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아그네스의 강화 (2) (121/241)

아그네스의 강화 (2)

아그네스와 보석이 맞닿은 순간 방을 전체를 불태울 것 같았던 열기들이 아그네스의 투명한 빛에 흡수되었다.

화아악.

하얀빛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하며 다시 한 번 붉은 빛을 내뿜었다.

우웅.

모든 빛이 사그라졌고, 아그네스는 내가 항상 차고다녔던 팔찌 모양이 되어 허공에서 내려왔다.

“보석이 생겼네.”

“빽!”

팔찌형태의 아그네스의 한가운데에 새끼손톱만한 붉은 보석이 박혀있었다. 형태는 셸던의 루비와 완전 같았지만, 크기만 축소시켜놓은 것 같았다.

“어떻게 됐어?”

-지금부터 네가 원한다면 어떤 무기에도 화속성을 부여 할 수 있어. 단검이든 , 검이든, 도끼든 상관없이. 거기다...

“거기다?”

-방패나 갑옷 같은 것으로 변하면 화속성 저항력을 가질 수 있어. 5서클 화염 마법에도 영향 받지 않을 거야.

“대박!”

“빽!”

생각이상으로 융합이 잘 된 것 같다. 앞으로 아그네스의 효율성이 더욱 높아질 것 같다.

화속성은 사대 속성 중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암기술이든, 검술이든 이전보다 훨씬 강한 위력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잘했어. 아그네스.”

-으윽, 뭐하는 짓이야!

팔찌로 변한 아그네스를 강아지 만지듯이 쓰다듬어 주었다. 아그네스는 소리는 쳤지만 싫지만은 않은지 가만히 있었다.

“수고했다.”

아그네스를 오른쪽 팔목에 끼우고, 기분좋게 울고 있는 빽빽이를 보았다.

“이제 네 차례야.”

“빽?”

마법 주머니에서 아까 챙겨놓은 화염의 정령석을 꺼냈다.

“빽!”

빽빽이는 화염의 정령석을 보자마자, 며칠 굶은 사람처럼 정령석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어허!”

날아오는 빽빽이의 부리를 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고맙다고, 인사부터 해야지.”

“빽?”

“쓰읍...”

“빽...”

내가 표정을 굳히자, 빽빽이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까딱였다.

“하하하!”

그 모습이 귀여워서 참고 있던 웃음이 터졌다. 결국 참지 못하고 정령석을 빽빽이에게 건네주었다.

“빽!”

화아악!

빽빽이는 정령석의 가운데를 부리로 툭툭 건드린 후 안에 들어 있던 화속성 정령의 기운을 흡수했다.

[벨로아]

정령계와 인간계 사이에서 살고 있는 정령수 중 하나. 정령수는 4대 정령 중 한 가지의 속성을 타고나지만 벨로아는 어떤 속성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속성 : 물(고대 1단계), 바람, 화염.

특성 : 길잡이.

빽빽이의 정보를 보자 속성에 화속이 추가되었다. 아직 어려서 화력 자체는 약하지만, 녀석의 유용성은 웬만한 마법사들 뺨을 후릴 정도다.

“맜있?”

“빽.”

빽빽이를 쓰다듬어 주고, 포메라가 있는 방으로 갔다. 녀석은 침대 밑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다.

“음...”

방해하기 싫어서 의자에 앉아서 잠시 기다렸다. 20분정도가 지나자 포메라가 눈을 떴다.

“왔소?”

“명상은 잘 돼?”

“그렇소. 전에도 말했듯이 장소를 옮기는 것도 새로운 수행이 되는 것 같소.”

“...그러냐.”

이제 나보다 이 녀석이 마나 명상에 대해 더 잘 알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선 뭐라 말할 것이 없었다.

“이제 돌아갈 것이오?”

“잘 아네.”

“주인과 지낸지도 꽤 시간이 흘렀으니. 모를 수가 없소.”

“뭐, 가긴 가는데, 일단 한 가지 얘기 좀 하려고, 줄 것도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요?”

내 목에 걸려있던 성석 목걸이와 주머니에 있던 성석 팔찌를 방에 있던 테이블위에 올려놓았다.

“만져봐.”

“여기서 내 상극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소.”

“맞아. 이것들은 거대한 성석에 있던 신성력을 손상시키지 않고 모아놓은 물건들이야.”

“그런데 언데드인 내게 왜 만져보라는 거요?”

“이게 네게 걸린 저주를 벗어나게 할 유일한 방법이니까.”

포메라의 눈 속에 타오르는 푸른 불꽃이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게 대체 무슨...”

“일단 만져봐.”

“알겠소.”

파지직!

포메라의 새하얀 손가락이 목걸이에 닿자마자 빛과 어둠이 섞인 것 같은 스파크가 튀겼다.

“으음...”

“어때?”

“뭘 물어보시오. 당연히 아프오.”

“그래. 아프지.”

“음?”

포메라가 날 미친놈 보듯이 쳐다보았다. 아직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언데드가 된 이후 고통을 느낀 건 내가 네 혼의 구슬을 만질 때뿐이잖아.”

“어? 그, 그렇소.”

“그건 흑마법사 아이자크도 마찬가지야. 놈도 언데드이기 때문에 고통에 익숙하지 않다고.”

언데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좀비나 구울들은 팔다리가 잘려도 계속해서 인간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그런 언데드들에게 고통을 주는 유일한 힘이 바로 신성력이다.

“네가 7서클이 되어 아이자크의 구슬의 봉인이 깨지기 전에 성석 목걸이, 성석 팔찌 그리고 곧 얻을 성석 반지를 찾아서 네게 끼울 거야.”

“으음...”

“세 아이템의 효과로 넌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될 거다. 그 고통은 네 몸에 들어온 아이자크도 똑같이 느끼겠지. 너와 아이자크는 그 고통을 느끼며 서로 정신력 싸움을 벌일 거다.”

“그래서 내게 마나 명상을 시킨 것이오?”

“그래. 꾸준한 마나명상으로 네 정신력은 평범한 단계를 넘었어. 성석 세트가 주는 고통에도 견딜 수 있을 거다. 반대로 구슬에 쳐 박혀 있던 아이자크는 널 먹어 치울 수는 있지만, 고통에는 견딜 수 없을 거다.”

“아!”

포메라는 이제 내 의도를 완전히 알아듣고, 홀린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자크가 견디지 못하고 네 몸을 빠져나오는 순간, 내가 놈을 제거한다.”

“알겠소. 주인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완벽하게 파악했소.”

“그럼. 받아.”

“음...”

포메라에게 성석 팔찌를 건네주었다. 포메라는 자신의 손으로 받지 않고, 천으로 팔찌를 감싸서 받았다.

“여유가 될 때마다 팔찌를 차서 성석이 주는 고통에 익숙해져. 그래야 좀 더 버티기 쉬울 거다. 지금의 네 정신력이라면 가능할 거야.”

“알겠소.”

포메라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공간에 성석 팔찌를 넣었다. 녀석은 나를 쳐다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럼 주인이 이곳에 와서 찾아야 한다는 보물이 이 성석 팔찌였소?”

“그런데?”

루비와 성석 팔찌 두 개가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맙소. 주인.”

포메라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진심이 가득 담긴 말을 전했다. 녀석이 저렇게 머뭇거리는 것은 정말 자신의 마음을 보여줬다는 뜻이었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이름: 포메라]

[특성: 구현lv3, 마나 설계lv3, 마나응용lv4, 리치(Lich), 명상lv3, 환혼lv3, 지휘관의 무게 ]

[호감도: 67 (상당한 호감) ]

포메라의 신뢰도가 상당히 많이 상승했고, 특성들의 레벨도 한 단계식 올라갔고, 지휘관의 무게라는 추가적인 특성도 생겨났다.

지휘관의 무게라는 특성은 내가 포메라에게 강력한 보스 몬스터만 넘겼기 때문에 생겨난 특성 같다. 저 특성은 가지고 있어도 소환한 몬스터들의 능력치가 상승하는 패시브 특성이다.

내 주위사람들은 나로 인해서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렇게 쳐다보시오?”

“보긴 뭘 봐. 할 말 다 했으니까. 나가서 마법진이나 그려 인마.”

“가이린이오?”

“당연하지.”

“마을 밖에 나가서 그리고 있겠소. 3시간후에 찾아오시오.”

포메라를 보내고, 마이라와 애리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제 우리 집으로 갈 거야.”

“어? 누, 누구...”

“나야 유렌.”

“헉!”

마이라와 애리는 내 진짜 얼굴과 검은 머리색을 처음 봤기 때문에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자, 잠시 만요. 검은 머리에 유렌이라는 이름을 쓰신다면...서, 설마 유렌 록스님?”

“맞아. 이제 알아보네.”

“헉! 죄,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사정이 있으신 용병님이라고만 생각해서...”

마이라가 고개를 계속 숙이자, 애리도 따라 하려고 움직였다.

“죄송은 무슨. 이제 집으로 갈 거니까 이곳을 떠날 준비하라고.”

“그럼 가이린으로 가시는 건가요?”

“그것도 알아?”

“저도 크라시스 왕국 사람이니까요. 유렌님을 모를 수가 없죠. 머리색도 다르고, 얼굴도 달라서 그냥 동명이인이라고 만 생각했어요.”

“당연히 그랬겠지.”

“가이린?”

애리는 가이린을 모르는 지, 가이린을 중얼 거렸다. 난 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주었다.

“그래. 이제 그곳이 네 집이 될 거야.”

**

보라색 천막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장소에 로브를 뒤집어쓴 창백한 피부의 여자가 테이블 안쪽에 앉아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불투명한 수정구슬이 박혀 있었다.

천막의 구석에는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비실비실해 보이는 남자가 거북목을 한 채 쭈그려 누워있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무감정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 네가 가야해.”

“아...”

남자는 말하는 것조차 귀찮은지, 여자를 쳐다보지 조차 않고, 바닥만 보고 있었다.

“슬로스.”

“음...”

여자가 이름을 부르자, 남자가 고개를 아주 조금 들어올렸다.

“슬로스!”

“네...가 가면 되...잖아. 글러트니...”

슬로스의 말은 어눌했고, 느릿해서 참을성이 없는 사람을 듣기 힘들 정도였다.

“지금 움직일 수 없는 거 알잖아. 위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어. 거기다 능력을 한 번 더 사용해서 이제 능력에 여유가 없어.”

“하...지만 귀찮...은데...”

슬로스는 귀찮다는 말조차 굉장히 천천히 말하고 있었다.

“좋아. 네가 해결해 준다면 나중에 있을 1차 전쟁에서 빼줄게. 그 놈이랑 싸우지 않아도 될 거야.”

“음...”

글러트니의 제안에 슬로스가 조금 움찔 거렸다.

“정...말이야?”

“그래. 거기다 올해 악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돼.”

“음...”

슬로스는 상황을 계산하다가 그것도 귀찮았는지, 생각을 멈추고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른 것만이 아니라 키도 작아 150cm 정도 밖에 되어보이지 않았다.

“어때? 할래?”

“알...겠어...”

“그래. 잘 생각했어.”

글러트니의 한쪽 입 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일단 무조건 죽여 할 놈들은 이 용병, 그리고 이 남자.”

테이블에 있던 수정구슬에 사람의 얼굴이 비쳐지기 시작했다. 처음의 얼굴은 유렌이 변했던 용병 베일스, 두 번째는 유렌 본인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무조건 살려야 하는 인간은 이 여자. 그곳을 전부 부숴도 이 여자는 살려야 돼.”

“음... 귀찮은...데...다 죽이면... 안...돼?”

“그럼 넌 일단 저 두 인간과 널 공격하는 놈들만 모두 죽여. 나머지는 내 부하들을 보낼 게.”

“알...겠어...”

슬로스는 글러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순식간에 천막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업었던 것처럼.

**

포메라의 도움으로 나와 마이라 애리는 내가 자주 이용하는 워프장소 에킬산 중턱으로 이동했다. 포메라를 돌려보내고, 우리는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여기가 가이린 영지인가요?”

“그래. 영주성 뒤에 있는 에킬 산이야.”

“제국에서 순식간에 크라시스왕국에 도착하다니, 마법 은 정말 신기한 것 같아요.”

“편리하지.”

“어, 영주님!”

마이라와 애리에게 가이린을 설명해주며 산을 내려갈 때 경계를 서고 있던 용병단의 단장 거트가 내게 인사를 해왔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오. 별 일 없소?”

“네. 지루할 정도로 별일이 없습니다. 마나석 채굴도, 다가오는 몬스터 처리도 순조롭습니다.”

“다행이오. 그럼 계속 수고해주시오.”

“알겠습니다!”

거트만이 아니라, 다른 용병들도 같이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다시 사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음?”

“아, 아닙니다!”

거트가 나를 쳐다보다가 탄성을 질렀다. 무언가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거트는 날 못 본 척 하고 경계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음...”

“왜 그러세요?”

“아니,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어보였는데, 일단 내려가자.”

“네!”

우리는 산의 경치를 구경하며 영주성의 뒷문으로 향했다.

“헉! 영주님!”

“영주님을 뵙습니다!”

“영주님이라고?”

뒷문에서 근무를 서던 병사들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 급하게 인사를 해왔다. 그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페루?”

병사 뒤에 있던 사람은 페루였다. 오랜만에 본 녀석은 이상할 정도로 볼이 홀쭉해져 있었다.

“영주님!”

“너 왜 이렇게 말랐냐? 밥 안 먹고 뭐했어.”

“지금 밥이 문제가 아닙니다! 큰 일 났어요!”

“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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