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 대비 (2)
“집무실로 데려가면 되겠습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둘 다 바로 올려 보내겠습니다.”
“아린과 크라이드, 브리카도 불러오도록.”
“예!”
페루는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지, 내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바로 몸을 움직였다.
“마이라. 습격한 몬스터는 어떤 놈들이 나타났지?”
“제가 몬스터를 잘 모르지만, 본 그대로 말씀드릴게요.”
“그래.”
“먼저 살점이 뜯겨진 좀비들이 있었어요. 도끼나 창을 들고 다니는 해골도 보였고, 머리는 점박이 짐승인데, 철퇴랑 칼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도 있었는데, 이름은 모르겠어요.”
“점박이 짐승이면 놀 이겠군.”
놀은 머리가 짐승이고, 몸은 이족 보행을 하는 인간형 몬스터다.
“네. 예지에서 봤던 붉은 피부를 가진 커다란 괴물도 있었고, 돌로 만들어진 거인. 아, 브래넌 아저씨가 골렘이라고 하시네요.”
“또 있어?”
“제가 본 건 그게 전부였어요. 다만 숫자가 엄청 많았어요.”
“그래. 알았어.”
좀비, 구울, 해골병사, 놀, 골렘과 글러트니가 만들어낸 몬스터까지,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지능이 떨어져서 조종하기 쉬운 놈들이었다.
몬스터들은 모두 원거리에서 조종이 용이한 몬스터들뿐이었다.
역시 글러트니는 움직이지 못해. 마이라를 찾는데 예지를 사용해서 여유가 없겠지.
글러트니가 움직이지 못하니, 양동작전을 써서 마이라만 데려가던가, 글러트니가 일을 맡길 만 한 놈이 오던 가, 둘 중 하나일 텐데 어느 쪽도 확신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양쪽 모두 대비를 해놔야 할 것 같다.
“마이라. 정말 고마워.”
그녀의 코에서 흘러나온 피를 닦아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네가 가이린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것과 다름없어.”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 서로 돕기로 했었잖아요.”
마이라는 나를 당차게 쳐다보았다. 나와 보낸 시간동안 그녀의 정신도 성숙해진 것 같다.
“그래. 그랬지. 그래도 고맙다. 이제 쉬어.”
“아니에요. 다른 예지를 보게 될지도 모르니...어?”
좀 전까지만 해도 힘차게 움직이던 마이라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마이라가 쓰러질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바로 그녀를 받아들었다.
“당연한 일이지.”
브래넌이 전해주던 것과 달리, 이번엔 본인이 직접 예지를 봤기 때문에 상당히 무리를 했을 것이다.
마이라는 한동안 죽은 듯이 잠을 잘 것이고, 다음 예지를 사용 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소모될 거다.
“일단 방에 데려다 줘야겠네.”
마이라를 방에 데려다 주기 위해 안아 들었을 때 식당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왜 안 오는 거야!”
“조금 더 기다려 봐요.”
“성녀님은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가서 데려올 게요.”
“일리아님.”
일리아와 이레아의 목소리가 들린 후 식당 문이 안쪽에서 열렸다. 밖으로 나온 사람은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일리아였다.
“어?”
일리아는 내가 안고 있는 마이라를 보고 차갑게 굳어버렸다. 안쪽에 있던 이레아의 표정도 일리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네가 불러놓고,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미안해. 식사는 취소야.”
“뭐?”
“네?”
식탁에 앉아 있던 이레아도 문으로 걸어왔다. 두 여자는 나와 마이라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문제가 생겼어.”
“무슨 문제?”
“문제라니요?”
이 둘에게 알려도 되는 건가.
일리아와 이레아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원작에서 끝까지 주인공의 아군이 되어주는 사람들이며, 이들은 지금의 내게 원작의 주인공이상의 호감을 느끼고 있다. 정직하게 말해도 될 것 같았다.
“그래. 네게도 말해줘야 할 것 같으니, 잠시 후에 집무실로 와줘.”
“아, 알겠어.”
“죄송하지만, 성녀님도 집무실로 와주시겠어요?”
“알겠어요.”
두 사람은 묻고 싶은 게 많아 보였지만, 내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마이라를 그녀의 방에 데려다주었다. 하인들에게 잘 돌보라는 지시를 내린 뒤 집무실로 올라갔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관리관인 파이란과 치안관을 맡고 있는 판톤은 집무실의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둘 다 들어오도록.”
“예!”
“앉으시오.”
둘을 집무실 안에 의자에 앉아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불려왔고, 내 표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똑똑.
“들어와.”
문이 열리고 아린과 크라이드, 브리카가 안에 들어왔다. 브리카의 입가에 빨간 소스가 묻어 있는 것을 보니, 이들 역시 식사 중에 불려온 모양이다.
“모두 잠시만 기다리도록. 페루.”
“네!”
“로디엔도 데려와.”
“알겠습니다.”
어차피 말해야 하는 것이니, 로디엔에게도 미리 말해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녀 역시 이번 습격을 막아내는데 큰 힘이 되어줄 거다.
잠시 시간이 지난 뒤 이레아와 일리아, 로디엔까지 집무실에 도착했다.
모인 사람들은 긴장과 당황이 섞인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그들의 가운데에 서서 모두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그냥 본 것이 아니라, 눈을 사용해서 그들의 호감도와 생각을 읽어보았다.
전부 믿을 만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내게 신뢰 이상의 호감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에게 정보를 풀어도 새어나가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입을 열었다.
“개인시간에 모두 모이게 해서 미안하지만, 중요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브리카가 가장 먼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뒤 다시 모두를 보았다.
“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렀다.”
사람들의 표정이 가지각색으로 변했다. 대놓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은근히 미소를 짓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는 내 표정이 돌처럼 딱딱한 것을 보고 다시 무표정이 되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면 안 돼. 지킬 자신이 없는 사람은 지금 저 문으로 나가도록.”
손으로 집무실의 문을 가리켰다. 사람들은 내 손가락을 쳐다보지 않고, 내 눈만을 보고 있었다.
“모두 동의 했으니, 이야기를 시작하지. 이번에 밖에 나갔을 때 우연히 한 사람을 구했다.”
“아까 그 여자를 말하는 거야?”
일리아가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해왔다.
“맞아. 우연히 괴물들에게 습격당하는 것을 구했지만, 알고 보니,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면, 무슨 왕족이라도 되나요?”
크라이드가 의문이 가득담긴 표정으로 물었다.
“그보다 더 대단하고 희귀하다. 그녀는 예지의 힘을 가지고 있어.”
“예지?”
“예지라면...”
“예지란 미래를 보는 힘, 미래를 알고 바꿀 수 있는 힘이다. 아직 스스로를 통제를 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예언자의 능력을 지니고 있어.”
“어...”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날 보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자신의 예지 능력으로 이곳의 미래를 보았다.”
모두 내 입만을 쳐다보며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녀가 본 미래는 이틀 뒤 저녁에 몬스터들이 가이린을 습격을 한다는 것이었다.”
“예?”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런...”
“그녀와 같이 다니며 예지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미래는 바뀔지언정 사건은 그대로 일어났었어. 이틀 뒤 습격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소리야.”
“어...”
크라이드와 브리카는 숨이 멎을 것 같은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고, 이레아, 일리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린과 로디엔은 침착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유렌. 그 예지라는 거 정말 믿을 만 한 거야?”
“그래. 확실해.”
“음...”
단호하게 확답하자, 일리아와 이레아의 얼굴도 점점 심각하게 변했다.
“만일 습격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대비는 해놔야 해.”
“그건 그렇지. 그럼 어떻게 하게? 지원이라도 받게?”
“아니. 가이린은 원래 몬스터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 곳이야. 갑자기 지원을 요청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테지, 예지나 예언 같은 소리는 절대 나오면 안 돼.”
“그건 그렇지만...”
마이라가 예언자라는 이야기가 들린다면 대륙 전체에서 그녀를 데려가려고 난리가 날 것이다. 예지라는 소리는 절대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지원은 생각해 둔 게 있으니, 내가 알아서 할 게. 먼저 몬스터에 대해 말하자면, 습격하는 숫자는 많지만, 질은 좋지 않아. 놀과 언데드, 골렘이 대부분이라고 하더군.”
“언데드! 그 새끼들이 또!”
갑작스럽게 터진 이레아의 욕에 모두가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 죄, 죄송해요.”
이레아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몬스터가 약하다고 해도 사람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잖아.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대피시키게?”
일리아는 이레아를 잠시 쳐다보다가 질문을 해서 분위기를 환기 시켰다. 사람들을 대비시킬 방법은 이미 생각해 놓았다.
“얼마 전에 리빙아머의 습격이 있었으니,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대피 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성 근처로 대피시킬 거야.”
“그건 좋은 생각이네. 미리 대피하면 인명피해는 최소화 할 수 있겠어.”
“맞습니다. 리빙아머의 습격이 심각했으니, 영지민들은 아직 경각심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파이란과 판톤이 좋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민들을 모아 놓은 곳은 결계를 쳐서, 외부에서의 침입도 막을 생각이다.”
“결계라구요?”
“결계요? 유렌님은 결계도 칠 줄 아세요?”
결계라는 말에 로디엔과 이레아가 깜짝 놀라 날 쳐다보았다.
“간단한 결계는 칠 수 있습니다. 머리 나쁜 몬스터는 평생이 걸려도 침입할 수 없는 결계죠.”
“대단하세요.”
“그 결계에 성녀님이 신성력을 씌워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이죠! 맡겨주세요.”
일리아와 이레아가 와준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둘은 자신들의 호위 기사들과 왔기 때문에 기대 이상의 전력이 되어 줄 것이다.
“치안관.”
“예!”
“병사들의 훈련 상태는?”
“모든 기본 훈련을 마쳤습니다.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습니다.”
“좋소. 내일 새벽부터 병사들을 풀어서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이틀 오후부터 몬스터 습격에 대비한 대피 훈련을 할 것이니, 모두 영주 성으로 모이도록 전파하시오.”
“알겠습니다!”
판톤이 명령을 받든다는 의미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성실히 참여하는 자에게는 상을, 참여하지 않는 자에게는 큰 벌을 내릴 것이라는 말도 포함하도록.”
“알겠습니다.”
집무실 책상 뒤에 걸려있는 가이린의 지도를 빼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결계는 이곳에 설치할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테니, 에킬산 밑 부분과 성 전체, 마을 초입을 포함한 광범위한 크기로 환영미리진을 설치할 생각이었다.
“범위가 넓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미리 설치해 놓을 거니 상관없어.”
“이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아린이 입을 열었다.
“오후에 모든 마을 사람들이 결계 안으로 들어오면 결계를 발동시키고, 마을에 너희와 용병들을 배치 할 거야. 아직 마을에 남아 있는 용병들이 많으니, 그들이 큰 도움이 되 주겠지. 일리아. 너도 도와줄 수 있어?”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고맙다.”
“됐어. 낯 뜨거운 말 하지 마.”
“그럼 지금부터 자세한 계획을 말할 테니, 모두 집중해서 듣도록.”
잠깐의 시간동안 생각해놨던 전투인력의 배치와 경계, 몬스터들의 약점들을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이틀 날 운용할 단단한 계획을 만들어 갔다.
**
다음날 병사들은 해가 뜨기 시작하자마자 마을을 돌아다니며 대피 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지민들은 영지를 위해 싸웠던 내게 신뢰를 가지고 있었고, 얼마전 실제 습격도 있었기 때문에 훈련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영지민들을 생각하는 영주라며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몇몇 용병들은 몬스터가 나타나면 대피하지 않고 싸우겠다고 했다고 했는데, 역시 예상대로였다.
용병들은 병사 이상으로 전투에 도움이 되는 자들이다. 그들이 대피하지 않고, 참여한다면 희생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거다. 물론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도 줄 생각이다.
이튿날 오전 모든 사람들이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을 때 난 마탑에 와 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마탑의 문이 열리고,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 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의 가슴에는 작은 수룡이 새겨져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이들은 이전에 내 첫 출정에서 같이 싸웠던 수룡기사단이자, 전부 내가 독을 해독해주었던 사람들이다.
“유렌 영주님을 뵙습니다!”
책임자이자, 부기사단장인 안드로가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해왔다. 그의 뒤에 무릎 꿇은 기사들 사이로 렉카를 비롯한 익숙한 얼굴들도 있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어제 록스 후작에게 연락을 해서 영지 보호 상태를 점검하고, 대피훈련을 하고 싶다고 말하며 기사들을 좀 보내달라고 했었다.
그말을 들은 후작은 기뻐하며, 흔쾌히 수룡기사단의 절반을 이곳에 보내주었다.
“일단 영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네!”
수룡기사단에게 영지의 서쪽 주변을 보여주고, 소개해 주었다. 습격이 시작되면 그들을 서쪽으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영지 소개를 해준 뒤 성으로 돌아와서 기사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고, 난 성 뒤편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할 것은 다했어.”
내가 서 있는 곳은 돌 하나만 박아 넣으면 바로 광범위 환영미리진이 발동 되는 진의 끝이었다. 영지민들이 모이면 진을 발동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위이이잉!
해가 지기 시작하자, 마탑에서 대피를 위한 경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경보음소리와 동시에 영지민들이 집에서 나오고, 골목마다 병사들이 서서 영지민들이 질서 있게 성으로 향할 수 있도록 안내를 시작했다.
“페루. 모두 이동시켜.”
“예!”
내 지시를 들은 페루가 성으로 달려갔다. 이제 마을에 전투 인력들이 배치 될 것이고, 성벽에선 수십의 경계병들이 영지 밖을 세밀하게 감시할 것이다.
“후...”
대피하고 있는 영지민들 뒤로 점점 태양이 내려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마법 주머니에서 투명한 구슬을 꺼내들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