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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거미굴 (100/241)
  • 거미굴

    “자작님. 모두 불러왔습니다.” 

    페루가 아린, 크라이드, 브리카, 파이란, 기라녹스를 데리고 내 집무실에 들어왔다. 그들은 함께 불려온 이유를 몰라서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당황 할 필요 없어. 가이린에 와서 지금까지 수고 많았다고 부른 거니까.” 

    “아!” 

    “그렇군요. 전 또 뭐 잘못해서 혼나나 했네요. 휴.” 

    “페루 너 잘못한 거 있나보지? 자수해서 광명 찾자.” 

    “엑, 절대, 절대 아니에요!” 

    “하하!” 

    페루와 내 장난에 분위기가 풀려서 모두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먼저 아린과 크라이드는 번갈아가며 광산을 감시하고, 성에선 병사들의 훈련을 도와주느라 수고 많았어. 리빙아머 때도 용감하게 나서주었고.”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이었습니다.” 

    아린과 크라이드는 자세를 유지한 채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믿음직스러워 나도 모르게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브리카 너도 혼자서 도박장을 다 뒤집느라 수고 많았다. 네가 가장 바빴을 거야. 가이린에 모든 불법 도박장이 사라진 건 네 덕이다.” 

    “아님다! 솔직히 도박장이 사라지면 가이린에 문제가 생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분위기가 좋아져서 놀랐습니다. 앞으로도 큰형, 아니 자작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브리카는 큰형님이라고 하려다가 깜짝 놀라서 자신의 입을 한 번 탁 치고 자작님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큭큭. 그래.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오늘부터 내가 알려준 수련을 시작해.” 

    “알겠습니다.” 

    “모르는 거 있으면 아린이나, 크라이드에게 물어보고.” 

    “넵!” 

    브리카를 검사로 키우기 위해서 앞으로 해야 할 수련들을 알려주었다. 성실한 녀석이니 내가 없어도 잘 할 것이다. 

    “페루, 너도 파이란 관리관에게 교육을 받으며 내 일까지 챙기느라 바빴을 텐데 수고 많았다.” 

    “아닙니다. 다른 분에 비하면 고생도 아니죠.” 

    “파이란 관리관도 수고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를 준비해준 덕에 여러 일들이 쉽게 풀렸습니다.” 

    “저야. 자작님이 지시하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가장 고생하신 건 자작님이죠.” 

    파이란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정답게 웃었다. 만난 시간은 짧지만 서로 마음이 정말 잘 맞는 것 같다. 

    “기라녹스.” 

    “네!” 

    이곳에 온 뒤 바빠서 기라녹스에겐 신경을 써주지 못했는데 그의 표정은 나쁘지 않아보였다. 

    “공방 설치는 끝났다고 들었는데 어때?” 

    “록스 영지보다 좋은 화력을 가진 화로가 있습니다. 마음에 듭니다. 하하!” 

    “다행이네. 주문한 물건들은 어때?” 

    “다른 대장장이들과 협업해서 같이 만들고 있습니다. 질과 속도 모두를 잡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라녹스와 기존의 장인들은 병사들의 방어구와 무구들을 만들고 있다. 기라녹스가 작업을 지휘하고 있으니, 장비들의 질은 보나마나다. 

    “그래. 부탁 한다.” 

    “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모두 한 번씩 봤으니, 다시 전체적으로 시선을 옮기려 할 때였다. 

    딱딱. 

    “빽!” 

    “하하하! 그래. 너도 수고 많았다. 고생했어.” 

    “빽.” 

    빽빽이가 자신도 있다는 듯 내 앞의 탁자를 부리로 두드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 모습에 방안에 있는 모두가 웃음을 터트려 더욱 따뜻한 분위기가 되었다. 

    “모두 고생해서 축제라도 열어주고 싶지만, 잠시 나갔다와야 할 거 같아.” 

    잠시 모두를 본 뒤, 두 번째 본론을 꺼냈다. 

    “나가신다니요?” 

    “영지 정비가 어느 정도 끝났으니, 일주일 정도 외출을 다녀올 생각이야.” 

    “어딜 가시는데요?” 

    페루가 모두를 대신해서 질문을 해왔다. 

    “수련하러.” 

    “그렇게 강해지셨어도 수련을 멈추지 않으시는 군요.” 

    “아린, 너한테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나도 바삐 움직여야지.” 

    “호위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산에만 있을 거니까. 없어도 돼.” 

    “하지만...” 

    “괜찮아.” 

    아린은 걱정되는지 나를 계속 쳐다보았지만 더 이상 별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정말 수련만 하러 가는 거라면 아린을 데려가겠지만, 다른 곳에 가려다보니, 이들을 데려 갈 수가 없다. 

    “혹시라도 영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로디엔이나 금탑의 마법사들에게 도와달라고 바로 요청해. 그러기 위해 준비해 둔 사람들이니까. 별일 없다면 내가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그냥 집무실에 박혀 있는 것으로 해줘.”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핑계도 준비했지만, 모두가 날 믿는 듯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내가 인복은 꽤나 있는 것 같다. 

    “모두 이해해 줘서 고맙다. 금방 다녀올게.” 

    ** 

    모두를 돌려보낸 뒤 광산과 반대편으로 에킬 산을 올라갔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평평한 곳에서 포메라를 불렀다. 

    바닥에 깔린 흙먼지들이 모여들어 새하얀 해골이 되어 나타났다. 

    “주인. 이번엔 또 무엇이오?” 

    “뭐긴 뭐야. 붕붕이로 불렀지.” 

    “붕붕이면...워프를 말하는 거요? 이번엔 어디를 가려고...” 

    “필란스 공국에 있는 알바스로 보내줘.” 

    “제국, 이오칼, 사막에 이어서 이젠 필란스요? 주인은 진짜 이리저리 잘 돌아다니는 거 같소.” 

    포메라가 지팡이 하나를 꺼내며 질린 듯이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녀석은 바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빽.” 

    “아, 주인과 똑같은 성격의 새로군. 반갑소.” 

    “빽!” 

    “이 얍삽한 녀석과 내가 같다니, 무슨 실례의 말을!” 

    “빼액!” 

    “이 녀석이 훨씬 심하다고!” 

    빽빽이도 나와 비교되는 게 싫은지 한참을 울어재꼈다. 사태는 포메라가 실수라고 하며 사과를 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리빙 아머는 어때?” 

    뭔가 민망해져서 아무 이야기나 꺼냈다. 

    “아, 그 친구는...” 

    “친구?” 

    “그렇소. 대화가 통하더구려.” 

    “수준 높은 대화는 하지 못하던데.” 

    “맞소. 하지만...” 

    포메라는 이제 익숙해졌는지 마법진을 그리면서도 술술 입을 열었다. 

    “단순함 속에 진리가 있는 법이라오. 그의 단순한 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소. 거기다 그 친구가 조금씩 발전해 가는 것 같아서...” 

    포메라는 진짜 도인이라도 된 마냥 의미가 있어 보이는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난 그런 거 모르겠으니까. 빨리 그려. 실수하지 말고.” 

    “주인은 그 급한 성격 때문에 언젠가...” 

    “시끄러.” 

    포메라의 말을 무시하고 주머니에서 용병들이 입고 다닐만한 경갑을 꺼내 입고, 압수품에서 미리 챙겨둔 B급 용병패를 뒷주머니에 넣었다. 

    아그네스로 얼굴까지 바꾸고 허리에 허름한 검 한 자루를 차니 영락없이 어중이떠중이 용병의 모습이 되었다. 

    “뭐 하는 거요? 이제 위장도 본격적이군.” 

    “내가 좀 많이 유명해 졌거든. 지금 상태로 움직이면 100%날 알아보니까. 얼굴이랑 머리색, 무기까지 바꾼 거야.” 

    “주인 검도 쓸 수 있소?” 

    “자랑은 아니지만, 이 나라에서 나보다 검 잘 쓰는 사람 많지 않을 걸.” 

    검을 책으로 배웠지만, 몸이 알아서 움직여준다. 현재 내 몸은 다섯 가지 왕국 검술의 정석과 다를 바가 없다. 

    “검까지 잘 쓰다니. 신이 주인에게 재능을 몰아준 게 확실 하오.” 

    “신이라...” 

    내 어색한 반응에 포메라가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며 움직임을 멈췄다. 

    “야, 손이 놀잖아. 빨리 안 움직여?” 

    “윽, 괜히 걱정했소.” 

    1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홀린 듯 움직이던 포메라의 손이 멈췄다. 

    “다 됐소.” 

    “오래 걸렸네.” 

    “그건 주인이 계속 장난을 쳐서 그런 거 아니오.” 

    원래라면 더 빨랐겠지만, 내가 포메라에게 계속 장난을 쳐서 좀 더 시간이 걸려버렸다. 그래서 포메라가 날 원망 하듯 쳐다보고 있는 것이고. 

    “전송하겠소.” 

    “그래.” 

    번쩍. 

    잠시 어지러움을 느끼고 나서, 황색 대지에 도착한 것을 확인했다. 

    사막 같은 곳은 아니지만, 바닥은 황색이고 숲은 푸른색이라 서로의 색이 대비되어 운치 있어보였다. 바로 옆에 알바스 마을이 보이는 것을 보니, 제대로 온 모양이다. 

    “주인. 잘 도착했소?” 

    “그래.” 

    내 걱정을 하는 지, 포메라는 워프를 하면 항상 말을 걸어서 성공했는지를 묻는다. 귀여운 녀석이다. 

    “그럼 난 이만...” 

    “잠깐만.” 

    “무슨 일이오?” 

    “너 7서클 멀지 않았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 앞으론 최대한 마나 명상에 집중해.” 

    “주인이 부르지만 않으면 하루의 12시간 이상은 마나명상만 하고 있소. 어쨌든 알겠소. 노력하겠소.”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은 포메라가 믿음직스러운 대답을 내놓고 사라졌다. 

    “일단 준비 좀 해볼까.” 

    “빽.” 

    옆에 있는 마을로 들어갔다. 지리를 묻는 김에 식량과 식수, 필수품들을 좀 더 보충 할 생각이었다. 

    “여기 거미굴이 어디 있죠?” 

    빽빽이용으로 자두와 사과를 사면서 과일상인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일거미를 노리고 오셨구나.” 

    “네.” 

    상인이 내 위아래를 보고, 용병임을 확인 한 뒤 입을 열었다. 

    “거미굴은 동쪽 문으로 나가셔서 하루 정도 꼬박 걸으시면 나와요. 땅위에 접시를 뒤집은 것 같은 게 불쑥 솟아 있어서 알아보기 쉬우실 거에요.”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상인이 갑자기 안됐다는 눈빛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지금은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왜죠?” 

    “플루트 용병단이 전세를 내고 다른 용병들을 쫓아낸다고 하더군요.” 

    “그게 되는 건가요?” 

    “직접적으로 뭘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분위기로 압박을 한다고 하던데요. 거기다 거미굴을 가는 건 초보 용병들뿐이니, 뭘 할 수가 없겠죠.” 

    거미굴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일거미다. 

    일거미는 그리 강하지 않은데, 놈들의 더듬이다리는 비싸지는 않아도 약재로 팔리기 때문에 거미굴은 초보 용병들이 경험과 여행자금을 쌓기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초보 용병들이 넘치는 게 아니라, 용병단이 점령을 했다니 참 별일이 다 있는 것 같다. 

    “플루트 용병단이라는 곳은 신규 용병단인가요?” 

    “아뇨. 결성 된 지 10년이 넘었죠. 강하다곤 할 수 없지만, 이곳에선 나름 인지도가 있는 용병단이예요. 아, 이거 제가 말했다고 하지마세요.” 

    “물론이죠. 한 가지 만 더 여쭤 봐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상인은 수다를 떠는 것을 좋아하는지 얼마든지 물어보라는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었다. 

    “거미 더듬이다리의 가격이 오른 건가요?” 

    “전혀요. 용병들이 그러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뭘요. 거미를 잡으시려면 차라리 거미굴 주변을 돌아다니시는 게 나을 지도 몰라요. 땅에서 나오는 놈들이 많으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친절한 주인에게 팁을 챙겨준 뒤 내 물품까지 구입하고 알바스 마을의 동쪽 문으로 나왔다. 

    “왜 용병단이 거미굴을 점령한 거지? 더듬이다리 때문이 아니라면... 용병단. 의뢰. 누군가 의뢰를 한 건가.” 

    플루트 용병단이 왜 거미굴을 점령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거미굴의 비밀을 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나 말고도 거미굴의 비밀을 아는 놈이 있는 거로군.” 

    ** 

    “도착했네.” 

    상인은 하루를 말했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거미굴 앞에 도착했다. 

    거미굴은 넓적한 빵을 반으로 쪼갠 것 같은 모양의 입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굴은 아래로 향하고 있어 입구만 보면 소름이 끼치게 어두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 놈들인가.” 

    2m가 넘는 체력에 험악한 인상을 한 용병 두 명이 입구를 지키듯 서있었다. 상인이 말한 플루트 용병단인 것 같았다. 

    “막지는 않는 건가?” 

    거미굴의 입구로 미숙해 보이는 용병 3명이 다가갔다. 플루트 용병들은 입구를 막지는 않지만, 초보로 보이는 용병들에게 끝까지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았다. 

    초보 용병들은 눈치를 보더니 거미굴에 들어가다 말고, 움찔 거렸다. 그들은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뒤로 돌았다. 

    “크하하하! 봤어?” 

    “봤어! 크큭. 완전 쫄았던데. 저래서 용병해먹겠어? 저러다 오줌사는 거 아니냐고!” 

    플루트 용병들은 초보 용병들이 몸을 돌리자마자, 그들을 큰 소리로 비웃었다. 초보 용병들은 어깨를 떨었지만,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야, 내가 딱 좋아하는 놈들이네.” 

    초보 용병들이 사라지자마자, 바로 거미굴의 입구로 향했다. 

    거미굴의 입구로 다가가자, 플루트 용병들이 아까처럼 부리부리한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나 역시 초보 용병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용병들이 노려보는 것을 마주보며 히죽 미소 짓고, 놈들의 앞에서 입을 열었다. 

    “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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