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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거미굴 (2) (101/241)
  • 거미굴 (2)

    “지금 뭐라고 했냐?” 

    머리가 벗겨진 용병이 어이가 없는 듯 되물었다. 

    “눈만 돌아간 게 아니라, 귀도 먹었나 보네? 뭘 꼬나보냐고.” 

    “미친 새끼가!” 

    산적 턱수염을 가진 용병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이빨을 갈았다. 

    “어이, 교대시간이야.” 

    대머리와 산적이 내 앞으로 한 걸음 나왔을 때 굴 안에서 이들과 비슷하게 생긴 험악한 외모의 용병 두 명이 나타났다. 

    “응? 뭐야? 이건.” 

    “이 미친놈이 우리보고 뭘 꼬나 보냐는데?” 

    “크크크. 정신 나갔군.” 

    “단장이 웬만하면 건들지 말라고 했지만, 이건 예외지?” 

    “물론. 죽여도 정당방위야. 크크.” 

    대머리 용병이 주먹에서 뚜둑 소리를 내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했지만, 내가 보기엔 귀여울 뿐이었다. 

    “꼬마야. 마지막 기회다.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면...” 

    “혓바닥 더럽게 기네. 빨리 덤벼.” 

    얼굴을 바꾸니, 나도 놀랄 정도로 입도 행동도 거칠어 진 것 같다. 내키는 대로 하니 속이 꽤나 시원했다. 

    “쓰벌!” 

    대머리 용병이 욕을 뱉으며 내 얼굴로 주먹을 내뻗었지만, 내 눈엔 굼벵이가 지나가는 것보다 느리게 보였다. 

    빠각! 

    “컥!” 

    내가 용병보다 한참 늦게 주먹을 날렸지만 먼저 목표물에 적중한 것은 내 주먹이었다. 얼굴 중앙에 카운터를 맞은 대머리 용병은 코가 주저앉은 채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무, 뭐야!” 

    “이 자식 F급이 아니야!” 

    “한 번에 쳐!” 

    용병들이 가진 무기를 빼들고 나를 공격해 왔지만, 그것은 합공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것이었다. 서로를 방해하는 공격을 사이로 유령처럼 파고들었다. 

    빡!퍽! 

    “칵!” 

    “크악!” 

    공격하는 용병 세 명중 둘을 카운터로 기절시키고, 산적 수염을 가진 놈의 허벅지를 걷어차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대, 대체 당신은...” 

    “너희 어떤 놈의 의뢰로 이따위 짓거리를 하는 거지?” 

    “그, 그게...크아아악! 마, 말할게요.” 

    내가 손에 힘을 줘서 어깨를 주물러주자, 산적 수염이 친절하게 말해준다고 했다. 

    “며, 며칠 전에 두 놈이 찾아와 돈을 뿌리면서 자신들이 거미굴을 수색하는 동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네.” 

    “그래서 뭔가를 찾았어?” 

    “아, 아직 입니다. 지 놈들이 찾지 못하자, 저희에게 추가금을 주면서 수색을 지시했습니다. 그, 뭐더라, 벽에 아주 작게 세공 된 거미를 찾으라고 하더군요.” 

    “확실하군.” 

    누군지는 모르지만, 거미굴의 비밀을 아는 자다. 벽에 있는 거미 모양의 돌을 두 번 누르면 거미굴에 아래로 향하는 새로운 길이 나타난다. 

    “그놈들 어떻게 생겼지?” 

    “하, 한 놈은 툭 건들면 부러질 것 같은 나무뿌리 지팡이를 들고 다닙니다. 다른 놈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분위기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로브를 쓰고 있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굉장히 잘생긴 것 같기도 하고...” 

    “두 번째 놈 다른 특징 없어?” 

    “그, 그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너무 차갑고 무서운 느낌이라 제대로 볼 수가...” 

    “너 참 덩칫값 못한다.” 

    “예?” 

    빡! 

    “켁!” 

    산적수염의 턱을 날려 기절을 시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무뿌리 지팡이는 브리더의 제자 놈이고, 잘생긴 놈이 누군지 모르겠군. 사수는 여기 올 리가 없을 텐데...” 

    이번일 역시 세피로스 놈들이다. 앞으로 벌어진 사건의 판을 키울 생각으로 놈들이 이곳에 왔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괴물을 데려가려고 왔을 텐데. 근데 그게 니들 마음대로 잘 될까?” 

    피식 웃으며 거미굴 안으로 걸음을 옮겻다. 

    ** 

    “쓰벌, 이거 개똥 밟은 느낌인데...” 

    플루트 용병단의 단장 플루트는 거미굴의 마지막 방을 살피는 두 남자를 보며 꺼림직 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다. 

    “야, 대발아.” 

    “네. 단장님.” 

    발이 커서 대발이라고 불리는 용병 다리스가 플루트의 부름에 다가왔다. 

    “저 둘 느낌이 어떠냐?” 

    “한 쪽은 너무 음울하고, 저 로브 뒤집어 쓴 사람은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입니다. 둘 다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라, 좋은 느낌은 절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굉장히 위험한 냄새가...” 

    “역시 그렇지?” 

    “네.” 

    “네 코는 믿을 만하니까. 흠...” 

    돈도 많이 줬고, 거미굴에서 자신들을 방해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쉬운 의뢰였기에 받아들였지만, 플루트는 자신의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행동 할지 결정한 플루트가 다시 대발이를 불렀다. 

    “대발아.” 

    “예.” 

    “저놈들이 뒤통수칠지 모르니까. 애들한테 수색 대충 하고 전투 준비해놓으라고 말해둬.” 

    “알겠습니다.” 

    다리스는 플루트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고, 다른 용병들에게 그의 말을 전하러 움직였다. 플루트는 다리스의 뒷모습을 지켜보느라, 로브를 입은 남자의 귀가 움찔 거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흠흠.” 

    플루트가 헛기침을 하며 마지막을 수색하는 남자들에게 다가갔다. 

    “의뢰주님. 오늘이 지나면 의뢰가 끝납니다. 혹시 연장을 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지금 하시는 것이...” 

    챨그랑. 

    플루트의 말에 썩은 나뭇가지 같은 것을 들고 있는 남자가 주머니를 던졌다. 

    “헉!” 

    받은 주머니 안을 열어본 플루트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금액에 깜짝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으로 아까 말한 것을 찾을 때까지 너희들을 고용하겠다.” 

    “아, 알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마음껏 부려도 됩니다.” 

    금화의 양은 플루트 용병단이 2년간 열심히 의뢰를 해결해야 벌수 있을 정도였다. 플루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안했던 감정이 금화 빛에 녹아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흐흐...” 

    저 둘에 대한 걱정뿐 아니라, 초보 용병들을 위협해서 용병 길드에서 내려올 징계도 웃으면서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특이한 것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나?” 

    “아...” 

    이 지팡이를 가진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플루트는 무조건 그의 말을 들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15년 넘게 용병 생활을 하며 이런 분위기를 가진 자를 처음 보았다. 

    “죄송합니다. 저희 애들이 미친 듯이 뒤지고 있지만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외의 말엔 흥미가 없는 듯 지팡이를 든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저, 근데 정확히 어떤 것을 찾는지 알게 되면 수색이 좀 더 쉬울 텐데요.” 

    “분명 말했을 텐데...” 

    “아, 드, 들었지만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신다면 편할 것 같아서요.” 

    플루트는 이들의 기세에 자신이 계속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헤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더 자세히 듣고 자세히 찾아본다면 의뢰주님의 목표를...” 

    “뭐?”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지팡이를 가진 남자가 생각을 하는 지 자신의 손가락을 피나도록 씹었다. 로브의 남자는 미동도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래. 너무 마지막 방에 매몰되어 있었어.” 

    지팡이를 가진 남자는 방을 나가서 마지막 방으로 향하는 입구의 벽을 살펴보았다. 로브의 남자도 그를 따라가 밖으로 향했다. 

    두 남자는 사이는 친한 사이는 아닌 듯 둘 사이에 냉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음!” 

    지팡이를 가진 남자가 찾던 것을 발견 한 듯 자그마한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삼각형 몸체에 실선 8개가 연결 되어 있어 작은 거미 모양의 낙서로 보이는 돌이었다. 

    “발견했나?” 

    “그렇다. 당연히 마지막 방이나 입구 쪽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 했는데, 이렇게 깜찍하게 숨겨놓다니, 만든 놈을 죽여 버리고 싶군.” 

    “빨리 눌러라.” 

    “내게 명령하지 마라.” 

    둘이 서로 싸울 것처럼 풍겨대는 기세에 플루트는 몇 년 만에 닭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툭. 

    싸울 생각은 없는 듯 지팡이의 남자는 거미 모양으로 된 돌을 천천히 2번 눌렀다. 

    쿠구구구구. 

    “어어? 뭐, 뭐야!” 

    지팡이를 든 남자가 버튼을 누르자마자, 지진이 난 것처럼 거미굴 전체가 좌우, 위아래로 흔들렸다. 플루트는 당황하여 벽을 붙잡고 매달렸고, 두 남자는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나왔다.” 

    아무것도 없었던 거미굴의 마지막 방에 성인 남자 네 명이 동시에 지나가도 될 정도로 큰 구멍이 생겼다. 

    “이, 이게 대체...” 

    플루트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을 때 로브를 입은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샥. 

    “어?” 

    “네놈 같은 쓰레기들은 전투 준비 하든 말든 소용없다.” 

    로브를 입은 남자가 손을 올렸다가 내리자, 플루트의 목이 툭하고 떨어졌다. 그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플루트에게 처음부터 목이 없었던 것 같았다. 

    “단장님!” 

    “이, 이런 죽일 놈들이!” 

    “개새끼들 이럴 줄 알았다!” 

    이야기를 전하고 돌아오던 대발과 용병들이 목 떨어진 플루트의 시체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뽑아들었다. 

    “곧 거미들이 쏟아져서 여유시간이 별로 없는데, 저 벌레들을 처리하는 데는 얼마나 걸리지?” 

    지팡이를 가진 남자가 플루트의 머리를 지팡이로 건드리며 묻자, 로브의 남자의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짐승이 으르렁 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3초.” 

    ** 

    쿠구구구구. 

    “벌써 찾았나본데.” 

    거미굴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대지가 우는 것 같은 진동이 느껴졌다. 놈들이 밑으로 향하는 거미 버튼을 눌렀다는 뜻이다. 

    빠지지직. 

    뇌인신법을 사용해서 바로 아래로 뛰어갔다. 

    “응?” 

    아래로 내려가다가 목이 찢겨져 있는 용병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시체는 짐승의 이빨이나 발톱에 물어뜯긴 것 같았다. 

    “흠.” 

    하지만 가장 앞에서 죽어있는 용병의 목은 날카로운 검으로 단번에 벤 것처럼 깔끔하게 잘려있었다. 

    뜯겨나간 시체와 깔끔한 시체의 차이에 이곳에 온 다른 한 놈이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종족은 확실하게 알았다. 

    “그 짐승들까지 풀어놓다니, 본격적이네.” 

    놈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용병들을 처리하고 바로 아래로 내려간 것 같다. 

    “놓칠 수는 없지.” 

    머뭇거리지 않고, 거미굴의 마지막 방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갔다. 

    스르르륵. 

    “키이이이.” 

    “키아아아.” 

    들어가자마자 소름을 돋게 하는 소리와 움직임이 느껴졌다. 

    “유령거미인가. 이렇게 보니, 진짜 징그럽네.” 

    유령거리라고 해서 이름은 대단해보이지만, 사실 별거 아니다. 

    가정집에 몸통은 작은데 다리는 징그럽게 길고 얇은 거미가 나타날 때가 있다. 다리길이가 2~3cm정도 되는 그 거미의 이름이 유령거미다. 

    “키이이익!” 

    “카아악!” 

    내 앞엔 그 녀석을 모티브로 만든 2m 정도의 다리길이를 가진 유령거미가 길을 꽉 매우고 있었다. 

    “아쉽게도 너희에겐 볼 일이 없다.” 

    집에 나오는 녀석들을 모티브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 녀석들은 독이 없다. 그냥 무시해버리면 된다. 

    빠지지직. 

    “키익!” 

    “칵!” 

    뇌인신법을 사용해서 놈들의 튀어나온 다리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힘 조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밟은 유령거미들의 다리가 수수깡처럼 부서져 나갔다. 

    지지직. 

    순식간에 유령거미들을 돌파하고 끝에 있던 구멍에 들어가서 다시 한 번 아래로 내려갔다. 

    샤아악. 

    두 번째 지하 굴은 벽과 바닥이 거미줄로 줄줄 감겨져 있었다. 사람 한두 명 정도 지날 공간이 보이지만, 저것은 함정이다. 

    스으으윽. 

    천장에서 아래를 조용히 내려다보는 거미들의 흐름이 내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으니까. 

    “브리더의 제자 놈은 저 놈들을 홀린 뒤에 지나갔나보군.” 

    놈들이 지나간 방법을 생각하며, 양손에 비수 10개를 쥐었다. 그 숫자는 천장에 있는 거미와 똑같았다. 

    슈아아악.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거미들을 향해 비수 10개를 동시에 날렸다. 내 감각에 놈들이 모두 잡혀 있었기 때문에 위를 볼 필요도 없었다. 

    파파파팍! 

    “키아아악!” 

    “카아악!” 

    “키이익!” 

    10개의 비수는 단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거미들의 독주머니를 터트리며 놈들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키이익!”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거미의 몸통에는 갈색 바탕에 V자 형태의 검은 무늬가 겹겹이 새겨져 있다. 호랑이의 머리에 있는 무늬하고도 비슷한 모습이다. 

    “호보거미.” 

    이놈들은 유령거미와 다르게 강한 산성 독을 가지고 있다. 놈들은 독을 바닥에 줄줄 뿌려가며 죽어갔고, 난 그 독의 바다로 걸어가서 손을 퐁당 담갔다. 

    “한 놈씩 상대해주고 싶은데 내가 바쁘거든.” 

    [흡독지력이 대지에서 독(대형 호보거미)을 흡수합니다.] 

    [흡독지력이 만독자전신기의 운용을 돕습니다.] 

    [흡독지력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주광오산(蛛狂五酸)이 개방됩니다.] 

    “예전보다 흡수 속도가 빨라졌어.” 

    10마리의 거미를 죽이고 독을 모두 흡수하는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놈들 금방 잡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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