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제국 수도 (114/241)

제국 수도

“어? 자작님. 친구 분이 있으셨습니까?” 

페루는 순수한 표정으로 내 가슴을 사정없이 찌르는 질문을 해왔다. 

“페루. 너...” 

“아, 한 번도 못 봬서요...” 

“나도 친구 정도는 있어. 이 자식아.” 

“죄, 죄송합니다.” 

물론 여기 말고, 현실에... 

아니, 따지고 보면 이곳에도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몇 있다. 

일단 지금 갈 제국의 수도엔 사천상회의 주인인 모카건이 있다. 같이 고난을 넘긴 모카건 정도라면 나이를 떠나 친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에서 그를 찾을 땐 모카건의 도움을 받는 게 좋겠어. 

“어쨌든 갔다 올게. 별일 없으면 금방 돌아 올 거야.” 

“호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린님을 부를까요?” 

“정체를 숨기고 갈 거니까 괜찮아. 아린이나 크라이드, 브리카는 수련을 하고 있을 테니, 잘 챙겨줘.” 

“알겠습니다.” 

페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걱정 때문인지 석연치 않아보였다. 

“나 건드릴 수 있는 사람 몇 없으니까. 걱정 마. 파이란 관리관. 영지를 잘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자작님. 다녀오세요.” 

“그래.” 

둘의 인사를 받고, 에킬 산에 올라가서 마나석 광산과 광부들을 지키는 용병단들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들은 이미 친해졌는지, 서로 잡담을 나누며 웃고 있었다. 

잠시 간의 뿌듯함을 느낀 뒤 산위로 올라가서 포메라를 소환했다. 

“포메라.” 

“주인. 이번엔 어디인가.” 

포메라는 나오자마자,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내게 워프 장소를 묻고 있었다. 이제 자신의 역할이 내 붕붕이인 것을 확실하게 각인한 것 같다. 

“제국의 수도. 알루안.” 

“음, 멀기도 하지만, 알루안은 거대 마법진이 수호하고 있어, 그 안으론 직접 워프가 불가능하오. 마탑이 아니고서야 안으로 들어가는 워프는 쓸 수가 없소.” 

“알아, 감시병에 보이지 않을 정도 거리로 보내줘.” 

마법 주머니에서 용병복장과 용병패를 꺼내며 말했다. 용병의 등급과 자격은 대륙 공통이라 수도 입장에 별 어려움은 없을 거다. 

“알겠소. 다만 멀어서 시간이 좀 걸릴 거요.” 

“그래.” 

“빽.” 

“잘난 척 하는 새도 왔군.” 

“빽.” 

빽빽이는 포메라의 기운이 익숙해 졌는지, 포메라의 새하얀 쇄골에 올라탔다. 

“이제 이름 좀 외워라. 빽빽이다.” 

“무슨 이름을 그렇게 대충 지었소.” 

“음...” 

“빽!” 

빽빽이가 자신은 마음에 든다는 듯 포메라의 뼈를 몇 번 쪼았다. 포메라는 자신의 뼈를 쪼고 있는 빽빽이를 무시하고,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언자라...” 

이번에 내가 찾아갈 사람은 소설 세계관에서 예지와 예언, 점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예언자들이다. 

일반적인 방법으론 라시드를 찾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예언자의 도움을 구하려는 것이다. 

-예언자? 

“응?”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있던 아그네스가 오랜만에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내가 원하는 무기로 변해주긴 했지만, 말을 하지도 않고, 내 질문에 답을 해주지도 않았었다. 

-예언자에게 가는 거야? 

“너 그동안 뭐하느라 말도 안하고 있었어?” 

-그냥 생각, 고민. 

“생각?” 

-그래. 너랑 다니며, 내가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거든. 

“뭐?” 

아그네스가 변한다? 

이미 아그네스는 원작과 달리 특별한 능력, 더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 한 번 변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다. 

-너 예전에 예언자에게 듣고 날 찾아왔다고 했잖아. 

“그랬지.” 

거짓말이었지만. 

-예언자에게 날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봐줘. 

예언, 예지, 점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예언자들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다. 예언자마다 특성이 다르며 그 특성마다 제한까지 존재한다. 

영감(靈感)을 받는다면 보물의 행방이나, 던전의 위치, 인간의 미래 같은 것은 알지 몰라도, 아그네스의 능력의 개방은 절대 모를 거다. 

당연하겠지만 예언자는 만능자가 아니다. 아그네스의 새로운 힘의 개방은 내가 찾아야 하는 일이다. 

“알겠어.” 

-얼굴 변화 시킬 거지? 내가 해줄게! 

아그네스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내 얼굴에 달라붙어서 갈색 머리색을 가진 평범한 용병의 얼굴로 바꾸어주었다. 

“내가 특별한 건가...”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내 영향을 받아 강해지거나, 새로운 특성이 생기거나, 점점 변화하고 있다. 아무래도 내게 보이지 않는 어떤 능력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후, 주인. 다 되었소.” 

“네가 제일 특이하지.” 

성불하려하는 눈앞의 해골이 내 부하들 중에 가장 신기한 녀석일 거다. 

“뭐라고 했소?” 

“아니다. 지금 올라가면 되지?” 

“그렇소.” 

포메라가 만든 마법진의 가운데로 올라갔다. 

“항상 고맙다.” 

“음, 뭘 그런 거 가지고...” 

민망했는지 포메라는 있지도 않은 코밑을 만지고, 하얀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럼 전송하겠소.” 

번쩍. 

해골바가지가 사라지고, 앞에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멀리 높다란 성벽이 보이고 있었다. 제국의 수도 알루안이다. 

-잘 도착했소? 

“그래.” 

-그럼 난 가보겠소. 

“수고했어.” 

포메라를 보내고, 내 몸을 한 번 점검한 뒤 성벽에 어울리는 거대한 출입문으로 향했다. 

검문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내 앞에 물건을 들고 있는 상인들이 있어서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안의 물품은 뭐요?” 

“저희가 구매해온 폼스 열매입니다.” 

“사천상회? 요새 이름이 자주 들리는 상회로군.” 

“하하, 이름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습죠.” 

사천상회, 내가 모카건에게 지어준 이름이 들리고 있었다. 앞의 수레를 쳐다보니, 옆에 사천(四川)이라고 조그맣게 적혀있었다. 

제국에 오자마자, 사천 상회를 보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뒤에 사천상회의 진짜 상회주가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검문관님 끝났습니다. 전부 문제없습니다.” 

“그렇다는 군. 통과.” 

“감사합니다.” 

“다음.” 

내 차례여서 검문관에게 용병패를 내밀었다. 

“B급 용병 베인스. 수도엔 뭐 하러 왔소?” 

“당연히 일거리를 찾으러 왔죠.” 

“수도보단 사건이 터진 베뉴멜에 일거리가 많은 텐데?“ 

“거긴 목숨을 걸어야 하지 않습니까. 전 위험한건 싫습니다.” 

“흠, 통과.” 

검문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별말 없이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베뉴멜에 사건이 터졌다면, 그 일이겠군. 거기도 한 번 들려야겠는데.” 

검문관이 했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바로 앞에 지나간 사천상회 상인들을 찾아보았다. 

“저기 있네.” 

조금 전에 보았던 사천 상회의 수레가 왼쪽 대로로 이동하고 있었다. 조용히 뒤에 붙어서 그들을 따라 움직였다. 

사천상회의 상인들은 성문을 벗어나 한참을 움직여서 번화가의 3층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좋네.” 

건물의 외관은 상당히 깔끔했고, 주변 청소와 정리도 잘 되어있어 좋은 인상을 주고 있었다. 

상인들이 도착하자마자,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같이 수레의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천상회(四川商會).” 

혹시나 해서 적어준 한자가 건물 간판에 적혀있었다. 모카건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가슴이 조금 뜨끈해졌다. 

“무슨 일이시죠?” 

사천상회에 한 발 다가가자, 젊은 상인 한 명이 날 보고 다가왔다. 

“상회주님 계신가요?” 

젊은 상인에게 모카건이 줬던 증표를 보여주며 대답했다. 

“지금은 계시지 않습니다. 잠시 외출하셔서... 이건 뭐죠? 어?” 

모카건의 증표를 본 젊은 상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쪽으로 오세요!” 

젊은 상인은 연신 허리를 숙이면서 날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그 모습에 짐을 옮기던 다른 상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우릴 쳐다보았다. 

“회주님이 이 증표를 가져오는 분이 있다면 자신 이상으로 귀하게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랬군요.” 

“네. 모든 상인들에게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젊은 상인은 극존칭을 사용하며 날 3층으로 안내해주었다. 

“여기가 회주님의 방입니다. 안에서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회주님을 모셔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젊은 상인이 나가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책상엔 서류가 산더미 같이 쌓여있었고, 책장에 책과 서류는 꽉꽉 차있었지만, 사치품 같은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보면 문사의 방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다. 모카건은 나와 약속했던 대로 열심히 상회를 키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쿵쿵쿵. 

20분 정도 기다리자, 아래층에서 빠르게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쾅. 

“헉, 헉!” 

거칠게 문이 열리고, 숨을 헐떡이는 모카건이 반가운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유레... 슈아야. 그만 가 보거라.” 

“알겠습니다.” 

모카건은 내 이름을 부르다 말고, 자신을 데려온 젊은 상인을 내보냈다. 

탁. 

모카건이 문을 닫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만입니다! 유렌님.” 

“네. 오래간만이에요.” 

“하하하! 이곳에서도 유렌님의 소식은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제 소문이 퍼졌나요?” 

“당연하죠! 리자드맨 킹! 가이린 영지의 최상급 마나석, 가만히 있어도 유렌님의 소식은 계속 귀에 들어옵니다. 워낙 대단한 일들을 하시니까요!” 

내 소문들을 이야기하는 모카건의 입가엔 연신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우리 애들한테 유렌님이 사천상회의 진짜 회주라는 것을 얼마나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하. 참아주세요.” 

“당연하죠!” 

“어때요? 상회 운영은 할 만하십니까?” 

모카건의 집무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네. 아직 초반이라 그런지 다른 상회의 견제가 심하지 않아서, 바닥부터 차근차근 다지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어쩐 일로 제국까지 오셨습니까?”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말씀해주십시오.” 

모카건은 무엇이든 말만 하라는 듯 의자를 당겨 앉아 경청하겠다는 의사를 비쳤다. 

“찾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음, 어떤 사람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이름은 브래넌. 이곳에서 돌팔이 점술사로 이름이 알려져 있을 겁니다.” 

“브래넌이라...” 

모카건은 처음 듣는 이름인 듯 브래넌의 이름을 중얼 거렸다. 

“전 잘 모르는 사람이군요.” 

“수정 구슬을 들고 다니며, 엉터리 점을 봐주는 사람입니다. 수도 전체를 떠돌아다니는 인물이니, 랙커드를 이용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국 수도에도 알루안에도 당연히 랙커드가 있다. 그들에게 부탁을 하면 오늘 안에 브래넌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서든 오늘 안에 그 자의 행방을 알아내겠습니다.” 

모카건은 다른 상인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더니 바로 다시 올라왔다. 

“저기 유렌님. 제 부하 녀석이 그 브래넌이라는 점쟁이 봤다고 합니다.” 

“네?” 

“일주일 정도 전에 벨류라는 술집 옆의 골목에서 점을 치라고 하는 것을 거절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뜻밖의 수확이다. 랙커드에게 맡겨도 오늘 안에 결과를 주겠지만, 이러면 훨씬 편하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예전에 점을 쳐봤는데 완전 반대로 맞았다고, 엉터리라고 하던데요.” 

“반대로 맞는다면 제가 찾는 사람이 맞네요.” 

“그럼 바로 가시겠습니까? 안내를 붙여드리겠습니다.” 

“아뇨. 그자는 낮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밤에 찾아가겠습니다.” 

브래넌은 낮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점을 봐주고, 밤에 자신의 거처로 돌아간다. 지금 가봐야 만나기 힘들 거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괜찮습니까?” 

모카건과 대화를 나누다 해가 지면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전부터 알던 녀석들이라, 믿을 만합니다. 변장하신 유렌님이 이곳에 온 것도 소문나지 않을 겁니다.” 

“확실히 상인들의 얼굴이 밝아 보이더군요.” 

“성실하게 일하는 친구들은 잘 챙겨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 같네요. 하하!” 

모카건이 방긋 웃으며 대답하고, 책상 서랍을 열어 몇 장의 서류를 내게 건네주었다. 

“회주님이 오실지 몰라, 계속 보고 준비를 해왔습니다.” 

모카건이 준 서류엔 자금 사용내역, 현재 거래 중인 물품, 주거래 상회와 지역까지 적혀져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었고, 나름 잘 생각했지만 몇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여기 폼스 열매 말입니다.” 

“네.” 

모카건이 자신의 서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언제 파실 생각이죠?” 

“일단 묵혀둘 생각이었습니다.” 

“가격이 어느 정도 올랐다 싶으면 바로 파세요. 아무리 늦어도 가을 이전에.”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폼스 열매를 겨울까지 묵혀두면 조금 더 가격이 올라갈 텐데요.” 

“조만간 마탑에서 새로운 약품을 발표 할 겁니다. 폼스 열매보다 활력 효과가 좋지만, 가격은 훨씬 싼 약품을. 그게 나오는 순간 열매의 가격은 곤두박질 칠 겁니다.” 

“아!” 

모카건이 꿀꺽 침을 삼키더니, 바로 자신의 서류에 메모를 했다.. 

“그리고 소금 역시 빨리 파시는 게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모카건은 소금에 대해 묻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다. 

“식량은 모아두세요. 조만간 가격이 많이 오를 겁니다.” 

“네!” 

“이번 것들은 이유를 묻지 않으시나요?” 

“이 상회는 유렌 회주님의 것입니다. 저야 회주님이 시키는 일을 따를 뿐이죠. 거기다 폼스 열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분명 이유가 있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모카건이 신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내 말을 받아적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말씀드리고 싶네요.” 

내가 알고 있는 미래 정보를 모카건에게 알려주며, 살 물품과 조심해야 할 물품들, 그 이유까지 말해주었다. 

** 

밤이 되었고, 상인에게 들었던 길을 따라 브래넌이 노숙하고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밤이기도 하고, 성취도도 올리기 위해 칼의 검은 쥐를 발동한 상태였다. 확실히 이동속도도 빨라지고, 주변의 사람들은 날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주일 전에 봤다면, 아직 이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에 하는 의식이 있으니까. 

-예언자에게 가는 거지? 

“그래.” 

-기대된다. 

아그네스는 조금 들뜬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근처일 텐데.” 

벨류라는 술집에서 3건물 떨어진 골목 안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늦은 저녁인데도 안에 있어야 할 브래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안 왔나? 

골목 안으로 좀 더 들어가자, 사람이 생활했던 흔적들이 있었다. 누더기 같은 이불, 먹다버린 쓰레기들, 걸레 같은 옷까지 딱 노숙자의 물건들이다.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지 며칠 된 것 같았다. 이미 떠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한 걸음 더 걸었을 때였다. 

부그그. 

이불과 천막이 있던 바닥에서 새까만 액체 같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부우우. 

검은 액체는 몽글몽글 솟아올라 10살 정도의 어린아이의 체형이 되었다. 

“꺼억!” 

검은 액체들은 인간의 체형을 가지고 있지만 눈, 코, 귀 모두 존재하지 않고, 양 얼굴의 끝에 닿을 정도로 기다란 입만 존재하고 있었다. 

“꺼억?” 

검은 괴물들은 나를 찾는 듯, 트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려대다가 결국 날 발견하지 못하고 물처럼 변해서 다시 바닥으로 들어가 버렸다. 

떨어지려는 땀을 닦고, 놈들이 나왔던 바닥을 노려보았다. 

왜? 

왜 여기에 글러트니의 이빨들이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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