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습격 대비 (122/241)

습격 대비

“큰일이라니?”

난 긴장된 표정으로 마을 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마을의 상태는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그, 손님이 오셨는데요.”

“손님? 근데 그게 왜 큰일이야. 내가 없어서?”

“아뇨. 그게 아니라...”

“아, 답답하게 굴지 말고 빨리 말해.”

내 재촉에 페루가 찔끔거리더니,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 입을 열었다.

“오 일 전에 이오칼 왕국의 성녀 이레아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4일 전에 일리아 마르쿠스님이 오셨습니다.”

“그게 왜 큰일이야?”

“두, 두 분이 서로 웃으면서 유렌님의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 사이에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제, 제가 가끔 두 분의 대화 사이에 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서...”

“아...”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나도 눈치가 있는데 무슨 상황인지 모를 수가 있나. 다만 글러트니나, 세피로스에 비하면 정말 별일이 아니라, 긴장감이 확 사라졌다.

“일리아님은 계속 자신이 유렌님의 약혼자인 것을 강조하시고, 이레아님은 유렌님과 같이 전장에서 보낸 일들을 이야기 하십니다. 거기다...”

“또 뭐 있어?”

“그저께부터 로디엔님이 유렌님이 도박하시는 것에 반했다고 하시면서 그 대화에 끼기 시작하셨습니다. 어제부터 세 분이 다실에 모여서 유렌님의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로디엔이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일리아와 이레아가 있는 곳에 낄 줄은 몰랐다.

“도박장 아직 완성 못했어?”

“네. 이틀 뒤에 개장입니다.”

“그래. 그래서인가.”

“유렌님.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이 둘은 성에서 같이 살 아이들이야.”

“유렌님. 설마 이분도 유렌님의...”

페루가 움찔 놀라면서 마이라와 애리를 쳐다보았다.

“헛소리 말고, 이쪽은 마이라, 이 아이는 애리다. 마이라 애리. 이 뺀질거리는 녀석이 내 집사이자 영지의 부관리관 페루니까. 부탁할게 있으면 이 녀석에게 말해.”

마이라와 애리를 페루에게 소개시켜주었다. 둘은 페루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꾸벅였다.

“아, 안녕하세요. 마이라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애리에요.”

“반갑습니다. 유렌님의 집사인 페루입니다.”

“페루. 이 둘에게 방을 안내해줘.”

“알겠습니다.”

“여자들은 어디에 있지?”

“이미 한 바탕 하시고 각자 다른 곳에 계십니다. 일리아님은 수련장, 이레아님은 마을에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 해주고 계시고, 로디엔님은 워낙 신출귀몰하셔서 갑자기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셔서 어디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모두 같이 있었다면 그들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다.

“이제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이들에게 성을 안내해줘.”

“네! 영주님이 성에 오시니까 마음이 편해지네요. 이제 소화가 좀 될 거 같아요.”

“저녁식사는 그들이랑 같이 할 테니. 잘 준비해줘.”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부터 가실 건가요?”

“손님부터 찾아가야지.”

**

일리아와 로디엔 보단 이레아를 먼저 찾아가기로 했다.

그녀가 가장 먼 곳에서 온 손님인데다가 마을 사람들에게 신성력을 베풀고 있다고 하니, 그녀를 먼저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무지 많네. 나 부임할 때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마을에서 그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을 중앙에 있는 분수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있었으니까.

이레아는 이곳에 온 날부터 매일 마을에 나가서 아픈 사람들에게 신성력을 베풀어 주었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도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었다.

누구도 하기 힘든 일을 태양처럼 밝게 웃으며 행하고 있는 이레아의 모습은 천사가 내려온 것 같아다.

“빽!”

“저 녀석...”

모자를 써서 얼굴을 가린 뒤 한쪽구석에서 이레아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잡을 새도 없이 빽빽이가 이레아에게 날아갔다.

“어? 빽빽아?”

치료를 끝낸뒤 마을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던 이레아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빽빽이를 껴안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유렌님!”

“오랜만입니다. 성녀님.”

이레아는 오른쪽 구석에 있던 나를 찾아낸 뒤 한걸음에 달려왔다.

“영주님!”

“영주님이셔!”

“영주님을 뵙습니다!”

모자를 벗자, 날 알아본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왔다.

“모두 일어나시오.”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이레아를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이레아의 볼은 여전히 옅은 홍조가 있었고,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희 영지민들을 치료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되요.”

이레아는 수줍은 듯 몸을 베베 꼬면서 말했다. 예전보다 약간 목소리가 커진 것 같았다.

“오늘 치료는 끝나신 건가요?”

“네. 치료는 끝났어요.”

“그럼 같이 돌아가시죠.”

“아, 네!”

이레아를 데리고 마을 중앙을 빠져나왔다. 그녀의 주위엔 후라켄의 집에서 봤던 여기사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제가 먼저 초대해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저야 말로 갑자기 와서 죄송해요.”

이레아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곁눈질로 계속 날 쳐다보고 있었다.

“마을은 보셨습니까?”

“아, 전 매일 분수대 근처에만 있어서...”

“그럼 잠시 걷다가 가시죠. 마을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네!”

이레아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가이린의 이곳저곳을 소개해주며 마을을 거닐었다.

다만 우리가 마을을 돌수록 뒤에 사람들이 붙기 시작해서 나중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추종자처럼 우릴 따라오고 있었다.

“음, 사람이 너무 몰리네요. 오늘은 이만 들어가시죠.”

“그게 좋겠네요. 사람들이 다칠지도 모르니.”

이레아와 같이 영주성으로 돌아온 후 그녀에게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이레아는 기쁘게 초대를 받아들였고, 준비를 한다며 바로 방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다 일리아가 있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챵!

컁!

연무장입구에 도착하니,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음.”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아린과 일리아가 대련을 하고 있었고, 브리카와 크라이드는 옆에서 그 경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챵!

챠장!

힘과 무게 위주의 일리아의 검술에 속도와 정교함이 붙어 있었고, 아린의 속도위주의 검술에 일리아의 무게감이 쌓여 있었다.

“둘 다 많이 성장했네.”

일리아와 아린은 서로 대련을 하며 상대의 장점을 흡수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쟤네는 이미 한판 한 것 같고.”

크라이드와 브리카가 헉헉 대는 것을 보니, 저 녀석들도 이미 대련을 했던 것 같다. 둘은 지친상태에서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둘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캬앙!

치이잉!

일리아는 한 번에 아린을 몰아치지 않고, 검을 펼칠 수 있도록 대련의 리듬을 조절하며 아린이 실력을 펼칠 수 있게 해주었다. 대련이라기보다 지도대련 같은 느낌이었다.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대련이 끝난 후 아린과 일리아가 검을 집어넣었다. 지쳐있는 아린과 달리 일리아는 아직 여유가 있어보였다.

“저 녀석도 도움을 주는군.”

일리아는 이레아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날 도와주고 있었다.

그녀의 장점은 무력이니, 내 기사들과 대련을 하며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검으로 짚어주고 있는 것이다.

“둘 다 훌륭하네.”

“영주님!”

“영주님!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이제야 왔어?”

내가 다가가자 아린과 크라이드, 브리카가 일어나서 인사를 해왔고, 일리아는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 집처럼 말한다.”

“언젠가는 내 집이 될지도 모르잖아.”

“음...”

뭐라 대꾸하기 애매해서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런데 웬일이야?”

“너희 영지에 놀러간다고 했잖아. 너하고 대련도 해야 하고.”

“그거 진심이었어?”

왕궁에서 일리아에게 정식으로 대련을 받아준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당연한 거 아니야? 난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

일리아는 당장이라도 하자는 듯 바로 의자에서 일어났다.

“넌 괜찮겠지만, 내가 피곤해.”

“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피곤하다고 말하자, 일리아가 표정을 찡그리며 물었다.

“잠시 바람 쐬러.”

내 말을 들은 일리아의 눈매가 좁아졌다.

“너희는 돌아가 보도록.”

“예!”

“일리아님. 대련 감사드립니다.”

“그래. 모두 수고했어.”

아린과 크라이드, 브리카는 나와 일리아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고마워.”

“뭐가?”

“저 녀석들의 수련을 도와줘서.”

“그냥 심심해서 했을 뿐이야.”

일리아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세 명 다 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데, 어떻게 저들을 모은 거야?”

“운이 좋았지.”

“부러울 정도의 운이네.”

일리아는 내 기사들이 표정을 지었다. 본인 역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의 숨겨진 재능을 파악한 모양이다.

“저녁이나 같이 먹자..”

“알겠어.”

일리아는 날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좀 씻어야겠으니, 먼저 가볼게.”

일리아가 성으로 가는 것을 본 후에 이번엔 산으로 올라갔다.

페루는 로디엔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난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보법까지 사용해가며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빽!”

에킬 산 정상 근처에 도착하자, 빽빽이가 커다란 나무 위로 날아올랐다.

“그래. 그래.”

나무위엔 엘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로디엔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날아온 빽빽이를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오셨군요.”

“잘 지내셨습니까?”

“네. 집사 분이 과할정도로 챙겨주셨어요.”

“다행이네요.”

로디엔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내려온 나무와 주변을 살펴본 뒤 다시 로디엔을 쳐다보았다.

“고맙습니다.”

“뭐가요?”

“에킬산을 이렇게 푸르게 만들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알고 계셨나요?”

“네. 이렇게 변해가는데 모를 수가 없죠.”

로디엔은 매일 에킬 산에 올라와서 황폐화 된 숲과 나무를 가꾸고, 정령의 힘으로 용병단에게 큰 피해를 줄 대형 몬스터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었다.

“수고스러우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다음엔 저도 좀 데려가 주세요.”

“네?”

“도박장도 아직 안 생겨서 심심한데, 다음에 바람을 쐬러 가실 땐 저도 데려가 달라구요.”

로디엔은 그 말을 하며 방긋 웃고 있었다. 뒤에 비치는 노을 때문인지 그녀는 더욱 아찔한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다음에 같이 가시죠.”

“정말이죠? 약속했어요?”

“네. 약속드리겠습니다.”

다음에 생길 사건에서 엘프인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부탁을 하려했는데, 알아서 가준다니, 고마운 일이다.

“기다리시던 도박장은 이틀 후에 열릴 겁니다.”

“에이! 당연히 알고 있죠. 이 마을에서 제가 그날을 가장 기다리고 있을 걸요.”

로디엔은 그것만을 기다렸다는 듯 도박장을 이야기하며 눈을 별처럼 반짝였다.

“하하! 그러겠네요.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내려가시죠.”

“그래요.”

**

로디엔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난 마이라와 애리를 찾아갔다. 둘은 페루가 지정해준 방이 마음에 드는지, 방을 정리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의 방을 나와 몸을 씻고, 예복을 갖춰 입은 다음 페루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유렌님!”

식당의 문을 열려고 할 때 뒤에서 급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마이라가 맨발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코에선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마이라? 무슨 일이야!”

“헉, 헉!”

마이라는 자신의 방에서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는지 숨을 몰아쉬었다.

“무슨 일이야?”

“아, 아저씨가 보여주셨어요.”

“보여줘?”

그녀가 말하는 아저씨인 브래넌을 쳐다보았다. 그는 평소처럼 느긋한 표정이 아니라, 무섭도록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저씨가 제 머릿속으로 오시더니, 앞으로의 미래를 보여주셨어요.”

강림 예지.

예지 특성이 발휘되어 그녀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던 것 같다.

같은 예지 특성을 가지고 있는 브래넌이 강림되어서 더욱 정신력 소모가 컸을 텐데, 여기까지 달려오다니, 보통일이 아닌 모양이다.

“뭘 봤는데?”

“이, 이곳이 습격당하는 것을 봤어요. 처음엔 마을이 습격당하고 있어서 어디인지 몰랐지만, 제가 있는 이성이 보여서 가이린이 습격당하는 것을 알았어요.”

“습격? 누가!”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내 정체가 들키지 않도록 그렇게 조심했는데, 습격이라니!?

“일단 그때 이빨이라고 하셨던, 괴물들하고, 붉은 피부를 가진 거대한 괴물, 그리고 여러 몬스터들도 있었어요.”

그렇다면 습격자가 누구인지는 정해져 있었다.

글러트니.

글러트니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을 알아챘고,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지금 움직일 수 없을 텐데, 대체 어떻게...

“혹시 다른 건 본거 없어? 시간이라던가, 날짜라던가.”

“일단 시간은 밤이었어요.”

“밤, 그리고?”

“마을의 여러 가지를 봤는데, 그중에 축, 개업이라는 글씨가 있었고...”

“개업?”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가이린 카...’라고 적힌 간판이 옆에 있었어요.”

“카지노!”

손바닥을 탁 쳤다.

아주 중요한 힌트를 얻었다. 마이라가 말한 ‘가이린 카’는 이번에 열릴 가이린 카지노의 간판일 거다.

거기다 개업이라는 표시를 봤다고 했으니, 놈들은 이틀 후 도박장이 열리는 날에 습격을 한다는 의미였다.

“페루.”

“네?”

나와 마이라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고 벙쪄있는 페루를 불렀다.

“관리관과 치안관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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