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4화 그리드 (164/241)

그리드

새롭게 나타난 자의 눈에는 세상만물 모든 것에 대한 욕망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남이 다 잡아놓은 사냥감을 챙기는 게 가장 좋은 사냥방법이지.”

그의 손짓에 기린을 감싼 금화가 더욱 굵게 변했다. 흡사 금빛의 쇠사슬로 기린을 포박한 느낌이다.

“왜 저놈이 여기에...”

금화를 이용해서 이동을 하고, 금화를 조종해 술수를 부리는 놈은 오직 한 놈뿐이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이름: 그리드(greed)]

[특성: 칠죄종-탐욕(avaritia)]

어떤 전조도 없이 칠죄종의 탐욕이 고요의 숲에 나타났다.

-크아아아아!

자신을 감싼 금화를 찢기 위해 기린이 발버둥거리며 번개를 쏘아냈지만 금화의 쇠사슬은 풀리지 않았다.

“그 녀석은 내 것이다!”

브리더는 자신의 기린을 뺏겼다고 생각했는지 그리드에게 강한 적대감을 내비쳤다.

“흑매석이라는 기물을 이용해 놓고도 실패한 네놈은 이 녀석을 다룰 자격이 없다.”

“크으윽...”

그것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는지 브리더는 이빨을 갈며 그리드를 노려보기만 했다.

브리더가 사용했던 흑매석은 평범한 돌이 아니다.

마도서와 같은 고대의 물건으로 상대의 정신과 몸을 제압하고 좀 먹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상대의 저항이 강하면 강할수록 저항을 뚫는 흑매석의 힘도 강해진다.

“그렇지 않나? 유렌 록스?”

그리드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씩 웃었다. 그의 금안이 더욱 짙은 빛을 발했다.

“그래. 멍청하지.”

“호오...”

그리드는 내 이름을 말해서 나를 당황시키려 한 것 같지만, 나는 그리드의 능력을 알고 있다. 고작 그런 것에 놀랄 리가 없다.

욕망의 눈.

그리드의 금안이 빛나는 것은 단순한 효과가 아니다. 탐욕의 특수능력인 욕망의 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드가 욕망의 눈을 사용해 본 사람은 이름이 보이게 되고, 2단계 눈을 사용하면 상대의 타고난 재능이 보이게 된다.

놈의 금안이 내게 향하고 있었으니, 내 이름을 아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유렌 록스? 유렌 록스라니!”

그리드의 말을 들은 브리더가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곳에서 내 이름이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지 자신의 팔을 잡고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슬로스를 죽이고, 엔비까지 죽인 네 재능이 무엇일지 정말 궁금했거든. 밤에 잠을 못 잘 정도였다니까? 그런데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역시 난 운이 좋다니까. 크큭.”

“뭐?”

잘못들은 줄 알았다.

슬로스는 내가 죽인 것이 맞다. 하지만 엔비하고는 한참 전에 싸운 뒤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단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이냐! 나는...”

화아악!

엔비의 죽음에 대해 물어보려고 할 때 그리드의 머리 위에 금색 눈알이 생겨났다. 욕망의 눈의 두 번째 단계, 재능을 보는 눈이다.

“네 재능이 무엇인지 봐주마. 분명 내가 가져갈 만한... 어? 뭐, 뭐야! 이게 뭐냐고!”

욕망의 눈 2단계를 켜고 기대감에 웃고 있던 그리드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전신을 바르르 떨었다.

“유렌 록스가 무재능이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리드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귀가 따가울 정도의 괴성을 질렀다.

“멍청한 놈.”

그리드가 왜 저렇게 과민반응을 하는 지는 뻔하다.

그리드는 욕망의 눈 2단계로 내 재능을 확인한 후 욕망의 눈 3단계를 사용해서 내 재능을 복사하려 했을 거다. 하지만 욕망의 눈에 비치는 재능은 키워낸 재능이 아니라,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재능, 즉 타고난 재능이다.

“원래 유렌 록스는 재능이 없거든.”

원작의 유렌 록스는 어떠한 재능도 없다가 내가 빙의되며 사천당가와 창조주의 눈이라는 특성이 생겨난 거다. 저놈의 욕망의 눈에 내 재능은 어떤 것도 비치지 않을 것이다.

“크으으윽! 말도 안 돼.”

그리드가 당황하고 있는 지금이 기린을 구할 기회다.

양손을 앞에 둔 채로 연위결을 사용해서 허리춤에 걸려있는 비수 두 자루를 천천히 움직였다.

비수를 양 방향으로 움직인 뒤 기린을 묶고 있는 금화의 사슬을 끊을 생각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한 것 같네. 너도 저 놈과 똑같은 거 아닐까?”

브리카와 그리드를 똑같은 취급하며 놈의 감정을 자극해 방심을 유도했다.

“닥쳐라. 한 톨의 재능도 없는 무능한 놈!”

내 비웃음을 본 그리드의 눈에서 섬광 같은 것이 빛나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리드를 건드리면서도 비수를 움직였기 때문에 두 비수는 어느새 기린의 바로 밑에 도착했다.

“수 많은 생명체를 보았지만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무재능으로 그런 경지에 오를 수가 있는 거지? 말이 되질 않아!”

“그냥 하니까 되던데?”

“크으으... 무능한 놈이...”

욕망의 눈 2단계부터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 제약이 있고, 재사용시간도 긴 능력이기 때문에 놈은 내게 욕망의 눈을 사용해서 헛짓을 한 것에 굉장히 분노하고 있었다.

-이레아님. 제가 기린을 감산 금화를 부수고 그리드를 견제할 테니 그 사이에 기린을 구해주세요.

-크라이드. 브리더가 방해하지 못하도록 앞에서 막아.

이레아와 크라이드에게 전음을 전하자 둘이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짜증나는군! 글러트니. 그 머저리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리드가 분노에 잠긴 눈으로 날 내려 볼 때 놈의 시야 뒤로 이동한 비수에 강기를 씌운 뒤 전력으로 움직였다.

슈아아앙!

하나는 그리드를 노렸고, 다른 하나는 기린을 감싸고 있는 금화의 사슬을 향했다.

부아아아앙!

비수가 기린과 그리에게 도달하기 직전, 그리드의 몸에서 거친 바람이 튀어나와 그와 기린을 감쌌다. 바람의 영향으로 비수의 궤도가 어그러졌다.

파아앙!

휘몰아치던 바람을 멈춘 그리드가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등 뒤에는 한 쌍의 초록색의 날개가 생겨 있었다.

“그런 조잡한 짓이 내게 통할 거라 생각한 건가?”

“아예 바보는 아닌가보네.”

입꼬리를 올려 괜찮은 척을 했지만, 날개를 보고 식겁했다.

저 날개는 그리드가 복사한 힘 중에서도 특별하다. 평범한 바람의 능력이 아니라, 풍룡 소베른의 능력이다.

“네놈의 능력은 알고 있다.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암기들을 움직이고 독을 뿌린다고 하더군. 네 암기에 강한 힘이 담겨도 맞추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 네 능력으론 날 이길 수 없다.”

“바람 아닌데?”

글러트니가 내 능력을 그리드에게 말해 주었겠지만, 그들은 완전히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드는 암기들이 홀로 움직이는 것을 바람의 힘이라 생각해서 소베른의 능력을 꺼내든 모양인데, 연위결은 바람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

바람이 아니라, 폭풍이 막더라도 연위결은 길을 만들어 낼 거다.

따다다닥!

그리드의 양손에서 금화가 솟아올랐다. 이제 제대로 전투를 시작할 모양이다.

쿵!

쿵!

쿵!

왼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브리더는 전투가 벌어질 분위기에 자신의 몬스터들을 앞에 세웠다.

트롤 주술사, 자이언트 에킬, 블랙 오크 투사, 화이트 베어울프에 이름 모를 강력한 몬스터들이 브리더의 앞을 벽처럼 감쌌다. 하나 같이 보스 급 몬스터들이다.

저 숫자면 거의 브리더의 전력인데, 어떻게 해서든 기린을 얻으려고 하는 것 같다.

-크라이드. 저 놈을 막아. 그것을 써도 좋다.

적의 적은 친구라지만, 괜히 방해를 받았다가 일이 꼬일 수도 있으니, 크라이드에게 브리더의 처리를 명했다.

“알겠습니다!”

콰아아아!?

크라이드의 전신에서 붉은 화염이 폭발 적으로 솟아올랐다. 어깨에서 타오르던 버서커의 불꽃은 그의 전신으로 확장됐고, 커진 불꽃만큼 파괴력도 상승했다.

“크아아아!”

콰아앙!

크라이드의 내려치기에 트롤 주술사가 재생할 수도 없을 만큼 피떡이 되어버렸다.

“좋네.”

크라이드는 잘 할 거라 믿고 이레아를 보았다. 그녀는 언제라도 전투에 참여 할 수 있게 전신을 신성력으로 덮은 상태였다.

그녀는 상황에 맞게 움직일 테니, 난 그리드만 보면 된다.

그리드가 쓰는 능력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방금 보여줬던 풍룡 소베른의 바람 능력이다. 소베른이 가진 바람을 다루는 재능을 복사한터라, 극도로 위험한 힘이다.

두 번째는 금화를 다루는 능력이다.

금화의 능력이 상당히 까다로운데, 그리드의 금화가 몸에 닿으면 체력과 마나를 뺏기게 된다. 기린이 속수무책으로 꼼짝도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기다 그리드는 금화와 자신의 위치를 바꿀 수도 있다. 그 상태로 이루어지는 공격이 세 번째 그리드 본체의 육체 능력이다.

칠죄종답게 그리드의 기본 신체 능력도 정상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간단히 말해 놈의 존재 그 자체가 위험하다.

“말라 비틀어져 죽게 해주마.”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부우웅!

그리드의 손에서 만들어진 수백 개의 금화들이 내게 날아들었다.

투두두두.

가지고 있던 암기들과 주머니에 있던 암기들을 모조리 던진 뒤 연위결을 운용하여 암기들을 공중에 띄웠다.

캬갸갸갸걍!

암기들은 눈이 달린 것처럼 벌떼 같이 쏟아지는 금화들을 모조리 튕겨냈다.

연위결을 운용해 금화를 막으며 양 손으론 독을 풀어냈다.

샤르륵.

왼손으로는 부식독을 만들어 기린의 금화 위에 뿌렸고, 오른손으로 자괴연을 생성해 주변에 퍼뜨렸다.

따다다다당!

콰아아아아!

금화가 계속 튕겨나가는 것에 열이 받은 그리드가 다시 폭풍을 만들어냈다.

이미 늦었어.

바람이 터지기 전에 그리드는 자괴연을 흡입했고, 기린의 금화에는 부식독이 묻었다.

“네 놈의 조약한 바람은 내 앞에서 통하지 않는다!”

“바람이 아니라니까!”

슈아아앙!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과 바람의 창들이 내 몸을 찢기 위해 날아왔다.

빠지지직!

뇌익을 사용해 옆으로 빠지며 그리드에게 십이 비도를 날렸다.

열두 개의 비수가 각각 다른 속도와 다른 움직임을 가지고 그리드의 전신을 노렸다.

“소용없다!”

콰아아앙!

그리드의 바람이 원으로 퍼지며 십이 비도를 밀어내고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놈이 나를 비웃으려 할 때 양손으로 백광환 두 개를 동시에 날렸다.

파아앙!

이전 보다 3배는 빨리 터지는 일섬뢰의 속도에 그리드가 경악을 하며 자신의 앞에 금화의 벽을 만들었다.

지금이다.

바람의 벽에 막혀 땅으로 떨어지던 비도들을 연위결로 멈춘 뒤 다시 십이 비도를 사용했다.

슈아아아!

연위결로 움직이는 십이 비도에는 약한 어검의 묘리를 품은 채로 그리드의 핵을 향해 최단거리로 날아갔다.

퍼퍼퍽!

열두 개의 비도가 전부 그리드의 왼쪽 가슴에 박혔지만, 아쉽게도 놈의 바람의 갑옷과 단단한 신체에 가로막혀 핵을 뚫어내지 못했다.

“크으윽...”

비수가 박힌 통증과 내게 당했다는 어이없음 때문인지 그리드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변했다.

“슬로스가 네게 죽은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놓다니... 그래. 내가 그 놈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마.”

후우웅.

그리드가 자신의 양손을 모은 뒤 보자기처럼 벌렸다. 그 안에서 하늘을 부술 것 같은 빛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저거 설마...”

그리드의 바람 능력은 풍룡의 힘을 복사해 온 거다. 놈이 지금 사용하려는 힘은 풍룡 소베른이 사용하는 윈드 브레스가 확실했다.

“이것을 맞고도 살아남는다면 네놈을 인정해주마!

고오오오.

그리드의 양손에 퍼지는 빛이 점점 짙어지고, 주변의 대기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느껴보지 못한 거대한 마나가 일렁거렸다.

“저, 전부 내 뒤로 와!”

“아...”

이대로라면 다 죽는다. 윈드 브레스의 얇은 줄기에만 맞아도 살이 통째로 뜯겨 나갈 거다.

이레아와 크라이드가 오는 것보다 내가 움직이는 것이 빠를 것 같아 이레아를 데리고 크라이드의 앞에 섰다.

“이레아님. 크라이드를 잡은 다음 내 등 뒤에서 절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아, 알겠어요.”

레비타스로 막을 수 있을까?

레비타스는 어떤 단발기도 막을 수 있지만, 약 10초간 쏟아질 브레스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찢겨 죽어라!”

콰아아아아!

그리드의 양 손에서 풍룡 소베른의 윈드 브레스가 터져 나왔다. 직선으로 쏟아지는 토네이도의 줄기에 내 앞에 있던 나무가 가루처럼 갈라졌다.

콰아아아아아!

아직 닿지도 않았건만 밀려오는 바람의 해일에 피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휘몰아치는 직선의 토네이도를 보고 있으니,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레비타스!”

쿠구구구구.

명룡 보의 특수능력 레비타스가 발동되어 하얀 용의 머리가 쏟아지는 윈드 브레스를 모조리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젠장...”

6초정도가 지나자 용의 머리는 희미해졌지만 윈드 브레스는 아직도 힘이 넘치고 있었다.

용의 머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두 번째 방어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루카스!”

화염의 빛이라는 뜻의 주문을 외치자, 볼카누이스의 팔찌에서 적색 빛이 뿜어지며 내 전신을 붉은 빛으로 물들였다.

이빨을 악 문채로 레비타스를 뚫고 오는 윈드 브레스를 내 몸으로 막았다.

콰아아아아!

진짜냐...

스치기 만해도 몸이 터져나갈 토네이도를 정면에서 맞았는데도 아무런 충격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루카스는 말 그대로 무적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고오오오.

루카스를 발동하고 5초정도가 지나자 고요의 숲 전체를 찢어놓을 것 같은 윈드 브레스가 그쳤다.

후우웅.

아직 풍압이 남아있지만 브레스가 밀어닥칠 때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나 다름없다.

“아...”

브레스가 사라진 후 산발을 한 채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그리드의 표정은 내가 설명할 수 없는 경악을 담고 있었다.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내린다.

“어, 어떻게...”

“인정한다고? 네 인정 따윈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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