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 상승
“우와아아아!”
“유렌 록스!”
“대륙 최연소 마스터!”
귀족들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앞으로 나왔다. 그들은 희열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환호를 내질렀다.
“크윽...”
넘어진 이왕자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폐하! 이 사실을 당장 널리 알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대륙에서 마스터가 2명 이상인 국가는 제국이 유일했지만 저희 크라시스도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들 흥분한 건 알겠지만 진정들 하게. 손님들 앞이지 않나.”
국왕은 손을 흔들어 각자 떠드는 귀족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은 누구보다 빨갛게 되어 있었다. 국왕이 그 누구보다 흥분해 있는 상태였다.
“유렌 자작.”
“예. 폐하.”
국왕의 부름에 검을 집어넣고 그의 앞으로 갔다.
“검은 자네의 주무기가 아님에도 그런 검력이라니! 훌륭한 오러 블레이드였네. 눈 호강을 시켜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다만 자네 단순히 마스터에 오른 건 아닌 것 같은데?”
“네?”
“실력이 쌓일수록 마스터의 오러 블레이드의 색이 진해진다고 알고 있는데, 자네는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오른 것 같았네.”
당천위의 전투경험 전승 덕일 수도 있고 내력이 웬만한 마스터들보다 훨씬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닐 테니. 축하하네.”
국왕의 칭찬에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거 갑자기 좀 고민되는군.”
“고민이시라면...”
“원래 유렌 자작에게 왕실 보고에서 보물들을 가져갈 기회를 주려 했네. 하지만 엘루나와의 동맹 제안을 받아오고, 스스로 마스터에 이른 자에게 그건 너무도 가벼운 것 같군.”
또 원작과 다른 내용이 진행되고 있다. 원작에서는 보고에서 보물을 가져갔으니까. 국왕은 다른 것을 챙겨주려 하는 것 같다.
“맞습니다. 폐하!”
“유렌 자작은 마스터에 이른 무인입니다.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심이 옳습니다.”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귀족들이 소리를 높여 국왕에게 더 좋은 것을 주라고 건의하고 있었다.
옆을 보니 이왕자와 그의 세력들은 말없이 이쪽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조용.”
국왕은 그들의 의견을 듣다가 손을 들어 올려 모두를 조용히 시켰다. 그는 생각을 하는 듯 눈을 감고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잠시 뒤 눈을 뜬 국왕은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모두 들으라.”
“예. 폐하!”
“유렌 자작의 작위를 후작으로 상승시키고, 훗날 그가 록스 후작령의 영지를 받게 된다면 붙어 있는 록스와 가이린을 합쳐 하나의 영지로 만든다.”
알현실에 다시 한 번 침묵이 내려앉았다.
“폐, 폐하! 후작이라니.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맞습니다. 유렌 자작의 공과 능력은 인정하지만 작위를 두 단계 상승 시키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거기다 영지 통합이라니! 이 역시 없었던 일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폐하!”
지금 입을 연 귀족들은 당연히 이왕자의 곁에 붙어 있는 패거리들이었다. 이왕자는 한 번 나선 자신은 뒤로 물러나고 옆의 귀족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유례가 없는 일이라 했나?”
“그렇습니다. 폐하! 크라시스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자작이 바로 후작이 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영지 통합 역시 들어보지 못했던 일입니다.”
“흠, 그렇군.”
국왕은 침착하게 반응하며 입을 연 카렌스 백작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면 말이야. 카렌스 백작. 자네는 21살에 마스터에 오른 자를 본 적은 있나?”
“예? 그, 그게...”
“없지? 나도 없네. 아니 대륙의 누구도 본 적 없는 유례없는 일이지.”
“으음...”
“그럼 엘루나와 동맹이라는 대업을 가져온 자는 있나?”
“...”
카렌스는 국왕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굴이 사과처럼 불게 물들었다.
“엘루나와의 동맹을 이뤄낸 사람도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네. 유례없는 일을 두 번이나 한 유렌 자작에게 작위를 두 단계 상승시켜주고, 어차피 그가 가지게 될 영지를 합쳐주겠다는 것에 불만이라도 있는 건가?”
“그건...”
국왕의 말에 반대를 하던 카렌스와 그의 옆에 있던 귀족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거기다 유렌 자작의 공을 떠나서, 마스터는 어느 국가로 가든 후작이상의 작위를 받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
카렌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저들이 막고 싶은 것은 후작의 작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진 영지 통합을 막으려 한 것이다.
국왕이 훗날 가이린과 록스의 영지 통합을 지시한 이유는 하나다. 내게 공작의 작위를 주려 한 거다.
바로 공작의 작위를 내린다면 많은 귀족이 반대를 할 것이 뻔하니, 일단 후작을 주고 나중에 자연스럽게 공작의 작위에 오르도록 한 국왕의 배려였다.
이왕자 쪽이 눈치 채고 빠르게 막으려 했지만, 국왕의 단호함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난 것이다.
“불만 있는 사람 있나?”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모두 아는 것이다. 국왕이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모두 괜찮은 것 같으니, 유렌 자작의 일은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카이리오가 무릎을 꿇고 국왕의 명령을 받았다. 국왕은 내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요즘 제국의 압박이 점점 심해져서 잠을 설치고 있었는데 자네 덕에 한 시름 덜은 기분이네. 내가 국왕만 아니라면 무릎이라도 꿇고 고맙다 말하고 싶군.”
“아닙니다. 폐하.”
“아니기는! 자네가 한 일은 대륙의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들이네. 자신감을 넘치도록 가져도 모자라네.”
날 보는 국왕의 눈빛에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네에게 따로 줄게 있네. 준비를 좀 해야 하니 나중에 부르면 꼭 오도록.”
왕실 보고에서 보물 몇 개 꺼내가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준비라고 하니 몇 가지 생각나는 보물들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폐하.”
“피곤할 텐데 영지로 돌아가 쉬도록 하게. 동맹의 결과가 나오면 자네에게도 알려주도록 하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국왕은 입가에 미소를 매단 채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 엘프들의 앞으로 이동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흥미로운 모습이었습니다.”
“크흠, 민망하구려. 지금부터 동맹의 세부사항을 정해야하니 이쪽으로 오시오.”
국왕은 로디엔과 엘프들을 데리고 알현실의 옆에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 뒤로 왕자들과 참모들이 따라 들어갔다.
“그럼 우리도 돌아가...”
기사들에게 돌아가자고 말을 하려 할 때 내 앞으로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엔 이왕자의 옆에 붙어있던 귀족도 있었다.
“유렌 자작, 아니 후작님!”
“후작님. 잠시만 대화를”
“유렌 후작님 시간 좀 내주세요!”
“저희 영지에 초대를...”
**
귀족들이 달라붙는 건 예전에도 있었던 일인데 이번은 진짜 무서울 정도로 달라붙었다. 카이리오 자작의 도움으로 겨우 도망쳐 가이린으로 돌아왔다.
영지의 급한 일만 끝낸 뒤 아린을 내 개인 수련실로 호출했다.
“유렌님.”
“들어와.”
아린이 수련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검은 수련복에 수련검을 들고 있었는데 평소와 달리 얼굴에 조금 홍조가 보였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난 그녀가 들뜬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검은 딱히 필요 없는데.”
“네?”
그녀에게 앞에 놓아둔 세계수의 선물을 가리켰다.
“오늘 네가 할 수련은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저걸 먹는 거야.”
“저건 설마!”
“아르시아님이 너희들에게 주신 세계수의 선물이다. 폐하께 드렸던 것과 똑같은 거지.”
“아...”
아린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국왕에게 준 것과 똑같은 보물을 자신에게 주었다는 것에 크게 놀란 것 같다.
“고맙다는 말씀도 못 드렸는데...”
“나중에 만날 일이 있을 거야. 고마움은 그때 전해.”
“알겠습니다.”
“일단 앉아.”
앉은 아린에게 세계수의 선물을 넘겨주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고 어쩔 줄을 몰랐다.
“유렌님. 제가 과분한 물건인 것 같습니다. 유렌님이 드시는 것은...”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하는 소리겠지만 아린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정말 자신의 열매를 내가 먹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의 그런 마음이 정말 고마워 가슴 한편이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내건 네 것보다 좋은 게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아, 그렇겠군요.”
“세계수의 선물을 먹고 나면 네 뱃속에서 뜨겁고 순수한 마나가 느껴질 텐데, 당황하지 말고 자연의 마나처럼 네 오러가 되도록 이끌어. 내가 뒤에서 도와줄게.”
“알겠습니다.”
아린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곤 세계수의 열매를 통째로 씹어 삼켰다. 내 지시에 의심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다.
“절대로 소리를 내면 안 돼.”
“...”
열매의 마나가 아린의 뱃속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말대로 자신의 오러를 이용해서 열매의 마나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한다.”
내가 할 일은 열매의 마나가 낭비되지 않도록 하면서 그녀의 몸속의 노폐물들을 제거해서 아린이 더 큰 경지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른바 벌모세수(伐毛洗髓)라는 것인데 내가 화경에 올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린의 뒤에 앉아 내 내력을 그녀의 혈도를 통해 집어넣었다.
우우웅.
만독자전신기의 내력을 휘돌려 그녀의 혈도들에 깊게 박혀있는 노폐물들을 밀어내주었다.
벌모세수는 단순히 열매의 마나를 낭비 없이 흡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그녀가 더 높은 경지의 벽을 넘으려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린은 모르겠지만 세계수의 선물과 벌모세수라는 천고의 기연 두 개를 동시에 얻고 있는 중이다.
무아지경에 빠진 건가.
댐을 개방한 것처럼 아린의 오러가 미친 듯이 쏟아져 흐르기 시작했다. 열매의 마나만이 아니라 주변의 마나마저 빨아들이고 있었다.
여기서 아린을 자극하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해.
욕심을 부리지 않고, 아린의 오러의 흐름에 따라 내력을 움직이며 더욱 많은 오러를 쌓게 도와주고, 노폐물들을 밀어내는 데만 신경 썼다.
세 시간 정도 지났을 때 그녀의 몸에서 검은 땀이 몽글몽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혈도의 노폐물들이 그녀의 땀샘을 통해 밀려나오는 것이다.
이제 내 할 일은 다했군.
아린은 그 이후로도 2시간이 지나서야 눈을 떴다. 그녀의 눈빛은 한밤의 호수를 비추는 듯 완벽하게 가라앉아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린은 눈을 뜨자마자 내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변화를 실감한 것 같았다.
“유렌님. 덕분에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아니라, 네가 열심히 한 거야. 고마워 할 필요 없다.”
“아닙니다. 정말 감사...”
말을 하려던 아린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는 이제야 자신의 몸에서 나온 검은 땀의 냄새를 맡은 것 같다.
아린의 수련복은 땀을 흡수하는 효과가 있어 그녀의 노폐물들은 모조리 그녀의 옷에 흡수된 상태였다.
즉 그녀에게서 지독한 냄새가 나고 있는 것이다.
“유렌님. 죄송하지만 지독한 냄새가...”
“냄새는 네 몸에서 나온 검은땀에서 나는 거야. 네 몸의 노폐물이 나온 거니까. 너무 놀라지 말고. 그 수련복은 버리도록 해. 빨아도 못 쓴다.”
“...”
아린은 멍한 눈으로 날 쳐다보다가 조용히 일어났다. 그녀는 순식간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수련실을 빠져나갔다.
타타탁!
경공을 쓰는 것처럼 땅을 밟는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벌모세수를 시킨 보람이 있었다.
“저런 표정과 반응은 처음보네.”
아린의 표정과 반응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저 정도로 격한 반응은 처음보다 보니 귀여웠다.
“저 수련복 치울 필요도 없고 괜찮은데? 다른 녀석들도 저 수련복 입고 오라고 해야겠어.”
**
다음날엔 크라이드와 그 다음날엔 브리카를 벌모세수를 시켜주었다.
크라이드는 아린처럼 무아지경에 빠져 한 단계 위로 넘어갔지만, 브리카는 아직 수련이 모자란 건지 아쉽게도 무아에 빠지지 못했다.
그래도 벌모세수는 시켜주었으니, 앞으로 더욱 높은 경지를 향 할 수 있을 거다.
아린은 냄새가 난 것이 정말 창피했는지 그 날 이후로 날 피해 다니고 있어 마주치질 못하고 있었다.
벌모세수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 번 더 해줘야 하는데 아린을 만나질 못하니 몇 번 더 하자고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냄새가 좀 날 수 있다고, 미리 말 좀 해줄 걸 그랬나...”
“유렌님.”
“들어와라.”
문을 열고 마지막 순서인 페루가 들어왔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검은 수련복을 입고 있었다.
“각오는 했나?”
“네. 준비됐습니다.”
페루에게 내가 알려줄 것은 검이 아니라 독술이라고 미리 말해주며 제대로 고민을 해보라고 했다. 대답과 굳은 표정을 보니 각오를 마친 것 같다.
그에게 알려줄 것은 당천위가 당가를 세워달라고 하며 남기고간 내공심법인 연독심공(聯毒心功)이다.
페루는 나이가 있고 독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보니, 암기를 같이 배우기보다 독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럼 바로 시작하자. 나와 똑같은 자세를 취해봐.”
페루에게 가부좌를 보여주었다.
“유렌님이 많이 하시던 자세네요.”
“맞아. 자주 봤지?”
“이렇게 인가요?”
“잘하는데?”
페루는 많이 봐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가부좌를 따라했다.
“눈을 감아.”
“네.”
“네 몸에 내 마나를 흘려 넣을 거야. 그 마나가 지나가는 느낌과 길을 잘 기억해.”
“알겠습니다.”
페루는 혈도를 모르니, 내 내력으로 그에게 심법의 경로를 각인시켜줄 생각이다.
“지금부터는 절대로 입을 열지 마.”
“알겠습니다.”
“열지 말라니까.”
“흡!”
피식 웃고 페루의 혈도를 통해 내 내력을 집어넣었다. 먼저 녀석의 몸 상태를 점검해보고, 심법을 새겨주려 했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이 녀석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