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검 펜서린
“유, 유렌 록스? 다른 곳으로 간 게 아니었던가...”
지크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한심하군.”
흑검이 사용하는 암영의 오러는 단순히 파괴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맞은 사람의 능력과 체력, 정신력을 깎아 먹는다.
지크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을 보니, 방심하다 제대로 얻어맞은 모양이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지크의 목덜미를 잡아서 들어올렸다. 힘없이 중얼거리는 놈을 벽 뒤로 던져 버렸다.
“방해된다. 멍청아.”
“크으...”
목숨을 구원받은 고마움은 아는지 지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지크를 안전한 곳에 보내고 앞을 보니, 흑검은 날 경계하는지 움직이지 않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난 놈과 시선을 맞추며 살아 있는 제국의 기사들의 목덜미를 잡아 지크가 있는 곳으로 던졌다.
“유렌 록스. 왜 이곳에 있는 거지? 궁수의 길로 향하지 않았던가?”
“너 잡으러 왔다니까.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지?”
“얻어맞으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이름: 펜서린 케일스 ]
[특성: 암영의 오러, 오러 강화lv4, 괴력lv5, 상태저항lv4, 무게감. ]
[호감도: - 91(살해 충동) ]
[현재 기분: 무슨 의도로 이곳에 있는지 알기위해 생포를 할 생각을 하고 있음.]
날 생포할 생각을 하다니, 자신의 주제를 모르는 놈이다.
딱!
푸아아악!
“흡!”
펜서린과 내가 있는 공간에 자괴연을 풀었다. 놈이 급히 숨을 참았지만, 자괴연은 이미 놈의 몸속으로 들어간 후였다.
자괴연의 능력은 적의 능력을 저하시키고 시야를 방해한다. 슬로스 같이 완전 저항이 아닌 이상 뿌리는 즉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전투의 시작에 가장 좋은 독이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말해줄 거라 생각하나?”
“그럼 그냥 죽어라.”
콰아아아!
펜서린의 검에서 대기를 태우는 암영의 오러가 솟아올랐다. 놈의 칼날은 검은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아 올랐다.
부우웅.
타오르던 불꽃이 유형화된 형태를 잡으며 한층 더 강렬한 빛과 오러를 내뿜기 시작했다.
“오러 블레이드.”
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 그것도 평범한 오러보다 강력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는 암영의 오러가 내 목숨을 노리며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마, 마스터였다니, 조, 조심해라. 저 놈은 몸에서도 유형화 된 오러를 내뿜는다. 그것은...”
“흐음.”
뒤에서 간신히 입을 여는 지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게 도움을 주려고 한 것 같지만 그런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다.
“거기서 구경이나 해.”
펜서린이 오러 블레이드를 형성하는 동안 나도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다. 자괴연으로 시야가 가려진 동안에 놈의 주변에 독들을 뿌려놓았다.
“시간은 내 편이다.”
펜서린은 강력한 오러와 체력으로 독에 저항력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독에 중독될 것이다. 그 때까지 놈과 놀아주면 게임은 끝난다.
“죽어라!”
후와앙!
펜서린은 나와 5m 떨어진 거리에서 검을 휘둘러왔다. 일반적인 검사에게 5m는 원거리지만, 마스터들에게 5m란 거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거리다.
오러 블레이드가 생성된 검의 공격범위는 3m를 가볍게 넘는다. 거기다 유형화 된 오러를 날리면 10m의 거리를 벌려도 의미가 없다.
콰아아!
순식간에 도달한 오러 블레이드를 철판교로 피한 뒤 한걸음 물러서며 비수를 날렸다. 공기를 꿰뚫으며 날아간 비수가 펜서린의 오러 블레이드에 튕겨나가 벽에 박혀버렸다.
“허접하군. 네놈 따위에게 실버트가 죽다니.”
펜서린은 리자드맨과의 전쟁 당시에 내게 죽음을 당한 세피로스의 실버트의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정체를 알아서 밝혀주는군. 세피로스의 흑검이여.”
“무, 무슨...”
펜서린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금방이라도 휘두를 것 같았던 검을 멈췄다.
“네, 네가 어떻게 그걸 아는 거냐!”
“자꾸 이상한 걸 묻는데, 아까도 말했지. 내가 말해주겠냐고. 멍청한 거야?”
“크으...”
펜서린의 오러의 크기가 다시 한 번 커졌다. 지금에 와선 검이 아니라, 5m가 넘는 통나무를 휘두르는 느낌이다.
콰아앙!
찔러오는 오러를 뇌영으로 피했다. 펜서린의 오러 블레이드를 맞은 대지가 포탄이 내려친 것처럼 터져버렸다. 아무리 나라도 직격 당하면 즉사 당할 위력이었다.
“십이 비도.”
흑검의 뒤로 이동한 뒤 십이 비도를 날렸다. 열두 개의 비도는 전부 펜서린의 다른 부위를 향해 수비를 방해했다.
“소용없는 짓이다!”
펜서린은 검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몸에서 검은 오러를 둥글게 뿜어내서 십이 비도를 막아냈다.
“호신강기 같은 느낌이군.”
저것이 펜서린의 오러 어빌리티인 오러 실드다.
마스터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을 오러 어빌리티라고 하는데 펜서린은 호신강기 같은 능력을 자신의 어빌리티로 만든 것이다.
“아그네스.”
-말해.
“지금 화속성 쓸 수 있지?”
-당연하지.
“그럼 가자.”
아그네스를 분열시킨 다음 양손으로 나눠 두 마리의 나비를 만들었다. 닿는 것만으로 적의 살을 뜯어버리는 피의 나비 혈화접이 그 붉은 날개를 드러냈다.
“그런 장난감을! 미쳐버린 것인가!”
“결과를 보고 말하시지.”
나비를 풀어주듯이 두 마리의 혈화접을 가볍게 날려 보냈다. 펜서린이 경계를 하듯 뒤로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지만, 혈화접은 오러의 강렬한 파도를 헤치며 놈을 향해 날아갔다.
“어디서 이따위 장난을!”
펜서린이 오러를 넓게 펼쳐서 위에 있던 혈화접 하나를 부숴버렸지만, 아래에 있던 혈화접은 땅에 기듯이 움직이며 놈의 공격을 피해냈다.
펜서린이 급하게 오러 실드를 쓰려했지만, 혈화접의 속도와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지며 놈의 종아리에 먼저 닿았다.
푸와아악!
지지직!
혈화접이 닿은 놈의 종아리에서 피가 터져 나오며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악!”
펜서린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오러 실드를 사용해서 혈화접을 밀어냈지만, 이미 심각한 상처를 입어,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네가 우습게 볼 무기가 아니다.”
아그네스를 불러들인 후 다시 혈화접을 만들어 손가락 위에 올려놓은 뒤 펜서린을 놀리듯 입을 열었다.
“크으윽...”
펜서린의 눈에서 붉은 기운이 돌았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인다면 놈에게 수십 번은 죽었을 정도로 깊은 살심이 담겨 있었다.
“혈화접과 연위결의 조화가 나쁘지 않군.”
이번에 사용한 혈화접은 이전까지의 혈화접과 달랐다.
상단전의 연위결과 하단전의 만독자전신기를 동시에 운용해서 혈화접 날린 후 내 의지대로 조종을 한 것이다.
일부러 혈화접 하나를 미끼로 던져준 후 밑으로 날아가는 혈화접의 속도를 높이고, 변화를 주어서 펜서린이 오러 쉴드를 쓰기 전에 놈의 몸에 붙여버렸다.
거기다 세필리아의 팔찌로 속성 공격력이 오른 화속성까지 추가로 들어갔기 때문에 혈화접이 닿은 순간 놈은 살이 찢어지는 고통과 화상의 고통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치이익!
펜서린은 혈화접으로 난 상처를 오러로 지져버렸다. 놈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살기를 가득 담은 채 내게 달려들었다.
부우우웅!
펜서린은 내게 정보를 얻기 위해 생포를 하려던 생각을 버렸다. 지금부터 그저 날 고통스럽게 죽일 생각뿐이었다. 모든 공격에 지독하고 진득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쿠우우웅.
펜서린은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압박과 날카로운 오러를 날려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력으로 피하는 것밖에 없었다.
거기다 암영의 오러의 특성인 능력치 저하의 영향력을 받아 몸이 조금 무거워진 느낌을 받아, 다른 행동을 취하기 어려웠다.
“죽어!”
쿠와아앙!
펜서린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를 때마다 벽이 무너지고, 땅이 파여 나간다. 지독하리만큼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체력도 지랄 맞네.”
“크아아아!”
독에 중독되어 비실거릴 때가 되었는데도, 펜서린의 속도와 검의 위력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콰아아앙!
뇌인신법을 극성으로 운용하며 피하고 있긴 했지만 살짝 삐끗하면 바로 목숨이 날아갈 정도로 위험한 상태였다.
빨리 쓰러뜨릴 방법은...
놈의 공격을 회피하며 주변을 살펴보다가 처음에 벽에 날아가 박힌 비수를 발견했다.
저거다.
연위결을 극성으로 운용해서 그 비수를 벽에서 빼낸 후 공중에 띄웠다. 펜서린이 비수가 있는 방향을 보지 못하도록 놈의 바로 앞에서 움직이며 비수와 내 상단전의 실을 연결했다.
“쥐새끼 같은 놈!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거 같나!”
“그거 알아?”
펜서린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피하면서 놈을 놀리듯이 입을 열었다.
“쥐도 몰리면 무는 법이다.”
“뭐?”
퍽!
“크아악!”
상단전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연위결을 운용해서 비수를 내 의지로 조종했다. 비수는 내가 직접 던지는 속도로 날아가 펜서린의 명문혈을 뒤에서부터 뚫어버렸다.
이미 던진 암기를 조종하는 신기가 연위결의 힘으로 발동한 것이다.
“끄으으윽!”
명문혈은 기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오러가 지나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명문혈이 아예 관통되어버린 펜서린이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했다.
“으아아악!”
놈의 오러가 통제를 잃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놔두면 이 방이 완전히 부서질 것 같아, 귀왕살을 뽑아서 오러를 내뿜는 놈의 오른팔을 베어버렸다.
푸칵!
터져나가는 핏줄기로 시야가 가려질 때 펜서린의 뒤로 움직여서 놈의 마혈을 제압하고, 입에 자백제를 넣었다.
“커컥!”
“이제 대화를 시작해볼까?”
“크으윽. 이, 이놈...”
펜서린의 얼굴이 노랗게 변하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연위결의 힘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흑검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빽!”
“유렌님!
펜서린에게 정보를 물어보려고 할 때 빽빽이와 일행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달려오다 말고, 폐허처럼 변한 방을 보며 얼어버렸다.
“이게 대체...”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여긴...”
“별일 없었어. 일단 저쪽에 있는 부상자들 좀 챙겨줘.”
“알겠습니다.”
살아 있는 기사들을 옆으로 빼놓긴 했지만, 부상이 심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였다. 지크와 부상자들을 맡긴 뒤 펜서린을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커어어...”
펜서린은 팔이 통째로 잘렸고, 독에 중독됐으며, 오러가 폭주해서 몸이 만신창이였기 때문에 오래 살기 힘들어 보였다. 빨리 중요한 정보들을 물어봐야 했다.
특히나 가장 궁금했던 정보를.
“세피로스에 라시드가 있나?”
“라, 라시드? 그런 놈은 모른다.”
“뭐?”
당연히 라시드를 알거라 생각했지만, 펜서린의 입에서는 모른다는 말이 나왔다. 예전 기억을 되살려보니, 삼공이 데려왔다는 것이 생각났다.
삼공이 데려오고, 암호명으로만 소개 했다면 이름은 모를 수도 있어.
“그럼 세피로스에 새로 들어온 놈들 중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검 실력이 미친 듯이 빨리 발전하는 놈이 있나?”
“그런 놈은 이, 있다. 삼공이 데려온 검귀. 그놈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실력이 늘고 있다. 그런 것은 처음 보았...다.”
“하아...”
잠시 눈을 감고, 속 깊한 곳에서 나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떤 상태지?”
“상태?”
“그래. 세뇌라던가, 약점이 잡혔다던가.”
“그, 그런 건 모른다. 놈은 삼공만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는 노, 놈이라, 대화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정확한 상태는 모르겠지만 내 소설의 주인공인 라시드가 세피로스에 들어간 것이 거의 확실해진 것 같다.
“이곳은 에블린의 지시로 온 것인가?”
“그, 그렇다. 네놈 대체 누구인가.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 거냐.”
“애닌, 베일, 실버트. 모두 알고 있지?”
“서, 설마...”
펜서린의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변했다.
“네, 네놈이었구나! 우리를 계속 방해해왔던 놈이! 망할 ! 네놈을 죽... 커헉!”
펜서린이 입에서 피를 토하며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그의 전신에 핏기가 점점 사라지더니, 몸을 부르르 떨다가 눈을 감았다.
전신에 중독된 여러 가지 독, 처음에 입은 상처들과 정신적 충격으로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치이익!
놈의 시체에 화골산을 뿌려서 시체와 혼을 날려 내 정보가 빠져나가지 않게 만들었다.
“하아...”
계획대로 흑검을 잡고, 지크를 구해서 제국과의 전쟁을 막았지만 마음은 오히려 무거워졌다.
제발 아니길 빌었다.
라시드가 세피로스에 속해 있느니, 차라리 이 세계에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 할 정도였는데, 그 일이 거의 확실한 현실이 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겨서 소설의 주인공이 적인 세피로스에 들어가 있는 거야! 정말 세뇌라도 당한 건가?”
“유렌님.”
크라이드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니, 지크를 부축해서 내 뒤에 와있었다.
“이분이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십니다.”
“크으..”
지크는 크라이드의 부축을 풀고, 홀로 선 다음 내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와 내 부하들의 생명을 구해주어 정말 고맙소.”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떨고 있는 것을 보니, 통증이 심할 텐데 그는 무릎을 꿇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 은혜는 어떻게 해서든 갚겠소. 나 지크 사이온의 이름을 걸고!”
“상처 벌어지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일어나. 크라이드. 갑옷 벗겨서 치료나 해줘.”
“알겠습니다. 가시죠.”
“크윽.”
크라이드가 지크의 옆구리를 잡고, 그를 일으켜 세운 뒤 벽으로 데리고 갔다.
모두에게 부상자를 치료하고 대기하라고 지시한 뒤 가운데에 있던 마법진으로 향했다.
“신기할 정도로 멀쩡하군.”
바닥이 온통 부서져 있었지만, 마법진은 공간 그 자체에 새겨진 듯 전혀 영향을 받지 그대로 있었다.
“혼자 다녀올게.”
“어?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브리카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저 안에 들어가서 석상을 부수면 이곳에도 출구로 향하는 마법진이 생기겠지.”
“정말이십니까?”
“아니면 그냥 걸어 나와.”
“엑! 그, 그건...”
기사의 석상을 부수는 순간, 모든 인간들은 자동으로 신전 밖으로 이동 되니, 나 혼자 들어가서 기사의 석상을 처리하는 것이 편하다.
거기다 라시드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석상을 때려 부수며 풀고 싶기도 했고.
마법진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잠시 기다리자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으며, 다른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여긴?”
한적하고 작은 연무장으로 보였는데, 연무장 가운데에 당당하게 서있는 기사의 석상이 보였다.
다만 장소도, 기사의 석상도 예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뭔데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