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마이라 (115/241)
  • 마이라

    -으, 저게 뭐야?

    ‘글러트니의 이빨.’

    아그네스도 글러트니의 이빨을 보고 강한 혐오감을 느꼈는지, 팔찌 상태인 자신의 몸을 움찔거렸다.

    -이빨이라고? 저 괴물들이? 글러트니는 또 뭐야?

    ‘글러트니라는 괴물이 자신의 이빨을 뽑아서 바닥에 뿌리면 저런 놈들을 소환할 수 있어.’

    -너랑 다니다보니, 이상한 건 다보고 다니는 것 같아. 이빨로 부하를 소환하는 괴물이 있다니.

    글러트니의 이빨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글러트니 혹은 놈의 부하들이 이곳에 다녀갔다는 것을 뜻한다. 그냥 넘어갈 상황이 아니다.

    -뭐하는 거야?

    ‘이곳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어.’

    놈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검은 쥐에 내력을 더 집어넣고, 내 발걸음 소리와 기척을 최대한 죽이며 다시 골목으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까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접근했기 때문에 글러트니의 이빨은 날 감지를 하지 못했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 볼까.

    그 상태로 브래넌이 살았던 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노숙을 했던 장소답게 주변은 더러웠지만 내가 보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옷 위의 흙탕물, 썩어가는 음식들, 찢어져서 누더기가 된 천막을 보니 브래넌이 이곳에서 사라진지 못해도 4일에서 5일은 지난 것 같았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났다면 브래넌은 이미 산 사람이 아니다. 한참 전에 글러트니에게 먹혔을 것이다.

    살며시 골목을 빠져나와, 아무도 없는 벤치에 주저앉았다.

    “젠장...”

    -대체 무슨 일이야?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자,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아그네스가 질문을 해왔다.

    “예언자가 죽었어.”

    -죽었는지는 아직 모르잖아. 단순히 잡혀간 것일 수도 있고.

    “아까 글러트니라는 놈에 대해 말했지.”

    -응. 자신의 이빨로 부하를 소환한다는 괴물.

    “그 놈에게 잡혀간 지 4일 이상 지났어. 예언자는 이미 한참 전에 죽었을 거야.”

    4일이 뭔가, 내가 아는 글러트니라면 브래넌을 잡아간 그날, 혹은 이곳에서 바로 브래넌을 먹어치웠을 것이다.

    -왜 예언자를 죽였을까? 예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아그네스에겐 사실을 말해주기로 했다. 그녀가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으니까.

    “글러트니는 생명체나 시체를 먹어서 그들의 능력을 자신을 것으로 만들 수 있어.”

    -뭐, 뭐라고?

    아그네스가 믿기 어렵다는 듯 말을 더듬었다.

    -마, 말도 안 돼! 그런 능력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당연히 제약이 있고, 제한도 있지만, 어찌 됐든 능력은 쓸 수 있어.”

    - 미쳤어...

    “그래서 예언자가 살아 있지 않을 거라고 한 거야. 한참 전에 놈의 뱃속에 들어갔을 테니. 다만 글러트니는 브래넌과 비슷한 수준의 예지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딱히 바뀌는 것이 없을 텐데, 대체 왜 브래넌을 노린 거지?”

    글러트니가 브래넌을 잡아가는 건 원작에 전혀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베일 때부터 느꼈지만, 글러트니는 이상할 정도로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놈에게 무슨 일을 벌어져서 지금 같은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브래넌의 정보를 알아차린 건지도 모르겠네.”

    글러트니가 브래넌을 잡아가고, 이빨까지 놔두었다는 것은 브래넌의 능력인 점술이 예지 능력임을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글러트니가 가지고 있는 예지 능력엔 제한이 많은데 어떻게 브래넌의 정보를 알아낸 건지 모르겠다.

    “답답하네.”

    예상 밖의 일이 있어났기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계획자체가 송두리 채 바뀐 것도 문제지만, 글러트니와 정면으로 부딪칠 위험이 있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예전에 이곳에서 싸웠던 거 기억나?”

    -그 돌창, 돌기둥을 쓰면서 점점 몸집이 커지던 놈? 인간이 아니었지?

    “맞아. 그 놈도 괴물이지. 하지만 글러트니가 더 위험한 놈이야.

    -정말?

    “글러트니에 비하면 그 돌창을 썼던 놈이 훨씬 편하지.”

    아그네스를 겁주려고 한 말이 아니다. 당시에 내가 몰아세웠던 엔비는 이미 질투의 특성을 사용하고 왔기 때문에 힘이 상당히 빠진 상태였다.

    자신의 욕망을 마구 충족시키고 있는 글러트니는 당시의 엔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강한 상태일 거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다음 예언자를 찾아가야지.”

    -아는 예언자가 또 있어?

    “예언자도 다 특성이 달라, 이곳에 있던 점술사가 나랑 가장 잘 맞을 사람이었는데. 아쉽게 됐어.”

    -어, 근데...

    아그네스가 생각을 하는 듯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거기도 예언자는 없고, 또 저 괴물들만 있으면? 혹은 글러트니가 나타나면 어쩔 건데?

    아그네스가 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나도 앞으로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계산해보았다.

    솔직히 지금의 내가 글러트니와 맞붙어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도망치는 것이 고작일지도 모르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도망쳐야지.”

    -엑?

    글러트니를 만나면 예언자를 포기하고, 글러트니의 부하나, 이빨만 나타나면 예언자를 구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뭐가?

    “글러트니가 예언자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만났다면, 큰 손해를 봤을 거야. 단숨에 죽었을 지도 모르고, 이쪽의 정보를 노출 시켰을 수도 있고.”

    -아!

    “상황을 알았으니까, 지금부턴 대비를 할 수 있잖아.”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사천상회로 돌아갔다. 모카건은 아직 집에 가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신 일은 잘... 되시지 않은 모양이군요.”

    모카건은 내 분위기를 보고, 바로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다.

    “찾아간 점술사가 죽었습니다.”

    “네?”

    모카건이 놀라서 들고 있던 서류를 떨어뜨렸다.

    “저는 몰랐지만, 브래넌은 나름 유명한 점쟁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쩌다가...”

    “그의 죽음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지마세요. 절대로.”

    “네?”

    “사천상회에 들린 누군가가 그를 찾았다는 것,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 말한 것. 누구에게도 말하시면 안 됩니다. 특히 제게 정보를 주었던 상인을 주의시켜주세요.”

    “어... 알겠습니다.”

    모카건은 내 진지한 목소리와 표정에 압도되어 고개만 끄덕였다.

    “모두 사천 상회를 위한 겁니다. 지금 이 시간 부로 브래넌이라는 점술사를 잊으시고, 이번 일에 절대 관심을 가지지 마세요.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떠나시는 겁니까?”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모카건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급한 일이 생겨서요.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조, 조심하십시오!”

    “네. 그럼.”

    사천상회를 나온 후 바로 성 밖으로 빠져나와서 워프로 도착했던 커다란 나무 밑으로 향했다. 주머니에서 포메라의 혼의 구슬을 꺼내 녀석을 소환했다.

    “주인. 하루도 안 되서 또 부르는 건 너무 한 것 아니오?”

    “자미스 후작령으로 보내줘. 빨리.”

    “음? 제국의 자미스 후작령 말이오?”

    “그래.”

    포메라는 내 얼굴을 보고 급하다는 것을 파악했는지, 별말을 하지 않고 바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음...”

    포메라가 마법진을 그리는 동안 난 앞으로 움직일 방향을 확실히 정리 했다.

    지금 가는 곳은 예언자를 찾으러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는 브래넌과 달리 정착해서 편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

    다만 그조차 글러트니에게 공격을 당했다면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예언자를 찾을 게 아니라, 마지막 예언자를 찾아가야 할 것 같다.

    “주인 다 됐소. 올라오시오.”

    “고맙다.”

    “그럼 보내겠소.”

    마법진 위로 올라가자, 포메라는 바로 마법을 발동시켰다. 눈앞에 있던 거대한 나무가 사라지고, 양 옆으로 낮은 건물들이 보이는 골목 사이가 보이고 있었다.

    “주인이 급한 것 같아서 성 안쪽으로 보냈소.”

    골목 사이의 먼지가 모여들어 작은 해골이 되어 나타났다.

    “오늘 너 몇 번 더 불러야 할 것 같아.”

    “음, 그럼 그냥 따라다니겠소.”

    포메라는 자신을 투명하게 만든 뒤 풍선처럼 허공에 둥둥 떠서 내게 붙었다.

    “여기 위치는 어떻게 되지?”

    “여기서 500m만 동쪽으로 가면 자비스 후작령의 중앙이요.”

    “그럼 여기가 서쪽이군. 딱 좋아. 아그네스.”

    -응.

    “다른 얼굴로 바꾸자.”

    -알겠어.

    혹시나 문제가 생길지 몰라 다른 평범한 외모로 바꾼 뒤에 골목을 나와 서쪽 거리를 향해 움직였다.

    아직 자정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며 예언자가 살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음...”

    깔끔한 외관을 가진 건물의 간판에 다가넬의 타로 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곳이 두 번째 예언자 다가넬이 사는 곳이다.

    다가넬은 브래넌과 다르게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타로 점을 봐주며 편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안에선 사람의 숨소리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유렌. 여기도 뭔가 이상해.

    “주인. 인간의 생기가 느껴지지 않소. 오히려...”

    아그네스와 포메라도 건물 내부에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오히려 뭐?”

    “오히려 뭔지 모를 사기가 느껴지고 있소. 아주 미약하지만...”

    “네크로맨서라 그런가? 어두운 기운은 잘 느끼네.”

    나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포메라가 느끼고 있었다. 그럼 이 안에도 글러트니의 이빨이 있다는 뜻이다.

    “주인?”

    -유렌!

    쾅!

    은신을 사용하거나, 기척을 죽이지 않고 바로 점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응? 안계시나?”

    건물 내부는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지만, 테이블과 의자엔 얇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상태를 보니 브래넌 보다 다가넬이 먼저 잡혀 간 것 같다.

    “다가넬님! 어디 가셨나요?”

    일부러 소리를 내면서 다가넬을 찾는 사람인 척 행동했다.

    “어디 가셨나 보네.”

    건물 안을 한 바퀴 둘러봤지만 다가넬도 없고, 글러트니의 이빨도 나오지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온 뒤 어설픈 은신을 사용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부그그.

    좀 전에 아무 일 없이 지나갔던 테이블 앞에 가자, 밑에서 구정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구정물들은 형태를 갖추더니, 글러트니의 이빨이 되었다. 바로 제대로 된 은신을 사용해서 글러트니 이빨들의 감지를 피했다.

    “꺼억!”

    이빨들은 주변을 살피다가 나를 알아채지 못하고 다시 바닥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인가.

    모든 확인을 끝내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주, 주인 저게 대체 뭐요?”

    -첫 번째 들어갔을 땐 나오지 않다가, 왜 두 번째엔 나온 거야?

    “명령을 내린 거야. 누군가가 은신을 해서 들어오거나, 의심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공격하라는 식으로, 처음에 들어갔을 땐 대놓고 들어가니까. 반응을 하지 않은 거야.”

    -아,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만 반응을 한 거구나.

    “맞아. 일단 다시 움직이자. 상황이 훨씬 급해졌어.”

    두 번째 예언자인 다가넬도 글러트니에게 잡아먹힌 것이 확실했다.

    “지금은 순서를 지킬 때가 아니야.”

    세 번째 예언자를 찾을 게 아니라, 순서를 건너뛰어서 아직 자신의 힘을 개방하지 못한 마지막 네 번째 예언자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주인 저게 대체 무엇인데 그러시오.”

    “가면서 얘기해줄게. 다음 목적지는 크라시스 왕국. 카렌스 백작령이야.”

    **

    “마이라 언니! 저, 저게 대체 뭐야!”

    “나도 몰라!”

    짧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마이라는 등에 어린 여자아이를 업고 거친 숲속을 달리고 있었다.

    “꺼억!”

    “꺅!”

    그들의 뒤에선 뭔지 모를 괴물들이 트름 소리를 내며 쫓아오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이라는 전신에 소름이 돋아오는 것을 느꼈다.

    “언니, 괴물들이 계속 쫓아와!”

    “뒤를 보지마!”

    여자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비명을 질렀지만, 마이라는 입술을 깨물며 앞만 보고 달려나갔다.

    “어디 있지? 제발, 제발!”

    마이라는 무언가를 간절히 찾으며 계속 숲속을 내달렸다.

    “으으...”

    뒤에 쫓아오는 괴물들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져서 공포에 잠기기 시작할 때 그녀의 앞에 커다랗고 둥근 바위가 나타났다.

    마이라는 다리가 긁히고, 발이 찢어지든 말든, 바위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헉! 헉!”

    바위 앞에 도착한 마이라는 업고 있던 여자아이를 내려놓고, 바위에 등을 기대어 숨을 몰아쉬었다.

    “어, 언니, 빨리 도망가야지.”

    “아니야. 여기 있어야 해.”

    “언니?”

    여자 아이가 손을 끌어도 마이라는 꿈적하지 않고 돌에 등을 기대고 움직이지 않았다.

    “곧 오실 거야.”

    “누가 오는데? 괴물은 바로 앞에 있다고!”

    “꺼억!”

    얼굴에 입만 달고 있는 괴물들이 역겨운 소리를 내며 그들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를 지켜줄 분이!”

    “꺼억!”

    쩌억!

    “꺄악! 언니!”

    괴물이 입이 마이라와 여자 아이를 통째로 삼켜버릴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마이라는 덜덜 떨고 있는 아이들을 껴안고, 고개를 숙였다.

    번쩍!

    “꺼억?”

    괴물의 입이 마이라를 삼키러 다가올 때 마이라와 괴물 사이에 작은 마법진이 생겨났고, 마법진 안에서 키가 큰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뭐야! 이놈이 왜 여기 있어!”

    촤악!

    남자는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괴물을 보고, 허리춤의 검을 뽑아서 그대로 베어버렸다.

    퍼엉!

    “하아...”

    괴물이 풍선처럼 터져나가는 것을 보며 마이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글러트니의 이빨이 여기에... 어?”

    워프를 사용해서 카렌스 영지에 도착한 유렌은 자신의 뒤에 있던 여자에게 창조주의 눈을 사용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네가 왜 여기에...”

    “아기 해골을 지니신 분! 역시 오셨군요!”

    유렌이 마이라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 마이라가 포메라가 있는 허공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너 이 녀석이 보여?”

    “네!”

    마이라의 손은 포메라가 있는 허공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어떻게? 거기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분이 이 바위 앞에서 당신이 나타나 저희를 구해 주실 거라고 하셨어요.”

    마이라의 오른손을 따라 그녀의 어깨 위를 보는 유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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