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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당천위 강림 (125/241)
  • 당천위 강림

    펑! 

    퍼펑! 

    몬스터들이 나타났다는 신호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첨탑에 다시 올라가보니, 동쪽은 이미 전투가 시작되었다. 포메라가 자신의 소환수를 소환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야. 잘 싸우네.” 

    내가 잡아서 포메라에게 넘긴 보스 몬스터들이 글러트니가 보낸 몬스터들을 빗자루 쓸 듯이 쓸어버리고 있었다. 

    서쪽은 수룡기사단이 도착해서 곧 전투가 벌어질 것 같았고, 남쪽은 이미 그곳에 있던 일리아와 이레아가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럼 나도 움직여봐야지.” 

    첨탑에서 내려와서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내 생각대로라면 글러트니는 절대 저 몬스터들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글러트니는 마이라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놈이 보낸 몬스터들이 분명 에킬산 쪽에서 내려와서 마이라를 데려가려 할 것이다. 

    “분명 오겠지.” 

    기감을 넓게 펼쳐서 기다리자, 산위에서 부스스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여러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꽤나 많이 보냈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달빛 아래로 글러트니의 이빨들과 큼지막한 글러트니의 위 3마리가 나타났다. 

    “숫자를 보니, 글러트니가 무리 좀 했겠네.” 

    “꺼억!” 

    “쿠어어어!” 

    “꺼어억!” 

    글러트니의 이빨과 글러트니의 위가 우르를 몰려내려 올 때 손을 들어 올려서 놈들 앞을 옥색연기로 막아버렸다. 

    “빽빽아!” 

    “빽!” 

    빽빽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날개 짓을 시작했다. 녀석의 손바닥보다 작은 날개에서 폭풍 같은 바람이 일어,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모든 곳으로 옥색 독 연기를 흩뿌렸다. 

    “꺼억...” 

    “꺽...” 

    산에서 내려오던 글러트니의 이빨들은 독 연기에 닿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물에 넣은 설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인면지주의 독인가.” 

    놈들에게 뿌린 옥색독은 인면지주의 사린주왕이다. 그 독성의 지독함에 글러트니의 이빨들이 모조리 녹아버린 것이다. 

    “그래도 저놈에겐 통하지 않네.” 

    “쿠어어.” 

    독 같은 특수공격에 강한 저항을 가지고 있는, 글러트니의 위는 독을 이겨내고, 산사태를 일으키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빽빽아. 이제 날려.” 

    “빽!” 

    빽빽이에게 독을 허공으로 날리라고 지시한 뒤에 귀왕살을 빼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콰앙! 

    “너희 패턴 공부 좀 해야 하지 않겠냐?” 

    글러트니의 위들은 나를 노리고 이전같이 주먹으로 내려쳤지만, 눈음 감아도 그런 것에 맞을 일은 없었다. 

    빠지직. 

    뇌영을 사용해서, 글러트니 위들의 뒤로 이동한 뒤 가장 앞에 있던 놈의 목을 향해 검기를 두른 귀왕살을 던졌다. 

    퍽! 

    “쿠어...” 

    귀왕살에 목을 관통당한 글러트니의 위가 그 거대한 몸에 맞지 않게 바로 바닥에 쓰러졌다. 

    쾅! 

    동료의 죽음에 분노했는지, 왼쪽에 있던 글러트니의 위가 다시 주먹을 연속으로 내려쳤다. 놈의 주먹에 올라탄 뒤 뇌익을 사용해서 놈의 얼굴까지 빠르게 이동했다. 

    빠지지직! 

    퍼엉! 

    이룡출수를 사용해서 왼 주먹으론 글러트니 위의 얼굴을 날리고, 오른 주먹으로 놈의 목을 뚫어버렸다. 

    “크그그...” 

    쓰러지는 글러트니의 위에서 아그네스를 묵봉으로 바꾸었다. 원래 묵색이어야 할 묵봉이 화속성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부우우웅! 

    오랜만에 듣는 수백 마리 벌이 우는 소리를 즐기며, 그대로 마지막 남은 글러트니의 위를 향해 묵봉을 날렸다. 

    슈아아앙! 

    글러트니의 위는 묵봉의 보이는 칼날만을 막기 위해 주먹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묵봉에겐 더욱 날카로운 칼날이 밑에 숨겨져 있고, 그 칼날에 내 검기가 둘러져 있었다. 

    샤악! 

    묵봉은 야채라도 자르는 것처럼 글러트니의 손을 갈라버리고, 놈의 목까지 베어버렸다. 

    쿵. 

    쿠웅. 

    내가 타고 있던 글러트니의 위가 쓰러지고, 나서 묵봉에게 죽인 글러트니의 위가 바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글러트니의 위를 처리했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이게 끝은 아니겠지.” 

    온슬롯의 감시탑을 사용해서 감각을 확장해보았다. 산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척은 이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을 텐데.” 

    느껴지는 것이 없으니, 더욱 불안해졌다. 산 아래를 보았지만, 아직은 문제가 생긴 것이 없어보였다. 동쪽으로 간 포메라는 몬스터들을 거의 전멸시켜 놓았다. 

    “저 녀석이 저렇게 믿을 만 할 줄이야.” 

    나중에 녀석을 칭찬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산을 내려갔다. 

    “마을 쪽으로 가봐야겠어.” 

    영주민들과 마이라는 로디엔과 아린이 지키고 있으니, 잠깐 동안 마을에 가보는 것은 상관없다고 생각해서 뇌익을 사용해서 빠르게 마을을 향했다. 

    쿠아아아앙! 

    “어?” 

    포메라가 있는 동쪽에서 포탄 수십 개가 동시에 터진 것 사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소리만이 아니다. 그 충격에 대지가 요동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아는 포메라는 아직 저런 화력을 낼 수 없다. 저건 그의 마법이나 소환수의 능력이 아니다. 

    “포메라?” 

    포메라의 혼의 구슬을 꺼내서 녀석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구슬 안에 있는 회색 혼의 크기가 크게 줄어있었다. 

    “당했다고? 포메라가?” 

    포메라는 좀 전에 터진 그 괴음에 당해서 육체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동쪽 성벽을 쳐다보았다. 

    콰아아앙! 

    그 순간 뭔지 모를 충격에 동쪽 성문에서 터졌다. 흡사 과자가 부서진 것처럼 단단하게 지어진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 연기 속에서 뼈만 있는 것처럼 말랐지만, 기형적으로 키가 큰 인간이 보이고 있었다. 

    “설마...” 

    놈은 무너지는 성벽을 무시하며 그대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름: 슬로스(sloth)] 

    [특성: 칠죄종-skxo(Pigritia)] 

    [호감도: 0 (무관심)] 

    [현재 기분: 빨리 일을 처리하고, 쉬고 싶음] 

    “최악이다...” 

    상정했던 최악의 가정이 들어맞았다. 솔직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바로 마탑으로 이동해서, 그 안에 있던 책임자에게 퇴각신호를 보내라고 말했다. 

    “퇴각이요? 지금 잘 하고 있지...” 

    “시끄럽고, 빨리 하시오!” 

    “아, 알겠습니다.” 

    “당신과 마탑에 있는 사람들도 경보만 올리고 바로 대피하시오. 성으로 가서 내가 모두 에킬 산으로 피하라고 했다고 전하시오. 빠르게!” 

    “알겠습니다!” 

    상황이 급박하다. 한 순간의 망설임으로 수십, 수백, 천이 넘는 사람과 내가 아끼는 사람까지도 죽을 지 모른다. 아니, 자칫 잘못하면 내가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 

    콰아아앙! 

    마탑에서 나오자마자, 대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슬로스가 휘두른 주먹의 파동이 그의 주변에 있던 건물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부아아앙! 

    마탑에서 퇴각을 알리는 신호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슬로스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탑의 상단 부분이 터져나갔다. 

    “진짜 지랄 맞네.” 

    슬로스는 나태의 죄다. 

    슬로스의 나태의 특성은 그를 그저 단순하고 강하게 만들어놓았다. 놈의 특성은 단단하고, 강한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가장 무서운 존재다. 

    “휴우, 분명 놈은 나도 노리고 있을 거야.” 

    슬로스를 부른 자는 글러트니일 것이다. 

    놈의 성격상 분명 이곳의 영주인 유렌 록스를 죽이라고 했을 테니, 다른 사람들이 피할 동안 내가 미끼가 되어야 했다. 

    “이거 진짜 미친 짓인데...” 

    슬로스가 모든 것을 부수며 걸어오는 길을 앞에서 막았다. 놈은 고개를 틀며 나를 쳐다보다가 아주 조금 눈을 살짝 떴다. 

    “죽...이라고...했던 놈...이네...” 

    “역시 날 아는군.” 

    파앙! 

    슬로스는 나와 20m가 넘게 떨어져있었지만 그대로 손을 휘날렸다. 놈의 주먹에서 나온 파동이 내 머리를 뚫어버릴 것처럼 쇄도해 왔다. 

    [상승의 경지가 발동합니다.] 

    콰아아앙! 

    상승의 경지의 효과로 느려진 놈의 공격을 고개를 숙여서 겨우 피해냈다. 놈의 시선을 끌기 위해 바로 에킬산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음...” 

    슬로스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따라 주먹을 휘둘렀다. 놈이 주먹을 날릴 때마다 주변의 건물들이 마른 낙엽처럼 바스스 부서져나갔다. 

    빠지지직.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뇌인신법의 모든 것을 사용하며 놈의 공격들을 피해냈다. 

    이기긴 힘들어. 저 놈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이번 전투의 승리다. 

    놈의 공격에 적응을 했기 때문에 도망치면서 검기를 씌운 암기를 연속으로 날렸다. 

    슈아앙! 

    슬로스는 자신에게 살기가 가득 담긴 암기가 날아오는데도 불구하고,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나만 공격했다. 

    탕! 

    타앙! 

    암기들은 검기를 두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슬로스의 피부조차 뚫어내지 못했다. 흡사 만년한철에 부딪친 것처럼 쇳소리를 내고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이건 통하겠지만...” 

    귀왕살의 옵션이라면 놈에게도 통할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을 노려야지, 지금 막 던질 수는 없었다. 

    “으음... 정말...귀찮게...”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모든 내력을 신법에 사용해서 놈의 공격을 피하고 있을 때 에킬산 쪽에서 흰색 신호가 터졌다. 모두 후퇴를 했고, 이제 에킬산 쪽으로 도망친다는 것 같았다. 

    “아...귀찮...아...글러트니가...알...아서 하겠지...” 

    조금만 시간을 더 끌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슬로스는 나를 무시하고 방금 폭죽이 올라온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이런 미친!” 

    뒤에서 놈을 향해 십이비도를 날렸다. 

    검기와 독이 듬뿍 담겨있는 비도들은 놈의 피부를 뚫어내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슬로스는 나를 쓱 쳐다보고 다시 에킬산을 향해 올라갔다. 

    빠지지직! 

    놈의 뒤로 근접해서 손에 뇌기를 미친 듯이 응축시켰다. 모아진 뇌기는 작은 구슬 형태가 되어 놈에게 쏟아졌다. 

    쿠아아앙! 

    현재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강한 위력의 무공 극뢰포다. 하지만 슬로스는 그 힘을 주먹 한 방으로 소멸시켜버렸다. 놈이 날린 두 번째 주먹은 허리를 숙여 겨우 피해냈다. 

    “제기랄!” 

    슬로스를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놈은 탱크처럼 내 공격을 무시하며 에킬산을 향했다. 

    “아...찾았...네...” 

    슬로스는 에킬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멍하니 쳐다보다 주먹을 들어 올렸다. 난 그 순간 귀왕살을 들고 돌진해 놈의 옆구리를 베어버렸다. 

    푸삭. 

    처음으로 슬로스에게 상처가 났다. 놈은 자신의 상처에서 흐르는 검은 피를 잠시 지켜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디가냐? 나랑 놀자고.” 

    “너... 귀찬...아...” 

    “유렌!” 

    “유렌님!” 

    뒤에서 일리아와 이레아, 아린과 크라이드, 브리카까지 모두가 이쪽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오지마!” 

    슬로스는 내가 아닌 위에서 내려오는 일리아와 이레아보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젠장!” 

    혈도가 타오를 정도로 내력을 뭉쳐서 손에 내뻗었다. 처음으로 등장한 뇌벽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슬로스의 파동에 소멸되었다. 

    콰아앙! 

    뇌벽이 슬로스의 주먹을 잠시 막아준 덕분에 내려오던 사람들은 슬로스의 직격을 피해냈다. 

    그렇지만 놈의 파동에 빗겨 맞은 기사는 몸이 터져버렸고, 일리아, 아린, 이레아 모두 바닥과 벽에 박혀서 생사를 알 수가 없었다.

    모두의 신체가 멀쩡한 것도 이레아가 마지막에 신성력으로 벽을 세워서 막은 덕분이었다. 

    “너...정말...귀찮아...어쩔 수...” 

    찌이익! 

    쩌저적! 

    기이하게 키만 컸던 슬로스의 몸체가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뼈만 있던 신체에 우락부락한 근육이 부풀기 시작했다. 

    “미친...” 

    고작 이런 일가지고 3 페이즈가 되다니, 이 또라이 새끼! 

    “다...귀...찮아...” 

    놈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히 움직이고 있었다. 빨리 끝내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슬로스의 2.5m가 넘는 신장이 바위 같은 근육으로 뒤덮였다. 지금 상태는 좀 전보다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 정말 승산이 없었다. 

    “너 데려가야 할 사람이 있잖아!” 

    “몰라... 글러트니가 난 죽...이기만 하라고...했다...” 

    “이런 미친 놈!” 

    내가 마을에 있는 동안 글러트니가 마이라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진짜 돌아버리겠군. 

    고오오오. 

    놈의 어깨에서 숨조차 쉬지 못할 거대한 힘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슬로스는 지금 귀찮아서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나와 뒤에 기절한 사람들은 당연히 즉사고, 그 뒤에 있는 모든 영지민까지 전멸이다. 

    도망쳐야하나. 

    뒤를 돌아보았다. 

    산을 오르다 말고, 겁에 질려 주저앉은 사람들이 보였고,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아린, 갑옷이 찢어진 일리아, 마지막까지 모두를 지키려한 이레아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진가...” 

    아무리 나라도 저들을 버리고, 도망칠 정도로 냉혈인은 아니었다. 

    이를 꽉 물고, 귀왕살을 들어올렸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저 놈을 보내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단전이 폭발할 것처럼 내력을 움직였다. 혈도가 찢어질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지만,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후아아앙! 

    슬로스가 미식축구를 하는 사람처럼 어깨채로 내게 돌진해왔다. 놈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일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콰아아아! 

    왼손의 극뢰포를 놈에게 쏘아냈지만 놈은 그 힘을 무시하고, 공기를 찢을 것 같은 속도 그대로 밀어붙였다. 

    “이번엔 이거다!” 

    오른손에 있던 귀왕살에 인면지주의 독과 검기, 전사력까지 담아 슬로스에게 날렸다. 

    퍼억! 

    귀왕살이 슬로스 어깨에 박혔지만, 놈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빠지지직! 

    뇌벽을 쌓아서 버티려했지만, 순식간에 터져나가고, 놈의 어깨가 내 몸에 작렬했다. 그 숨 막히는 충격에 난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빠각. 

    [소호보주가 발동합니다.] 

    [연혼 대상이 소혼을 받아들입니다.] 

    [연혼2/3] 

    [소혼대상 천수암왕 당천위] 

    ** 

    투쾅! 

    하늘과 땅을 관통하는 거대한 빛의 기둥이 유렌에게 내려왔다. 대지를 쪼갤 것 같았던 슬로스는 그 빛의 기둥을 뚫어내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고오오오. 

    빛의 기둥의 광대함과 엄숙함에 세계가 숨을 죽였다. 

    우우우우. 

    슬로스는 빛의 기둥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 해 고개를 내렸고, 공포와 절망에 잠겨 있던 모든 인간은 그 빛을 보며, 알 수 없는 안도를 느꼈다. 

    “이...게...무엇...” 

    퍼엉! 

    슬로스가 산을 터트릴 것 같은 주먹을 휘둘렀지만 빛을 뚫어내지 못하고 막혀버렸다. 

    겁에 질린 듯 은은하게 빛나던 달빛이 생을 다할 것처럼 찬란한 빛을 내뿜었고, 시간을 역행하듯 별자리가 스스로 자리를 바꾸기 시작했다. 

    사람의 존재 하나로 하늘의 법칙이 바뀌어가고 있었다. 

    땅을 부술 것처럼 내려치던 빛의 기둥이 사그라지고, 유렌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유렌의 눈빛은 당황에 휩싸여 있던 이전의 그와 전혀 달랐다. 

    의지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존재가 달라져있었다. 

    “너...” 

    자신을 넘어서는 그 거대한 존재감에 슬로스의 졸린 것 같은 눈이 처음으로 크게 뜨였다. 

    “인간조차 되지 못한 괴령(怪令)치곤 꽤나 힘을 많이 모았구나.” 

    나지막이 흐르는 목소리. 

    유렌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 소리는 유렌보다 낮았고, 담담했다. 

    “으...” 

    슬로스는 그의 목소리에 자신의 몸이 조금 떨리는 것을 느꼈다. 

    무인들의 피가 흐르는 세계. 

    암기 하나로 정점에 오르고, 홀로 천마를 죽인 자. 

    천하 무림 꼭대기에서 가장 빛나는 자. 

    천수암왕(千手暗王) 당천위가 이곳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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