인. 한 동안 주인이 부르지 않아 평화로웠는데.” 

“웃기고 있네. 심심했지?” 

“그, 그렇지는...” 

“됐고. 시간이 별로 없으니, 본론만 말하마. 이곳에서 보스 급 몬스터들 여럿이 죽었어. 그 놈들을 언데드로 만들 수 있겠어?” 

“보스급 몬스터들이라 하였소?” 

포메라는 내게서 시선을 뗀 뒤 주변을 둘러보다가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렸다. 

“뭐, 뭐요! 또 무슨 짓을 한 거요? 이 난리는 대체...” 

포메라의 말대로 주변은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것처럼 폐허가 되어 있었다. 사실 대부분은 그리드의 윈드 브레스 때문이었다. 

포메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단히 말해주었다. 

“위, 윈드 브레스라니! 대체 왜 주인에게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요? 도통 이해 할 수가 없소! 무슨 사건을 일으키는 저주라도 걸린 거요?” 

“글쎄다.”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일으키는 곳을 찾아가는 거니 뭐라 할 말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내 생각보다 사건들이 점점 더 커지고 있지만. 

“어쨌든 몬스터들을 언데드로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으음, 윈드 브레스 때문인지 너무 조각이 났소. 분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역시 힘든 건가?” 

“하지만!” 

포메라가 기다리라는 듯 손을 들어올렸다. 해골이라 자세한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엔 자신감이 가득 담겼다. 

“이제 난 7서클 마스터요.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요.” 

포메라가 허공으로 손을 들어 올리자, 바닥에서 흰색 구슬 같은 것들이 떠올라 포메라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어디보자...” 

포메라는 자신에게 다가온 구슬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블랙 오크투사에 자이언트 에킬? 이거 정말 보기 힘든 건데! 화이트 베어 울프! 이 녀석은 도감에서도 보지 못했소.” 

몬스터들의 정보를 확인한 포메라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럼 할 수 있어?” 

“그렇소. 예전이라면 불가능했겠지만, 흑마법서에서 여러 가지 마법과 기술을 익혔소. 몬스터들의 혼만 손에 넣으면 부서진 육체를 복구 할 수 있소.” 

“혹시 그리드라는 이름의 혼도 있나?” 

“그리드?” 

포메라는 혼들을 자세히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음, 미안하지만 그런 것은 없소.” 

“그런가...” 

아쉽지만 그리드의 혼은 이미 사라진 모양이다. 혹은 내 손에 들어온 게 그놈의 혼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럼 몬스터들을 내 컬렉션으로 만들도록.” 

“그놈의 내 컬렉션...” 

“뭐?” 

“아, 아니오.” 

포메라는 찔끔 하고서 혼을 이용해 몬스터들을 언데드로 만들기 시작했다. 잠시 구경을 하다가 나무에 묶여있는 브리더에게 다가갔다. 

“으으...” 

브리더는 좀 심하게 얻어맞아서 그런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놈의 입을 벌려서 자백제를 밀어 넣고 깨웠다. 

“으윽...” 

“이곳에 신수가 있다는 걸 알려준 건 누구지?” 

“에, 에블린이다...” 

역시 그녀인가. 

세피로스의 두뇌이자, 대부분의 행동을 지시하는 것이 에블린이다보니 예상은 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의 에블린은 원작보다 훨씬 부지런하고 예측이 되질 않는다. 

“그녀가 이곳에 무슨 신수가 있는지 정확히 말했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세, 세상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번개의 능력을 가진 강력한 신수가 있다고 말했었다. 신수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마, 말해주었고.” 

“그럼 네가 본 신수는 에블린이 알려준 신수의 외형과 똑같았나?” 

“그, 그렇다.” 

에블린 혹은 그녀에게 정보를 전한 검은 로브도 정확히 기린이라는 이름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아는 것은 기린의 외형과 능력정도인 모양이다. 

“혹시 라시드라고 알고 있나?” 

“라시드... 검귀를 말하는 건가?” 

“맞아. 혹시 그의 위치를 알고 있나?” 

“모, 모른다. 가끔 에블린의 이야기를 전하러 오지만 그 외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흑매석은 어디서 났지?” 

흑매석은 브리더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에, 에블린이 넘겨주었다.” 

“정말 악마가 울고 갈 여자로군.”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에블린은 라시드에게도 흑매석을 사용했을 거다. 라시드의 기억을 지우고 흑매석을 사용해 머릿속 깊은 곳에 세뇌를 박아 넣었을 거다. 

“에블린이 공격하려는 도시는 어디지?” 

“나, 나도 모른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쩌면 에블린 본인도 아직 정확한 위치를 정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네가 에블린에게 넘긴 몬스터들을 모두 말해라.” 

“그, 그건...” 

에블린이 브리더가 세뇌한 몬스터들을 이용할 것이 당연하니, 그 대책을 세울 생각으로 물은 것인데 생각 이상으로 높은 수준의 몬스터들의 이름이 나왔다. 

기린급으로 위협적인 괴수들도 끼어 있었다. 저 몬스터들이 한 번에 움직인다면 왕도나, 제국의 수도라고 하더라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다. 

브리더를 고통 없이 끝내주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포메라에게 다가갔다. 

“잘 되 가냐?” 

“순조롭소. 두 시간정도면 모든 몬스터들을 언데드 화 시킬 수 있을 것 같소.” 

“음, 빨리 하는 게 좋을 텐데...” 

“왜 그러는 거요?” 

“여기 네가 싫어하는 성녀님이 있거든.” 

성녀 소리에 움찔 거린 포메라는 피식 웃고서 손을 흔들었다. 여전히 자신감이 가득 담긴 눈이다. 

“주인. 미안하지만 난 이제 7서클 마스터요. 그 때 봤던 성녀의 힘으론 날 감당 할 수...” 

“나도 미안하지만 성녀님도 가만히 있지 않았더라고,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어. 그녀의 주먹에 한 방만 맞아도 너 머리 깨질걸.” 

“최, 최대한 빨리 하겠소.” 

여유를 부리던 포메라는 허겁지겁 움직이며 마력의 흐름을 가속시켰다. 

“저기 주인.” 

“응?” 

“마, 망 좀 봐주시오.” 

“...” 

** 

포메라는 성녀에게 진심으로 겁먹었는지 2시간이 걸릴 일을 1시간에 끝내고 도망치려 했다. 

바로 워프를 사용하려는 녀석을 붙잡고 한 가지 아티펙트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오래 걸리거나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조건이 맞는 아티펙트를 포메라가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업그레이드 하는 방식이라 금방 된다는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 

포메라를 보내고, 주변을 대충 정리한 뒤 숲의 끝 결계가 있는 곳을 향했다. 

“결계가 열려있군.” 

내게 맞아 기절한 기린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지, 결계가 그대로 열려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기린이 한쪽에 쳐 박혀 있고 렐리아와 이레아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유렌님.” 

“주변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요? 아주 조금이지만 언데드 새끼들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자, 잘못 느끼신 거 아닐까요?” 

“그런가요. 하긴 조금 애매하긴 했어요.” 

여기서 거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그걸 느꼈단 말인가. 포메라를 빨리 보내지 않았다면 정말 이레아가 찾아왔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렌님. 정말 감사합니다.” 

렐리아가 땅에 내려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크라시스 왕국에서 사용하는 최고의 예법이다. 

“렐리아님?” 

“기린님을 구해주시고, 숲의 파괴를 막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생 갚기 힘든 은혜를 입었어요.” 

렐리아는 여전히 예를 취한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 아닙니다!” 

“맞아요. 도울 수 있는 건 당연히 도와야죠. 어서 일어나세요.” 

렐리아의 갑작스러운 예에 크라이드와 이레아는 당황한 담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레아는 렐리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리고... 기린님에게 가르침을 주신 것도 감사해요.” 

“렐리아님이 나오시지 않았다면 정말 죽일까 했는데...” 

“그, 그렇군요.” 

내 말이 진심임을 느낀 렐리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와서 말리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렐리아님.” 

“네.” 

“가끔씩 기린을 데려다가 써도 되겠습니까? 알아서 돌아오게 해드리겠습니다.” 

“아, 그...전 상관없어요.” 

“감사합니다.” 

렐리아는 안쓰러운 눈으로 기절해있는 기린을 쳐다보았다. 난 반대로 히죽이는 미소를 지으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기린을 보았다.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기린에게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렐리아가 우리 쪽 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희에게요?” 

“네.” 

렐리아가 차원을 열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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