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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영웅 로벤 (136/241)
  • 영웅 로벤

    원작대로라면 콜로세움 같은 곳에서 기사 석상과 1:1 결투를 해야 하는데, 내가 도착한 곳은 작은 수련장이었다.

    “석상도 달라...”

    연무장 중앙에 있는 석상은 은색의 갑옷이 아니라, 훈련용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고, 청년이어야 할 얼굴이 중년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이제야 왔군.”

    중년의 석상은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보고, 빙긋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영웅 로벤의 석상]

    세계를 구한 5인의 영웅 중 한 명인 로벤이 자신의 힘을 불어넣은 석상이다. 로벤은 마스터에 오른 기사로 숙련된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 하며, 문로드 검술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다.

    특수능력: 웹 블레이드, 월광 오러.

    “자네인가?”

    로벤의 석상이 나를 마주보고 서서 입을 열었다.

    “뭘 말하는 겁니까?”

    “이 던전을 변화시킨 사람 말일세.”

    “변화? 설마 세필리아의 석상을 부순 것 때문입니까?”

    “그래. 역시 자네였군.”

    로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뒷짐을 쥔 것을 보니, 바로 싸울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변한 건 그녀석의 장난인 모양이야.”

    “그녀석이라면...”

    “자네는 모르겠지. 이 석상의 던전을 만든 녀석은 따로 있다네. 장난기 많은 마법사지.”

    “아...”

    로벤이 중년이 되어 나타난 이유를 알 것 같다.

    세상의 구한 5인의 영웅 중에 마법사도 존재 한다. 석상 던전의 제작자인 그 마법사가 던전에 비밀 조건을 추가시켜 놓은 모양이다.

    특수 던전의 발동조건은 아마 영웅 석상의 파괴일 테니, 내가 세필리아의 석상을 완전히 부숴버리면서 이런 변화가 생긴 것 같다.

    “그녀석이 20년이 지난 뒤에 내게 와서 마법을 걸었던 적이 있었네. 바로 이것 때문이었나 보군. 하여튼 그놈은 나이를 먹어도 철이 들지 않은 모양이야.”

    내가 상황을 파악한 것처럼 로벤도 이유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럼 시험 방식이 바뀐 겁니까?”

    “아니, 그렇진 않아. 자네는 그대로 나와 결투를 하면 된다네. 물론 젊은 시절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나와.”

    “음...”

    평범한 사람의 육체적 전성기는 20대다 하지만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는 다르다.

    그들의 전성기는 40대를 넘어 50대까지 이어지며, 마스터에 도달하게 되면 나이를 먹어도 체력이 떨어지지 않고, 오러의 총량이 늘어 오히려 더욱 강력한 능력을 발휘한다.

    “난이도가 높아졌군요.”

    “후후, 그래. 하지만 어쩔 수 없네. 이렇게 만든 그 장난꾸러기 마법사를 탓하게. 물론. 추가적인 보상이 있을 건 장담하네. 그런 쪽은 확실하거든.”

    “그건 마음에 드네요.”

    이곳에서 얻을 것은 한 자루의 검과 장갑이다. 그런데 다른 것이 추가 된다니, 난이도 상승이 나쁜 소리만은 아니었다.

    “자네 모습을 보니, 세필리아 이외에도 누군가와 싸우고 온 것 같군.”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자네 정도의 실력자가 밖의 기사들에게 검격을 맞았을 리가 없으니까.”

    로벤이 찢어지고 갈라진 내 복장을 가리키면 미소를 지었다.

    “잠시 시간을 줄 테니. 회복하게나.”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의 배려를 받아들여 선채로 만독자전신기를 휘돌리며 내력을 회복하고, 상단전을 안정시켰다.

    “정말 아깝군.”

    “뭐가 아깝다는 겁니까?”

    “자네 같은 강자하곤 살아서 부딪쳐보고 싶었네. 그 나이에 그렇게 강하다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야. 우리들의 대장도 자네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정도는 아닙니다.”

    “흠, 성격도 마음에 드는군.”

    내가 한 말은 진심이다. 예전이라면 ‘이정도면 됐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당천위를 보았고, 슬로스와 싸웠다.

    갈 길은 아직 멀었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내공을 휘돌리며, 아쉬운 눈으로 연무장을 보고 있는 로벤에게 말을 걸었다.

    “말하게. 다만, 내 지식은 이 모습에서 멈춰있네.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 거야.”

    “혹시 카볼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로벤은 검에 미친 기사이고, 과거의 인물이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다. 딱히 기대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흠, 카볼? 검성 카볼을 말하는 것인가?”

    “검성?”

    “카볼은 검실력도 뛰어났지만,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검술을 익히겠다고 선언했었네. 검에 미친 친구였지만, 그가 후방을 습격을 막아준 덕에 우리가 세상을 구할 수 있었지.”

    카볼이 로벤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의 검술서들은 낡았지만, 몇 백 년이 넘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저 그런데...”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말했던 마법사 녀석이 다시 찾아왔을 때 그런 말을 했었네.”

    “어떤 말입니까?”

    “카볼이 인간이 아니라더군.”

    검술서들을 저술한 카볼이 인간이 아니라니, 그럼 괴물이나, 악마라도 된단 말인가.

    “물론 악마나 마왕 같은 존재는 아니라고 했네. 비밀이라며 말해주지 않고 가더군. 내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네. 전쟁이 끝난 후 그를 본적도 없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벤의 말을 듣고 나니, 카볼이 지금도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미친 생각이 들었다. 카볼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늘어버렸다.

    카볼에 대해서도 제대로 조사해봐야 할 것 같다.

    “휴우...”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자세를 잡았다. 지금은 전투에 정신을 집중 할 때다.

    “준비됐습니다.”

    세필리아와의 전투, 흑검과의 전투로 내공소모가 상당해서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지금 정도로도 충분 할 것 같았다.

    “난 이 검을 사용하겠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한 검이네.”

    로벤이 허리춤에서 평범해 보이는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전 암기와 두 주먹을 사용하겠습니다.”

    로벤에게 대답을 하며 핵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다시 창조주의 눈을 켜보았다. 그의 핵은 인간처럼 왼쪽 가슴, 심장이 있는 부위에 있었다.

    “어?”

    확인을 마치고 전투준비를 하려고 할 때 상태창에 변화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천수암왕의 전투경험 전승] -6%

    천수암왕의 전투경험 전승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퍼센트가 올라가지 않았었는데 어느새 퍼센트가 0%에서 6%가 되어 있었다.

    저거 혼자 수련을 하면 올라가지 않고, 적과 싸워야만 올라가는 거였어?

    전투경험은 그 이름답게 수련이 아니라, 실전을 통해서만 올라가는 것 같다.

    그래서 연위결이 잘 움직였던 거야.

    세필리아와 전투 할 때, 흑검과 싸울 때 연위결로 움직이는 암기가 내 의지대로 잘 따라와서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전투 경험이 전승된 덕분인 모양이다.

    “싸워야 할 이유가 늘었군.”

    앞으로 강해지기 위해선 더욱 많은 전투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린이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이곳으로 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하고 로벤을 쳐다보자, 그가 너그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은 끝났나?”

    “네. 시간을 끌어서 죄송합니다.”

    “아니네. 그럼 시작하지.”

    로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롱소드를 들어올렸다.

    “가겠습니다.”

    “좋네!”

    빠지지직!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뇌인신법을 극성으로 발휘하며 그의 등 뒤로 이동했다. 양손의 비수를 날리려는 순간, 오러에 휩싸인 롱소드가 내 목 앞에 있었다.

    “큭!”

    예상보다 빠른 속도에 식은땀을 흘리며 허리를 눕혀 간신히 검을 피했다. 회피와 동시에 뒤로 물러나며 견제용 암기를 날렸다.

    캬컁!

    암기를 간단히 막은 로벤의 표정이 180도로 달라졌다. 날카로운 기세와 차가운 눈매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너그러운 아저씨는 이곳에 없다. 전력을 다하는 희대의 검사만 있을 뿐이다.

    “좋아.”

    파앙!

    손에 든 네 개의 비수에 전사력을 실어 시간차로 던졌다.

    타다다당!

    로벤은 초승달 같은 오러를 날려 비수가 도착하기 전에 모조리 날려버렸다.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그네스를 두 개의 묵봉으로 바꾼 뒤 빠르게 날렸다.

    부우우우웅!

    수천마리 벌떼가 우는 소리는 석상에게도 방해인지, 로벤이 인상을 찡그렸다. 난 그 순간을 노려 그에게 근접해서 뇌기가 담겨있는 양 주먹을 내질렀다.

    캬앙!

    로벤은 둥그런 오러로 묵봉을 반으로 잘라버리고, 이룡출수를 막으려 들었지만, 내가 조금 빨랐다.

    콰앙!

    지지직!

    오른 주먹이 로벤의 가슴을 파고들었지만, 오러 블레이드에 막혀버렸다. 뒤로 빠지며 다시 여섯 개의 비수를 날렸다.

    캬캬캬컁!?

    비수는 모조리 튕겨나갔고, 로벤이 다시 초승달 오러를 날렸다. 뇌충을 사용해서 공중에 떠서 그의 공격을 피한 뒤 뒤로 네 걸음 물러났다.

    내가 가지고 있는 비수와 단검, 단도로 로벤의 전신을 노려서 던졌다.

    로벤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암기들을 막으며 위협적인 반격까지 가해왔다. 월광 오러 하나하나가 내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무기가 참 많군.”

    “그러게 말입니다.”

    일부러 전뢰상권을 쓰기보다, 비수를 날리며 전투를 하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다.

    당천위의 전투경험이 전승되면서 멸락을 약간이나마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콰아앙!

    로벤의 오러에 맞은 대지의 거죽이 뒤집어졌다. 로벤은 흥이 돋는지 점점 강력한 오러와 예리한 검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캬앙!

    아그네스를 두 자루의 귀왕살로 바뀐 뒤 로벤에게 직사로 던졌지만, 역시나 그는 가볍게 막아내었다.

    “이정도면 충분해.”

    로벤의 날카로운 오러를 피하며 만독자전신기와 연위결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바닥에 깔린 10개의 비수가 끈을 잡아당긴 것처럼 동시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 이건!”

    그 신비로운 광경에 로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는 눈빛이다.

    “ 멸락(滅落)!”

    하늘을 별처럼 수놓은 비수들이 유성우가 되어 낙하를 시작했다.

    단검은 빠르게, 단도는 강하게, 비수는 날카롭게.

    10개의 비수는 살아있는 것처럼 자기 자신만의 움직임을 보이며 로벤의 심장을 노렸다.

    “크아아아!!”

    로벤의 오러 블레이드가 더욱더 짙어졌다. 자신의 모든 오러를 검에 쏟아 넣고 있는 것이다.

    그는 비수들에 담겨있는 신묘한 힘을 느낀 듯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지만 또한 즐거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웹 블레이드!”

    로벤의 오러가 허공에 거미줄처럼 새겨졌다. 그의 오러 어빌리티인 웹 블레이다. 휘몰아치는 멸락과 폭발적인 웹 블레이드가 맞붙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하나 더...”

    멸락을 조종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연위결과 내력을 마지막까지 쥐어짜내서 아그네스가 변한 귀왕살을 들어올렸다.

    아그네스와 내 혼이 이미 연결되었기 때문일까 다른 비수들 보다 훨씬 편하고, 안정적으로 녀석을 조종 할 수가 있었다.

    우웅.

    귀왕살은 내 의지대로 날아가 로벤의 심장을 뒤에서 노렸다. 로벤이 눈치를 챘지만 그에겐 여유가 없었다.

    퍼억!

    멸락을 막아내느라 집중하던 로벤의 핵을 아그네스가 빛살처럼 꿰뚫었다.

    “크음.”

    로벤은 구멍이 나버린 자신의 가슴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정말 대단한 기예였소. 세로운 세상의 강자와 싸우게 되어 영광이었소.”

    “당신의 무예도 대단했습니다.”

    로벤은 처음과 다르게 내게 말을 높이고 있었다. 무인대 무인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전투가 당신이라 정말 기뻤소. 당신이라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세상을 구할 수 있겠지. 다만...”

    로벤의 석상은 가루가 되면서 자신의 마지막 말을 남겼다.

    “생전에 당신과 만나 제대로 겨룰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사라진 로벤의 석상이 사라졌다. 있던 곳에 네 가지 아이템이 떨어졌다.

    “2개가 나와야 하는데, 4개가 나와 버렸네. 대박 정도가 아닌데?”

    첫 번째 아이템은 로벤이 쓰던 롱소드였다. 평범해 보이지만 절대 평범한 물건이 아니다.

    [로벤의 롱소드]

    드워프 족장 맥시론이 만들어 로벤에게 전해준 검이다. 드래곤의 이빨로 만들어 내구도가 무한에 가깝고, 예기가 상하지 않으며, 양날의 무게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 검을 가지고, 검술을 수련하면 숙련도가 빠르게 상승한다.

    특수능력: 파괴 불가, 검술 숙련도 상승.

    자그마치 드래곤의 이빨로 만든 검이다. 내가 쓰든, 혹은 누구에게 넘겨주든 상관없이 좋은 검이다.

    “장갑.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물건이군.”

    두 번째는 건틀릿 안에 끼는 속 장갑이었다. 이것 역시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한 능력이 숨겨져 있다.

    [로벤의 장갑]

    건틀렛 안에 끼는 속 장갑이다. 사대 속성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용자의 힘과 민첩성, 정신력을 상승시켜준다.

    특수 능력: 속성 저항력 상승, 능력치 강화.

    두 아이템은 평범한 형태와 다르게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부터 내가 모르는 건데...”

    세 번째 아이템은 뭉툭해 보이는 은반지였다. 보석이 박히지도 않았고, 세공도 없이 그저 손가락에 낄 수 있게만 되어 있었다.

    “이 아저씨 아이템은 왜 이렇게 단순하게 생겼지?”

    [로벤의 은반지]

    로벤의 아버지가 물려주신 반지다. 반지에는 오러의 소모를 감소시켜주는 특별한 주술이 걸려있다.

    특수 능력: 오러 소모량 감소.

    “오러 소모량 감소? 이거 대박인데!”

    내가 끼면 내공의 소모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오늘 같이 연속으로 전투가 있는 날에 정말 필요한 아이템이다.

    “바로 껴주고.”

    바로 반지를 낀 다음 마지막에 남은 아이템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본 로벤의 물건과 다르게 화려하다 못해 빛이 나고 있었다.

    “이 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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