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굴 (4)
“키이이익...”
인면지주의 아름다운 얼굴이 황당함으로 가득 물들었다. 자신의 독을 맞고 웃고 있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다.
“지독한 신경독이네.”
백독불침이 독을 무효화하기 전에 손끝이 약간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네임드 몬스터답게 강력한 독기였다.
“키이익!”
인면지주는 내게서 물러나려고 했지만, 오른쪽 다리 3개, 왼쪽 다리 1개가 떨어져서 중심을 잡지도 못하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카악!”
파아악!
자신의 옥빛의 독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인면지주는 노란색 독을 내뿜었다. 노란색 독은 얇은 실선처럼 내게 쏘아져왔다.
“이건 또 뭐야? 정말 아낌없이 주는 거미네.”
노란색 독을 그대로 맞자, 이번엔 몸이 살짝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백독불침이 바로 증상을 없애버렸지만, 옥빛 독과는 속성이 전혀 달랐다.
노란색 독은 인면지주가 먹이를 잡아두는 강력하고 끈적거리는 마비독이었다.
“이번엔 마비독. 다른 거 또 없냐?”
“키익?”
독을 맞은 내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피식 웃자, 인면지주의 얼굴이 넋이 나간 것처럼 변했다.
탁탁탁.
놈은 네 개밖에 남지 않은 다리를 오한이 들린 것처럼 덜덜 떨며 내게서 물러나려고 했다.
“키아악!”
내가 인면지주에게 거침없이 접근하자, 놈이 흉신악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왼쪽의 큼지막한 다리로 날 내려찍으려고 했다.
슈악!
인면지주가 내려찍는 다리를 살짝 피한 뒤 귀왕살로 베어버렸다.
“키아아악!”
인면지주가 잘린 다리를 흔들며, 비명을 내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내가 놈에게 한 걸음 더 걸어가자, 인면지주는 기에스에게 했듯이 내 머리를 그대로 씹어 삼키려고 했다.
“키익...”
퍼엉!
인면지주가 날 물어뜯기 전에 귀왕살을 놈의 정수리에 박아버렸다. 놈은 귀왕살이 박친 채로 발광을 했지만, 내력을 넣어 놈의 내부를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리자, 건전지 떨어진 장난감처럼 움직임을 멈추고, 그 거대한 몸체를 바닥에 뉘였다.
“끝났군.”
인면지주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어 놈에게 남아 있는 독을 흡수했다.
“크으...”
몸에 통증이나 증상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인면지주의 독이 강하고 양이 많아서 그런지 빈속에 소주를 마신 느낌이다.
“조절 좀 해야겠군.”
바로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만독자전신기를 휘돌렸다. 몸에 남아있는 탁기를 지우고, 남아있는 독의 잔재를 흡수했다.
만독자전신기의 내력이 전신을 돌고나니, 몸 상태가 훨씬 나아졌다. 영지로 돌아가서 내공 수련을 할 때도 더 효과가 좋아질 것이다.
“그럼 불러 볼까나. 포메라.”
주머니에서 혼의 구슬을 꺼내, 포메라를 불렀다. 귀찮은 건지, 이전과 달리 포메라는 느긋하게 나타났다.
“주인... 나 안 부른다고 하지 않았소? 어떻게 하루도 안 되어 말을 어기는 거요?”
“마음을 잡고, 마나 명상에 집중하라고 했지. 안 부른다는 말은 안했는데.”
“으음...”
포메라가 나와 했던 대화를 생각하려는 듯 자신의 두개골을 부여잡았다.
“헉.”
“맞지?”
“그, 그렇소. 안 부른다는 말은 하지 않았소.”
“너 마법사치고 머리가 나쁘네.”
“끄응...”
포메라가 내 놀림에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다물었다. 점점 녀석을 놀리는 재미가 살아나는 것 같다. 정말 흑마법사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녀석이다.
“그래서 부른 이유는 뭐요? 여긴 또 어디고?”
“널 부른 이유는 네 뒤에 있어.”
“응?”
포메라가 또 별거 아니겠지 하는 느낌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허억!”
마나 명상을 해서 요즘엔 잘 놀라지 않던 포메라가 오랜만에 비명을 질렀다.
“이, 이건 대체 뭐요! 거미가 이렇게 크고, 인간 얼굴을 하고 있다니! 채,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저게 인면지주다. 여긴 거미굴에 숨겨진 마지막 굴이자, 인면지주의 방이지.”
“우와...”
포메라는 관절이 뽑힐 것처럼 턱을 벌린 채로 인면지주와 이 장소, 나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마지막에 날 볼 때 눈의 불을 키우며 머리를 딱딱 흔들었다.
“거미굴은 나도 알고 있소. 근데 숨겨진 방이 있었다니, 거기다 인면지주? 대체 주인은 뭐하는 인간이오?”
“유렌 록스라니까.”
“그 대답은 매번 들었소.”
포메라가 고개를 저으며 이해 할 수없다는 듯 날 쳐다보았다.
“난 유렌 록스 일뿐이다.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인면지주부터 언데드로 되살려. 이 녀석은 전투에도 쓸 만하고, 외형도 무시무시하니 내 언데드 군단에 안성맞춤이야.”
“주인. 지금 내 언데드 군단이라고 하셨소?”
“전에 말했잖아. 네 건 내꺼. 내건 내꺼. 네 언데드 군단은 내 언데드 군단.”
“허...”
포메라는 어이가 없는 듯 자신의 두개골은 왼쪽으로 크게 기울였다. 조금만 더 틀면 목이 부러질 정도였다.
“저, 정말 주인은 흑마법사인 나보다 사악한 인간인 것 같소.”
“빽.”
빽빽이가 이해하라는 듯 포메라에게 날아가 살며시 울어주었다.
“빨리 일이나 해.”
“알겠소.”
포메라가 인면지주를 언데드로 만들기 위해 거미다리를 가져 올 때 난 화골산으로 기에스와 다리안을 처리했다.
“주인! 그건 라이칸 스로프요?”
“그래.”
“허, 인면지주에 라이칸스로프라니,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포메라는 인면지주에게 시선을 빼앗겨, 이제야 라이칸스로프인 다리안의 시체를 발견한 모양이다.
“그녀석도 언데드로 삼을 거요?”
“아니.”
“왜 그러시오? 그 놈 가진 마나를 보니, 꽤나 강해 보이는데.”
“이 놈들은 세피로스의 괴물에게 혼이 마킹 되어있거든. 언데드로 만들어도 혼의 파편이 빠져 나갈 거야.”
“그런 능력이 있는 자가 있소?”
“그래. 혼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괴물이 있지. 물론 이런 저런 제한은 있지만.”
화골산의 혼을 날리는 능력이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화골산이 없었다면 진즉에 내 정보가 빠져나가, 세피로스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몰랐다.
“나, 나도 놈들에게 노려지지 않았소?”
“말했잖아. 제한이 있다고, 놈들은 네가 당연히 아이자크가 될 거라 생각했으니, 일부러 네게 접근을 하지도 마킹을 하지도 않았어.”
“음. 그럼 괜찮다는 거요?”
“그래. 네가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알겠소.”
포메라는 이제 안심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인면지주를 언데드로 되살릴 준비를 시작했다.
“난 보상을 받으러 가볼까.”
이곳에 와서 굉장히 많은 것을 얻었지만, 사실 부수적인 것들이다. 내가 이곳에 온 진정한 이유를 찾아서 인면지주 굴의 끝으로 갔다.
“으, 거미줄...”
실타래처럼 거미줄로 칭칭 감겨 있는 곳에 이 동굴의 최종보상이 있다.
찌이익!
비수에 내력을 담아서 질기고 끈적거리는 거미줄 뭉치를 찢어버렸다.
투두두둑.
거미줄 안에서 예리한 검, 빛나는 갑옷, 번쩍이는 보석 들이 후드득 떨어졌지만, 난 그것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탁.
“여기 있네.”
마지막에 툭 소리를 내고 떨어진 고풍스러운 한 권의 책을 들어올렸다. 책의 커버는 딱딱하고 단단해서 거미줄 안에 있었어도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비비드의 사냥개]
주변 10m안에 있는 목표물을 설정하면, 그 목표물이 움직이는 방향과 위치를 파악 할 수 있다. 마법, 기술, 신성 어떤 능력을 사용해도 술자에겐 대상의 이동 방향과 위치가 보이게 된다. (적용 거리 2km.). 키락 왕국의 사냥개라고 불리던 비비드의 능력이다.
“맞네.”
번쩍.
이 마도서가 내가 찾던 마도서라는 것을 확신한 뒤 바로 책을 펼쳐서 내 능력으로 만들었다.
“어떻게 쓰는지 알겠네.”
“주인. 끝났소.”
따가각.
포메라가 인면지주를 언데드로 만들어서 부활 시켰다. 언데드로 되살아난 인면지주는 포메라의 뒤를 아기 새처럼 따라왔다.
“흠.”
잘려나간 다리도 다시 붙었고, 내가 찌른 인간의 얼굴도 원상복구 되어 있었다. 언데드가 되어서 바뀐 푸른 피부가 인면지주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솜씨가 좋아졌네.”
“주인 덕분이오. 마나 명상을 한 이후 마나를 세밀하고 깔끔하게 다룰 수 있게 됐소.”
“그래. 계속 내게 고마워하라고.”
“끙...”
[대상 설정 포메라]
[설정완료.]
눈에 푸른 불을 켜는 포메라를 보며, 속으로 비비드 사냥개의 대상을 포메라로 설정했다.
설정이 완료되자마자 내 손위에 포메라가 있는 것처럼 녀석의 위치가 파악되었다. 흡사 미니맵으로 포메라의 위치가 보이는 느낌이다.
“포메라. 블링크 쓸 줄 알지?”
“물론이오. 전문은 아니지만.”
“그럼 여기서 몇 번 써봐.”
“어디로 말이오?”
“어디든 네 마음대로.”
“알겠소.”
블링크는 마법사들이 생존, 탈출용으로 사용하는 이동 마법의 한 종류다. 좌표로 이동하는 워프와는 달리, 좌표 없이 자신에게 시야가 보이는 장소로 이동 할 수 있다.
포메라에게 블링크를 주문한 뒤에 눈을 감았다.
“블링크.”
번쩍.
영창을 마친 포메라가 블링크 주문을 외우자, 녀석이 이동방향과 도착할 위치가 그대로 느껴졌다. 내 앞에 있던 녀석은 굴의 입구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또 하겠소.”
“그래.”
“블링크.”
잠시 뒤 다시 블링크 주문을 외운 포메라는 입구에서 방의 끝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포메라가 이동 중인 것과 녀석이 도착 할 곳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역시 되네.”
블링크는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마법이지만, 비비드의 사냥개의 능력으로 블링크로 나타날 장소조차 미리 알 수 있었다.
“됐소?”
“한 번 만 더 해봐.”
“알겠소.”
주문을 완성시킨 포메라가 블링크를 사용했다. 녀석은 날 놀래 킬 생각인지 내 바로 뒤로 이동하려 했다.
틱.
난 손가락에 들고 있던 작은 돌을 위로 튕겼다.
“주인. 여기...”
딱.
“음?”
포메라가 내 뒤로 나타나자마자, 내가 위로 튕긴 돌이 녀석의 머리에 떨어졌다.
“돌이 왜...”
돌을 맞고, 어리둥절해 하는 포메라를 보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사수 대비 끝.”
**
“하암.”
먼지 낀 황색의 감시탑 위 가벼운 복장을 입은 기사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대자로 누워있던 그는 옆으로 몸을 돌렸다.
“인스, 적당히 일어나.”
“뭔 일이 있어야 일어나지. 너무 지루하잖아. 이런 때 좀 눕지 않으면 못 배겨. 밑에 감시병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으니까, 우린 좀 쉬어도 된다고.”
옆에 앉아 있는 기사 에킬의 말에 인스가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거기다 이곳을 습격한 리자드맨들을 모조리 처리했다던데, 그럼 한 일 년은 평화로울 게 뻔하잖아. 우릴 왜 여기로 보냈는지 모르겠다니까.”
“우린 기사다. 명령에만 따르면 되는 거야.”
“그렇긴 하지만, 이건 너무 인력 낭비잖아. 에휴. 이런 날씨엔 우리 로라와 꽃구경을 가야 하는데. 흐흐흐.”
“후...”
인스의 말에 지쳤는지, 에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았다.
“여기서 리자드맨들을 처리했다는 일리아 마르쿠스 보고 싶다. 왕국의 최고 미녀라던데.”
“인스, 상스러운 말은 그만해라.”
“보고 싶다는 게 뭐가 상스러워. 거기다 아무도 없잖아.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라고.”
“후...”
“어?”
에킬이 인스를 포기한 듯 고개를 젓고, 아래로 내려가려 할 때였다. 뭔가를 보고 놀란 인스의 감탄사가 들렸다.
“에킬! 나타났다.”
“뭐가?”
“리자드맨이야!”
북서쪽에서 리자드맨으로 보이는 인영이 에킬과 인스가 있는 감시탑으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하하, 좋아! 저놈은 내가 처리한다!”
인스가 몸을 튕기듯 일어나서 멀리서 다가오는 리자드맨을 노려보았다.
“나 간다. 흐흐.”
인스가 바로 아래로 내려가려고 할 때 에킬이 그를 붙잡았다.
“왜 그래?”
에킬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리자드맨이 오는 곳을 가리켰다. 흐릿한 먼지 속에 수십, 수백의 리자드맨들이 나타났다.
“뭐, 뭐야...”
“100마리가 넘는다. 리자드맨이 저 정도로 단체 행동을 하는 몬스터였나?”
“그것만이 아니야.시발! 저기 가장 앞에 오는 놈... 그냥 리자드맨이 아니야.”
인스의 말에 에킬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맨 앞의 리자드맨의 크기와 느껴지는 힘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땡땡땡!
“비상! 비상!”
밑에 있는 감시병이 리자드맨들을 발견하고, 비상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내려가자. 시간을 벌어야 해.”
에킬이 허리의 검을 피나도록 부여잡고 아래로 내려갔다. 인스는 몰려오는 리자드맨들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하아, 심심하다고, 죽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
거미굴에 있던 모든 보물을 챙기고 포메라와 같이 가이린으로 돌아온 뒤 아무에게 들키지 않고 내 집무실까지 들어갔다.
“딱히 은신을 쓰지도 않았는데, 쉽네.”
조용히 움직이고 싶다고 생각하자, 내력이 알아서 움직이며 내 존재를 감춰주었다. 이 성에 있는 누구도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애들 교육을 좀 빡세게 시켜야 겠네.”
병사들의 교육을 좀 더 강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탁.
“키학!”
당연히 내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집무실로 들어오던 페루가 날 보고 기겁을 하며 뒤로 자빠졌다.
“뭘 그리 놀래?”
“아니, 10분전만 해도 아무도 없었는데...”
“방금 왔으니까.”
“그, 그렇군요.”
“별일 없었어?”
별 의미 없이 안부 묻듯이 꺼낸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페루의 표정이 굳어졌다.
“좀 전까진 아무 일 없었는데, 방금 일이 생겼습니다.”
“뭐?”
“이걸...”
페루는 내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봉투에 적힌 이름을 보자마자 손이 굳어졌다.
“에거시스 브라이어드...”
봉투에 적혀 있는 것은 이 나라의 국왕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