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볼카누이스의 팔찌 (160/241)
  • 볼카누이스의 팔찌

    봉투를 뜯어 안에 있는 편지를 보았다. 내용은 간단했다. 이전에 준다고 했던 특별한 것이 준비되었으니 왕궁으로 오라고 적혀 있었다. 

    “흠...” 

    “왜 그러십니까?” 

    “폐하께서 줄게 있다고 하시는군.” 

    “우와! 뭘 주실까요? 보고의 보물은 아닐 텐데.” 

    “그래. 왕실 보고의 보물이었다면 진즉에 주셨을 거다.” 

    당시에도 예상했지만 국왕이 내게 줄 것은 보고의 보물과 격이 다른 것이다. 평범한 보물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주었을 테니까. 

    “고민할 필요 없이 가보면 알겠지.” 

    “하하, 그렇긴 하죠.” 

    “넌 어때? 가부좌와 심법은 익숙해졌어?” 

    “이제 가부좌를 해도 다리가 아프지 않고 편합니다. 심법 중에도 잡생각이 들지 않구요.” 

    페루가 뿌듯함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독을 다루는 심법이다 보니 녀석은 벌써 2성의 경지에 오른 상태다. 초급 단계인 3성까진 금방 오를 것 같다. 

    “문제 있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찾아와 물어보도록.” 

    “넵!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페루를 돌려보내고 침대에 드러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왕궁은 가장 먼저 가야하고, 지금 해결해야하는 일은 두 가지.” 

    헤일튼에 다녀와서 얻은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에블린이 어떤 곳을 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볼 때 마의와 철마가 죽고 키메라가 부족하다고 해도 다른 인원이나 몬스터를 추가해서 어떻게 해서든 공격을 할 거다. 

    “위치를 모르는 게 안타깝군.” 

    에블린이 습격을 할 장소와 시기를 알 수 없다는 점이 정말 아쉽다. 안다면 미리 준비해 둘 텐데... 

    “다음은 고요의 숲과 브리더.” 

    두 번째는 고요의 숲으로 향하는 브리더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놈이 노리는 것은 숲의 결계 안에 있는 기린이 분명했다. 

    “기린이라...” 

    아무리 내가 이름만 적어놓았다고 해도 기린의 등급은 신수다. 여태 만난 그 어떤 몬스터들보다 상위에 있는 환상의 동물이다. 

    “잠깐만! 설마 기린을 세뇌해서 습격할 때 이용하려 했던 건가?” 

    만일 브리더의 손에 기린이 들어가고, 그것을 바탕으로 에블린이 계획한 습격이 이루어진다면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파멸적인 피해를 입게 될 거다. 설사 왕도라고 하더라도. 

    “두 사건은 따로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 같은 일이었어. 기린을 세뇌한 뒤 습격에 사용하려 한 거야. 그렇다면...” 

    뭐가 먼저인지는 확실했다. 고요의 숲으로 가서 브리더를 먼저 막아야 한다. 

    “정해졌군.” 

    ** 

    “유렌 록스가 에거시드 브라이어드 폐하를 뵙습니다.” 

    “우리 사이에 그런 예의는 필요 없다하지 않았나! 어서 일어나게!” 

    다음 날 왕궁으로 이동하자마자 카이리오 자작에게 이끌려서 바로 국왕 앞에 섰다. 지위가 높아져서 그런지 대기조차 하지 않았다. 

    “잘 지냈나!” 

    “예. 편히 쉬고 있었습니다.” 

    “그거 참 다행일세. 하하하!” 

    국왕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웃음이 끊이질 않는 것을 보니, 엘루나와의 동맹이 잘 풀린 모양이다. 

    “엘루나와 우리 크라시스는 크엘 동맹이라는 것을 맺었다네.” 

    “크엘 동맹이라면...” 

    설며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동맹의 이름은 두 나라의 앞 글자를 딴 이름이다. 

    “단순히 무력동맹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다듬어주고, 장점은 공유하기 위한 동맹이라 이름을 새로 만들었다네.”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두 나라 모두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역시 자네는 말이 잘 통해. 크하하!” 

    국왕은 크엘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한 번 통쾌하게 웃었다. 

    “그 모든 것이 자네 덕이네. 자네가 모든 것을 만든 거야! 우린 책상에 조금 앉아 있었을 뿐이네.” 

    “아닙니다.” 

    “아니기는! 내 평생 엘프와 이야기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아예 동맹을 하게 됐지. 내 꿈 이상의 것을 이뤘으니, 이제 여한이 없네. 여한이 없어. 후후.” 

    “동맹이 확실해진 이후 폐하께서는 매일 저렇게 웃음을 짓고 계십니다.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뒤로 조용히 다가온 카이리오 자작이 한 마디를 보탰다. 엘루나와의 동맹으로 제국의 압박에서 벗어났으니 그럴 만하다. 

    “다음 달부터 우리 궁수와 기사들이 엘루나에 가서 엘프 수호자들의 가르침을 받기로 했고, 엘프 검사들이 우리 기사단의 훈련을 받기로 했다네.” 

    국왕은 그 외에도 크엘 동맹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추가로 해주었다. 

    전부 두 나라가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같이 연구하는 방식이라 계획대로만 된다면 큰 발전을 이룰 것이다. 

    “다른 나라의 왕들이 나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를 걸세. 자신들을 엘루나에 소개해 달라고 어찌나 빌던지. 크흐흐. 내 그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걸세. 후후. 아, 그놈들이 자네도 노리고 있던데 절대 넘어가선 안 되네!” 

    “물론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 

    국왕은 내 대답에 푸근한 미소를 짓고서 알현실의 문을 왕실 보고로 바꾸었다. 

    “왕실 보고에는 비밀이 하나 있네.” 

    “비밀이라면...” 

    “이안에 있는 물건들은 확실히 귀한 것들이지만, 진정 특별한 것들은 아니네. 진정한 국가의 보물, 국보들은 이 아래에 숨겨져 있지.” 

    국왕은 바닥에 있는 보물들을 손으로 쓸어내서 빈 공간을 만들었다. 

    “국보를 꺼내기 위해선 봉인을 풀기 위한 몇 가지 조치가 필요했네. 그래서 자네에게 바로 주지 못했지.” 

    알고 있는 내용이다. 국왕이 하는 말들을 들으며 그가 어떤 물건을 꺼낼지 생각해보았다. 

    검은 아닐 테고, 갑옷인가? 

    “국보는 총 다섯 개가 있네. 그 중에 자네에게 딱 맞을 것 같은 게 하나 있더군.” 

    국왕은 품에 있던 단검을 꺼내 자신의 손가락 끝을 갈랐다. 

    뚝. 

    국왕의 손가락에서 떨어진 피가 왕실 보고의 바닥에 닿자, 붉은 피가 스스로 움직여 삼각형의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화아악! 

    마법진에서 흰색 기둥이 솟아올랐고, 그 기둥에 끝에는 아무 장식도 없는 얇은 은색 팔찌가 걸려있었다. 

    “검을 줄까 했지만, 자네는 검사도 아니고 마스터라 공격이 부족할지도 않을 거 같아 다른 것을 준비했다네.” 

    원작에서 라시드가 검을 받다보니 이 팔찌가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눈을 써서 보려고 할 때 국왕이 먼저 팔찌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이 팔찌의 이름은 볼카누이스의 팔찌일세.” 

    “볼카누이스!” 

    “역시 알고 있나보군. 볼카누이스님은 크라시스를 세운 초대 선조님의 동료이자. 드래곤이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모를 수가 없겠지.” 

    당연히 아는 내용이지만 볼카누이스가 자신의 팔찌를 남겨두고 그것이 국보가 되어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그분이 선조님께 건네준 팔찌가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네.” 

    “그런 귀한 것을 제게 주셔도 됩니까?” 

    “물론이네. 자네에게 주지 않는다면 계속 이 바닥에서 썩어갈 텐데 그건 보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후후.” 

    국왕은 기둥에 있던 팔찌를 꺼내서 내 앞으로 가지고 왔다. 

    “당연하겠지만 팔찌에는 특별한 능력이 있네. 첫 번째는 팔찌를 낀 자의 모든 능력을 올려준다네. 힘, 민첩성, 정신력까지 말이야. 하지만 이건 기본 능력이고 두 번째가 정말 중요하네.” 

    “다른 능력도 있는 겁니까?” 

    “그래. 그게 진짜지. 팔찌에 자신의 마나를 넣는다면 마력이 유지되는 동안 그 어떤 공격에도 버텨낼 수 있다네.” 

    “아!” 

    국왕이 어떤 말을 하는지 감이 왔다. 하지만 국왕은 상세한 내용까지는 모르는 것 같아서 눈을 켰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볼카누이스의 팔찌.] 

    화룡 볼카누이스가 신영석을 100년 동안 제련해서 만들어낸 팔찌다. 착용자의 모든 능력을 10% 상승 시켜주는 효과가 있으며, 최대 마나의 10%를 소모해서 1초간 자신을 무적 상태로 만드는 특수 능력 루카스가 있다. 

    특수 능력: 모든 능력치 상승, 루카스. 

    설명대로라면 루카스를 최대로 발동하면 약 10초간 무적 상태가 된다는 소리다. 기본 옵션도 좋지만 그 어떤 공격에서도 10초간 즉사는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히 신급의 아이템이라고 해도 좋았다. 

    “미쳤군...” 

    루카스를 발동하면 드래곤 브레스를 정면에서 맞아도 살아남을 수 있다. 

    “받게나.” 

    “가, 감사합니다.”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 손으로 팔찌를 받았다. 손이 살짝 떨렸다. 

    “어서 차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팔찌는 내가 잡자마자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안에 손목을 넣자, 내 손목에 딱 맞게 줄어들었다. 

    [볼카누이스의 팔찌를 착용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특수 능력 루카스가 발동 가능합니다.] 

    팔찌의 능력치 상승효과 때문에 몸이 가벼워지고, 머릿속이 깨끗해진 기분이 들었다. 

    “잘 어울리는군. 팔찌가 제 주인을 찾은 모양이야.” 

    국왕은 내가 팔찌를 낀 것을 만족스럽게 쳐다보았다. 

    “앞으로도 크라시스를 위해 많은 힘을 써주게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가보게나. 자네랑 만나면 항상 기분이 좋아져. 허허.” 

    “정말 감사합니다.” 

    국왕에게 정중한 예를 취한 뒤 알현실을 나왔다. 바로 영지로 돌아가려 했는데 복도에 일왕자가 벽에 등을 기대고 서있었다. 

    “시간 괜찮으면, 같이 식사나 하는 게 어떤가?” 

    “물론입니다.” 

    그를 따라 일왕자 궁의 식당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정갈해 보이는 음식들이 나왔다. 

    “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겠지만 자네 덕분에 왕궁이 아니, 왕국 전체가 축제 분위기야. 정말 고마워.” 

    “여기저기서 많이들은 내용입니다.” 

    “크하하! 그렇겠지. 나도 엘루나로 교육을 가기로 했어. 나 참 내가 엘프들의 마을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크크.” 

    일왕자는 엘루나에 가는 것이 기대되는지 포크도 내려놓고 엘프와 엘루나에 대한 이야기를 불태웠다. 

    “이왕자는 엘루나에 가지 않습니까?” 

    “그러게. 나도 당연히 갈 줄 알았는데, 안 간다고 하더라고. 음, 그리고 그 녀석 요즘 또 이상한 자들과 만나는 모양이야.” 

    “이상한 자들이라면?” 

    “이왕자 궁에 만든 정보원들이 전해주었는데 최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아서 녀석을 찾아오는 것 같아. 혹시 그 때 우리를 노리던 놈들 아닐까?” 

    “음...” 

    이왕자가 세피로스와 화해를 한 건지, 다른 세력과 관계를 맺은 건지 지금은 알 수 가 없었다. 원작과 스토리가 달라지니 이런 점은 참 불편하다. 

    “너무 걱정 말고. 자네 덕에 내 뒤에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붙었으니, 아서 녀석도 함부로 설치지 못 할 거야.”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일왕자가 본인만 믿으라는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예전과 달리 자신감이 가득한 모습이라 보기가 좋았다. 

    “믿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불러주시길.” 

    “당연하지. 내가 제일 믿는 건 유렌 자네니까. 후후.” 

    ** 

    일왕자와 식사를 마치자마자 가이린으로 돌아왔다. 고요의 숲으로 떠나기 위해 짐을 챙기러 올라가려 할 때 다과를 들고 응접실로 향하는 페루가 보였다. 

    “페루.” 

    “어? 엄청 빨리 돌아오셨네요.” 

    “누가 왔어?” 

    “이레아님이 오셨습니다.” 

    “성녀님이?” 

    이레아가 왔다는 소리에 응접실로 들어갔다. 이레아는 나를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문 앞으로 달려왔다. 

    “유렌님! 안 계시다고 들었는데...” 

    “방금 돌아왔습니다.” 

    “왕국에 온 김에 들린 건데 유렌님을 뵙고 가서 다행이네요.” 

    이레아가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레이픈 영지에 강한 악령에게 빙의된 아이가 있어서 빙의를 풀어주고 왔어요.” 

    “대단하시네요.” 

    간단하다는 듯 말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에 있던 신관들이 해결하지 못해서 그녀까지 불렀을 것이니 보통 악령이 아니었을 것이다. 

    “벼, 별거 아니에요. 성직자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에요.” 

    “그걸 못해서 성녀님을 부른 거 아닌가요?” 

    “아, 그렇긴 한데...” 

    빙의를 해제해 줬다는 말에 갑자기 든 생각이 있었다. 

    “이레아님. 혹시 세뇌를 해제 하실 수도 있습니까?” 

    “세뇌요? 음, 약물이나, 마법으로 인한 세뇌는 해제할 수 있어요. 몇 번 해봤거든요.” 

    “동물이나 몬스터에게 걸린 세뇌도 해제됩니까?” 

    “해보진 않았지만 될 것 같긴 하네요. 언데드만 아니라면 신성력이 들어가니까요.” 

    고요의 숲에 이레아를 데려가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기린에게 걸릴 세뇌도 막아줄 수 있고, 브리더의 다른 몬스터들의 세뇌도 해제 해줄 수 있을 테니. 

    “이레아님. 혹시 바쁘시지 않다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네! 도와드릴게요! 한 동안 별일 없어요.” 

    뭐든 상관없다는 듯 이레아가 방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위험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유렌님도 같이 가시는 거 아닌가요?” 

    “당연히 저도 갑니다.” 

    “그럼 상관없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처럼 지켜주시겠죠.” 

    이레아는 슬로스 때를 말하는지 신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당시엔 내가 아니라 당천위가 모두를 구했지만 조화경에 오른 지금은 무슨 일이 생겨도 이레아를 지킬 자신이 있다. 

    “물론입니다.” 

    “고마워요.” 

    이레아에게 자신감이 넘치는 대답을 해주자, 그녀가 더욱 밝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감사하죠. 그럼 어떤 일인지 말씀해드리겠습니다.” 

    이레아에게 기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자, 그녀는 정의감이 불타올랐는지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하루 동안 준비를 마친 뒤 다음 날 아침 바로 고요의 숲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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