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뜻밖의 이득 (111/241)

뜻밖의 이득

[소혼보주(召魂寶珠)] 

혼을 불러오는 구슬이다. 적합자에게만 반응한다. 

“뭐 이렇게 설명이 불친절하냐.” 

소혼보주의 설명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소혼(召魂)이란 혼을 부른다는 것이고, 보주(寶珠)는 귀한 구슬이라는 뜻이다. 

소혼보주가 혼을 부르는 구슬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것은 적합한 사람에게만 반응한다는 것밖에 없었다. 

“나 참. 그 여자가 설명을 쓴 건가.” 

소혼보주의 설명은 평소에 창조주의 눈에 나오는 설명보다 훨씬 가벼워 누군가 설명을 건드린 것만 같았다. 

“그래도 챙겨야지.” 

어찌됐든 이 녹색 구슬은 내가 챙겨야하는 중요한 물건임은 확실하니, 소혼보주를 챙기기 위해 앞으로 걸어갔다. 

우우웅. 

“응?” 

그저 걸어갔을 뿐인데 구슬은 내게 반응을 했는지 홀로 진동을 하고 있었다. 그 떨림에 동조를 하듯 심장이 급격하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대체 이 구슬이 뭐 길래...” 

울렁이는 가슴을 부여잡고, 소혼보주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구슬은 옅은 초록색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당신과 소혼보주와의 적합도를 살핍니다.] 

[적합도 99.1%] 

[연혼 가능합니다.] 

[...] 

[대상이 연혼을 받아들입니다.] 

[대상과 연혼 되었습니다.] 

[연혼 3/3] 

“대체...” 

뭔지 모를 메시지를 보여준 소혼보주는 초록빛을 내던 그대로 내 손을 파고들어 몸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구슬은 흡사 이슬이라도 된 것처럼 내 몸속에 녹아내려 어디론가 흘러갔다. 나 자신도 소혼보주가 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인가...” 

지금까지 하얀 방에서 받은 보상은 모두 내 능력을 개방해주거나, 올려주는 것들이었다. 물건으로 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소혼보주는 그 전지전능한 여자조차 바로 줄 수 없고, 현실을 거쳐서 줘야 할 정도로 비범한 물건인 모양이다. 

“어찌됐든, 내 몸속에 들어가긴 했으니. 된 건가.” 

연혼을 받아들인다고 했으니, 소혼보주를 얻긴 했을 것이다. 

“무슨 일인가?” 

“초록구슬을 잡으니,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초록 구슬?” 

“네. 이곳에 있던 구슬입니다.” 

국왕에게 소혼보주가 있던 테이블의 중앙을 가리켰다. 

“음? 그런 것은 보지 못했는데.” 

“네?” 

“보고에 있는 물건들의 능력까진 나도 잘 모르지만, 어떤 물건이 있는지는 전부 알고 있다네. 이 안에 초록 구슬은 없었네.” 

“그런...”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구슬을 잡아서 빛까지 새어 나왔었지만, 국왕의 어리둥절 해하는 표정을 보니 그는 녹색 빛을 보기는커녕 구슬이 있었던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잠깐만, 국왕이 내가 구슬을 가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그대로 두 가지 보물을 가져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군요. 제가 잠시 착각한 것 같습니다. 아직 피로가 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피곤한 게 당연하겠지. 내가 자네를 너무 일찍 부른 모양이야.” 

“아닙니다. 이제 좀 정신이 드는 것 같습니다. 다시 두 가지 보물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천천히 자신에게 맞는 물건을 찾아보게.” 

소혼보주가 내 몸속으로 들어가 준 덕분에 두 가지 보물을 그대로 가져 갈 수 있게 되었다. 이건 그 여자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보물이 1개로 줄어서 실망했었는데, 다시 2개가 되니 처음보다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내 혹시나 하여 단검이나, 단도도 찾아두었는데, 자네가 이렇게 빨리 보고의 문을 열 줄은 몰랐네. 허허.” 

“저도 몰랐습니다. 그럼 저쪽으로 가보겠습니다.” 

“그러게나.” 

단검과 단도가 진열된 곳으로 움직였다. 국왕의 말대로 이전보다 많은 단검들이 있었다. 

“어디...” 

단검, 단도들을 뽑아서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게 그거군. 

지금 나는 암기에 기를 씌워서 강력한 파괴력을 낼 수 있다. 어설픈 옵션보다 단단하고 균형이 잘 맞는 단검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거기다 이런 것은 기라녹스가 만들 수 있는 것들이지.” 

대부분의 단검들은 마법이 걸려있어 보물 소리를 들어도 괜찮은 물건이지만, 내겐 별로 필요 없었다. 

슥. 

중간 쯤 다른 것에 비해 평범한 검집에 들어있던 단검을 뽑아보았다. 양쪽 균형은 완벽하고, 무게도 묵직해 마음에 들었지만, 날이 뭉툭하여 단검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한 번 볼까.” 

내려놓기 전에 혹시나 하여 창조주의 눈을 켜보았다. 

[나루인의 척검(慽劍)] 

장인 나루인이 노년에 만들었던 단검이다. 평생을 살검(殺劍)을 만들어왔던 나루인이 살기를 지우기 위해서 고민하여 만든 단검이지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단검에는 강력한 파괴의 힘이 붙어버렸다. 

특수능력: 치명타(致命打) 

“치명타? 이게 여기 붙어있다니!” 

나루인은 대륙 장인 급은 아니지만, 좋은 무기들을 남긴 장인이다. 

설명을 보니 그의 마지막 역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물건이지만, 날을 제대로 세우지 않아 누구도 가져가지 않은 모양이다. 

[치명타] 

어떤 곳을 공격하든 급소를 찌른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치명타가 붙은 무기로 급소를 찌른다면 2배 이상의 효과를 낸다. 

“무조건 이거지.” 

날은 기라녹스에게 세워달라고 하면 된다. 그 녀석이 만진다면 추가 옵션까지 붙을 지도 모른다. 

나루인의 척검을 왼손에 들고, 마도서가 쌓여 있는 책장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마지막 칸을 제외한 대부분의 마도서를 봤지만, 새로 들어온 것들도 있으니, 다시 살펴보기 위해서다. 

“이 수영법은 올 때마다 위에 있네.” 

눈을 켜자, 책장의 가장 앞에 이전에 봤던 바다 수영법이 보였다. 바로 넘겨버리고 다른 것들을 살펴보았다. 

“일비스 검술, 바조우의 육식, 포메인의 고래 낚시?” 

새로 보는 마도서들은 대부분이 요리나 채집같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이름만 보고 넘기다가 손이 딱 멈추는 제목을 발견했다. 

[칼의 검은 쥐] 

오러를 소모해서 자신의 기척, 채취, 존재감을 지우는 은신 능력을 발동시킨다. 낮에도 사용 할 수 있지만, 밤에 사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가 좋다.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이동속도가 빨라진다. 베올러스 왕국의 밤손님 칼의 능력이다. 

“은신이라...” 

밤에 효과가 좋다는 것과 기본적으로 이동속도가 빨라진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마도서 칼의 검은 쥐를 챙긴 뒤 왕실 보고를 나왔다. 

“이 두 개로 하겠습니다.” 

“흠, 또 마도서인가? 그러고 보니 자네 나한테 이전에 가져간 마도서들의 능력을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마도서는 제 감각을 조금 확장 시키는 능력이었습니다.” 

“대박이 터졌군. 축하하네.” 

국왕도 검을 휘두르는 검사답게 감각 확장의 능력이 얼마나 좋은지 바로 이해한 것 같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는 청소가 나왔습니다.” 

락토르의 강철 성벽의 정신 방어능력은 알려지지 않을수록 좋다. 

국왕이 이야기를 할 리는 없었지만, 이곳엔 그의 호위도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하여 청소 능력을 얻었다고 말했다. 

“청소? 크하하하!” 

국왕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즐겁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예전에 두 권 뽑아서 읽었을 때 청소와 요리법이 나왔다네. 그럼 그렇지. 허허.” 

“그러셨군요.” 

“당시에 난 왕자긴 했지만, 청소와 요리법이라니. 정말 쓸모가 없었다네. 그래도 요리는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주방에 들어갔다가 아바마마께 큰 호통을 들었지. 후후.” 

국왕은 잠시 옛 추억을 하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마도서를 쳐다보다가 보고의 문을 닫았다. 

“그럼. 피곤할 텐데, 가서 쉬도록 하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단검과 마도서를 마법 주머니에 넣고, 주머니 속에서 마나석들을 꺼냈다. 

“가이린에 있는 광산에서 처음으로 캐낸 마나석입니다. 폐하께 보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제가 직접 가지고 왔군요.” 

“고맙네. 마나석들의 크기가 상당하군. 역시 질 높은 광산이 있던 모양이야.” 

국왕이 마나석들을 만져보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폐하덕분입니다.” 

“후후. 영지 정비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들었네. 도박장을 모조리 부수고, 뛰어난 병사들을 고용하고, 마탑까지 설치 중이라고 하던데, 정말 대단하네. 영지 정비에 대해서도 공부했나?” 

“그건 아니지만, 닥치면 다 하게 되더군요.” 

“크하하하! 맞아.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지. 고민했었는데 역시 자네에게 가이린을 맡기길 잘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할 때 국왕이 기다리라는 듯 손짓을 했다. 

“아, 잠시. 모래부터 5일간 축제가 있을 걸세. 자네는 필히 참여하도록 하게. 아마 굉장히 재밌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래. 만나서 즐거웠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국왕에서 예를 표한 뒤 알현실을 나와 내 숙소로 돌아갔다. 

“빽.” 

빽빽이가 옆으로 누워 포도를 쪼아 먹고 있었다. 녀석은 왔냐는 듯 한쪽 날개를 훠이 흔들었다. 누가 보면 저 녀석이 내 상전인 줄 알 것 같다. 

“하! 저거 진짜...”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척검은 기라녹스에게 봐달라고 하고, 마도서부터 볼까.” 

주머니에서 마도서를 꺼내 펼쳤다. 회색빛이 터지며, 내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번쩍. 

칼의 검은 쥐의 내용이 뇌리 깊숙한 곳에 박히고, 마도서는 재처럼 날려서 사라졌다. 

머릿속에 있는 칼의 검의 쥐 능력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생각보다 쓸 만하겠는데?” 

** 

똑똑. 

다음날 다시 아침부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달칵. 

“어?” 

일리아나 아린, 크라이드 중 한 명이라 생각했지만, 들어온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후, 후작님?” 

“여기서 조차 정 없이 후작님이 뭐냐. 후작님이!” 

“아니, 어쩐 일로 여기까지...” 

록스 영지에 있어야 할 후작이 갑자기 내 숙소를 찾아왔다. 

“하하, 뭘 그리 놀래. 왕국을 울리는 자랑스러운 아들을 보려고 왔지.” 

“아...” 

후작은 내 앞으로 다가와서 날 끌어안고,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내 등을 두드리는 후작의 손길에 아들의 걱정한 아버지의 따스한 감정이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말은 들었다만 다친 곳은 없지?” 

“네. 없습니다.” 

“아, 실버트 그 개새끼는 내 손으로 죽였어야 했는데.” 

록스 후작은 진정 분노했는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제 걱정이 돼서 오신 겁니까?” 

“그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지.” 

말을 마친 록스 후작은 다시 문 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오.” 

밖에 누군가 대기하고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다. 하인이나 집사일거라 생각했는데 들어온 사람은 두 중년 남녀와 3명의 악사였다. 

“필우스 남작이라고 합니다.” 

“세스 카베튼 이라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내 앞에 서서 자신들을 소개했다. 둘 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유렌 록스라고 합니다.” 

“왕국의 영웅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정중한 예를 갖춰오는 둘의 인사를 받고, 후작을 쳐다보았다. 후작은 피식 웃더니, 다시 앞으로 나왔다. 

“이 둘은 사교계에선 정말 유명한 사람들이다.” 

“네? 사교계요? 그런데...” 

“왜 데려왔냐고? 이들이 네게 가르칠게 있기 때문이지.” 

왜라는 말을 하기 전에 후작의 말이 이어졌다. 

“이들은 네게 춤을 가르칠 춤 선생님들이다.” 

“예?” 

“축제 3일차와 4일차에 무도회가 열린다고 하더구나. 춤 못 춘다고, 예전처럼 남들 춤출 때 뚱하니 앉아있지만 말고, 네가 많은 영애들과 춤을 췄으면 좋겠어서 선생님을 모셔왔다. 거기다 이번엔 일리아도 오지 않느냐.” 

“어...” 

“일리아도 외모랑 다르게 산머슴 같이 칼만 휘둘러서, 춤을 배우지 않았을 테니, 네가 리드 해 주거라.” 

솔직히 사교계라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설마 했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될 줄이야. 

“유렌자작님은 원래 몸을 쓰시는 분이시니, 춤을 배우시는 게 그리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무도회가 열리는 3일차 오후까지 기본만큼은 모두 알려드리겠습니다.” 

필우스 남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서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일단 저희가 추는 것을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작님 방은 넓어서 이곳에서 연습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좋겠군. 일단 둘의 춤을 보거라. 유렌.” 

“알겠습니다.” 

나를 생각해서 가장 춤을 잘 추는 귀족까지 섭외해 왔는데, 바로 내칠 수는 없었다. 일단 보기라도 하기로 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필우스가 손짓을 하자, 악사들이 각자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약간 빠른 템포의 곡. 역시나 사교댄스의 정석 왈츠다. 

탁. 

필우스와 세스는 서로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눈을 맞추며 동시에 발을 떼었다. 

삭. 

수십 년 합을 맞춘 것처럼 둘은 눈빛만으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며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필우스와 세스의 시선은 여전히 서로의 얼굴만을 보고 있었지만, 둘이 발목을 돌리는 각도와 시점, 거리, 방향은 완벽하게 일치했다. 

화려한 춤선 속에 정밀한 계산과 노력이 들어있는 모습이었다. 

“허...” 

내가 한숨을 쉬니, 후작이 피식 웃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처음엔 조금 어려울 거다. 하지만 너도 귀족이자, 영주이니 최소한의 기본은 알아 두는 것이 좋아. 이번에 배워두면 계속 쓸모 있을 거다.” 

후작은 내가 어려워서 한숨을 쉬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저들의 춤이 난해해서 한숨을 쉬는 것이 아니었다. 

완전히 그 반대였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중입니다.] 

창조주의 눈으로 필우스의 춤선, 방향, 각도, 순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본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천무지체로 그의 춤을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있다. 

난 필우스 남작이 춤을 추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그가 평생 동안 춰온 춤의 정수를 그대로 가져 갈 수 있었다. 

“사기는 사기야.” 

거기다 내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얻을 것은 춤이 전부가 아니라고. 

“이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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