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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복귀 (109/241)

복귀

“소혼보주라고?” 

“빽?” 

소혼보주라니, 처음 들어보는 아이템의 이름이다. 빽빽이도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울음소리를 내었다. 

“소혼보주고 뭐고, 일단 너는 누구지?” 

“빽!” 

빽빽이가 목소리의 여자를 찾으려는 듯 방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하지만 목소리는 대답은커녕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체 여긴 뭐고, 넌 누구고, 난 왜 여기 온 거냐고!” 

[...] 

방이 조금씩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현실로 돌려보내려는 신호다. 

“역시 대답하지 않는군. 젠장! 빽빽아. 이리와.” 

“빽.” 

빽빽이를 불러서 주머니에 넣고 돌아갈 준비를 했지만 아직 그녀가 준다고 했던 소혼보주를 받지 않았다. 

“소혼보준를 준다며, 왜 그냥 보내려는 건데!” 

[이미 드렸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번쩍. 

말을 마치기도 전에 원래 세계로 보내졌다. 눈앞엔 흰색 방이 아니라, 리자드맨 킹의 시체가 있었다. 

“음...” 

주위를 둘러보고, 내 몸을 뒤져봐도 소혼보주라는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주(珠)는 구슬이니, 원의 형태일 텐데,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유렌.” 

“네.” 

소혼보주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을 때 일왕자가 뒤에서 불렀다. 

“정말 고맙네. 자네가 없었다면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리자드맨 킹에게 전멸했을 걸세. 아니, 그전에 난 실버트에게 죽었겠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하! 정말 못 따라 가겠군.” 

일왕자는 가볍게 웃은 뒤 내 옆에 붙었다. 그는 나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실버트의 일은 어떻게 처리 했으면 좋겠나?” 

“이쪽에서 말씀하시죠.” 

일왕자를 데리고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구석으로 갔다. 혹시 몰라 기막까지 펼쳐서 소리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실버트가 저희를 죽이려 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들었으니, 그를 이번일의 흑막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의뢰자가 이왕자라는 것은 저희밖에 모릅니다. 실버트가 말하기 전에 죽어버렸으니까요.” 

“휴우, 그렇지.” 

일왕자가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실버트가 의뢰자를 말하기 전에 죽어버렸기 때문에 기사들은 저희도 실버트에게 의뢰를 한 사람이 누군지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맞아. 그렇겠지.” 

“그런 상태에서 저희가 암살을 의뢰한 의뢰자로 이왕자를 이야기한다면 제가 일왕자님에게 붙어서 이왕자를 모함한다고, 역으로 공격을 당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으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왕자의 세력이 일왕자님의 세력에 비해 7:3 정도로 많기 때문에 지금 사실을 밝히면 저희는 고립될 겁니다.” 

“후후, 나를 띄워주는군. 7:3이 아니라, 8:2겠지. 여러 가지로 우리가 이기기 힘들어.” 

일왕자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어찌됐든 제가 영웅이라 불린다고 해도 귀족들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지지까지 업고 있는 이왕자를 정면에서 건드리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좀 열심히 좀 살걸 그랬나?” 

일왕자는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잠시 말을 멈춘 뒤 하늘을 쳐다보았다. 

“휴, 자네라면 어쩌겠는가?” 

“제게 왕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신 건 아직 유효합니까?” 

“그래. 유효하다 못해 무조건 내가 왕이 되어야 하네. 그 미친놈에게 이 나라를 넘겼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럼 답은 정해져있습니다. 강해지십시오. 세력도, 무력도, 정신력도. 모든 면에서 이왕자를 눌러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느긋한 일왕자와는 완전 다른 삶을 사셔야 합니다. 그저 말뿐이 아니라, 진정 각오는 되셨습니까?” 

우우우. 

그의 각오를 알아보기 위해 말을 하며 내 기세를 키웠다. 

“크윽...” 

일왕자의 무력으론 서서 버티기 힘들 정도의 기세를 내뿜었지만, 일왕자는 피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다리를 덜덜 떨면서도 주저앉지 않았다. 

“무, 물론이다. 각오는 되어있어.” 

일왕자가 간신히 입을 열어서 대답했다. 그의 눈에서 포메라 이상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각오를 보고 기세를 풀었다. 

“허억, 허억... 오늘 참 꼴이 말이 아니군. 하하하!” 

일왕자가 숨을 몰아쉬며, 애써 환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오히려 마음이 편하네.” 

“일왕자님의 각오를 잘 봤습니다. 지금부터 저도 왕자님의 뒤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아!” 

내 말을 들은 일왕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내가 자신의 세력에 합류한다는 소리는 그가 오늘 겪은 어떤 일보다 기쁜 것 같았다. 

“하하! 아, 정말 쪽팔리게.” 

일왕자가 눈물을 훔치며 어색하게 웃었다. 

원작에서 일왕자는 이 전쟁으로 죽어버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내가 스토리를 바꿔서 그를 살려버렸으니,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흐를지는 나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 

확실한건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일왕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 

하나하나 챙겨줘야 하나 걱정을 했는데 지금의 일왕자를 보니, 스스로 왕의 그릇을 갖출 수 있을 거 같다. 난 그의 뒤에서 견제 정도만 해주면 될 거 같다. 

두두두두.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쪽에서 로페르 공작과 그의 기사들이 성난 황소처럼 뛰어오고 있었다. 

상태를 보니, 저들 역시 지독한 싸움을 해치고 이곳으로 달려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왕자님! 유렌!” 

“많이 늦으셨군.” 

일왕자가 코를 훌쩍이며 내 어깨를 가볍게 쳤다. 마음이 정리된 일왕자는 평온한 표정으로 로페르 공작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왕자 저하! 괜찮으십니까!” 

로페르 공작은 달려오자마자, 일왕자의 안부를 물었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로페르 공작이 피곤해 보입니다.” 

“죄송합니다! 리자드맨 킹이 일왕자님 쪽으로 움직일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로페르 공작은 정말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하고 있었다. 

“로페르 공작. 누구도 몰랐던 일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공작님. 리자드맨 킹이 이곳에 올 줄은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기다 정보를 교란시킨 놈도 있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인가?” 

“그건...” 

실버트의 말을 하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동쪽으로 움직였던 이왕자 진형이었다. 

나와 일왕자가 상처 하나 없이 서있는 것을 보고, 달려오던 이왕자의 동공이 끊어진 기타 줄처럼 미친 듯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저 미친놈이 저런 티 나는 반응을 하는 것을 보니, 우리가 살아있는 것에 까무러치게 놀란 모양이다. 

“혀, 형님 괜찮으십니까? 대체 무슨 일이...” 

“그래. 괜찮다.” 

이왕자는 바로 일왕자에게 달려와서 그의 안부를 물었다. 일왕자는 표정을 굳힌 채 평소와 똑같이 가볍게 대답했다. 

“유렌! 다친데 없어?” 

“멀쩡해.” 

이왕자 진형에 있던 일리아가 내 어깨 잡으며 내 몸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기다려. 전부 모였으니, 한 번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기 저거 보이십니까?” 

번개로 시꺼멓게 지져진 실버트의 시체를 가리켰다. 

“타, 타 죽은 건가?” 

“끔찍하군. 저건 누구의 시체인가?” 

“마법사 실버트의 시체입니다. 그가 정보를 교란하고, 저와 일왕자님을 암살하려 했던 암살자였습니다.” 

“그게 무슨!” 

깜짝 놀라고 있는 로페르와 다르게 이왕자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형 걱정을 한 동생의 모습을 연기하지만, 속으로는 긴장감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사실 저희가 이곳에 오자마자 리자드맨 전사를 마주쳐서...” 

로페르 공작과 이왕자뿐 아니라,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실버트는 자신이 암살자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이곳의 모두가 들었죠.” 

내 말에 주변의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그의 입에서 자신에게 암살을 의뢰한 의뢰자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의뢰자! 대체 새끼가!” 

“죽일 놈!” 

“빨리 말해주게!” 

“그건...” 

지금까지 모두를 보며 이야기 했지만, 로페르의 질문에 딱 한 명 이왕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내 시선을 정면에서 받은 이왕자의 목젖이 지진 난 것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윽...” 

그는 내 눈을 피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바로 직전쯤 시선을 돌려서 다시 로페르 공작을 보았다. 

“아쉽게도 그 말을 하려 할 때 리자드맨 킹의 번개에 타죽었습니다.” 

“이런 개 같은 일이!” 

“제기랄!” 

“하아... 

로페르 공작과 기사들이 아쉬움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면, 이왕자는 다행이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윽” 

다시 이왕자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들어 올리던 그와 눈을 마주쳤다. 난 그의 눈을 계속 쳐다보며 경고를 전했다. 

또 다시 이따위 짓거리를 벌인다면 직접 죽여준다는 경고. 

내 강렬한 시선을 받은 이왕자가 흠칫거리며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하지만 그냥 당하고 넘어갈 수는 없어서, 그에게 두 개의 독을 심어 놓았다. 

“유렌. 다음은 어떻게 된 건가. 자세히 좀 말해주게!” 

“알겠습니다. 그 다음 리자드맨 킹이 나타나서 번개로 실버트를 죽이고, 다시 전투가...” 

로페르 공작에게 리자드맨 킹을 잡은 이야기를 해주며, 일왕자와 이왕자를 쳐다보았다. 

원작에선 일왕자의 암살이 성공하고 이왕자와 세피로스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지만, 지금은 일왕자 암살실패로 이왕자와 세피로스의 사이가 갈라질 것이다. 

이왕자를 이번에 잡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이왕자와 세피로스의 사이를 갈라놓아서 둘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 나중을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결과일 것 같다. 

지들이 알아서 도와주는군. 

** 

우리는 다시 전열을 갖춘 뒤 리자드맨들이 나타난 녹색 늪까지 진군해서 남아있는 리자드맨들까지 모조리 처리하고 키본 영지로 돌아왔다. 

“둘 다 일주일 만에 다른 사람이 됐군.” 

일왕자는 자신이 변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채찍질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일왕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키본 영지 정리와 복구 작업을 가장 먼저 시작해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었으며, 다른 병사와 기사들까지 격려했다. 

최소한 이번 전쟁에 참여한 기사와 병사들은 일왕자를 완전히 다시 봤을 거다. 

반대로 이왕자는 첫날이후 자신의 숙소로 삼은 건물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박혀있었다. 

이왕자가 왜 그러고 있었는지 알았기 때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는 추위에 덜덜 떨며 장이 끊어질 것 같은 복통에 배만 움켜잡고 있었을 거다. 

우리는 일주일간 키본 영지를 정리, 복구하며 대기하다가 지원 나온 기사와 병사들에게 영지를 맡긴 뒤 왕도로 복귀했다. 

“하아...” 

“왜?” 

옆에서 말을 타는 일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아무 것도 못했잖아. 너는 왕자 암살을 막고, 리자드맨 킹을 죽이고 할 거 다했는데.” 

“전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모두 최선을 다해 움직였으니 임무를 완수한 거지.” 

“그렇긴 한데...” 

일리아가 침울해 하는 것 같아 조금 놀려주고 싶어졌다. 

“하긴 넌 지난번부터 나 이기겠다고 그렇게 떠들고, 행사에도 나오지 않고 수련만 했는데, 이렇게 됐으니 창피하긴 하겠네.” 

“윽...” 

내가 가볍게 놀리자, 일리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표정을 보니, 그녀의 호승심에 불이 붙은 모양이다. 

“너 나랑 약속한 거 잊지 않았지? 이번에 돌아가면...” 

“모두 정지!” 

“으...” 

일리아가 말을 하려고 할 때 로페르 공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부터 왕도다! 왕도의 백성들이 우리의 귀환을 환영할 준비를 하고 있을 거다. 지쳤겠지만 모두 밝은 얼굴로 환호에 답해주도록 하라!” 

“네!” 

“알겠습니다!” 

“목소리 마음에 드는군. 그리고 유렌.” 

“예!” 

“전쟁이 끝나고 일주일이 넘게 지났기 때문에 자네의 활약은 왕국 전체가 알고 있네. 그런데 그렇게 뒤에 있으면 사람들이 자네를 자세히 못 보지 않나. 저곳의 많은 사람들이 자네를 보고 싶어 모인 것이야.” 

“맞습니다!” 

“유렌님이 앞에 서셔야죠!” 

“빨리 가.” 

로페르 공작이 동의를 구하듯 뒤를 쳐다 보자, 모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삐진 표정을 하던 일리아도 앞으로 가라는 듯 내 등을 밀었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나가서 로페르 공작과 왕자들의 바로 뒤에 위치했다. 일왕자는 웃으며 반겼고, 볼이 핼쑥해진 이왕자는 내 시선을 피했다. 

“그럼 다시 출발.” 

내가 자리를 잡자마자 로페르 공작이 바로 출발했다. 

왕도의 성문은 어서 오라는 듯 활짝 열려있었고, 그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양옆으로 줄지어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셨다!” 

“우와아아아아!” 

“리자드맨들을 물리친 용사들이다!” 

“유렌 록스!” 

우리가 아직 성문을 넘어서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내 얼굴은 보이지도 않을 텐데, 벌써부터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우와아아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리자드맨 킹 슬레이어 유렌 록스!” 

“유렌님! 이쪽 좀 봐주세요!” 

“크라시스의 영웅 유렌 록스!” 

많은 사람들이 출정나간 모두를 칭송하고 있었지만, 내 이름이 가장 많이 들리는 건 내 자의식과잉이 아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환호하며 외치고 있었다. 그들의 환성을 듣고 있으니, 기분 좋은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다가 골목 사이에 검은 망토를 두른 사람에게 시선이 갔다. 그는 머리까지 망토를 뒤집어쓰고,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다. 

“크윽!”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쳐다보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갑작스러운 두통이 엄습했다. 그런데 나만이 아니라, 그자 역시 두통을 느끼는 듯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대, 대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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