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무법자들의 땅 (153/241)

무법자들의 땅

아주 조금이지만 페루가 내 내력을 흡수하고 있어... 

페루의 몸에서 잠시 검은빛이 나오더니, 내가 넣어준 만독자전신기의 내력 중 만독의 기운을 자신의 몸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많은 양을 흡수하지는 못하지만 흡사 물을 빨아들이는 스폰지같이 내력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녀석이 나처럼 흡독지력을 익히고 것도 아니고 그저 독에 강한 저항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다. 

[창조주의 눈이 발동합니다.] 

[이름: 페루] 

[특성: 하독lv3, 재빠른 몸놀림lv3, 독 저항lv3, 독의 이해lv1, 속독lv2, 집중lv2, 정보처리lv1, 빠른 학습능력lv2] 

[호감도: 91 (강한 신뢰) ] 

독의 이해? 

페루의 정보창을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녀석에게 새로 생긴 특성이 있었다. 바로 독의 이해. 

그러고 보니 페루에게서 나온 빛은 이전에도 본적이 있었다. 확실히 기억난다. 

첫 번째는 드워프 마을이었다. 

기라녹스가 자신의 스승에게 기술을 배울 때 그의 몸에서도 저런 빛이 나왔다. 그 빛 이후에 기라녹스에게 새로운 특성이 생겼었다. 

두 번째는 포메라였다. 

포메라가 거주하는 록스의 해안 동굴에 갔을 때 녀석에게서 빛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도 포메라에게 새로운 특성이 나타났다. 

특성이 생길 때 나오는 건지, 아니면 나와 관계가 있는 녀석들이기 때문에 나오는 빛인지는 모르겠다. 

일단 저 빛의 이유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할 일은 페루에게 연독심공을 각인시켜주는 것이니까. 

우우웅. 

다시 내력을 집어넣어 녀석의 혈도들을 파고들었다. 페루의 혈도들은 기사들보다 꽉꽉 막혀있었지만 생각보다 부드럽게 뚫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쉽게 소주천을 끝내고 녀석의 단전에 아주 작은 내공을 만들어주었다. 내 내력을 회수하자 페루가 전신을 부르르 떨며 눈을 떴다. 

“아...” 

페루는 허공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희열에 잠긴 목소리를 내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고 몸이 굉장히 가볍습니다. 푹 잠을 자고 난 것 같습니다.” 

보통 내공심법을 억지로 새기면 아파하거나 고통스러워한다고 들었는데 기분이 좋고 몸이 가볍다니 신기한 놈이다. 변태가 아니라면 독공에 딱 맞는 녀석이다. 

“페루.” 

“네!” 

“너 최근에 독 가지고 무언가를 한 적 있어? 먹었다던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페루가 깜짝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혹시나 했는데 예상대로 독을 다룬 모양이다. 

“뭘 했는데?” 

“유렌님이 수련에 대한 생각을 해보라고 하셨을 때부터 다시 독을 다뤄보고, 먹어보았습니다.” 

“독은 어디서 구했지?” 

“유렌님이 언제 달라고 하실지 몰라 몇 가지 독들을 항상 가지고 다녔습니다.” 

무슨 상비약도 아니고 집사가 독을 가지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독초들을 먹거나 다뤘을 때 뭔가 변했다는 느낌이 든 적은 없어?” 

“네. 맞습니다! 신기하게도 하독을 한지 한참 되었는데 독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되었고 독의 증상이나 고통도 더 잘 견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페루가 해온 독에 대한 경험치들이 쌓여 새로운 특성 독의 이해를 만들어 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기라녹스도 노력을 했고, 포메라도 명상에 대한 노력을 해왔다. 그들의 노력과 내가 만났을 때 새로운 특성이 나타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기연인가... 

“저기 유렌님. 질문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주변 인물들에게 새롭게 생긴 특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페루가 손을 들어올렸다. 

“말해.” 

“저... 제 배꼽아래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느껴지는데 이게 대체 뭐죠?” 

페루는 자신의 단전에 있는 내공을 느낀 모양이다. 갑자기 몸속에서 뜨거운 것이 느껴질 테니 모를 수가 없을 테지. 

“그 장소를 단전이라고 하고, 그 안에 있는 작은 구슬 같은 것이 네 마나다. 내공이라고도 하지.” 

“단전, 내공...” 

“네 단전에 있는 내공은 내가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라 지금은 움직일 수 없을 거다. 내공을 네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 내가 주는 숙제다.” 

“아...” 

페루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한 번 설명해주려고 할 때 녀석이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 

“저기 유렌님.” 

“알아. 다시 설명해줄게.” 

“아뇨. 그게 아니라...” 

“응?” 

“내공이라는 거... 움직이는데요?” 

“억?”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남이 만들어준 내력을 바로 움직이는 건 천재라고 해도 힘든 일이다. 

“움직인다고?” 

“네. 제 마음대로 몸속을 돌아다니는...” 

“그만!” 

“힉!” 

“절대로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 

페루의 뒤에 앉아서 그의 몸에 내력을 집어넣었다. 

“네 내공을 움직여봐.” 

페루는 바로 눈을 감았다. 자신의 내공을 움직이려 하는 것 같았다. 

진짜잖아... 

착각이라고 생각했건만 페루의 말대로 녀석의 단전 안에 굳어있어야 할 연독심공의 진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혹시 내가 네 몸에 마나를 지나가게 했던 통로 기억하고 있어?” 

“네!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녀석 진짜 천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내가 마나를 움직였던 그대로 네 내공을 이동시켜봐.” 

“알겠습니다.” 

실수라도 하면 도와주기위해 내 내공을 빼지 않고 페루의 몸속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녀석은 내공을 움직여 자기 혼자 소주천을 이뤄내 버렸다. 

“어땠습니까?” 

홀로 소주천을 이룬 페루는 눈을 뜨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영리한 놈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라니, 너무 놀라 할 말이 없었다. 

“네가 한 것을 소주천이라고 한다. 훌륭했어.” 

“소주천. 왠지 마음에 드는 단어네요.” 

“...생각을 바꿨다.” 

“예?” 

“오늘 끝장을 보자.” 

원래 페루에게 숙제를 내주고 나중에 벌모세수와 세계수의 선물을 먹일 생각이었는데 오늘 전부 끝내버리고 수련을 시키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지금이 중요한 순간 같았다. 

“이거 알지?” 

“아, 네.” 

페루에게 세계수의 선물을 건네주었다. 

“이 열매를 먹는 순간 네 뱃속에서 마나가 요동을 칠 거 다. 네 내공을 이용해서 열매의 마나들을 소주천 시켜야 해. 내가 도와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칭찬을 들어서 그런지, 나를 믿어서 그런건지 페루는 겁도 없이 열매를 먹어 치운 뒤 연독심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페루의 뒤로 가서 녀석에게 내력을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잘 하면 천재 독술사가 등장하겠군.” 

** 

페루의 수련을 봐준 뒤 며칠 후. 

브리카를 데리고 무법자의 땅 헤일튼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브리카가 헤일튼에 가봤기 때문에 데리고 가는 중인데 녀석은 오랜만에 재밌는 곳에 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연신 웃고 있었다. 

브리카의 웃음을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브리카.” 

“넵!” 

“너 열심히 수련해야한다.” 

“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수련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한참 늦게 시작한 네 친구한테 밀릴지도 모른다는 말을 꺼내기가 좀 애매했다. 

열매를 먹인 날 페루는 단번에 20년에 가까운 내공을 얻어버렸다. 

페루에게 알려준 연독심공과 만독자전신기는 같은 사천당가의 것이라 그런지 다른 기사들에 비해 벌모세수의 효율도 훨씬 좋았다. 

브리카와 다르게 페루는 한두 번만 더 벌모세수를 받으면 몸속의 노폐물이 거의 다 빠져나갈 것이다. 빠른 무공 수련을 위한 토대가 순식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나중에 페루가 너한테 한 판하자고 하면 마음 단단히 먹어라.” 

“네? 크하하하! 유렌님 제가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이제 막 시작한 햇병아리에게 지겠어요? 섭섭합니다!” 

브리카가 어이가 없다는 듯 크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표현이었다. 

“나도 알지. 그냥 조심하라고.” 

지금은 당연히 브리카가 훨씬 앞서 있지만 독공의 특성상 실력이 밀러더라도 막상 싸우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페루는 영리하니 자신이 이길 구석을 만들어 놓고 브리카에게 도전을 할 것이다. 

“저 수련 열심히 하라고 채찍질 하시는 거죠? 알겠습니다. 돌아가면 미친 듯이 하겠습니다.” 

“그래...” 

브리카는 페루와 친구라 그런지 역시나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중에 직접 겪는다면 알게 될 거다. 자신의 친구가 어떻게 변했는지. 

“저기가 헤일튼입니다.” 

브리카와 잡담을 걷다보니, 어느새 무법자들의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안은 미쳐 돌아가는 곳입니다. 예전 가이린과도 비교할 수 없죠.” 

헤일튼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고 조용한 도시로 보이지만 속은 미친놈들의 소굴이다. 밤이 되면 한 수 더 뜨기 시작하고.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물론.” 

나와 브리카는 이미 모습을 바꾸고 있는 상태다. 

난 아그네스를 사용해서 검은 머리색을 갈색으로 바꾸고, 얼굴도 인상이 옅은 청년으로 변신했다. 브리카는 가짜수염을 덕지덕지 달고 머리로 얼굴을 가렸다. 

“유렌님의 변장은 정말 신기하네요. 그렇게 티가 나지 않는 건 처음 봤습니다.” 

“마법 같은 거야.” 

“그런데 왜 헤일튼에 변장까지 해서 가시는 겁니까?” 

브리카에게 사정을 말해주지 않고 데려왔는데 이제 말해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엘루나에서 마검을 들고 있던 괴물 못 봤지?” 

“살아있을 때는 보지 못했지만 시체는 봤습니다. 그런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브리카는 키메라를 사람이나 괴물이라고도 표현을 하지 않고, 그런 것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건 키메라라고 한다.” 

“키메라...” 

“보통 키메라를 만드는데 수백의 인간과 수십의 몬스터가 필요해.” 

“예?” 

브리카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럼 그 키메라도...” 

“그건 그 중에서도 특별한 놈일 거다. 아마 300명이 넘는 인간과 100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을 재료로 만들었겠지.” 

“어떤 미친놈이 그런 미친 짓을! 설마 그놈이 헤일튼에 있는 겁니까?” 

“그래. 이곳에 있다.” 

키메라를 만든 세피로스의 마의가 바로 헤일튼에 자리를 잡고 있고 난 놈을 잡으러 온 것이다. 

물론 단순히 엘루나를 공격한 복수를 위해 온 것은 아니다. 그 일을 지시한 건 삼공이 뻔하니. 

주인공 라시드를 세뇌하거나 조종하는데 마의가 관련이 있을 것 같아, 놈을 잡아 정보를 얻기 위해 헤일튼에 온 것이다. 

“그런 정보를 어떻게 얻으신 겁니까?” 

“나도 따로 정보통이 있거든.” 

“역시! 대단하십니다!” 

정보통은 정말 있지. 나 자신이라는 정보통이. 

“저기가 헤일튼의 입구입니다. 검문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죠?” 

헤일든의 입구에 도착했지만 경비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양아치나 건달로 보이는 덩치 좋은 놈들이 우리의 위아래를 훑어보고 있었다. 

“헤일튼은 어느 국가에도 속하고 있지 않습니다. 소속 국가가 없으니, 여러 가지로 지랄 맞죠. 아, 또 상스러운 말을... 죄송합니다.” 

“그 정도는 괜찮아.” 

“저기 입구에서 똥 폼 잡고 있는 놈들은 대부분 정보를 팔거나 만만한 사람들에게 삥을 뜯는 찌질이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찌질?” 

“크크. 정신 나갔군.” 

입구에 있던 덩치 둘이 브리카의 말을 듣고 우리 앞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찌질이라고 했냐? 꼬마야?” 

나와 브리카도 작은 키가 아니지만, 덩치들은 2m가 넘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조용히 처리 할까요?” 

브리카에게 헤일튼에서는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녀석은 시작부터 잘 써먹고 있었다. 

“아니, 당당하게.” 

씩 웃고, 가볍게 대답했다. 

“당당하게! 알겠슴다!” 

“당당? 허! 여기가 어디라고 입을 털...크악!” 

“켁!” 

브리카는 덩치 둘의 턱을 날려 한 번에 기절시켜버린 다음 쓰러진 놈들을 발로 차서 앞길에서 치워버렸다. 

“어?” 

“저, 저런...” 

입구 옆에 서서 구경하던 찌질이들은 덩치들이 저렇게 쉽게 쓰러질지 몰랐는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고, 몇몇 실력자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헤일튼은 무법자들의 땅이기 때문에 더욱 힘의 논리가 잘 통하는 곳이다. 약한자는 바닥에 깔리고 강한자가 위로 올라간다. 

“당당하게 치웠슴다. 가시죠. 형님!” 

브리카의 말에 빙긋 웃고, 헤일튼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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