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연위결 (2) (130/241)

연위결 (2)

바로 수련장을 나와서 에킬산으로 향했다. 영주성에는 아직 이레아가 있기 때문에 그녀의 감각을 피하기 위해 산을 오른 것이다.

“포메라.”

산 정상에서 포메라의 혼의 구슬을 꺼내서 녀석을 호출하자 평소처럼 어린아이만한 크키의 포메라가 나타났다.

“오랜만이오. 주인.”

“그래. 한 달 만인데, 회복 좀 했나보네.”

“그렇소. 며칠 전에 완벽하게 회복했소.”

포메라는 자신의 손가락뼈들을 꼼지락거리며 대답했다. 완벽하게 예전의 힘을 찾은 모양이다.

“다행이야.”

진심이다. 녀석의 필요성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웃기게도 이 해골 녀석에게 정이 들어버렸다. 포메라의 저 요상한 말투를 듣지 못한다면 섭섭하고 아쉬울 것 같다.

“주인도 건강한 것 같아 다행이오.”

포메라 역시 내 걱정을 했던 듯 진심을 담아 다행이란 말을 전했다.

“그래서 낫자마자 또 어딜 가려고 하는 거요?”

“가는 건 아니고,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물어보고 싶은 거? 주인이? 나에게?”

“그래.”

“말하시오. 내가 아는 거라면 뭐든지 대답해주겠소.”

포메라는 뭐든지 말하라는 듯 손바닥을 펼쳤다.

“명상, 명상에 대해 알고 싶어.”

“음?”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포메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명상이라고 하셨소?”

“그래. 새로운 능력을 얻어서 수련을 해야 하는데, 이게 보통의 수련과 달리 명상이나 정신 수련 같은 느낌이라 조금 어려워.”

“다행이오. 명상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주인이 명상을 배운다고 해서 머리를 다친 줄 알았소.”

“음...”

포메라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나 스스로도 명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웃기는 점은 그 말을 하는 놈이 언데드라는 거지만.

“어쨌든 집중이 되지 않아. 명상을 하며 구결을 외워야 하는데, 깊게 빠져들지 못하고 있어. 계속 겉핥기만 하는 느낌이다.”

“구결이 무엇이오?”

“쉽게 말하자면 주문 같은 거지.”

“아아...”

포메라는 이해했다는 듯 턱관절을 달그락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예전에 말하지 않았소. 나도 처음에 마나명상을 할 때 잘 되지 않았다고.”

“그래. 그랬었지.”

“마나 명상에도 입으로 외우는 주문이 있소.”

“알아. 그래서 부른 거야.”

“하긴 주인이 소개해줬으니, 모를 리가 없겠지. 어쨌든 나도 처음엔 집중하지 못했소.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그때 주인이 했던 말이 생각났소. ‘그렇게 당하고만 살 거냐고 했었던.’거 말이오.”

포메라가 그때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감정들이 도움이 되었다는 거야? 그럴 리 없을 텐데.”

현재 내 머릿속엔 여러 가지 감정이 겹쳐있는 상태였다. 칠죄종과 세피로스에 대한 불안감, 성장하지 않는 능력에 대한 조급함, 내 사람들에 대한 걱정까지.

복합적인 감정에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연위결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게 사실이었다.

“맞소. 그런 감정이 도움이 될 리 없지. 그래서 난 다 놓아버렸소. 나를 언데드로 만든 놈들에 대한 분노, 멍청한 나에 대한 혐오, 주인에 대한 의문 같은 것들 말이오.”

“나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알지만, 잘 되지 않아.”

“맞소. 잘 되지 않지. 그래서 그냥 흘러가게 놔두면 되오.”

“흘러가게 놔둔다?”

“그렇소. 명상을 하다가 이상한 생각과 감정이 들면 그것을 지우려 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게 놔두시오. 억지로 지우려 들면 그것은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계속해서 주인을 괴롭힐 것이오.”

포메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 머릿속에 들어오는 생각들을 지우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연위결의 수련을 더욱 방해해왔다.

“명상을 하며 자신의 몸에 흐르는 강을 하나 만드시오. 그 강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흘려보낸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오.”

“알겠어.”

“지금 한 번 해보시겠소? 내가 지켜봐주겠소.”

“그래.”

평평한 바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바로 눈을 감고, 연위결의 구결을 외우기 시작했다.

내공의 흐름을 강이라고 상상한 뒤, 들어오는 생각들을 그냥 흘러가게 놔두었다.

처음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집중을 방해했지만, 이전처럼 생각과 감정을 지우려 하지 않았다. 생각이 들면 그대로 놔두었다.

그러자 생각과 감정이 점점 줄어들고, 연위결의 구결들이 머릿속에서 풀려나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새하얀 눈처럼 깨끗해지고, 아주 조금 열려 있던 상단전의 좁고 낮은 문이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상단전의 개방은 이전까지 경험했던 그 어떤 현상과도 달랐다. 내 혼이 육체를 벗어나서 새로운 차원에 연결된 것 같았다.

드디어 연위결을 익혔다는 충만한 감정을 가지고 눈을 뜨자, 푸르던 하늘이 어느새 깜깜하게 변해있었다.

“주인. 성공을 축하하오.”

“고맙다. 네 덕이야.”

“수행이란 수행자가 잘 했기 때문이오. 주인이 잘 했다는 거요.”

“난 수행자는 아니다만, 어쨌든 고맙다.”

포메라의 조언이 없었다면 진정한 연위결을 풀어 상단전을 개방하는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포메라를 명상에 빠져들게 만든 덕분에 녀석의 도움을 받아, 연위결을 풀어낸 것이 신기했다. 이래서 인연은 오묘하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

“내가 사람 하나, 아니, 언데드 하나는 잘 본 모양이야.”

“잘 알고 있구려.”

**

“이번에 가면 정말 대박칠 수 있을 거 같아. 배에서 일하는 동안 섰다의 패만 연구했다고.”

젊은 청년 두 명이 들판의 중앙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중 온 몸이 검게 탄 청년이 술잔을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크크. 웃기고 있네. 연구하면 뭐해 다 털릴 텐데. 그날 도박장은 네가 홍해에서 개고생해서 번 돈으로 회식하겠다. 마스.”

“티바. 나중에 한 푼만 달라고 해도 절대 안 준다.”

“웃기고 있네.”

마스의 말에 티바는 그를 비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티바가 궁금한 듯 마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박장은 어디로 가게?”

“당연히 가이린으로 가야지. 뭘 물어보냐?”

“가이린? 역시 모르는 군.”

“뭘?”

티바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내저으며 마스에게 한심한 눈으로 보았다.

“왜 그러는데?”

“가이린의 도박장은 전부 망했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그게 뭔 개소리야!”

“하아, 그곳의 영주가 도박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도박장을 전부 쓸어버렸어.”

“그게 말이 되냐? 가이린에 도박장이 20개가 넘는데 그걸 전부 없애는 건 불가능해.”

“그건 네가 유렌 록스를 몰라서 그러는 거고.”

“내가 이 년 동안 배타다 왔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그딴 말에 속을 거 같냐?”

“진짜라니까!”

“멍청한 소리 들으니, 오줌이 다 마렵다. 자식아!”

마스는 티바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며 옆으로 움직였다. 소변을 보기위해서 모닥불에서 떨어지던 그의 눈에 자그마한 빛이 보였다.

“반딧불인가?”

화아아!

반딧불이라고 생각했던 작은 빛이 점점 커지더니, 태양 같은 광채가 되어 들판 전체를 뒤덮었다.

“으으윽!”

번쩍!

“뭐, 뭐야!”

눈을 뜨지 못 할 정도로 밝은 빛이 사라지고, 아무 것도 없던 곳에 거대한 건물이 생겨났다.

건물은 삼각의 지붕을 가지고 있었고, 정면에는 좌우로 다섯 개씩 열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었으며, 오우거가 들어가도 될 정도로 큼지막한 입구가 있었다.

벽에서 불타는 횃불을 보자, 누군가를 모시는 고대의 신전 같은 모습이었다.

“이, 이게 대체...”

“마스! 무슨 일이야!”

“이 건물이 갑자기 나타났어.”

“세상에...”

마스와 티바는 건물의 정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들어가? 아니면 정보만 팔아?”

“일단 입구를 살펴보자. 들어가는 건 위험할 것 같아.”

“간만 보자는 거지? 좋아.”

둘은 행동방향을 정한 뒤 비단처럼 부드러운 계단을 올라 건물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 석상만 가져다 팔아도 돈이 되겠는데?”

아래서 에서는 보지 못했지만, 계단을 올라오니, 기둥 뒤에 인간의 모양을 정교하게 본뜬 석상이 있었다. 석상들은 각각 여러 가지 무기를 들고, 무기에 따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으으...”

티바는 석상을 보자마자, 전신을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마, 마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그냥 가자. 이정도면 정보만 팔아도 꽤 벌 거야.”

“뭐? 여기까지 와서 뭔 소리야. 잘하면 보물을...”

퍽!

“어...?”

마스의 얼굴로 새빨간 물이 튀겼다. 그 물은 뒤에서 화살을 맞고 머리가 터져버린 티바의 피였다. 마스는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활을 들고 있던 석상의 자세가 변해있었고, 가장 앞에 있던 석상의 도끼가 번개처럼 마스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아아...”

**

달그락.

바위 위에 놓아둔 강철비수가 움찔거렸다. 비수는 비틀거리며 천천히 자신의 몸을 이동시켜서 테이블 중앙에 위치했다.

“제대로 보이는군.”

연위결을 운용하고 있는 동안 나와 비수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기의 선이 보이고 있었다. 그 선을 내 의지로 조종해서 비수를 움직이는 것이 바로 연위결의 능력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뒤 연위결과 만독자전신기를 전력으로 운용하며 비수의 끈을 위로 잡아당긴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내 의지에 따라 비수가 천천히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빽?”

그 기현상에 빽빽이가 깜짝 놀라 비수와 내 사이를 가로질렀다. 녀석이 일부러 바람을 날렸지만, 비수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그대로 떠있었다.

부우웅.

비수는 내 의지대로 하늘을 천천히 날아다닌 후에 처음에 있던 바위에 내려앉았다.

“하아...”

온 몸이 땀에 젖고, 전력으로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피곤했다. 연위결로 무기와 공명하는 것의 정신력 소모는 상당했다.

“주인.”

연위결을 운용해서 비수를 조종하는 것을 본 포메라가 고개를 까딱이며 쉬고 있는 나를 불렀다.

“왜?”

“그 비수를 움직이는 게 그렇게 힘든 거요?”

포메라는 그 말을 하며 염동력으로 비수를 들어 올려서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공중을 날아다니게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허무할 정도의 모습이지만, 난 그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럼 한 번 해볼래?”

“무엇을 하자는 거요?”

“두 암기를 부딪쳐보자는 거지.”

“내가 조종하는 암기가 훨씬 빠른데, 해 볼 필요가 있겠소?”

포메라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의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결과를 본다면 기겁하듯 놀랄 것이다.

“그러니까 해보자고.”

“뭐 좋소.”

포메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염동력을 사용해서 비수를 들어올렸다. 난 다른 단검을 하나 꺼낸 뒤 연위결을 사용해서 공중으로 띄웠다.

“덤벼.”

“후회하지 마시오.”

포메라는 염동력을 극성으로 발휘해서 내가 띄운 단검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

슈아앙!

샤악.

포메라가 세차게 날린 비수는 내 단검과 맞부딪치자마자, 종이가 갈라지듯, 절반으로 쪼개져버렸다.

“허억!”

그 모습을 본 포메라가 경악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녀석은 자신의 턱관절이 빠질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봤지?”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요? 단검에 아무런 힘도 실려 있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이건 말이 되지 않소!”

포메라는 위치 변화 없이 아직도 떠있는 단검을 보며 물었다. 연위결의 끈을 당겨서 단검을 내 손으로 불러들였다.

“별거 아니야. 그냥 검과 내 의지가 네 비수를 갈라버린 거지.”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설명하기 복잡하니 넘어가.”

“으음...”

포메라는 마법사답게 큰 호기심을 느꼈는지, 계속해서 내가 잡고 있는 단검을 쳐다보았다. 이 현상을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모양이다.

“너 내 컬렉션 복구는 했냐?”

“했소. 너무 부서져서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주인이 말했던 글러트니의 위가 두 마리가 추가되었소.”

“언제 구했어?”

“주인이 에킬산에서 잡은 그 놈들을 미리 빼돌렸소.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소.”

“잘했어. 이래서 널 좋아한다니까.”

포메라의 전투력은 생각이상이다. 만일 슬로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포메라 혼자서 몬스터들의 침공을 막아냈을 지도 모를 정도로.

거기에 글러트니의 위 2마리가 추가됐으니, 더욱 강력한 어둠의 군대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주인. 누가 오고 있소.”

“알아.”

“주인의 목표도 이룬 것 같으니, 난 이만 가보겠소.”

“그래. 나중에 부르마.”

“알겠소.”

포메라가 인사를 한 뒤 사라졌다. 잠시 기다리니 페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여, 영주님.”

“페루 웬일로 여기까지 왔어? 알아서 내려갈 텐데.”

“영주님이 전에 말씀하신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급하다고 생각되어서...”

“석상이 있는 건물?”

“네. 맞습니다.”

“드디어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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