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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포메라 vs 아이자크 (138/241)

포메라 vs 아이자크

왕궁에서 하루를 보낸 후에 모두와 함께 영지로 돌아왔다. 왕궁의 워프 룸을 이용했기 때문에 바로 영주성의 연무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영주님!” 

“다녀오셨습니까.” 

미리 연락을 받고, 연무장 앞에 서있던 페루와 파이란, 판톤이 깊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뭐 하러 나와 있어.” 

“영주님이 복귀하시는데, 당연히 나와 있어야죠.” 

“맞습니다.” 

“하여튼.” 

그들의 인사를 받고 뒤로 돌아 아린과 크라이드, 브리카를 쳐다보았다. 

“모두 고생했다. 가서 푹 쉬도록 해.” 

“어제 하루 쉬었으니, 괜찮습니다. 오늘은 수요일이니, 병사들의 훈련을 봐주겠습니다.” 

크라이드와 브리카가 입을 열기 전에 아린이 혼자 오늘 일과를 하겟다고 대답을 해버렸다. 둘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아린을 보았지만, 그녀는 둘을 신경 쓰지 않았다. 

“괜찮기는 무슨. 쉬라고 할 때 쉬어.” 

“네. 알겠습니다. 푹 쉬겠습니다!” 

이번엔 아린이 말하기 전에 브리카가 앞으로 나섰다. 아린이 브리카를 노려봤지만, 브리카는 그 시선을 못 본 척 하며 나를 보고 미소지었다. 

“그래. 실전을 치렀으니, 며칠을 쉬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다. 가서 쉬도록 해.” 

브리카과 아린의 장난스러운 대치에 미소를 지으며 셋에게 지시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네.” 

아린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를 돌려보내고 빽빽이를 안고 있는 로디엔을 보았다. 

“수고하셨소.” 

“영주님도 고생하셨어요. 저도 휴가 주실 건가요?” 

“물론이오.” 

“후후, 그럼 전 그 기간 동안 도박장에 가 있어야겠네요. 따면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기대하겠소.” 

로디엔은 빽빽이를 내게 넘겨주며, 성 밖으로 향했다. 바로 도박장으로 향하는 것 같다. 

-로디엔. 중요한 일이 있으니, 조만간 찾아가겠습니다. 

내 전음을 들은 로디엔이 뒤돌아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성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뒤 페루와 파이란, 판톤을 데리고 집무실로 향했다. 

“영주님도 쉬셔야 하지 않으십니까? 제일 고생하셨을 텐데요.” 

“어제 쉬었어.” 

“하루 쉬어서 피로가 풀릴 리 없잖아요.” 

“난 풀려.” 

“흐으...” 

페루는 내 대답이 어이가 없는지 눈만 꿈벅꿈벅하고 있었다. 

“파이란 관리관.” 

“예!” 

“미뤄둔 업무들을 가져오시오.” 

“알겠습니다.” 

한동안 수련에 집중하느라 영주의 업무들을 미뤄두었다. 이제 하나의 사건이 끝났으니 영주 일들을 할 때다. 

“좀 많은데?” 

파이란이 들고 온 서류가 책상에 수북이 쌓였다, 가볍게 끝낼 거라 생각했는데 이정도면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다. 

“영주님 덕분입니다.” 

“내 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영주님 덕에 난장판이었던 가이린의 중심이 잡히지 않았습니까.” 

파이란이 집무실 창문으로 보이는 마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 덕에 크라시스 왕국에 가이린에 대한 소문이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새롭게 변한 가이린엔 일자리가 있고, 치안이 좋으며, 영주가 목숨을 걸고 영지민을 보호한다는 소문이.” 

파이란은 내 앞에 쌓인 서류를 중 몇 장을 들어 올려서 보여주었다. 

“영주들이 허락해 줄 리가 없으니, 다른 영지에서 살고 있는 영지민들은 오고 싶어도 함부로 올 수 없죠. 대신 귀족들에게서 도망쳐 살던 사람들이 가이린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도망친 사람들?” 

“네. 이 서류가 새로 가이린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목록입니다.” 

파이란이 보여준 서류엔 많은 이름들이 적혀져 있었다. 

“귀족들의 횡포에 산과 숲으로 도망쳤던 사람들이 가이린에 찾아온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귀족들에게 시달리느니, 차라리 몬스터의 위협을 받겠다며 숲과 산으로 향했던 사람들입니다.” 

판톤도 파이란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든 것이 유렌님의 활약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이기적인 귀족들에게 지친 사람들이 유렌님의 명성과 활약을 듣고, 유렌님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가이린으로 온 겁니다.” 

세상에 실망하고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내 소문을 듣고, 나를 믿어보고 싶어서 세상으로 돌아 왔다니 그들을 두 번 실망하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하지만 그전에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다. 

“파이란.” 

“예!” 

“그들의 신원을 확실하게 등록하고, 영지에 적응을 할 수 있게 도와주도록.” 

“알겠습니다.” 

“판톤.” 

“예!” 

“이게 가장 중요한 일이오. 새로 온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를시 절대 봐주지 말고, 철저하게 응징하도록. 그들 때문에 기존의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해야 해. 병사들을 똑바로 교육 시키시오.” 

“알겠습니다. 병사들에게 영주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인지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파이란과 판톤 역시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내가 서명해준 서류를 가지고 집무실을 나갔다. 

판톤과 파이란을 내보내고, 쌓여있는 서류에 다시 집중하려 할 때 페루가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뭐가?” 

“숲과 산으로 도망가서 산다는 사람들 말이에요. 그들은 귀족들에게 뼛속 깊이 실망한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유렌님을 믿고 내려오다니, 놀랍다 못해 신기해요.” 

“신기한 것도 많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즘 유렌님의 하시는 모든 것이 믿기 힘들어요.” 

“웃기고 있네.” 

“헤헤.” 

잠시 페루와 마주 웃고서 아직도 한참 남은 서류의 처리를 시작했다. 

** 

서류를 모두 처리하고, 병사들의 훈련을 지켜보다가 내 방으로 들어가서 포메라에게 줄 물건들과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때를 위한 생필품과 장비들을 마법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 보니, 확인을 하지 않았네.” 

내가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지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보창을 켜서, 전투경험이 얼마나 올랐나 찾아보았다. 

[천수암왕의 전투경험 전승] -10% 

영웅 로벤과 싸우며 경험이 4%가 올랐다. 많이 오른 것 같지만 소드 마스터를 잡아서 4%다. 이제 어중이떠중이들을 상대해서는 1%도 오르지 않을 거다. 

“멸락을 쓸 때 10개 이상의 암기를 동시에 날려도 여유가 있겠는데.” 

멸락을 쓸 때뿐이지만, 10개가 넘는 암기를 날려도 정신력을 유지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성장할수록 멸락으로 움직일 수 있는 암기나 무기가 점점 많아 질 것이다. 

모든 준비를 끝낸 뒤 에킬 산 정상으로 향했다. 

“좋네...” 

정상에서 평화로운 마을을 잠시 쳐다보다가 주머니에서 포메라의 혼의 구슬을 꺼냈다. 

“포메라.” 

“주인. 또 훈련이오?” 

“아니. 이번엔 너 때문이야.” 

“그게 무슨 말이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이름: 포메라] 

[특성: 구현lv3, 마나 설계lv3, 마나응용lv4, 리치(Lich), 명상lv4, 환혼lv3, 지휘관의 무게 ] 

[호감도: 76 (신뢰) ] 

“어?” 

“왜 그러시오?” 

깜짝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얼마 전에 포메라를 봤을 때 명상의 레벨이 분명 3이었는데, 지금 보니 4레벨이 되어 있었다. 이런 속도의 성장이 가능하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너 요새 명상이 더 잘되지 않아?” 

“어떻게 알았소? 주인에게 명상을 알려주고, 함께 명상을 한 이후 이상할 정도로 집중이 잘되오. 흡사 영혼이 다른 세계로 움직이는 듯 혼이 붕 뜨는 느낌까지 받고 있소.” 

“이거 진짜 되겠는데.” 

나와 함께 지내며 포메라가 한 단계 성장을 한 것 같다. 

명상 3레벨에서도 도전 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4레벨이라니. 포메라는 8서클의 흑마법사 아이자크와 싸우더라도 쉽게 밀리지 않을 정신력을 가지게 되었다. 

“포메라. 오늘이다.” 

표정을 굳히며 말하자,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는지, 포메라의 턱관절에서 딱 소리가 났다. 

“오늘 말이오? 가, 갑자기?” 

“너 이미 6서클 마스터를 넘은지 좀 됐잖아. 7서클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주인. 조금 걱정이 되오.” 

포메라가 걱정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몸을 뺏으려는 존재, 그것도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와 싸워야 하니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열심히 해왔잖아. 걱정 마. 할 수 있을 거다.” 

“주인.” 

“거기다 너 자신을 못 믿겠으면 날 믿어. 내가 도와줄게.” 

“음...” 

진심을 담아서 말하자. 포메라의 눈에 박힌 푸른 불꽃이 점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빽!” 

주머니에서 놀고 있던 빽빽이가 갑자기 튀어나와 포메라의 두개골 위에 올라가서 조롱조롱 울기 시작했다. 

“빽빽이도 지금 하라잖아.” 

“건방진 새...” 

“빽!” 

빽빽이가 나온 것을 보니, 진짜 길잡이가 발휘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욱더 지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 되는 건 알아. 당연히 걱정되겠지. 하지만 대비 없이 갑자기 7서클이 되어버리면 막을 수가 없어. 네 몸은 바로 아이자크에게 먹힐 거다. 우리가 선수를 쳐야해.” 

“음...” 

포메라는 고민이 되는지 뒤에 보이는 영지를 한참 쳐다보았다. 재촉을 하지 않고, 바위에 걸터앉아 포메라의 결정을 기다렸다. 

“알겠소. 주인의 말에 따르겠소.” 

“잘 생각했다.” 

머뭇거리던 포메라의 결심이 굳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동하자.” 

“이동?” 

“내가 네게 뺏었던 마법서와 아이자크의 구슬에는 추적마법이 걸려있어. 그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거다. 이곳에서 꺼냈다간 세피로스에게 추적당할 거야.” 

“그렇구려.” 

“예전에 갔던 사막 한 가운데로 가자.” 

“숲에서 이동했던 사막 말이오?” 

“그래.” 

세피로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아우쿠솔의 미궁이 나타났던 사막으로 가기로 했다. 추적도 쉽지 않고, 주변에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알겠소.” 

포메라가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법진을 자주 그리다 보니 숙련도가 늘어,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있었다. 

포메라가 마법진을 그리는 동안 난 연위결을 운용하며 앞으로 일어날 변수들을 예상해보았다. 

“주인. 다 되었소.” 

마법진을 완성한 포메라가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왔다. 

“수고했어. 가자.” 

“알겠소.” 

포메라와 함께 마법진에 올라가서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의 한 가운데로 이동했다. 

“음...” 

주변은 정말 황금빛 모래의 산 빼고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너무도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몬스터조차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시체가 거의 없을 사막의 정 중앙으로 이동했다. 이곳이라면 아이자크와 싸우더라도 내가 유리할 것이다. 

“주인.” 

주변을 돌아보던 포메라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나를 불렀다. 

“그...” 

“뭔데?” 

“만일 내가 음... 내가 아이자크에게 져서 내 몸을 뺐긴 다면 바로 죽여주시오. 절대로 놓치지 말고, 꼭!” 

언데드인 포메라가 자신을 죽여 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 신기했다. 녀석의 눈을 보니, 강렬한 진심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포메라를 살리고, 아이자크를 몰아내야 한다.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말아. 말했지. 널 못 믿겠으면 날 믿으라고.” 

“알겠소. 주인을 믿겠소.” 

“그럼 시작하자.” 

주머니에서 성석 반지를 꺼내고, 목에 끼고 있던 성석 목걸이를 뺐다. 포메라도 자신의 공간에 있던 성석 팔찌를 빼서 내게 주었다. 

“준비 되면 말해.” 

“휴우, 준비 되었소.” 

“그럼 이것들을 껴. 많이 아플 거다.” 

포메라의 목에 성석 목걸이를, 손가락에 성석 반지를, 팔목에 성석 팔찌를 채웠다. 

화아악! 

“끄으으으!” 

세 가지 아이템의 선이 연결되며 성석에서 신성력이 줄기줄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주머니에서 아이자크의 구슬을 꺼내 포메라에게 넘겼다. 

“마력 흡수를 시작해! 빨리!” 

“아, 알겠소.” 

포메라는 신성력이 주는 고통 속에서 아이자크의 구슬을 잡고, 안의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구오오오. 

성석 아이템에선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신성한 기운이 내려왔고, 아이자크의 구슬에선 대지에서 흘러넘칠 것 같은 어둠이 일렁거렸다. 

“커어억!” 

포메라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아이자크의 구슬에서 끊임없이 마력을 빨아들였다. 

펄럭! 

빠직. 

포메라의 등 뒤에서 시꺼먼 날개가 생기는 순간 구슬 안의 어둠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구슬에 금을 내기 시작했다. 

포메라가 7서클에 오르며, 흑마법사 아이자크의 봉인이 깨진 것이다. 

파캉! 

아이자크의 구슬이 완전히 깨져나가며, 그 안에서 하늘과 땅을 검게 물들일 사이한 어둠이 솟아올랐다. 어둠은 포메라의 그림자라도 된 것처럼 그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사막을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이 어둠에 가려지며, 성석의 고통에 신음을 지르던 포메라는 숨을 멈춘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지금부터인가.” 

아이자크가 포메라의 정신세계를 침범했다. 두 흑마법사는 성석이 주는 지독한 고통을 참으며 정신력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기로 포메라를 덮고 있는 아이자크의 어둠을 태워버리고, 그의 등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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