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메라 vs 아이자크 (2)
포메라는 유렌이 넘겨준 성석 목걸이, 팔찌, 반지 세 개를 동시에 끼는 순간 자신의 영혼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는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아이자크의 구슬 속에 담겨있는 어둠의 마력을 흡수해서 순식간에 7서클의 벽을 뚫어버렸다.
포메라는 7서클이 되자마자 아이자크의 구슬이 깨지며, 그 안에 있던 지독한 어둠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을 느꼈다.
“으음...”
포메라는 자신을 둘러싼 어둠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고 명상을 할 때처럼 마음을 차분히 안정시켰다.
시간이 지나며 어둠이 조금씩 사라졌고, 포메라는 보이는 모든 것이 하얗고, 끝없이 넓은 방에서 정신이 들었다.
“이 공간은...”
처음 와본 곳이지만,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유렌에게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얀 도화지를 펼쳐놓은 것 같은 이 장소가 바로 포메라의 정신세계였다.
“어?”
주변을 둘러보려고 고개를 돌리던 포메라가 기겁하듯 놀라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뼈만 이어야 할 그의 손을 피부가 덮고 있었다.
“피, 피부가가 있다니! 이게 대체!”
포메라는 바로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딱딱해야 할 두개골에 피부가 붙어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는 마법으로 물방울을 띄워 올려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내 얼굴이, 내 몸이 돌아오다니...”
마탑에 있을 당시의 얼굴, 세상에 절망하면서도 꿈을 놓지 않았을 적의 얼굴, 평생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자신의 얼굴이 물방을에 비치고 있었다.
포메라는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온 자신의 몸을 만져보았다. 현실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감정을 주체 할 수가 없어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아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포메라는 고개를 흔들어 감정을 지우고, 정신을 차렸다. 지금 자신의 몸을 두고 전쟁을 벌여야 하는데 감정에 휩쓸릴 수는 없었다.
“주인이 이곳에서 아이자크와 싸워야 한다고 했는데, 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거지? 저건...실?”
귀신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고, 포메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앞에 검은색 실 한 줄이 나타났다.
우웅.
검은색 실은 꼬이고 뭉치고 매듭을 만들며 스스로의 크기를 점점 키워갔다. 공간을 잡아먹듯이 커져가던 검은 뭉치는 점차 인간의 형상으로 빚어지기 시작했다.
화아악!
검디검었던 어둠을 헤치고 그 안에서 아름답다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남자가 나타났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 뚜렷한 이목구비, 잡티하나 없이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남자는 눈을 감고 있어도 살을 떨리게 하는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유렌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외모와 분위기를 가진 남자였기에 포메라의 입에서 순수한 감탄이 나왔다. 하지만 그의 감탄은 남자가 눈을 뜬 순간 사라져버렸다.
“으음...”
남자의 눈빛 속엔 세상을 뒤엎을 거대한 어둠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 지독한 어둠과 암울함에 포메라는 숨을 죽이며 얼어버렸다.
“아이자크...”
남자의 눈을 본 순간 포메라는 앞의 남자가 홀로 수천의 생명을 몰살 시킨 흑마법사 아이자크임을 확신했다.
“하아...”
눈을 뜬 아이자크는 가볍게 숨을 내뱉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앞에 있는 포메라에겐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오래 걸렸군. 세피로스. 이 무능한 놈들.”
아이자크는 고개를 흔들며 세피로스의 욕을 하다가 포메라를 살펴보았다.
“더러운 종자로구나.”
아이자크가 자신의 얇고 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가락에서 죽음의 기운을 담은 보라색 기운을 빛나고 있었다.
“영광으로 알고 죽거라. 네 더럽고 모자란 육체를 이 몸이 써주는 것이니.”
피아앙!
말을 마친 아이자크의 손가락에서 일직선의 광선이 튀어나왔다. 그가 공격을 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포메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본 실드!”
콰아앙!
포메라는 뼈로 이루어진 방패를 만들어서 아이자크의 광선을 막아냈다. 방패는 부숴졌지만 포메라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호오, 막아?”
아이자크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틀며 포메라를 노려보았다.
“그냥 당하지는 않을 거요.”
“정신세계에서 바로 움직이다니 그냥 벌레는 아니라는 건가? 그래봤자 시간 끌기도 되지 못하겠지만.”
아이자크의 손에서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그것을 본 포메라가 방어를 하려는 순간 성석 아이템을 꼈을 때 받았던 극심한 고통이 다시 찾아왔다.
“크으윽!”
“크아아아!”
고통을 느끼는 것은 포메라만이 아니라, 아이자크도 마찬가지인 듯 머리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이자크는 포메라보다 더 심한 고통을 느끼는지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하등한 벌레 놈!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크으윽! 당신을 이길 준비요!”
“개 같은 소리마라!”
아이자크는 성석이 주는 고통을 이를 악물어 참아낸 후 검은 불꽃을 다시 소환해서 포메라에게 날렸다.
“크아아!”
포메라는 머리를 붙잡으며 오른쪽으로 피하려 했지만, 검은 불꽃은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포메라를 따라 움직였다.
“본 월!”
포메라 앞에 검은색 뼈로 이루어진 벽이 생성되었다. 방금 전에 소환했던 방패보다 더욱 단단하고 큰 방어 마법이었다.
콰앙!
검은 불꽃은 포메라의 본 월의 절반을 부쉈지만, 포메라에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크으으. 벌레 주제에 반항을!”
아이자크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흰색 땅을 헤치고 해골들이 우수수 일어나기 시작했다. 해골만이 아니다. 좀비, 구울, 듀라한이 나타났고 허공에는 스펙터들이 괴이한 웃음을 지으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영지를 몰살시킨 아이자크의 언데드 군대가 포메라의 정신세계에서 부활하였다.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소.”
포메라도 양손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언데드들을 소환했다.
쿠구구구구!
아이자크의 해골보다 새하얀 해골들이 일어났고, 아이자크의 구울 보다 지독한 시독을 가진 구울이 땅에서 올라왔으며, 해골마를 타고 있는 듀라한이 거대한 울음을 질렀다.
거기다 포메라가 직접 제작한 리빙아머, 플랑코 투사, 인면지주, 글러트니의 위까지 나타났다.
포메라의 앞에도 언데드 군대가 나타나 그 위용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포메라가 소환한 언데드의 숫자는 아이자크에게 밀렸지만, 그 질은 절대 밀리지 않았다.
“내 마력을 얻어 쓴 기생충 따위가 끝까지!”
“그럼 그냥 내 몸을 내어줄 거라 생각했소? 멍청하구려.”
“죽여 버리겠다!”
“절대 밀리지 마라!”
포메라와 아이자크의 언데드 군대가 맞붙었다. 숫자는 아이자크가 많았지만, 포메라의 언데드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콰아앙!
죽지 않는 수천의 언데드가 서로를 부수는 지독한 광경 속에서 갑자기 검은 불기둥이 일어났다. 불기둥은 단번에 포메라의 언데드 수십을 집어 삼켜버렸다.
“저건, 설마...”
마법 같은 것이 아니다. 검은 불기둥을 쓰는 것은 기사였다. 이미 죽어 백골이 되어버린 기사 데스나이트.
번쩍이는 금색갑옷을 두르고, 마계의 어둠을 검에 소환한 상급의 데스나이트들이 포메라의 군대를 학살하며 순식간에 포메라의 근처까지 접근했다.
“데스나이트라니.”
포메라의 언데드 중 가장 강한 것은 리빙아머지만 저 데스나이트를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할 때 유렌이 해준 말이 기억났다.
‘정신세계에선 정신력에 따라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이.
“그렇다면 그 남자를 불러와야겠지.”
포메라는 자신이 아는 가장 강한 존재를 이곳에 소환했다. 머리가 아찔할 만큼의 정신력이 소모됐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었기에.
콰아앙!
번쩍이는 오색의 빛기둥과 함께 이 지독한 전쟁에 어울리지 않는 혹은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가 등장했다.
큰 키, 완벽이 이른 기도, 흑발에 검은색과 녹색이 섞인 코트를 입은 미형의 남자, 유렌 록스가 포메라의 앞에 섰다.
“흠...”
물론 진짜가 아니라, 포메라의 머릿속에 그려진 상상속의 유렌 록스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포메라에게 도움이 되었다. 실제 유렌보다 한참 강한 유렌을 불러버렸으니까.
“죽...어라...”
어느새 다가온 데스나이트가 그 거대한 불꽃의 검을 휘둘렀고, 포메라의 죽음을 예상한 아이자크가 웃음을 지었을 때 유렌이 가만히 팔을 들어올렸다.
쩌엉!
5m가 넘는 불꽃의 대검이 작디작은 유렌의 단검에 막혀버렸다. 그 기이한 광경에 아이자크도, 데스나이트도 미소를 지은채 굳어버렸다.
“허술하군.”
유렌은 상대를 놀리는 특유의 어조를 사용하며 데스나이트의 검을 밀어냈다. 50cm가 겨우 넘는 단검으로 5m의 불검을 밀어내는 광경은 상상 세계에서도 믿기 힘든 것이었다.
“역시. 주인이오.”
포메라의 머릿속에 박힌 유렌의 모습이 이런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해서 모두를 질겁하게 만드는 남자. 그것이 포메라가 생각한 유렌 록스다.
우우웅.
유렌에 들고 있던 단검을 공중에 띄우자 단검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 데스나이트의 미간에 박혀버렸다.
“그따위 것으론 막을 수 없다!”
아이자크가 비웃으며 소리를 질렀지만, 그의 바람과 다르게 데스나이트가 물처럼 변해서 녹아버렸다.
“이, 이런 미친!
포메라는 유렌이 화골산을 사용하는 것은 모르지만, 언데드를 일격에 죽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 힘이 데스나이트에게 발휘된 것이다.
“귀찮으니, 한 번에 끝내자.”
우우웅!
유렌이 자신의 양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자 바닥에 떨어진 무기들 모조리 공중에 떠올랐다. 검, 도끼, 창, 화살까지 수백 개의 무기들이 별자리처럼 허공에 자리를 잡았다.
부우우웅.
이정도 연위결은 당천위가 와도 할 수 없겠지만, 포메라가 유렌의 강함을 이정도로 생각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저놈 누구야!”
아이자크가 핏대를 세우며 몸을 떨었다. 유렌의 아이자크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멍청한 놈. 가라.”
유렌이 손을 떨어뜨리자, 허공에 있던 무기들이 비처럼 내려서 아이자크의 해골들을 몰살시키기 시작했다.
무기가 너무 많았고, 유렌이 언데드를 녹이는 힘을 발휘했기 때문에 아이자크의 영역에 있던 수천의 언데드들이 물에 속에 담긴 설당처럼 순식간에 녹아 사라져버렸다.
“크으...”
남아 있는 것은 오로지 아이자크 한 명뿐이었다.
“이 하등한 놈들이!”
여유가 넘쳤던 아이자크의 눈에 광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포메라를 쏘아보며 이를 갈았다.
“이곳은 내 정신세계요. 당신에게 절대로 지지 않소.”
포메라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을 참아내며 당당히 서서 소리쳤다.
“지랄마라! 벌레 놈이!”
피를 토하듯 소리를 지른 아이자크의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오우거나 사이클롭스 정도가 아니다. 그의 몸은 하늘에 닿을 것처럼 끊임없이 커지고 있었다.
“벌레 놈들! 밟아 죽여주마!”
성석의 고통을 참으면서 이정도의 정신력을 발휘한 것에 대해 포메라는 적이지만 감탄을 느꼈다. 그리고 이것이 서클에 따른 정신력의 차이임을 실감했다.
“이 정도였다니...”
포메라는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모든 정신력을 사용했기 때문인지 눈이 감기려는 것을 입술을 깨물어 겨우 참아냈다.
“주인. 어떻게 해야 하오?”
포메라가 자신의 앞에선 유렌에게 물었다.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항상 자신감 넘치고 모든 일을 쉽게 해결 하는 것 같은 유렌의 모습에 기대고 싶었을 뿐이었다.
“널 못 믿겠다면, 날 믿으라고 했잖아.”
대답할리 없던 유렌의 입에서 믿으라는 소리가 나왔다. 상상의 유렌이 한 말이지만 포메라는 그 말에 자신감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맞소. 끝까지 해보는 게 맞겠지.”
포메라는 극심한 통증과 바닥을 기는 정신력을 부여잡고, 아이자크처럼 자신의 몸을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자크에 비해 너무도 작은 크기였다.
“밟아주마. 끈질긴 놈!”
포메라는 아이자크의 말에 반응하기조차 힘들었다. 간신히 버티고만 있을 때 포메라의 정신세계에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났다.
우우웅.
아이자크가 나왔을 때처럼 녹색 실과 노란색 실이 나타났다. 두 색의 실이 뭉치기 시작하며 거대한 아이자크를 피해서 포메라에게 날아왔다.
“이, 이건!”
뭉쳐진 실들을 피하려던 포메라는 그 안에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존재의 기운을 느끼고 받아들였다.
화아악!
실이 포메라에게 닿은 순간 포메라는 자신의 육체를 내리누르던 피로와 현기증이 사라지고 활력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주인...”
누가 이 힘을 보냈는지는 뻔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신의 주인 유렌 록스가 보낸 것이 확실하다.
“또 무슨 짓거리를 하는 것이냐!”
포메라는 그 정신력을 유지하며 다시 자신의 몸을 키우기 시작했다. 유렌이 전해주는 힘은 끝도 없이 이어져 포메라의 몸집이 아이자크를 넘어서 그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저 몸집만 키워진 것이 아니라 정신도 안정되었고, 자신을 응원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용기까지 얻었다.
“이 버, 버러지 놈이...”
자신보다 커진 포메라를 올려보는 아이자크의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붉어지고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후우...”
포메라는 더 이상 아이자크가 신비롭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처리해야 할 해충으로만 보였다.
포메라는 아이자크를 내려다보며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었다.
“내가, 아니, 우리가 이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