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자드맨 (2)
“뿔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예. 리자드맨킹의 머리엔 뿔이 달려있었습니다.”
“뿔이라니, 무슨 드래곤도 아니고...”
이왕자도 뿔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는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맞습니다. 드래곤과 비슷하게 놈의 머리엔 두 개의 뿔이 달려있습니다.”
“그, 그 놈 혹시 정말 드래곤인 거 아니오? 드래곤들은 다른 생명체로 변해서 삶을 살아가는 유희라는 것을 한다고 들었는데.”
“서, 설마...”
자신을 리스번 자작이라 소개한 남자의 말에 회의실이 어수선해졌다.
조용히 있는 사람은 나와 두 왕자, 로페르 공작과 그의 사람들뿐이었다.
“아닐 겁니다.”
로페르 공작이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렌 자작이 그걸 어떻게 아시오?”
“드래곤이 유희를 하는 이유는 그 종족의 삶을 순수하게 즐기고 싶어서 입니다. 리자드맨으로 변하면 변했지, 리자드맨킹같이 특별한 존재로는 변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내 이야기에 집중을 하는지, 회의실은 내 목소리 외엔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리자드맨킹도 아니고 뿔 달린 리자드맨킹이라니, 드래곤이 할 만한 짓이 절대 아닙니다. 차라리 저 리자드맨 중에 드래곤이 있다는 것이 더 믿을 만한 소리입니다.”
드래곤이 나타나지 않은지,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래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내가 확신하듯 이야기 하니 모두가 날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유렌 자작은 그걸 어떻게 알았소?”
이 왕자가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어렸을 때부터 드래곤에 관심이 많아서 드래곤에 관한 서적이나 자료들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들에 관한 책들은 전부 읽었을 겁니다.”
물론 거짓말이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내 말을 신뢰하는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이라면 아무도 믿지 않았겠지만, 명성을 가진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자는 없었다.
“하, 하지만 드래곤...”
“저놈이 드래곤이든 상관없다. 나라를, 영지를, 백성들을 공격한 놈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차가운 칼날뿐이다.
다시 분위기를 흐리려는 리스번 자작의 말을 로페르 공작이 잘라버렸다. 로페르 공작이 닥치라는 듯 리스번 자작을 노려 보자, 그가 찔끔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시 시작하라.”
“알겠습니다.”
로페르 공작의 부관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리자드맨킹 아래에 리자드맨 전사 12마리와 리자드맨 주술사 8마리가 있습니다. 놈들은 일반 리자드맨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데다가 각각 50마리 이상의 리자드맨들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놈들이 나타나면 여기 계신 분들이 상대해야 할 겁니다.”
“후, 전사에 주술사라...”
“지금도 놈들은 계속 모여들고 있지만, 놈들을 뭉치게 하는 킹만 죽인다면 오합지졸이 되어 뿔뿔이 흩어져 도망 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 새벽에 놈들을 칠 생각일세. 놈들이 세력을 모으며 방심하고 있을 때 말이야.”
로페르 공작이 부관의 말을 이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3개 진형으로 나뉘어서 키본의 남쪽, 동쪽, 서쪽에 위치한다. 물론 놈들이 감지하지 못하도록 키본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 숨은 채로.”
로페르 공작은 왕자들을 둘로 나눌 생각인지 말을 하며 왕자들을 한 번씩 쳐다보았다.
“동이 트자마자, 대기하던 마법사들이 리자드맨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공격 마법들을 날릴 거다. 몰아치는 마법에 리자드맨들이 당황하는 사이, 서쪽과 동쪽진형이 키본에 침투해서 놈들의 병력을 양쪽으로 분산 시킨다. 마지막에 방어가 약해진 남쪽을 뚫어 리자드맨 킹을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작전이다.”
“4개로 나누지 않고 3개로 한 이유가 있습니까?”
“리자드맨들이 북쪽에서 모여들고 있기 때문에 기습 전에 들킬 가능성이 있고, 거리도 멀어서 세 방향으로 정했다.”
“알겠습니다.”
리자드맨들의 침공이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작전을 짠 것 같다.
“우리의 목적은 모든 리자드맨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리자드맨킹을 죽이는 것이다. 놈을 죽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라!”
“알겠습니다!”
로페르 공작이 손을 내밀자, 그의 부관이 서류를 가져다주었다.
“그럼 지금부터 진형을 나누겠다. 먼저 남쪽 중앙은 내가 직접 간다.”
서쪽과 동쪽이 리자드맨들의 시선을 끌어서 처음엔 몬스터들이 몰리겠지만, 결국 가장 위험해질 곳은 적진 깊숙이 들어가서 왕을 상대해야하는 남쪽이다.
로페르는 자신의 죽음까지 각오하며 가장 위험한 방향으로 향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페르는 리자드맨킹을 만나지 못할 거다.
놈이 있을 곳은 다른 방향이니까.
“서쪽은 일왕자 저하께서 맡아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럼 일왕자 저하와 같이 움직일 사람들을 불러드리겠습니다.”
로페르 공작의 옆에서 그가 가진 서류를 곁눈질했다. 그곳에 내 이름은 두 번째 칸 이왕자와 같이 움직이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로페르는 왕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왕자와 날 붙여주려는 뜻이었겠지만, 난 이미 원작과 다른 내용을 쓰기로 결정했다.
[공작님. 저 유렌입니다.]
로페르 공작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는 잠시 멈칫했지만 누구에게도 티나지 않게 계속 기사들의 이름을 불렀다.
[죄송하지만, 절 일왕자 저하와 붙여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유렌 록스.”
일왕자와 같이 움직일 사람들의 이름이 부르던 로페르는 마지막에 내 이름을 호명했다.
이름을 모두 부른 로페르는 나를 쳐다보며 신뢰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나 역시 그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흐음...”
일왕자의 진형에 내 이름이 불리자, 일왕자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고, 이왕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로페르 공작을 쳐다보았다.
“동쪽은 이왕자 저하께서 지휘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남쪽으로 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군요. 전장에선 지휘관의 명령을 따라야지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왕자 저하와 같이 움직일 자들을 부르겠습니다.”
로페르는 다시 서류를 내려다보며 기사들의 이름을 불렀다. 난 귀를 닫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조용히 예상해보았다.
**
회의가 끝난 후 잠시 주어진 대기시간에 일왕자가 수행원 하나 없이 건들거리며 내 천막을 찾아왔다.
“자네는 어떨지 몰라도 난 자네와 같이 가게 돼서 정말 기쁘다네.”
“저도 좋습니다.”
“빈말이라도 기쁜데? 아까 말이야. 리스본 맞나? 자네가 그 겁쟁이를 조용히 시킬 때 속이다 시원했네. 자네가 나서지 않았으면 내가 뭐라고 했을 거야. 그런 겁쟁이가 우리 진형이라니 답답하군.”
“리스번 자작입니다.”
“뭐 어쨌든.”
일왕자가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쳤다.
“사실 난 지휘가 처음이라, 자네가 대신 움직여줬으면 좋겠는데...”
“분명 잘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끙... 그렇게 말하니 노력해봐야지. 나도 이제 마음을 먹었으니.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순...”
“유렌 자작 계십니까?”
일왕자가 말하는 중에 밖에서 이왕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일왕자를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천막의 문을 걷어서 이왕자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아! 형님이랑 계셨군요. 이거 제가 방해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아. 나도 온지 얼마 안됐거든.”
“작전을 짜고 계실 테니, 방해하면 안 될 거 같네요. 전 다시 가보겠습니다.”
“괜찮다니까.”
“아니에요. 저도 인사만 하려고 온 거였으니까.”
이왕자가 나가려다가 몸을 돌려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이 아주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아 보였다.
“유렌 자작. 형님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일왕자 저하를 지키겠습니다.”
일부러 약간 오버를 하며, 충신 같은 모습으로 일왕자를 지키겠다고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이왕자의 눈동자가 완벽하게 정지됐다.
“전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이왕자 저하께서도 무운이 함께하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밖에 나가 이왕자가 사라질 때까지 그의 등을 보고 있었다.
“후...”
사실 왕자들이 내 천막에 찾아올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이왕자가 어떻게 움직일지도 생각했었는데 완벽하게 내 생각대로 되었다.
“날 죽이기로 결정 내렸군.”
흔들리던 이왕자의 눈이 정지된 것을 보고 확신했다.
그는 내 반응을 보고, 이번 전투에서 나를 일왕자와 함께 죽이기로 결정을 내린 듯싶다.
이왕자는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가서 그놈에게 나까지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릴 것이다.
“일왕자 저하.”
“응?”
다시 천막으로 들어가서 어색한 눈을 하고 있는 일왕자를 불렀다.
“잠시 후 전투 준비 때부터 제 옆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절대로.”
“알겠네. 고마워.”
일왕자는 내 말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만 가야겠어. 자네도 쉬어야 하는데 너무 방해하면 안 되겠지.”
“괜찮습니다.”
“아니야. 나도 좀 피곤하고. 하하! 이따가 보자고.”
일왕자를 배웅해준 다음 아린과 크라이드를 안으로 불러서 오늘의 계획을 알려주었다.
**
동트기 3시간 전 작전을 시작할 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갔다.
서쪽 진형의 맨 앞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왕자들과 로페르 공작이 동시에 나타났다.
왕자들은 서쪽과 동쪽 진형의 가장 앞에 섰고, 로페르 공작은 중앙에 서서 모두를 보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가자. 우리의 땅을 되찾으러.”
말을 마친 로페르 공작은 그대로 뒤를 돌아 대기 지역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간단하고 짧은 말이었지만, 로페르 공작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기사와 병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뜨거운 눈으로 로페르의 뒷모습을 쫓았다.
“우리도 가자.”
일왕자의 지시에 우리 진형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천천히 움직여서 키본이 맨눈으로 보이는 숲의 끝으로 움직였다. 키본의 성벽을 보니, 몇몇 리자드맨들이 경계를 서는 것이 보였다.
“이자는 대체 언제 오는 거지?”
왕자가 아직은 깜깜한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곧 도착 할 겁니다.”
“그래야 할 텐데.”
나와 왕자가 말하는 사람은 우리 진형의 마법사들을 지휘할 책임 마법사다.
그는 정찰임무를 마친 뒤 그 정보를 다른 진형에 전하고 최종명령을 받아서 이쪽에 합류한다는데 아직도 오지 않았다.
“후...떨리는군.”
왕자는 떨리는 손가락을 조물거리며, 마음을 잡는 것 같았다. 자신이 지휘하는 전장은 처음이니 긴장 되는 모양이다.
“괜찮을 겁니다.”
“후후, 자네가 그리 이야기하니, 왜 이렇게 믿음직한지 모르겠어. 만나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제가 원래 한 믿음 합니다.”
“농담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군. 더욱 마음에 드는데?”
왕자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대화를 하다 보니, 어둑어둑한 하늘에 조금씩 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마법사는 도착하지 않았다.
“작전 시작까지 30분도 남지 않았는데,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아닙니다. 올 겁니다.”
“자네. 그와 아는 사이인가?”
내가 확신하듯 말하자, 일왕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뇨. 처음입니다.”
“그런데 잘 아는 것처럼...”
번쩍.
뒤에서 작은 소리와 옅은 빛이 나타났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마법 블링크였다.
“그가 온 것 같습니다.”
“늦지 않아 다행이야. 후...”
붉은 로브를 입은 금발의 미남은 일왕자에게 다가와서 무릎을 꿇었다.
“일왕자 저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일세. 실버트. 너무 오지 않아서 걱정했네.”
“죄송합니다. 정찰에 시간이 걸려서...”
“변동사항은 있나?”
“다행히 없습니다. 총사령관님께서 변동 없이 작전을 수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알겠네.”
일왕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왕자 저하와 같이 싸우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잘 부탁하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실버트는 고개를 한 본 숙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나를 보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반갑습니다. 실버트 리트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렌 록스라고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요새 왕국을 울리는 최고의 유명인을 모를 리가요.”
“저도 실버트님의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부끄럽네요.”
실버트와 악수를 하며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대상 설정 실버트 리트카]
[비비드 사냥개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하하. 유렌님이 있으니, 오늘 전투는 쉽게 끝나겠네요.”
“아닙니다. 실버트님 덕에 편할 것 같습니다.”
실버트는 내가 뭘 했는지 전혀 모른 채 웃으며 손을 놓았다.
“태양이 뜨기 시작합니다.”
실버트와 인사를 끝나자, 동쪽에서 태양이 수줍은 듯 떠오르고 있었다. 태양빛에 경계를 서는 리자드맨들이 눈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모두 준비하라.”
일왕자가 뒤에 있는 모두를 살피며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병사 기사 할 거 없이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왕자의 손을 쳐다보았다.
그 손위로 오색 빛의 마법이 유성우처럼 키본에 내려치기 시작했다. 왕자는 들어 올린 손을 내리며 함성을 질렀다.
“돌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