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자들의 땅 (7)
“다, 다행이구나. 돈도 그대로 있고 장부도 있다니, 정말 잘 됐어...빠득.”
데니스는 이빨을 부러져라 꽉 물며 웃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돈을 받을 수 있어!”
“빨리 앞으로 가자고!”
흥분한 도박꾼들이 금화상자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난 그 틈을 노려 뒤로 빠진 다음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소. 손님들에게 장부에 적혀 있는 대로 돈을 돌려드리도록 해라. 으득.”
“아, 알겠습니다.”
당연한 일이다.
장부가 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누구도 투기장을 가지 않을 것이고, 데니스는 자신의 라이벌인 도박장의 왕 콜린에게 밀리게 될 것이다.
“빠드득...”
데니스는 이를 갈면서 좀 전에 내가 변신했던 자를 찾으려고 목을 빼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검사들도 주인의 분노를 느낀 건지 빠져나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브리카. 우리도 줄을 서자.”
“알겠습니다. 크큽.”
브리카도 내가 변신을 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웃음을 참느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는 중간쯤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중급 투기장에는 도박 금액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 적당한 금액이라, 돈을 받아갈 때도 별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브리카가 자신의 투사 명패를 내밀고 돈을 받을 차례가 되었을 때 주변이 조용해졌다.
“사, 삼만 오천육백골드? 어, 어떻게...”
“하급에서 중급으로 올라올 때 투기장에서 걸 수 있는 돈의 제한을 없애준다 했습니다. 그래서 전 저한테 전부 걸었죠.”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삼만오천골드는...”
“우와!”
“삼만 오천? 초대박이네!”
“평생 놀고먹어도 되겠어. 축하한다. 피의 폭풍!”
“하하! 고맙습니다!”
돈 액수가 커서 그런 건지 도박꾼만이 아니라 구경꾼들 까지 가까이 몰려들었다. 돈을 돌려주던 투기장 관리원이 덜덜 떨며 데니스를 쳐다보았다.
“크으...”
데니스는 눈으로 욕을 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기엔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크하하하! 감사합니다!”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서 상자에 금화를 가득 담아왔기 때문에 삼만 오천골드가 빠져나가도 상자에는 많은 금화가 남아있었다.
“다음. 이름을 말하시오.”
“밀턴의 학살자 무란이오.”
내 투사 이름이 적힌 명패를 내밀었다.
“그쪽도 투사였군. 무란. 여기 있네... 어? 어어?”
투기자 관리원이 넋이 나간 얼굴로 장부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 사만 골드?”
“뭐?”
“사만?”
“헉!”
“커허...”
내가 받아야 할 금액을 들은 데니스와 주변 사람들이 경악을 했다. 이 정도 금액은 상급 투기장에서 그것도 가끔씩 나오는 양일 테니, 당연한 반응이다.
“어, 어떻게...”
한 번은 따도 결국 돈을 잃고 나오는 것이 투기장임을 감안 할 때 데니스에겐 기억에 남을 정도의 손해일 거다.
“저 친구와 같소. 나도 9연승을 했지.”
돈을 받고 기뻐하는 브리카를 가리켰다.
“크으으...”
데니스에게서 살기가 풀풀 풍겨 나왔다. 만일 우리를 중급투기장으로 데려간 관리관이 앞에 있다면 천 갈래로 찢어 죽였을 거다.
“사만골드래! 미쳤어!”
“진짜 부럽네! 아니, 저 돈이면 도박장을 차려도 되겠는데?”
“무란! 난 너만 응원했다! 돈 좀 뿌려봐!”
도박꾼들과 구경꾼들이 더욱더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만골드라는 거금에 모두가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으음...”
관리관이 두려운 눈빛으로 데니스를 보았고, 데니스는 핏줄이 가득 선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4만 골드를 모두 내 주머니에 담으며 데니스와 그 옆의 검사들에게 한 가지 조치를 해놓은 뒤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사아악.
등 뒤에서 칼로 찌르는 것 같은 강렬한 시선과 살기가 느껴졌다.
“오겠지?”
“네. 백퍼센트 오죠.”
뒤를 살짝 보니, 데니스의 부하들이 눈치를 보며 우리 뒤를 쫓고 있었다. 우리를 추적해서 습격할 생각 인 게 뻔했다.
“그럼 빨리 움직이실 겁니까?”
“아니, 와주면 고맙지. 천천히 가자.”
“알겠습니다.”
브리카는 피식 웃고서 걸음을 늦추고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천천히 움직여서 펠스의 잡화상으로 향했다.
“어? 여, 여길 왜와! 대체 여길 왜 다시 온 거요!”
땀을 줄줄 흘리며 짐을 싸고 있던 펠스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아, 생각해보니, 아저씨도 떠나긴 해야겠네.”
“뭐? 너 또 뭔짓을 하고 온 거야!”
“말해줄게. 흐흐.”
브리카가 펠스에게 좀 전에 있었던 일들을 모조리 이야기 해주었다.
“아...”
쿵.
펠스가 매고 있던 배낭을 바닥에 떨어뜨린 뒤 주저앉았다.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네, 네가 사신을 데려왔구나. 사신을 데려왔어.”
펠스는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창백해 진 얼굴로 사신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우, 우린 모두 죽을 거야. 데니스는 미친놈이라고! 대륙 끝까지 쫓아올 독기를 가진 놈이다!”
“괜찮아. 나 돈 많이 벌었으니, 아저씨가 정착 할 수 있게 지원해 줄게.”
“이 멍청한 자식아! 그 돈 쓰기 전에 너나 나나 다 죽는다고! 돈이 문제가 아니야! 크흐흑!”
펠스는 브리카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네가 날 살려주고, 이젠 죽이는 구나.”
“아니, 아저씨 정말 괜찮다니까. 나만이 아니라...”
쿵! 쿵!
브리카와 펠스가 서로를 부여잡고 있을 때 상점의 문이 거칠게 흔들렸다.
쾅!
상점의 문과 벽이 부서지고 데니스와 그 옆에 있던 검사들이 먼지를 헤치고 들어왔다.
“손님. 오랜만입니다. 후후.”
데니스가 가볍게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손님을 대하는 표정이 아닌데?”
“후후. 그럼 이렇게 해줄까?”
데니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광기어린 짐승이 으르렁 거리며 위협하는 것 같았다.
“크크큭. 그런 돈을 받았으면 숨도 쉬지 말고 도망가야지. 여기서 노닥거려? 간이 큰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군. 안 그러냐?”
“그렇습니다!”
“거기다 여긴 구석이라 보는 사람도 거의 없어. 크하하! 아주 죽여달라 고사를 지내는군!”
데니스는 우리에게 준 돈이 이미 돌아왔다고 생각하는지 굉장히 기뻐보였다.
“데니스. 하나 만 묻자.”
“죽을 놈에게 무슨 말을 못해주겠나. 말 해봐라. 크큭”
“파룬이 수많은 사람들을 실험체로 이용했다는 거 알고 있나?”
마의의 본명인 파룬을 말하자, 데니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네가 그를 어떻게 아는 거지?”
“말해 준다며. 대답이나 해주지?”
“크크크. 그래. 말해주마. 당연히 알고 있다. 놈의 약들은 정말 큰돈이 되어주거든. 약의 대가로 버러지같은 인간 몇 백 건네주는 건 일도 아니지.”
우리가 어차피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데니스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와 그 부하들의 운명이 확실히 결정 되었다.
“자신의 알량한 실력을 믿었겠지만, 너희는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야. 전부 죽여라.”
“알겠습니다.”
스르릉.
데니스의 옆에 있던 검사 네 명이 검을 뽑아들었다.
“젠장 할!”
쓰릉.
펠스는 상점의 벽에 걸린 검을 뽑아들고 검사들을 겨누었다. 솔직히 의외였다. 그는 당연히 데니스에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 줄 알았기 때문이다.
“아저씨!”
“뭘 봐. 인마. 가오가 있지. 저런 쓰레기한테는 고개 안 숙인다!”
“크하하하! 그래야 펠스지. 이제야 정신 차렸네.”
“웃지 마. 이 미친놈아!”
마음에 드는 성격이다. 나와 다르게 검사들은 펠스의 당당한 모습이 짜증났는지 검에 살기를 가득 담았다.
“둘 다 뒤로 빠져.”
“알겠습니다.”
브리카가 펠스를 목덜미를 잡고 뒤로 물러났을 때 손을 들어 올렸다.
“겁에 질려 미친 거냐?”
“아니, 내가 아니라. 너희가 미칠 거야.”
딱.
손가락을 튕겼다.
손가락에서 소리가 나자마자 검사들이 걸음을 멈추고 귀신에게 홀린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희 뭣들 하는 거...”
챵!
챙!
검사들은 자신들의 주인인 데니스의 말도 듣지 않고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죽어!”
“그 목을 내놔라!”
검사들은 생사대적이라도 된 것처럼 오러까지 뽑아내며 좀 전 까지 등을 맡겼던 동료에게 칼을 휘둘렀다.
“이, 이 미친놈들 뭐하는 거냐!”
“죽어라!”
“원수를 갚겠다!”
“멈추라고!”
검사들은 다가오는 데니스에게도 살기를 담은 검을 휘둘렀다.
“이 정신 나간 놈들!”
챠쟝!
데니스는 곧바로 칼을 뽑아 자신에게 날아오는 두 개의 검을 막았다.
“정신 차려라!”
“죽어라!”
“뒈져!”
데니스의 말은 검사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렬한 오러를 사용해서 데니스를 공격하고 있었다.
“제기랄!”
샤아악!
데니스는 참지 못하고 검에 두꺼운 오러를 덮어 자신을 공격하던 검사 둘을 베어버렸다.
“커헉!”
“아악!”
앞에 있던 두 명의 검사들은 서로의 목에 검을 박아 넣은채 죽어가고 있었다.
“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게 대체...”
“형님! 이제 마법까지 쓰시네요!”
그 지독하고 기괴한 광경에 데니스 겁에 질렸고, 펠스는 기겁을 했으며, 브리카는 감탄을 하고 있었다.
“심귀연을 썼다. 마음의 귀신을 깨우는 독이지.”
“뭐, 뭐?”
무엇을 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심귀연은 적과 적을 싸우게 만드는 살혼연의 상위 독으로 마음 속 깊숙이 잠들어 있는 귀신을 불러와 옆에 있는 사람을 가장 미워하고 죽이고 싶은 인물로 바꾸는 독이다.
“도, 독이라니! 대체 언제!”
“아까 금화를 받을 때 미리 손을 써두었지.”
심귀연은 살혼연과 다르게 독의 발동과 해제를 바로바로 적용 시킬 수 있었다. 돈을 받을 때 중독 시켜놓은 독을 지금 발동시켰을 뿐이다.
“이, 이놈! 설마 내게도!”
“네겐 심귀연을 쓰지 않았다.”
“지랄 마라!”
“믿기 싫으면 믿지 말고.”
“크으윽.”
데니스는 당연히 내 말을 믿지 않고, 검에 더욱더 강한 오러를 씌우며 견제하는 움직임을 취했다.
“혹시 배가 살살 아프지 않아?”
“뭐? 어? 이, 이게...”
데니스는 내말대로 배가 아프기 시작하는지 왼손으로 자신의 복부를 움켜쥐었다. 기사라면 배가 아픈 정도는 참아낼 수 있겠지만, 숙련도가 꽉 찬 단장독은 최상급 기사라도 참을 고통이 아니다.
“크으윽! 네놈!”
“이번엔 속이 뜨거울 테고.”
“크어어억!”
데니스는 배를 잡던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긁기 시작했다.
“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이 악마 같은 놈!”
“이번엔 뼈가 부서질 거다.”
뚜둑.
탁.
내 말이 끝나자마자 데니스의 양 무릎이 꺾였다.
“다음은 눈이다.”
“크아아악!”
“그리고 근육 마비.”
“커허헉!”
데니스는 대답할 정신도 없는지 그저 비명만 질렀다.
“네가 파룬에게 넘긴 인간들은 이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다. 그들은 살아있는 채로 칼에 몸이 썰리고, 약물에 담가졌으니까.”
“크으윽!”
“파룬은 선과 악을,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미친놈이다. 하지만 넌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 지독한 일 들을 저질렀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죽어라.”
“크흑, 제발... 크르르르.”
마비가 돼서 움직이지 조차 못하는 데니스를 놔두고 상점 밖으로 나왔다. 내가 무서워 덜덜 떠는 펠스와 시원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브리카에게 손짓 했다.
“뭐해. 돌아가자.”
**
브리카에게 펠스의 정착을 도와주라 지시한 후에 먼저 가이린으로 돌아왔다.
“다녀왔다.”
“빽!”
침대에 드러누워 있던 빽빽이가 파닥거리며 날아왔다. 그런데 제대로 날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느낌이다.
“너 또 살쪘냐?”
“빽?”
빽빽이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난 녀석을 손에 올린 뒤 살짝 흔들었다.
“쪘네.”
“빼, 빽!”
“먹는 건 좋은데, 날기 힘들 정도로 먹지는 말자.”
“빽...”
빽빽이를 아린에게 맡겨놓으면 이렇게 통통하게 만들어버린다. 꼭 할머니 댁에 손자를 맡기는 느낌이다.
저벅저벅.
똑똑.
페루의 걸음 소리와 노크 소리다.
“들어와.”
“죄송합니다. 돌아오신 줄 몰랐습니다.
“괜찮아. 수련하고 있었나본데?”
“네. 알려주신 심법을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 같지 않아서 오히려 대견했다.
“이틀 전에 유렌님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
페루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폐하께서 보내신 겁니다.”
그 말대로 편지 뒤편엔 국왕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