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지크 사이온 (137/241)

지크 사이온

네 번째 아이템은 지금까지 보았던 로벤의 장비들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화려한 외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번쩍 거리냐.”

검날은 얼음을 깎은 것처럼 투명했고, 가드에는 푸른빛을 내뿜는 사파이어가 박혀 있었으며, 검의 끝부분인 폼멜에는 악마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외형만 보고 있자면, 실전용이라기보다, 장식용 검의 형태같았다.

-잠깐.

검에 손을 가져다대려고 할 때 아그네스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왜?”

-이 검 보통 검이 아니야.

“뭐?”

-안에 세상을 얼려버릴 냉기를 담고 있어.

“냉기?”

-그래. 지금은 자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아그네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손을 제자리로 돌리고, 창조주의 눈을 켰다.

[마검-글레시아]- 봉인

혹한의 악마 글레시아가 잠들어 있는 마검이다. 검을 잡는 순간 소유자의 정신에 침범하여 몸을 조종한다. 글레시아를 잡은 인간은 마검의 냉기에 먹혀 점차 몸과 마음이 얼어붙게 된다. 현재 모든 능력이 봉인된 상태다.

특수능력: 봉인중.

“봉인 중인 마검이라.”

마검 글레시아, 처음 듣는 이름의 검이다. 마검이란 것은 흔치 않은 무기로 마법검과는 궤를 달리하는 물건이다.

“여기서 마검이 나오다니...”

강력한 마검이 좋은 숙주를 만나게 된다면 마스터를 능가하는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다. 물론 그 숙주는 그 힘을 발휘하고 미라가 되어 죽겠지만.

“흠...”

글레시아를 손에 쥐자, 차가운 돌을 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일 봉인 되지 않았다면 돌 정도가 아니라, 손이 얼어붙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괜찮아?

“네 말대로야. 이 검 봉인되어 있어.”

능력이 봉인되어 지금은 예리한 검일뿐이지만, 훗날 글레시아의 봉인을 풀어 내가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마검의 정신 지배 능력이 내게 통할 리가 없으니까.

장갑과 반지는 끼고, 두 자루의 검과 떨어진 비수들을 마법 주머니에 넣고 나니, 방 전체에서 진동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석상 던전이 공략되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1분 뒤 던전의 입구로 보내집니다.]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던전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던전을 만든 마법사다.

석상의 던전이 클리어 되었고, 이제 우리가 밖으로 보내지는 순간 던전은 사라질 것이고, 시간이 지난 후 두 번째 석상의 던전 생성되고, 그곳에선 나머지 세 영웅들의 석상이 등장 할 것이다.

“그것도 내가 가져가야지.”

그곳에도 스토리에 필요한 아이템이 나오고, 석상을 파괴해서 추가 아이템까지 챙겨야 하니 놓칠 수 없다.

번쩍.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어떠한 힘에 의해 저절로 눈이 감겼다. 다시 눈을 뜨니 연무장은 사라지고, 처음에 도착했던 들판이 보이고 있었다.

앞으로 보니, 던전은 사라져있었고, 그곳엔 보지 못했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있었다.

“유렌님!”

“성공하셨군요! 역시 해내실 줄 알았어요!”

아린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아린과 로디엔이 나를 발견하고 달려오고 잇었다.

“별일 없었지?”

“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뒤를 보니, 지크를 부축하고 있는 크라이드와 제국 기사들을 챙기는 브리카와 카론이 보였다.

“저들은 어때?”

“그는 갈라진 갑옷 조각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위험하진 않지만, 아직 출혈이 있습니다. 제국 기사 중 살아남은 사람은 4명이고, 4명 다 중상이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아린은 보고를 위해 미리 준비 했는지, 대답이 술술 나오고 있었다.

“그래. 수고했어.”

“그런데 유렌님.”

“응?”

“괜찮으십니까?”

“나야 괜찮...”

괜찮다고 말할 때 조금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이유는 하나다. 내 한계를 넘었기 때문이다.

연위결로 조종을 할 수 있는 무기의 개수는 10개, 그것도 가벼운 비수만 가능 한데, 마지막에 하나를 추가로 움직여서 무리를 해버렸다. 그에 따른 여파로 두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

“얼굴이 창백하세요.”

“그냥 조금 무리해서 그렇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다행이지만...”

아린과 로디엔을 안심시키고 있을 때 사라진 던전 앞에 있던 기사와 마법사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둘로 나뉘어 있었는데, 한쪽은 제국이었고, 한쪽은 우리 크라시스 왕국의 사람들이었다.

“유렌 자작님.”

“포슈아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우리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가이린의 복귀 지원을 나왔던 궁중마법사 포슈아였다.

“던전에서 유렌 자작님이 나오면 바로 왕궁으로 모셔오라는 폐하의 어명이 계셨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상황이 조금 난해하군요. 제국은 왜 저리 숫자가 적고, 지크 사이온이 부상을 당해있다니.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혹시 전투를...”

“그건 아닙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던전 안에는 두 개의 방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궁수의 길로 갔고, 제국은 기사의 길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포슈아에게 던전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그는 듣는 도중 계속해서 감탄을 내뱉었고, 지크를 구했다는 말을 할 때 크게 탄성을 질렀다.

“그, 그럼 유렌님이 지크와 제국기사들을 구하고, 던전을 공략하신 겁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크하하하!”

포슈아가 참지 못하겠다는 듯 주변에 들릴 정도로 시원하게 웃었다.

“유렌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 옆에 있는 제국 놈들이 저희를 비꼬며 놀려댔는데, 이런 상황이 되다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

포슈아의 말을 듣고, 지크를 둘러싸고 있는 제국의 사람들을 보았다. 지크가 당하고 내가 멀쩡한 것이 믿기지 않는 듯 그들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시죠. 폐하께서 유렌님의 소식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습니다.”

“마법진은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쪽...”

포슈아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제국 사람들을 헤치고, 지크가 홀로 걸어왔다.

“잠시 기다려 주시오.”

“무슨 일이오?”

지크는 심각한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내 앞에 당당히 섰다.

“다시 한 번 저와 제 부하들의 생명을 구해준 은혜에 감사드리오.”

“별 거 아니오. 그런 상황에선 누구라도 했을 일이니.”

“음...”

내 말을 들은 지크와 제국 기사들의 표정이 뭐라 말할 수 없게 변했다. 그들은 실력만이 아니라, 인성에서도 내게 놀란 것 같았다.

“당신은 정말 소문과 다를 게 없는 사람이군. 아니 오히려 소문이 못한 것 같소. 초면의 실례를 사과드리오.”

“...”

지크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뒤 내게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붕대로 감은 그의 가슴에서 피가 흘렀지만 자세를 풀지 않았다.

“지크님!”

“단장님!”

“단장님! 뭐하시는 겁니까! 타국의 기사에게 무릎을 꿇다니요!”

“내 이름은 지크 사이온. 사이온 후작가의 장남이자, 불사조 기사단의 단장이며, 사이온의 이름을 이어 마스터에 오를 기사요.”

지크는 주변의 만류를 거칠게 뿌리치고 나를 올려다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이에는 이, 생명에는 생명이오. 당신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언제라도 부르시오. 내 목숨이 다한다고 해도 단 한 번 당신의 편에 서겠소. 사이온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소.”

보는 내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지크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제국의 기사들은 지크의 모습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고, 왕국 사람들은 자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지크는 그 검술만큼이나 강직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타국의 귀족에게 맹세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신의 맹세 받아들이겠소.”

내 말을 들은 지크는 일어나서 내 눈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의 도움은 당연히 받을 것이고, 나중에 사이온 후작가에 있는 카볼의 검술서도 받아낼 생각이다.

“그럼.”

지크는 몸을 돌려 제국의 마법사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타국인 우리가 보고 있기 때문인지 부축을 받지 않고 걸어갔다.

“저 사람은 진정한 기사군요.”

아린이 흔들리지 않는 지크의 등을 보며 감탄한 듯 입을 열었고, 크라이드와 브리카는 나와 지크의 대화에 감동을 했는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워프 준비는 되었다고 하셨죠?”

“아, 네!”

포슈아가 얼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지크가 무릎을 꿇었을 때부터 놀라서 계속 멍한 표정이었다. 지크가 무릎을 꿇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이쪽으로 오시죠.”

“가자.”

“네!”

모두는 던전에서 보다 더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국에게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처음보다 사기가 훨씬 오른 것 같았다.

포슈아가 만들어둔 마법진에 올라가 왕궁으로 이동했다.

“유렌 자작님. 수고하셨습니다.”

왕궁에 도착하자, 포슈아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원래부터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크가 무릎을 꿇은 것을 본 이후에 나를 상급자 대하듯 했다.

“감사합니다.”

“오셨군요. 유렌 자작님.”

포슈아에게 마주 인사하고 있을 때 워프 룸의 문이 열리고, 카이리오 자작이 들어왔다.

“걱정했는데,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예. 폐하께서 유렌 자작님이 오신다면 바로 데리고 오라 하셨습니다. 지금 가실 수 있겠습니까?”

“갈수는 있는데 지금 제 복장이...”

내 옷과 방어구는 다 찢어져 있었고, 내 피는 아니지만 피도 이곳저곳에 묻어 있어 국왕을 보기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폐하께서도 전장에 서신 분입니다. 그런 것은 신경 쓰시지 않으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 부하들을 휴식 할 수 있게 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카이리오 자작은 내 부하들이 쉴 수 있게 조치를 취해준 뒤 나를 알현실로 안내해주었다.

“유렌!”

알현실의 문이 열리자마자, 국왕은 기다렸다는 듯 왕좌에서 달려내려왔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일어나게! 좋은 일이 있었다지? 내 자네에게 듣고 싶어 일부러 이야기를 듣지 않았네.”

국왕은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궁금했는지, 흥분에 들떠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런 모습의 국왕은 처음보기 때문에 꽤나 새로웠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들어간 던전은 길이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저희는...”

국왕에게 안에서 있던 일들을 모두 설명해주었다. 포슈아에게 했던 것보다 조금 더 상세하게 말했는데, 국왕은 옛 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내 말에 푹 빠져들었다.

“마지막으로 석상의 기사의 시험을 통과하자, 던전이 사라졌습니다.”

“아...”

국왕이 감탄에 젖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손을 떠는 것을 보니, 감동까지 느낀 것 같다.

“유렌 자작님. 그것도 있지 않습니까.”

“그거라니? 무슨 말인가.”

카이리오 자작의 말에 국왕이 먼저 반응을 했다. 국왕은 빨리 말하라는 듯 카이리오 자작에게 손짓을 했다.

“제국의 지크 사이온이 유렌 자작에게 무릎을 꿇고 구원의 맹세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건 또 언제 들으셨습니까?”

“하하, 포슈아님이 바로 말해주더군요.”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크하하하!”

국왕은 진심으로 통쾌한지 허리까지 접어가며 큼지막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거 아는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지...”

“크라시스는 항상 제국에게 양보만 해왔네. 달라면 주고, 물러나라면 물러났지. 평생을 말이야.”

국왕이 자신의 양 주먹을 꽉 쥐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네가 처음으로 제국의 행사를 막았네. 그것도 최선의 방법으로! 제국이 우리에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게 말이야!”

국왕은 흥분했는지, 연설을 하듯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과찬?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자네는 영웅일세. 제국에게 빛을 지우고,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네! 꿈을 꾸는 것 같군. 자네를 그곳에 보내길 정말 잘했어!”

국왕은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보고 있었고, 그 옆의 카이리오 자작 역시 입가에 번진 미소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그들이 진정될 때까지 잠시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보여줄 것?”

“네.”

그 말을 하고, 마법 주머니에서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을 꺼냈다. 물론 추가로 얻은 아이템들은 빼고, 두 개씩만 보여주었다.

이번 일은 나라의 대표로 간 것이니, 당연히 아이템은 국왕에게 보여줘야 한다. 물론 넘겨줄 생각은 없지만.

“이 물건들이 던전에서 얻은 것들입니다.”

“음...”

국왕은 물건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씩 웃었다. 예상대로 그는 아이템에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전부 자네가 챙기게나.”

“예?”

“자네가 힘들게 얻었는데, 내가 가져가서야 되겠는가. 전부 가져가게.”

국왕이 손을 내저으며 다시 넣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역시.

사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템을 보여준 덕분에 국왕의 신임이 더욱 굳어졌고, 호감도가 상승했다.

“하지만...”

“나에겐 필요 없는 것들이네. 자네가 가져가도록 하게. 이런 말도 우습지. 모두 자네 것들이야.”

“알겠습니다.”

못이기는 척하며 아이템을 다시 주머니에 담았다.

그것을 봤으니 됐겠지.

사실 국왕에게 이것들을 보여준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건 조만간 국가적 행사로 다시 나오게 될 것이다.

“자네 덕에 오늘을 마음 편히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네.”

“아닙니다.”

“후후, 피곤할 텐데, 이만 가보게. 나중에 정식으로 따로 부르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국왕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자, 카이리오 자작이 따라 나왔다.

“영지로 돌아가시겠습니까? 하루 묵고 가시겠습니까? 폐하께선 유렌 자작님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 부하들은 각자 숙소를 배정받았습니까?”

“네. 모두에게 편한 방을 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럼 하루만 묵고 내일 떠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후후, 크라시스의 이름을 드높인 영웅께 감사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군요.”

카이리오는 미소를 지으며 날 숙소로 안내해주었다. 예전에 왔던 가장 좋은 방이었다.

몸을 씻고,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폭신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으...”

바로 잘까 하다가 마법주머니를 꺼내서 안에 있던 아이템들을 늘어놓았다.

성석의 반지, 엘프의 거울, 마검에 카볼의 검술서까지.

“뭐부터 해야 할까.”

물건들을 놓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침대에 누워있던 빽빽이가 다가와 성석반지를 물고 흔들었다.

“그거부터 하라고?”

“빽!”

길잡이 특성이 발휘된 건지 그냥 마음에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녀석의 선택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럼 포메라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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