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기회
시끄러운 선술집, 중년 남성 두 명이 서로의 맥주잔을 둔탁하게 부딪쳤다.
타악.
두 남자는 가득 담겨 있는 맥주를 단숨에 마셔버리고, 잔을 테이블 위에 거세게 내려놓았다.
“크으, 좋다! 여기 맥주 두 잔 추가!”
“알겠습니다!”
매부리코를 하고 있는 남성이 손가락을 2개 들어 올리자, 종업원이 잔이 넘칠 정도로 꽉꽉 찬 맥주 2잔을 가져다주었다.
“자네. 그 소식 들었나?”
매부리코 남성이 맥주잔을 잡으며 내시 수염이 난 남자에게 물었다.
“가이린에서 일어난 일말인가?”
“오, 알고 있었나?”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지금 소식이라고 할 만 한 건 그것 밖에 없지 않나.”
“하긴 그렇긴 하지. 나라 전체에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매부리코 남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잘 모른다고 했으니, 가이린을 습격한 몬스터가 리벨리온이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겠군.”
“리벨리온? 그 신화에 나오는 악마 말인가?”
“그래! 거대한 덩치에 모든 것을 파괴하는 괴력, 오러 조차 통하지 않는 피부까지. 전부 딱 들어맞았다고 하네.”
매부리코의 남성은 슬로스를 대륙의 신화에 나오는 리벨리온이라는 악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소문 자체가 리벨리온이 가이린을 습격했다고 퍼지고 있는 중이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그냥 신화일 뿐이잖나. 그리고 그런 일들은 전부 과장되기 마련이야.”
“아니, 아니야.”
메부리코의 남성은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는 진중한 눈을 한 채 내시 수염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가.”
“내 동생이 가이린에서 용병 짓을 해먹고 있거든.”
“아, 그 사고뭉치 말인가?”
“그래. 그녀석이 오랜만에 집에 왔서 말해주었지. 가이린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음...”
직접 격은 당사자가 말했다는 내용은 궁금했는지, 내시수염의 남자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소문이 전부 사실이었다고 하네. 리벨리온의 발 구름에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졌고, 가볍게 휘두른 주먹에 기사가 열댓 명이 갑옷 째로 터져버렸다고 했네.”
“그, 그럼 그 악마를 대체 어떻게 잡은 건가?”
“그곳의 영주가 있지 않는가.”
“아니. 아무리 유렌 록스가 강하다고 해도 아직 어리지 않나. 그런데 그걸 어떻게...”
“내 동생이 그러더군. 유렌 록스는 인간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천장(天將)이라고, 아주 기도까지 올릴 기세였네. 자신들을 죽이려고 돌진하는 리벨리온을 맨몸으로 막아서고, 오러를 두른 수백 개의 무기를 한 번에 날려 그 악마를 죽였다고 했네.”
“허어,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믿지 못하는 내시 수염의 남자를 보며 매부리코의 남성이 혀를 찼다.
“오러를 두른 수백 개의 무기라니, 마스터도 그런 능력은 없을 걸세.”
“그놈이 그러더군. 리벨리온과 싸울 때의 유렌 록스는 전장에 봤던 소드마스터, 크릭스 후작보다 강하고, 신비로웠다고. 아니, 비교조차 할 수 없다고 했네.”
“음...”
크릭스 후작은 소드 마스터다. 정장에서 봤던 마스터보다 유렌이 강해보였다는 소리에 내시 수염의 남자는 할 말을 잃었다.
“유렌 록스의 무력은 이미 마스터를 넘었다는 것에 그 녀석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남은 기사와 용병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이야.”
“저, 정말이라면 이거...”
“그래. 우리나라에서 대륙 최연소 마스터가 탄생했다는 뜻일세.”
이런 대화는 이 선술집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크라시스 왕국 전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가이린에 대한 이야기와 유렌에 대한 이야기를 꽃피우며, 유렌의 무력과 인성, 판단까지. 그의 모든 것을 칭송하느라 바빴다.
**
“영지가 반파되었다는 게 말이 되나.”
왕궁의 궁중마법사 포슈아는 가이린을 지원하라는 국왕의 어명을 받고, 준비를 마친 뒤 다른 마법사, 기사, 왕궁 인부들과 함께 가이린으로 향했다.
그 역시 몬스터들이 가이린을 습격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악마가 나타났다느니, 유렌 록스가 수백 개의 무기에 오러를 둘렀다느니 하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많아서 딱히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가이린에 도착한 순간 바로 깨져버렸다.
“세상에...이게 대체!”
9서클 마법 어스퀘이크가 작렬한 것 같은 대지, 모래처럼 무너져있는 건물들, 메테오가 떨어진 것 같은 거대한 파괴흔에 그와 지원단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악마 리벨리온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진짜였던가...”
실제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마법사들이지만, 모조리 박살난 가이린의 중심 지역을 보니, 소문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유렌 록스가 수백 개의 무기에 오러를 둘러 악마를 잡았다는 것도 사실이었나...”
포슈아는 마을의 중심부로 다가갔다. 그는 그곳에서 강렬한 마나의 흔적을 느꼈다. 자신은 상상하기도 힘든 어마어마한 힘의 격돌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으음, 일단 만나봐야겠지.”
포슈아와 지원단이 유렌을 만나기 위해서 성으로 이동하려 할 때 건장한 체격을 가진 노기사가 길의 한가운데서 갈라진 대지를 살피고 있었다.
노기사의 갑옷은 크라시스 왕국과 형태가 달라서 포슈아는 경계를 하며 노기사에게 다가갔다.
“왕국 지원단의 단장을 맡은 포슈아라 하오. 누구신데, 이곳에 마음대로 들어오신 거요?”
“음?”
“헉!”
포슈아의 말을 듣고 일어선 노기사는 생각보다 키가 컸고, 덩치가 있었다. 포슈아는 노기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후, 후라켄 공작님?”
“날 아는 가?”
후라켄이 의외라는 듯 눈을 고개를 살짝 틀어서 포슈아를 쳐다보았다.
“예! 예전 왕국 회담에 따라갔을 때 뵈었던 적이 있습니다.”
“아, 이거 미안하네. 난 잘 기억이 나질 않아서...”
“아닙니다. 멀리서 쳐다보기만 해서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런가?”
“그, 그런데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손녀가 이곳에 와 있어서 말이지. 걱정되어 와봤네.”
“소, 손녀라면 성녀!”
후라켄이 다시 바닥의 균열로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아이도 이 전투에 참여했다더군.”
“아, 혹시 무슨 일이 생기신건...”
후라켄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여서, 포슈아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느꼈다고 했지만, 그 아이는 아주 건강하다네.”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이 정도 힘의 충돌이 있었던 것 치고는 사상자는 정말 적었다고 하더군. 전부 그 친구 덕이지.”
“유렌 록스 자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후라켄은 계속해서 균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포슈아는 소문으로만 돌던 것을 진짜 마스터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후라켄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말 리벨리온이 나타났고, 그것을 유렌 자작이 막았다면, 그는 마스터를 넘어선 것입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균열들과 파괴 흔적을 보며 느낀 것을 솔직하게 말해주지.”
후라켄은 대지가 갈라진 흔적을 발로 비비며 입을 열었다.
“이 사태를 만든 괴물이 리벨리온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놈과 내가 싸운다면 이긴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네. 생명을 걸고 잠력을 폭발시켜야 겨우 놈을 막거나 상대 할 수 있을 것 같군.”
“그럼...”
“그래. 정말 유렌이 이 괴물을 죽였다면, 그는 마스터인 내 경지를 넘은 것이 되겠지.”
후라켄은 유렌이 자고 있는 영주성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어느새 이렇게 성장을 했는지 모르겠어. 앞으로 대륙에 새로운 역사가 쓰일 걸세. 그 친구의 이름으로.”
**
난 내가 기절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절한 직후부터 당천위가 불타는 당가에서 마인을 찾아가는 장면들이 끝없이 반복 되었다.
다만 이전에 기절했을 때 봤던 꿈이 3인칭시점에서 당천위를 지켜보았다면 지금은 당천위의 몸에서 들어와서 그의 모든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움직임과 내력의 수발, 처절한 슬픔까지.
‘이게 그가 말했던 숙제는 아닌 것 같은데.’
이 기이한 현상은 당천위도 알지 못했겠지만, 덕분에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암기 하나에 여러 가지 무의 속성을 담아내다니...’
당천위는 쾌(快), 강(强), 변(變), 환(幻)을 암기 하나에 쏟아낼 수 있었다.
‘모든 움직임이 그냥 행하는 것이 아니야.’
보법과 신법을 사용 할 때의 내력이동, 균형을 잡는 자세, 적의 기척을 미리 읽고 파악하는 감지능력, 비수를 검처럼 사용하는 것까지 전투 이외에도 배울 것 정말 많았다.
‘돈 주고도 못 배울 것들이야.’
당천위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천금을 주고도 배우지 못할 수업이었다. 난 꿈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상황을 흘려보내지 않고, 당천위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교로 보이는 곳에서 수많은 마인들과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수없이 반복해서 이젠 눈 감고도 당천위가 어떤 행동을 하는 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름 만족 할 정도로 당천위의 움직임을 배우고, 숙달했을 때 계속 반복되던 마지막 장면이 처음으로 이어졌다.
“왜 그랬지?”
당천위의 입에서 그 특유의 침착한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그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난 알 수 있었다. 극도의 분노를 느끼고 있어서 오히려 침착하게 들리는 것이라는 것을.
“내가 천마이기 때문이다. 천위”
마인은 표정의 변화 없이 대답했다.
“그건 당가를 처음으로 불태운 이유가 되지 않는다. 운악.”
둘은 이미 알고 있던 사이였는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아니, 그것이 이유의 전부다.”
당천위가 피나도록 주먹을 쥐고 입을 열려는 순간, 세상이 깨져나갔다. 당천위와 천마가 대치하는 장면이 끝없이 멀어지며, 참을 수 없는 무게가 눈꺼풀에 내려앉았다.
“으...”
평생 뜨지 못할 것 같았던 눈을 뜨자, 불타는 당가가 아니라 내 침실의 하얀 천장이 보였다.
“드디어 돌아온 건가...큭!”
꿈의 세계에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돌아 온 것이 실감 나지 않아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여보자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근데 목이 왜 따갑지?”
내 목을 무언가가 찌르고 있는 것 같아 옆을 돌아보니, 빽빽이가 부리로 내 목을 찌르며 베게에 누워 자고 있었다.
“하, 이 녀석...”
“빼...”
빽빽이의 눈에 눈물이 조금 맺힌 것 같아서 손가락을 들어 닦아주니, 몸을 움찔거리던 녀석이 눈을 떴다.
“빽!”
빽빽이는 내가 일어난 것을 보자마자, 날개를 펴고 내 머리위로 날아올라서 기똥찬 울음소리를 내었다.
“빽빽빽!”
녀석은 내가 일어난 것이 정말 기쁜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빽빽아. 조용히 좀... 어?”
문을 열고 들어오던 페루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물과 쟁반을 떨어뜨렸다.
“유, 유렌님!”
“페루.”
“일어나셨군요!”
“방금.”
“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지금 바로 사람들을 불러올게요. 전부 유렌님이 깨어나시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야, 잠깐...”
페루는 내 말을 듣다말고, 바로 복도로 달려 나갔다. 복도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하군.”
“빽!”
“음?”
침대 옆에서 무언가 음습하면서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상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운이 동시에 나타난 기이한 현상이지만,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피식 웃었다.
“잘 살아있네.”
“주인. 괜찮소?”
“나보다 네가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
“음...”
침대의 옆에서 나타난 기운은 포메라였다.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지, 녀석은 평소의 애기해골보다도 작아져서 내 손바닥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네가 언데드라 다행이었어.”
“정말이오. 그 괴물에게 정말 죽는 줄 알았소.”
“죽긴 했잖아.”
“그렇긴 하오. 설마 그 정도의 괴물이 이곳에 존재 할 줄은 몰랐소.”
“나도 몰랐어. 미안하다.”
“아니오. 그래도 내가 그곳에 있어서 다행이었소. 다른 사람이었다면 정말 죽었을 거요.”
“그렇지.”
흑마법사이자 언데드인 포메라지만 남을 생각하는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잘 어울렸다.
“주인이 깨어난 것을 봤으니, 됐소. 이제 돌아가야겠소. 성녀한테 걸리지 않게 움직이느라 정말 힘들었으니.”
“너 내가 깨어나는 거 기다리고 있었어? 내 걱정 엄청나게 했나 보네.”
“아니, 그, 그게...”
“고맙다. 포메라.”
“아, 아니오, 그럼. 난 회복하러 가야겠으니, 나중에 봅시다.”
포메라는 부끄러웠는지 바로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녀석의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저 녀석도 진짜 많이 변했네.”
“빽!”
빽빽이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조롱조롱 울음소리를 냈다.
“음...”
저린 팔다리를 움직여서 일어나 앉았다. 온 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비어있을 거라 생각했던 단전이 예상외로 조금 차있었고, 내력이 순환하고 있었다.
“역시 무공 이름에 신(神)이 붙은 이유가 있다니까.
만독자전신기는 내가 기절해 있는 동안에도 스스로 움직이며 내 몸을 치유하고, 내공을 회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신기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심법이다.
“어?”
앉은 자리에서 굳은 몸을 풀려고 할 때 눈앞에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왔다.
[소혼(召魂)이 해제되었습니다.]
[몽연(夢聯)이 해제되었습니다.]
[당천위의 전투 경험이 천무지체와 만독자전신기에 축적됩니다.]
[삭비(削匕)가 개방됩니다.]
[뇌엽(雷葉)이 개방됩니다.]
[멸락(滅落)이 개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