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리자드맨 (104/241)

리자드맨

파락. 

봉투를 뜯어서 안에 들어있는 고급스러운 종이를 펴보았다. 그곳에 적혀있는 것은 내용은 간단한 것이었다. 

휘하의 기사들과 전투준비를 마친 뒤 31일 정오까지 왕궁으로 오라는 건가. 31일이면, 바로 내일이군. 

편지는 국왕의 이름으로 나를 소환하는 내용이었다. 31일까지라는 여유 없는 시간을 정해놓은 것을 보니 단순히 날 보고 싶어 부른 것이 아니라, 굉장히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거로군.” 

원래라면 예상을 할 수 없었겠지만, 세피로스 놈들에게 얻은 정보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리자드맨들의 왕이 움직였을 것이다. 원작보다 빠른 시기에 리자드맨들의 침공이 시작 된 것 이다. 

“왕궁으로 오라는 소환장인가요?” 

“그래.” 

“이런 시기에 부르시다니, 무슨 일일까요.” 

“글쎄다.” 

페루가 무슨 일인지 궁금한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워낙에 큰 소식이라, 내일이나 오늘 밤이면 페루도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국왕 폐하께서 자작님을 좋아하시니, 좋은 일 아닐까요?” 

“그건 아닐 거다.” 

“그런가요?” 

“아린과 크라이드에게 내일 새벽까지 전투 준비를 마쳐서, 연무장으로 오라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페루가 대답을 하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이번 일이 끝나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대책을 좀 세워야겠어.” 

나의 개입과 다른 누군가의 개입으로 원작과는 스토리가 많이 바뀌었다. 이것을 파악할 방법을 좀 알아 봐야 할 것 같다. 

집무실에서 나와 내 침실로 향했다.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한 뒤 창문을 열었다. 

“넌 딴 데 가서 놀고 있어.” 

“빽!” 

빽빽이를 창밖으로 내보낸 뒤에 가볍게 숨을 내쉬고, 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눈을 감고, 지금도 신룡처럼 내 몸을 순환하고 있는 만독자전신기에 정신을 집중했다. 

거미굴에서 얻은 독들과 내력, 여러 깨달음으로도 칠성의 벽은 머나멀지만 칠성으로 향하는 아주 작고 낮은 계단 하나는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수암왕. 

내가 목표로 두는 이미지의 사람을 생각하며, 다른 모든 것을 잊고, 만독자전신기의 내력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시간을 잊고, 눈을 뜨자 세상은 어두웠고, 얇은 초승달이 하늘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나의 깨달음을 얻은 나 역시 달처럼 미소를 지었다. 

** 

“준비 됐어?” 

“네!” 

“준비 됐습니다.” 

가이린의 표식이 박힌 갑옷을 입은 아린과 크라이드가 내 물음에 힘차게 대답했다. 아린은 무표정이었지만, 크라이드는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리자드맨들이 침공했다는 소문이 가이린에도 퍼졌기 때문에 이들은 왜 나와 같이 왕궁으로 가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파이란 관리관.” 

“예!” 

“제가 없는 동안 영지를 잘 부탁합니다.” 

“네! 믿어주십시오.” 

“페루. 너도 잘 도와주고.” 

“넵!” 

페루와 파이란에게 말을 전하고, 그 옆에 있는 브리카를 보았다. 브리카는 누구보다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매일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브리카. 넌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수련을 하는 것에만 집중해.” 

“알겠습니다. 다음엔 저도 따라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브리카에게 미소를 지어주고, 아쉬운 눈빛을 하고 있는 로디엔을 보았다. 

“로디엔. 내가 없는 동안 영지 수호를 잘 부탁하오.” 

“걱정 말고, 잘 다녀오세요. 영주님.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낼게요.” 

로디엔은 조금 능글맞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장난스러웠지만,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소.” 

“네.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미리 부탁을 해놓은 금탑의 마법사가 고개를 숙이고, 워프 마법진을 설치해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자작님. 무운을 빌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발동하겠습니다.” 

번쩍!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자, 금색 빛이 우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밝은 빛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벌써 3번째 보는 왕궁의 워프존에 도착했다. 

“오셨군요.” 

“비디츠 남작님.” 

이전에 날 안내해주었던 비디츠 남작이 날 보고 다가왔다. 

“보자마자 죄송하지만, 바로 왕궁 중앙 연무장으로 가주셔야 합니다.” 

“바로요?” 

“네. 출정에 참여할 분들이 대부분 도착하셔서 바로 출발 할 것 같습니다. 포메이션 워프 마법도 완성 되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시종의 안내를 받아서 바로 왕궁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연무장엔 눈처럼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자신들의 줄지어서 정렬하고 있었다. 

나와 아린, 크라이드도 오른쪽 끝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왕궁에서 이름이 알려진 젊은 기사들은 대부분 와있는 것 같았다. 북벽에 갔을 때 보았던 기사들도 많이 보였고, 왼쪽에는 일리아도 있었다. 

모두가 왜 이곳에 모여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 말 없이 조용히 정렬해서 앞으로 보고 있었다. 

일이 급박했기 때문에 일단 빠르게 소집 할 수 있는 기사들부터 부른 것 같은데 나를 포함시키다니, 국왕에게 정말 큰 신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모두 준비는 잘 하고 왔는가?” 

“예!” 

단상위로 강직한 눈빛을 가진 중년인이 올라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를 갖추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소리들은 마음에 드는군.” 

이 중년인이 근위기사단의 부단장이자, 크라시스 왕국에서 가장 마스터에 가까운 남자로 불리는 오언 로서크 백작이다. 그는 기사들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출정의 부사령관를 맡은 오언 로서크다.” 

이번 전쟁의 총사령관은 이미 리자드맨들이 있는 장소에 가 있을 것이다. 오언은 인솔자와 같은 느낌이다. 

“모두 이곳에 왜 모여 있는지는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그럼 됐다. 차분히 대화라도 하고 싶지만, 곧 출발하게 될 것이다. 모두 마음을 다잡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할 말을 마친 오언은 아래로 내려가서 단상의 가장 앞에 위치했다. 

“폐하께서 나오십니다!” 

잠시 후 단상의 옆에 서있던 서기관이 목이 터질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아직 정오가 되려면 한참 남았는데, 바로 나오는 것을 보니,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오언이 먼저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자, 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복명복창을 했다. 

“일어나도록.” 

“감사합니다.” 

“모두 상황을 알고 있을 테니, 간단히 말하지.” 

단상 아래에서 정면을 쳐다보는 기사들을 훑어본 국왕은 차분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리자드맨들이 키본을 침공했고, 그것을 막는 도중 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전사했다.” 

국왕의 목소리와 말은 침착했지만, 그 속엔 뜨거운 분노가 숨어있었다. 

“키본은 리자드맨들에게 점령당해 쑥대밭이 되었고, 그곳을 터전으로 삼던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지금도 피난길을 걷고 있다. 다른 나라들는 도마뱀에게 점령당한 나라라면서 우릴 비웃고 있지.” 

국왕에게서 섬뜩한 기세가 흘러나옴과 동시에 기사들의 군기도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가 날 얼마나 비웃든 상관없다.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하지만... 그 썩을 도마뱀들이 내 백성들을 공격하고, 공포에 질리게 하고, 혼란에 빠트린 건 절대 용서할 수가 없다.” 

국왕의 말 한 단어마다 당장이라도 리자드맨을 부술 것 같은 패기가 느껴졌다. 기사들의 군기 역시 최고조에 이르러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내가 직접 가서 도마뱀들을 모조리 부숴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이 몹시 안타깝다. 그래서 경들에게 명한다. 가라. 가서 뇌가 텅텅 빈 도마뱀들에게 크라시스의 무서움을! 우리를 건드린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어라! 놈들의 모든 씨를 말려버려라!” 

“우와아아아아!” 

기사들이 꽉 조인 건틀릿을 하늘위로 들어 올리며 함성을 내질렀다. 기세만으론 이미 전쟁을 승리로 끝낸 것만 같았다. 

“그만.” 

국왕의 말에 함성이 그쳤다. 그 후 국왕의 뒤에서 두 남자가 나타났다. 갑옷을 입고 있는 일왕자와 이왕자다. 국왕은 왕자들에게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는지 소개조차하지 않았다. 

“오언.” 

“예! 폐하!” 

“부탁하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너희도 내려가도록.” 

“예!” 

국왕의 말에 왕자들이 그들의 기사들과 함께 단상 아래로 내려가서 줄을 맞추어 섰다. 이왕자가 내게 조그마한 눈짓을 보냈다. 이번 전쟁에서 자신의 뒤에 붙으라는 의미일거다. 

“워프 마법진 발동을 준비하라.” 

“예!” 

국왕의 말에 마법사들이 연무장에 그려진 거대한 마법진에 붙기 시작했다. 

자주 보던 마법진이지만 그 크기는 수백 명이 들어가도 될 정도로 거대했고, 각 모서리마다 마법사들이 붙어있어서 진 발동에만 마법사 30명이 넘게 동원되었다. 

“모두 마법진에 올라가도록!” 

“예!” 

나를 포함한 모든 기사들은 마법진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국왕이 있는 단상을 쳐다보았다. 

“총사령관은 로페르 공작이니, 그의 말을 내 명이라 생각하라!” 

“예!” 

키본은 북벽에서 그렇게 멀지 않았기 때문에 로페르가 그곳의 총사령관으로 바로 발령이 난 것이다. 

“그럼 발동하라.” 

“예!” 

국왕의 명에 마법사들이 동시에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의 주문은 서로 딱딱 맞아서 노래방 에코를 켜놓은 것 같았다. 

“포메이션 워프!” 

파아앗! 

따뜻한 빛이 터지고 꺼지자, 왕실연무장에서 숲에 있는 넓은 공터로 시야가 바뀌었다. 

“왕자 저하를 뵙습니다!” 

공터에 있던 기사들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왕자들을 보고 예를 표했다. 

“로페르 공작님은 어디 계시느냐.”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일왕자의 말에 북벽에서 보았던 로페르 공작의 부관 중 한명이 고개를 숙이고, 우리를 로페르 공작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었다. 

안전의 이유로 전장에서 조금 뒤쪽으로 보냈기 때문에 앞으로 가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음...” 

전장의 더운 공기가 느껴지는 곳에 도착하자, 오랜만에 보는 로페르 공작이 먼저 다가왔다. 

“왕자 저하를 뵙습니다.” 

“로페르 공작. 오랜만이지만, 서로 안부를 물은 상황은 아닌 것 같군요. 전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일왕자가 나서기도 전에 이왕자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좋지 않습니다. 키본을 점령한 리자드맨들은 대체 어디서 숨어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계속 늘어나고 있고, 다른 몬스터들까지 합세를 하고 있습니다.” 

“으음...” 

이왕자가 턱을 매만지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일왕자는 뒤에서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공작 각하. 폐하의 명령서입니다.” 

오언 백작이 로페르 공작에게 국왕의 명령서를 건네주었다. 저 종이에는 이곳에 온 모든 기사들의 명령권을 로페르 공작에게 넘긴다고 되어있을 거다. 

“모두 잘 왔다. 

명령서를 모두 읽은 로페르가 고개를 들어 기사들을 보았다. 

“오늘은 전투가 없을 예정지만, 이곳은 전쟁터니 절대 마음을 풀지 말고 쉬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카일.” 

“예!” 

“이들에게 쉴 곳을 안내해주도록.” 

“알겠습니다.” 

카일이 병사들에게 명령해서 이곳에 온 기사들을 지정된 천막으로 데려다 주었다. 

로페르는 회의를 위해 왕자들과 오언 그리고 몇 명의 이름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자신의 막사로 갔는데, 그곳엔 나도 포함 되어 있었다. 

“자네는 당연히 올 줄 알았네.” 

“그렇습니까?” 

맨뒤에서 걷고 있는 내게 로페르가 다가왔다. 

“이번에도 부탁하겠네.” 

“부탁이라뇨. 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하!” 

로페르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먼저 대형 천막으로 들어갔다. 난 한숨을 내쉬고 마지막으로 천막으로 향했다. 

** 

회의는 별게 없었다. 현재 알아낸 모든 정보를 알려주고, 놈들을 칠 방법이나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었으니까. 

“리자드맨들은 야행성이니, 차라리 낮이나 새벽에 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네. 이왕자님의 말씀대로 내일 새벽 해가 뜨는 시기에 들어갈 생각이었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소.” 

회의 내내 조용히 있던 일왕자가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리자드맨킹이 나타난 게 확실하오?” 

“예. 멀리서 관찰한 결과 문헌에 적혀있는 리자드맨 킹의 모습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리자드맨킹의 외형에 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혹시나 하여 질문을 했다. 또 무언가 꼬였을 지도 모르니까. 

“예. 일반 리자드맨이 2m의 신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놈은 3m가 훨씬 넘어가고, 검게 빛나는 큼지막한 곡도을 들고 있었습니다. 놈의 복부에서 몬스터들의 왕의 문신도 확인되었으니, 놈이 리자드맨 킹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부관이 조금은 의문이 든다는 듯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문헌과는 달리 놈의 머리엔 뿔이 달려 있었습니다.” 

“뿔?” 

그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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