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엘루나 (2) (142/241)

엘루나 (2)

엘프들만의 국가 엘루나의 탄생 배경은 간단하다.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엘프들은 인간과 달리 개인주의적인 생활을 추구하기 때문에 작은 부족 단위로 살아왔다. 

그들에겐 백발백중의 궁술과 예리한 검술이 있었고, 정령과의 교감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몬스터가 나타나도 스스로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문제는 몬스터들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인간들은 엘프들의 아름다운 외모를 원했고, 정령 친화력에 커다란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이 엘프들의 마을을 습격했고, 엘프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처절한 전투를 해왔다. 

단순히 무력만 따지면 엘프들은 인간 개개인보다 강했지만 인간들은 야비했으며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끈질겼다. 

수많은 엘프들이 죽임을 당하고, 잡혀가는 것을 참지 못한 하이엘프 아리안이 세계수 앞에 대륙의 엘프들을 모아 국가로 세운 것이 바로 엘프들의 국가 엘루나의 시작이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엘루나는 인간에게 배타적이라 다른 종족이 엘루나에 들어오게 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난 그런 엘루나에 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최고 귀빈의 입장으로. 

원작과 다르군. 만약에 알려진다면 국왕이, 아니 국가 전체가 뒤집어 질 일이야. 

원작에서 주인공은 평범하게 엘루나에 초대된다. 하지만 내겐 최고 귀빈이라는 추가적인 혜택이 붙어버렸다. 

“유렌 자작님. 초대를 수락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쪽에서 엘루나에 갈 수 있는 인원은 몇 명입니까?” 

“유렌 자작님을 정식으로 초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많은 인원만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유렌님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음, 일단 제가 엘루나에 초대받아 가는 것을 비밀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유렌님이 정식으로 초대 된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면 명성도 높아지실 테고, 크라시스 왕국에도 나쁘지 않은 일일 텐데요.” 

데이라가 의아한 듯 질문을 해왔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데이라의 말이 맞지만 지금 나는 세피로스에게도, 칠죄종에게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상태다. 자칫 잘못하면 이동 중에 놈들에게 습격을 받을 수도 있다. 

갔다 오면 알아서 소문이 나고, 크라시스와 엘루나의 사이가 돈독해 질 텐데 시작부터 위험을 감수 할 필요는 없지. 

“최근에 저나 영지가 공격 받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나 습격을 받을지도 모르니 조용히 움직이고 싶습니다.” 

“음, 확실히 호위가 있긴 하지만 사건은 없을수록 좋겠죠. 알겠습니다. 유렌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데이라가 내 말을 이해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반응을 보며 데려갈 사람을 생각해보았다. 

엘루나에 갈 일은 평생에 다시 오기 힘들 테니, 내 사람들을 데려가서 경험을 시켜주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저는 4명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럼 총 5명이군요. 저희도 유렌님을 모실 준비를 해야 하니 나흘 뒤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나흘 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장소와 시간은 로디엔님을 통해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조심히 가시길.” 

“그럼...” 

데이라는 다시 한 번 정중한 예를 취한 뒤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따라갈 줄 알았던 로디엔은 방에 남아있었다. 

“유렌님!” 

“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세요?” 

로디엔은 내 책상 앞에 서서 홍조를 띈 얼굴을 들이밀었다. 상당히 흥분한 상태 같았다. 

“엘루나에 인간이 온 건 제가 태어난 이후 한 번도 없었어요! 거기다 최고 귀빈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에요! 아마 인간 중에 최초 일거에요!” 

“그, 그런가요?” 

“‘그런가요?’가 아니에요! 기적 같은 일이에요. 그 노땅들이 뭘 잘못 먹었나? 웬일이지? 아!” 

로디엔은 자기가 더 흥분해서 내 손을 잡고 흔들다가 깜짝 놀라 손을 빼고 뒤로 물러났다. 

“죄, 죄송해요. 저도 그럼 가 볼게요!” 

로디엔이 도망치듯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닫힌 문을 잠시 쳐다보다가 피식 웃고 엘루나에 가서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 

사흘 뒤. 

파이란과 판톤에게 기사들과 잠시 여행을 다녀온다고 말하며 내가 영지에 없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뒤 짐을 챙겨서 성밖으로 향했다. 

“모두 모였나?” 

“영주님을 뵙습니다!” 

“오셨습니까.” 

“그래.” 

미리 기다리고 있던 아린과 크라이드, 브리카, 페루가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해왔다. 그들을 이끌고 약속 장소인 에킬 산 중턱으로 향했다. 

“그런데 저희 어디 가는 거죠?” 

“맞아요. 이제 말씀 좀 해주세요.” 

“엘루나로 간다.” 

이들에게 일부러 엘루나에 간다는 말을 하지 않고 하지 않고 며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었다. 이제 말해줘도 괜찮아서 엘루나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엘루나?” 

“엘루나가 어디지?” 

크라이드와 브리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아린이 걸음을 멈추고 떨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유렌님. 설마 엘프들이 있는 엘루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헉! 엘루나가 그 엘루나였습니까?” 

크라이드와 브리카도 이제 알아들었는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산을 오르던 걸음을 멈췄다. 페루는 처음부터 알아들었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초대받았어. 그곳에 언제 또 갈수 있을지 모르니, 너희들도 경험을 해봤으면 싶어서 데려가는 거다.” 

모두에게 내가 생각했던 진심을 전해주었다. 

“아...” 

“유렌님!” 

아린은 말을 잇지 못했고, 크라이드는 감격에 젖어 눈물을 흘릴 기세였다. 

“펴, 평생 따르겠습니다. 형님!” 

“브리카! 이 미친 자식아!” 

“헉!” 

브리카는 예전 버릇대로 날 형이라고 불렀다가 페루에게 욕을 얻어먹고 정신을 차렸다. 

“엘프들에게 절대로 실례하지 말도록. 우리는 왕국의 대표로 엘루나에 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알겠습니다!” 

“에이, 저는 그런 거 절대 안하죠. 믿어주세요!” 

“네가 제일 걱정이다.” 

“맞아! 너만 잘하면 된다고.” 

“엑! 헤헤.” 

브리카가 찔끔하는 척을 하며 몸을 움츠리자,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산을 올랐다. 

산의 중턱에 도착하니 로브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엘프 여섯 명이 있었다. 

“가이린의 영주를 뵙습니다.” 

그 중 가운데 있던 엘프가 로브를 벗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왔다. 그녀는 나흘 전에 보았던 데이라였다. 

“가이린의 영주를 뵙습니다.” 

데이라 옆의 엘프들도 로브를 벗고 정중한 인사를 해왔다. 데이라의바로 옆에 있는 녹색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엘프는 먼저 나갔던 로디엔이었다. 

“우와, 지, 진짜...” 

“에, 엘프라니...” 

옆을 보니, 브리카와 크라이드, 페루는 엘프들의 미모에 놀라 완전히 얼어있었고, 아린은 엘프 중에 로디엔만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로디엔님 이신가요?” 

“역시 아린님은 속일 수가 없네요. 후후.” 

“로디엔님이 맞으시군요.” 

아린은 좋은 눈썰미로 단번에 로디엔을 알아본 것 같았다. 역시 뛰어난 관찰력이 장점인 기사다웠다. 

“헉! 로디엔님이라고요?” 

“로디엔님?” 

“으헉!” 

로디엔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쁘다고 생각만 하던 남자들은 깜짝 놀라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숨겨서 미안해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괘,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전혀 상관없습니다.” 

로디엔이 미안한 미소를 짓자, 크라이드와 브리카가 고개를 맹렬하게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 

“유렌 자작님. 이 목걸이를 껴주시겠습니까?” 

데이라는 우리에게 작은 에메랄드가 반짝이는 목걸이를 하나 씩 건네주고 목에 껴달라고 부탁했다. 모두가 목걸이를 착용하자, 엘프들도 자신의 목에 같은 목걸이를 걸었다. 

“이 목걸이는 빠른 이동을 위해 저희들이 제작한 마법 아이템입니다. 워프와 비슷하지만 장소의 제한이 없죠. 다만 단점이 있는데...” 

데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목소리로 제이스에 대해 설명을 했다. 

“워프보다 조금 진동이 심할 수가 있으니, 주의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모두 손을 잡아 주십시오.” 

데이라의 말에 우리는 모두 손을 잡았다. 데이라가 알다듣기 힘든 엘프어를 외우자 모두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푸른 빛을 내뿜으며 살며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카베른.” 

데이라가 영창을 마치고 주문을 외우자 지진을 발생한 것처럼 몸과 머리에 강한 진동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진동은 10초정도 지속되었고, 진동이 끝나자 눈앞에 높은 안개가 사방을 덮고 있는 울창한 숲이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진동이 예상보다 심했군요. 모두 괜찮으십니까?” 

먼저 정신을 차린 엘프들이 바닥에 손을 짚고 있는 크라이드와 브리카, 페루를 챙겼다. 

“괜찮아요!” 

“저도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 안 괜찮네요... 으으...” 

크라이드와 브리카는 버텼지만, 페루는 버티려다가 바닥에 주저 않아버렸다. 멀미 같은 것이라 쉬면 괜찮아 지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목걸이는 일회용이니, 다시 돌려주십시오.” 

데이라에게 목걸이를 돌려주고, 숲 앞에 섰다. 

“여기가 엘루나인가...”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한 숲이 회색 안개로 덮여 있는 신비롭고 기괴한 모습이다. 흡사 유령의 숲 같은 모습이었다. 

“유렌님. 여긴 어떻게 들어가야 할까요? 전혀 틈이 없는데요? 설마 베면서 갈리는 없고...” 

브리카가 내 옆으로 와서 숲을 살펴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후후, 엘프는 숲의 종족이에요. 이 정도 길은 간단히 열 수 있죠.” 

로디엔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앞에 서자, 벽처럼 쌓여있던 나무가 자리를 비켜주고, 수풀이 조금씩 움직여서 우리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다. 

“어어!” 

“우와!”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환상적인 현상에 모두가 혼이 빠진 것 같은 눈으로 로디엔을 보았다. 

“역시 엘프십니다!” 

“이런 광경을 보다니...” 

“훗!” 

로디엔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본 브리카가 놀리는 투로 입을 열었다. 

“근데 로디엔님. 외모는 변해도 그 성격은 그대로십니다.” 

“뭐라고요?” 

“아, 아닙니다.” 

로디엔의 날카로운 대답에 브리카가 내 쪽으로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로디엔님이 길을 여셨군요. 이곳이 엘루나로 향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허락된 자에게만 열리는 길이죠. 허락되지 않은 자에겐 죽음의 길이 될 겁니다.” 

데이라가 뒤로와서 로디엔이 못 다한 섬뜩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 지독해 보이는 안개 역시 저희가 들어가면서 사라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뒤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모두 괜찮아지신 것 같으니.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데이라는 상태가 괜찮아진 페루를 살핀 뒤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녀가 걷기 시작하자 숲의 안개가 갈라지며 아름다운 숲의 전경이 드러나고 있었다. 

귀신들린 숲 같았던 외부에서의 모습과 달리 안쪽은 잘 가꿔진 정원보다 더욱 화사한 숲이 나타났다. 

오색으로 빛나는 고운 꽃들이 만발했고, 힘이 넘치는 거대한 나무들이 우뚝 서 있었으며, 맡는 것만으로 마음이 안정되고 편해지는 풀내음이 풍기는 아름다운 숲이었다. 

“빽!” 

“멀리가지 마!” 

“빽!” 

지금까지 주머니에서 가만히 있던 빽빽이가 숲에 들어오자마자 밖으로 나와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녀석은 이 숲에서 풍기는 자연의 냄새에 들떴는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 아이가 유렌 자작님의 정령수군요.” 

“네. 좀 별나지만...” 

“어?” 

빽빽이를 쳐다보던 데이라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쩍 벌렸다. 처음으로 보는 그녀의 놀라운 표정이었다 . 

“베, 벨로아가 저 정도의 정령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니!” 

“네?” 

“저 정도 기운이면 중형 정령수 이상, 거의 대형 정령수 급이에요! 어떻게 저런 어린 아이가 저런 능력을! 거기다 다중 속성이라니!” 

데이라는 놀랍다는 듯 빽빽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다른 엘프들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빽빽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정말 좋은 정령수를 얻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데이라의 눈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엘루나의 상급 엘프에게 빽빽이의 칭찬을 들으니 열심히 데리고 다니며 키운 보람이 느껴져서 내 칭찬을 듣는 것 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 같다. 

“빽!”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유롭게 비행하는 빽빽이를 보고 있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 앞을 가로 막았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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