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1화 고요의 숲 (161/241)

고요의 숲

“숲 이름이 왜 고요의 숲이죠?” 

“못 들어보셨나요?” 

“처음 들어봐요.” 

“저도 그런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이레아만이 아니라, 크라이드도 처음이라는 듯 의문이 담긴 얼굴을 했다. 

둘 다 모를만한 게 고요의 숲은 일단 제국 쪽에 위치해 있고 특이한 종족들이 있을 뿐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보물 같은 것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고요의 숲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이온 후작가도 가끔 숲을 확인하는 것을 제외하면, 누가 들어가든 상관하지 않고 방치해두고 있는 상태였다. 

“설명해드리는 것보다 가보시면 바로 알게 되실 겁니다. 이름 그대로거든요.” 

“소음이 나지 않는 다는 건가요.” 

“소음이 나지 않게 되죠.” 

“나지 않게 된다니, 궁금하네요.” 

이레아는 이해를 하지 못하겠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이렇게 같이 다니니까 그때 생각나네요.” 

“마계화 사건이 있을 때 말인가요?” 

“네. 지금은 할아버지가 없지만요. 후후.” 

“빽!” 

빽빽이가 대신 자기가 있다는 듯 튀어나와서 이레아의 머리위로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빽빽이의 길잡이 특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고 있던 녀석을 주머니에 넣어서 데려왔다. 

“뭔가 방해가 되는 것 같지만 저도 있습니다.” 

“바, 방해라뇨. 절대 아니에요!” 

“하하...” 

민망한지 크라이드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고요의 숲에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에 다대일의 싸움에 강한 크라이드도 불렀다. 

“빽!” 

빽빽이가 언덕을 지나, 보이기 시작한 녹색 숲을 날개로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숲이 고요의 숲입니다.” 

“아!” 

“우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레아를 불러 앞의 숲을 가리켰다. 그녀와 크라이드는 숲의 형태를 보고 깜짝 놀라 입을 크게 벌렸다. 

고요의 숲의 나무는 높이가 제각각 달라서 어떤 것은 70m도 넘어보였고 어떤 것은 1m가 채 되지 못했다. 이파리나 나뭇가지의 색도 전부 달라 비슷한 형태의 나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무들의 종류가 전부 달라 보이네요.” 

“그게 특징이죠. 나무들이 다른 이유는 들어가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이제야 고요란 이름이 붙은 이유가 나오는 건가요?” 

“그렇죠.” 

이레아와 크라이드를 데리고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30분정도 들어갔을 때 갑자기 앞에 있던 나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헉! 나, 나무가!” 

“유렌님! 나무가 움직여요!” 

“나무 기둥을 보세요.” 

내 말을 들은 이레아와 크라이드는 나무 위가 아니라 아래를 보았다. 나무의 벌어진 틈에서 녹색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 걸어 나왔다. 

“으헉!” 

“저, 저건!” 

“드라이어드입니다. 지금부터는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주세요.” 

“드, 드라이어드! 저게 그 드라이어드군요!” 

“우와아아!” 

이레아와 크라이드는 드라이어드를 보느라, 내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 큰 소리를 질렀다. 

“[email protected]#!” 

자신의 나무에서 걸어 나온 드라이어드는 이레아와 크라이드를 보고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손에서 푸른빛이 일렁거렸다. 

우우웅. 

그것이 뭔지 알았기 때문에 딱히 막지 않았다. 저건 드라이어드의 침묵 마법이다. 

“읍읍...” 

“흐흡!” 

이레아는 자신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토끼눈이 되어 날 바라보았고, 크라이드는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입을 두드렸다. 

“괜찮아요. 단순히 침묵 마법을 건겁니다.” 

피식 웃으며 둘에게 조용히 귓속말을 해주었다. 

“드라이어드들은 시끄러운 것을 정말 싫어하거든요. 떠들지만 않으면 공격도 하지 않죠. 조금 있으면 침묵마법도 풀릴 겁니다.” 

“읍...” 

이레아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빽빽이는 진즉에 알았는지 양 날개로 자신의 부리를 막고 있었다. 

[드라이어드] 

나무의 정령이라 불리지만 정령속성은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이 살 나무를 정한 후 그 나무에서 평생 살아간다. 자신의 나무에서 100m이상 떨어지면 죽게 된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해 떠드는 대상에겐 침묵 마법을 건다. 숲에 존재하는 벌레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특수 능력 : 침묵 마법, 현혹 마법, 녹음의 창. 

드라이어드는 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다. 본격적으로 싸우게 되면 숲에 있는 벌레들까지 동원되기 때문에 꽤나 귀찮아진다. 

드라이어드에게 얻을 것도 없고, 안쪽의 종족이나 기린에게 밉보일 필요도 없으니 그들을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 최선이다. 

“휴우...” 

“으아아...” 

5분정도가 지나자 침묵이 풀린 이레아와 크라이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유렌님. 저 놀리려고 미리 말씀해주시지 않은 거죠? 당해보라고 하신 거 아니에요?” 

이레아가 나를 흘깃 보았다. 친해져서 그런지 예전보다 많은 표정을 보여준다. 

“그럴 리가 있나요.” 

솔직히 말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미리 말하지 않고 가게 되면 알 게 될 거라고 한 거다. 이레아의 어쩔 줄 모르는 표정과 크라이드의 당황한 표정이 재밌었기 때문에 나름 만족 했다. 

“하아아...” 

드라이어드는 잠시 우리들을 살펴보다가 다시 자신의 나무로 들어갔다. 

“정말 조용히만 있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네요.” 

“땅을 밟는 소리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후후후. 이렇게 가까이에서 속삭이듯 말하니까 고요의 숲이군요.” 

“맞아요. 다시 가자.” 

“넵!” 

크라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큰 소리를 냈고 다른 드라이어드에게 한 번 더 침묵이 걸렸다. 

“흐읍...” 

“하, 넌 정말. 빽빽아 가자.” 

“빽...” 

아직도 입을 막고 있는 빽빽이의 등을 긁어서 날려 보냈다. 녀석은 평소처럼 우렁찬 울음 대신 조용한 울음을 지르며 날아올랐다. 

“지금부터 보이는 모든 나무에는 드라이어드가 살고 있어요. 앞으로는 큰 소리를 내지 말고 조용히 걸어야 합니다.” 

“이 나무들 모두가요?” 

“나무마다 드라이어드가 살고 있기 때문에 나무들의 형태와 색이 모두 다른 겁니다.” 

“아...” 

지금부터 보이는 모든 나무에는 드라이어드가 살고 있고, 바닥이나, 웅덩이, 호수에서는 님프가 나타난다. 고요의 숲의 끝부분에 도달할 때까진 조용히 있어야한다. 

“알겠어요. 조용히 갈게요.” 

“흐읍.” 

이레아가 속삭이듯 말하고서 조용히 앞으로 걸었다. 크라이드는 아예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한 듯 입을 열지 않았다. 

“유렌님. 저, 저건 뭐죠?” 

빽빽이를 따라 이동하며 3시간 동안 표정으로 말하던 이레아가 땅에서 올라온 검은 피부의 여성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님프입니다. 대지의 정령은 아니고, 대지에 사는 종족이죠. 저들 역시 시끄러운 것을 싫어합니다. 조용히만 가면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알겠어요. 합.” 

“지금부터는 제가 앞장설게요.” 

“네.” 

“예!” 

님프가 나왔다는 건 숲의 중앙을 지났다는 뜻이다. 만일 브리더가 우리보다 먼저 왔다면 분명 무슨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조심하며 움직여야 한다. 

숲 안쪽으로 갈수록 나무에서 나온 드라이어드나, 땅위로 올라온 님프들이 많이 보이고 있었다. 우리는 더욱 소리를 죽이며 빽빽이를 따라 안으로 향했다. 

“빽.” 

혼자 왔다면 한참은 더 걸렸겠지만, 빽빽이가 지름길만 찾아 움직여서 그런지 자정이 되기 전에 숲의 끝이 보일정도가 되었다. 일단 이곳에서 쉬고 내일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화악. 

주변 나무와 수풀에서 반딧불이가 나와 주변을 밝혀주었다. 재밌게도 반딧불이의 빛마저 빨주노초 제각각의 색을 가지고 있어 꼭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았다. 

“와! 엄청 예뻐요! 정말... 흡!” 

반딧불이를 보고 이레아가 소리를 높였다가 님프의 침묵을 먹은 것 빼곤 우리는 별일 없이 숲의 끝에 도착했다. 

“일단 오늘은 이곳에서 자고, 내일 해가 뜨면 다시 움직이기로 하죠. 늦은 시간이라 저들에게도 실례가 될 테니까요.” 

“저들이요?” 

“보이진 않지만 이 앞에는 결계가 쳐져있어요. 그 안에 살고 있는 종족이 있어요.” 

“그럼 그 종족을 지키는 게 전에 말씀하셨던 기린이라는 신수인가요.” 

“네. 아마 내일 볼 수 있을 겁니다.” 

“결계나 그 신수가 알려지지 않은 게 신기하네요.” 

“결계가 자연에 녹아 있어서 알아차리기 거의 불가능해요. 결계를 뚫지도 못하니 신수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죠.” 

전에도 말했지만 난 기린과 이 안에 있는 종족의 설정을 대충 짠 상태다. 둘 다 원작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되어 있을지 내가 가장 궁금했다. 

“유렌님. 성녀님. 천막 설치가 끝났습니다.” 

이레아와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야영 준비를 끝낸 크라이드가 다가왔다. 

“수고했어.” 

다음은 내 차례였다. 천막의 주변에 환영미리진을 설치해서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모든 준비를 끝낸 뒤 우리는 건량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각자의 천막에 들어가 쉬었다. 

“드르렁...픕!” 

크라이드의 천막에서는 코고는 소리가 났다가 침묵이 반복되는 재밌는 현상이 있었다. 땅에서 나온 님프가 크라이드의 코골이 소리를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침묵을 거는 중이다. 

“하여간 손이 많이 간다니까.” 

저러다가 님프나 옆의 드라이어드가 열 받으면 밤중에 싸움이 날 것 같아서 크라이드의 수혈을 짚어 코골이가 나오지 않게 해주었다. 

“하아아...” 

크라이드에게 침묵을 걸던 님프가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땅으로 들어갔다. 

“참 별일이 다 있네.” 

님프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줄은 몰랐다. 피식 웃고 내 천막에 들어가 운기행공을 하며 밤을 보냈다. 

**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요?” 

천막을 정리한 크라이드가 딱딱한 빵을 씹으며 말했다. 

“갈 필요 없어. 바로 앞이야.” 

“결계가 바로 앞에 있나요?” 

“네.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느껴서 가는 곳이라.” 

결계를 통과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빽빽이의 길잡이 특성, 내 창조주의 눈 그리고 힘으로 결계를 부수는 방법이다.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니, 세 번째는 당연히 안 되고 내 눈과 빽빽이를 이용 할 생각이다. 

위로 100m는 솟아있고, 둘레가 4m는 될 법한 거대한 나무 옆, 높이가 2m를 겨우 넘는 상대적으로 굉장히 작은 나무 앞에 섰다.

“갈 수 있겠어?” 

“빽.” 

빽빽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2m 나무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녀석은 나무에 부딪치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어머!” 

“우와!” 

이레아와 크라이드는 그 모습에 깜짝 놀라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 

“이 나무가 결계의 입구입니다. 빽빽이를 놓치면 안 되니 바로 들어가죠.” 

“아, 네.” 

“알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어떤 방안이었다. 구조는 특이하게도 육각이었고, 벽은 녹색 바닥은 황토색이었다. 

“진인가...” 

결계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떤 결계인지 몰랐는데 꼭 환영미리진과 비슷해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창조주의 눈을 켜보자 바닥에 깔린 기하학적인 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섯 개의 선은 각각 다른 도형을 그리고 있었으며 방의 구조를 계속해서 변화시키고 있었다. 

“육합(六合)같은 건가?” 

여섯 개가 합일 하여 하나가 되는 특징을 가진 결계 같았다. 변화하는 순서를 따라 이동해야 이 결계를 나갈 수 있을 거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지?” 

“빽!”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는 알 것 같은데 시작점의 위치를 모르겠다. 출발지점을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바닥을 한참 내려다보던 빽빽이가 자신감 넘치는 울음소리를 냈다. 

“원부터?” 

“빽!” 

“둘 다 내 걸음만 따라오도록. 절대 다른 것을 밟으면 안 돼.” 

이레아와 크라이드에게 경고를 해 준 뒤 내 앞으로 원이 오길 기다렸다. 

“알겠습니다!” 

“네.” 

원이 그려진 곳을 처음으로 밟았다. 다음 순서는 나도 알고 있어서 사각, 삼각의 순서대로 도형을 밟아나갔다. 

우우웅.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결계에서 주는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여섯 번째로 검은 색의 육각형을 밟은 뒤 처음에 섰던 원에 도착했다. 

화아악! 

원을 밟자마자 육각형의 방이 사라지더니, 청아한 빛의 숲이 나타났다. 

“여긴...” 

숲이라기보다 자연 그 자체라는 말이 어울렸다. 고요의 숲과 다르게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있었고 뭔지 모를 하얀 알갱이들이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작은 호수는 밑에 깔린 모래 알갱이가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호수에서 낚시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신비로운 곳이었다. 

“확실해. 그때 본 장소야.”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미래의 내가 기린을 찾아가던 장소가 분명했다. 

“아, 세상에...” 

“여긴 엘루나 보다 더 신비로운 장소네요. 와...” 

이레아와 크라이드는 신비로운 숲의 모습에 빠져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빽...” 

둘만이 아니라, 빽빽이도 하얀 알갱이를 쫓아가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 일단 정신 차리고 이동...” 

콰르릉! 

모두를 불러 움직이려고 할 때 우리가 가야 할 동쪽에 거대한 벼락이 떨어져내렸다. 

지지지직! 

하늘이 암전이라도 된 것처럼 번쩍이며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것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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