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영지 정비 완료 (99/241)

영지 정비 완료

“저 여자 용병계에서 굉장히 유명하다고 들었는데요.” 

“맞아. 의뢰를 단 한 번도 실패한적 없다더군.” 

나와 페루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여성 참가자는 로디엔이었다. 여성 참가자가 그녀 혼자였기 때문에 유독 튀고 있었는데, 그녀는 남자 지원자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남자들이 눈치를 보며, 그녀를 슬슬 피하고 있었다. 

“대단하네요. 솔직히 강해보이지는 않는데...” 

“오러나 마나를 사용 할 수 있게 되면 외형은 중요하지 않아. 그녀는 웬만한 기사보다도 강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힘을 개방하면 기사단 전체보다 강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그렇군요.” 

“빽!” 

“안 돼.” 

빽빽이가 로디엔에게 날아가려는 것을 붙잡았다. 

“나중에 보내줄 게 좀 참아.” 

“빽.” 

빽빽이가 아쉽다는 듯 날개를 퍼덕였다. 

“그런데 저 유명한 용병이 왜 병사시험을 치러온 거죠? 돈을 모두 뺏겼다고 해도,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의뢰가 들어 올 텐데요.” 

“그러게 말이다.” 

대충 예상가는 부분은 있지만. 

“자작님. 시작하나 봐요. 앞에 섰어요.” 

로디엔의 차례가 되었는지, 그녀가 커다란 바위 앞에 자리를 잡았다. 

“볼 필요도 없어. 그녀는 모든 시험을 아주 쉽게 통과할 테니.” 

첫 번째 시험은 40kg의 바위를 드는 것인데 로디엔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바위를 들어 올린 후 몇 번 흔들다가 내려놓았다. 

“우와!”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에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뺨을 꼬집는 사람도 있었다. 

“지, 진짜네요. 저런 바위를 한 손으로...” 

“말했잖아. 외형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로디엔은 위병의 장비를 입고 500m를 달리는 두 번째 시험 역시 누구보다 빨리 1등으로 통과해버렸다. 그녀 혼자 맨몸으로 달리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시험은 먼 곳에 적힌 글씨를 읽는 시력 시험인데, 엘프인 그녀에겐 하나 마나한 것이었다. 그녀는 보자마자 적혀 있는 글씨를 말하고 모든 시험을 가장 빨리 통과해 첫 번째 합격자가 되었다. 

“페루.” 

“네.” 

“내가 직접 면접을 진행한다고 하고, 저 여자를 데리고 집무실로 와.” 

“하긴 저 분은 따로 해야겠죠. 제가 봐도 다른 사람들이랑 실력이 완전히 다르네요.” 

“그래.” 

페루를 보내고 난 뒤 바로 집무실로 올라갔다. 잠시 기다리니 페루가 로디엔을 데리고 찾아왔다. 

“모셔왔습니다.” 

“수고했어. 나가봐.” 

“네.” 

“앉으세요.” 

페루를 보내고 난 뒤 앞의 의자에 손짓을 했다. 

“자작님을 뵙습니다.” 

“이렇게 빨리 다시 볼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요. 후후.” 

로디엔이 초승달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맞은편 의자에 털썩 앉았다. 

“빽!” 

“그래. 그래. 나도 반가워.” 

“빽.” 

빽빽이가 기다렸다는 듯 로디엔에게 날아갔다. 그녀는 빽빽이를 안아들고 녀석의 머리를 긁어주었다. 

“자작님이 직접 면접을 해주신다니 영광이에요.” 

“당연히 제가 해야죠.” 

“전 그렇게 특별대우 해주시는 거 좋아해요. 후후.” 

말을 할 때마다 로디엔은 날 쳐다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왜 병사에 지원을 하신 거죠?” 

“돈을 모두 뺏겨서 일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로디엔님을 기다리는 좋은 조건의 의뢰가 한둘 이 아닌 걸로 아는데요. 지명도 굉장히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긴 한데, 저도 한 군데서 일하면서 좀 쉬고 싶어서요. 그렇다고 평생 이곳에 있는 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렇겠죠.” 

엘프인 그녀는 결국 자신의 고향인 엘루나로 돌아가야 한다. 병사에 지원 한 것은 흥미 위주 일 것이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좀 더 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그 말을 하며 로디엔은 묘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녀의 차분한 녹색 눈동자를 보고 있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음, 저야 로디엔님이 와주시는 건 정말 환영합니다. 하지만 로디엔님이 좋아하는 불법 도박장은 가이린에서 전부 퇴출시킬 생각입니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한동안은 절대 없을 겁니다.” 

브리카를 움직여서 가이린에 있는 불법 도박장을 모두 부숴버렸다. 내일은 또 모르지만, 지금 가이린에 불법 도박장은 단 하나도 없다. 

“저, 전 도박에 미친 여자가 아니거든요!” 

로디엔이 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전 도박 자체를 즐기는 것뿐이에요. 섰다의 쪼는 맛! 룰렛의 간절함! 그것 때문에 하는 거예요! 자작님도 아시잖아요.” 

“그럼 다행이네요. 조만간 정식 허가를 받은 도박장을 열 생각이니.” 

“정말인가요?” 

“네. 배율은 상당히 낮아지겠지만요.” 

“상관없어요. 방금 말했듯이 전 즐길 뿐이니까요. 섰다는 꼭 넣어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로디엔이 화투패를 쪼는 듯 한 손동작을 하며 귀엽게 웃었다. 

“그럼 절 고용하시는 건가요?” 

“굴러들어온 보석을 걷어 찰 필요는 없죠.” 

“보석소리를 들으니 기분은 좋네요.” 

정말 보석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영지를 비우고 돌아다닐 일이 많을 텐데, 그녀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편하게 밖을 돌아다닐 수 있다. 

“대신 병사로는 힘들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죠?” 

“네. 현재 병사들의 막사는 남자들만을 위한 공간이라, 로디엔님을 그쪽에 보내기엔 많은 것이 부족합니다. 보낼 수도 없죠. 위병대신 이 영지의 호위로 고용하겠습니다.” 

“네? 영지의 호위요? 영주님의 호위가 아니라?” 

“그렇습니다.” 

“아, 하긴. 영주님은 호위가 필요 없겠죠. 리빙아머를 혼자 처리하셨다고 들었어요. 전 그때 제 소식을 전하러 잠시 마을을 나갔다 왔거든요.” 

당시에 로디엔이 없어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엘루나에 한 동안 이곳에서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고 온 모양이다. 

“평소에는 성에서 편하게 계시다가 영지에 무슨 일이 터진다면 그것을 막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충분한 보수는 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이거 거의 가만히 있으면서 돈만 벌겠는데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아마 그렇게 편하지는 않을 거다. 이제 내 적들도 조금씩 내 존재를 인식하고 있을 테니.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로디엔.” 

“네! 잘 부탁드려요!” 

** 

드디어 마나석 광산을 개방하고, 채굴을 시작했다. 

내가 소문을 낼 필요도 없이, 가이린 영지에 질 높은 마나석 광산이 발견됐고, 채굴이 시작됐다는 소문이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당연한 수순으로 크라시스 왕국뿐 아니라, 대륙 전체에서 명성을 떨치는 거상, 기사, 마법사들이 자신들과 거래를 하자고 사람을 보내왔었다. 

하지만 난 마나석을 함부로 팔 생각이 없었다. 제국에 있는 모카건과 상의를 한 뒤 수량을 조절하며 천천히 팔 생각이기에 모두 거절했다. 

“한 군데만 빼고.” 

한 곳과는 바로 거래를 진행하기로 해서, 지금 응접실에서 손님이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에 채굴한 16개의 마나석 중 국왕에게 바칠 10개의 마나석을 제외한 나머지 6개를 모두 가지고 나왔다. 

“자작님.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파이란이 문을 열고, 금빛의 로브를 입은 노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노인을 맞이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유렌 록스라고 합니다.” 

“허허, 반갑습니다. 금탑의 브레든 아트라스라고 합니다.” 

이 노인이 금탑의 부탑주인 브레든이다. 높은 지위의 마법사를 보낼 거라 생각했지만, 부탑주가 온다는 소식에 꽤나 놀랐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지금이 한창 바쁠 때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높은 서클의 마법사는 작위가 없어도 웬만한 귀족이상의 대우를 받는다. 금탑의 부탑주인 브레든은 어딜 가든 나보다 높은 대우를 받을 사람이다.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파이란 관리관. 수고했어요. 나가보세요.” 

“네. 그럼.” 

파이란이 나간 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차를 한 잔 마신 브레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와 거래를 진행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조건의 거래들을 모두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저희의 제안을 받아들이시다니, 무슨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아버지께 금탑의 사람들은 믿을 만하다고 들었습니다. 어차피 팔아야 하는 물품이라면, 신뢰할 수 있는 곳에 팔고 싶었습니다.” 

“오, 록스 후작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영광이군요.” 

당연하겠지만, 후작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사대 마탑 중 금탑을 선택한 이유는 금탑에 세피로스나 죄악 놈들과 관계 된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마탑이라고 통칭하지만, 사대 마탑은 각자 성격도, 속성도 다르다. 금탑은 크라시스에 호의적이고, 방어 마법과 이동 마법에 특화되어 있다. 

마법사들의 성격도 온화한 편이라 앞으로 이해관계가 맞을 것 같아서 선택한 것이다. 

탁. 

마법 주머니에서 마나석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저희 광산에서 나온 최상급 마나석입니다.” 

“음! 마나석의 크기도 크기지만, 안에 들어 있는 마나의 질도 좋군요. 이 정도였다니....” 

브레든은 마법사답게 마나석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살펴 보고 있었다. 마나석을 만지고 싶은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것이 보였다. 

“매달 이정도 급의 마나석 5개를 금탑에 판매 하겠습니다.” 

“조건이 있으시겠죠?” 

브레든은 마나석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쳐다보았다. 희열이 보였던 그의 눈에 다시 끔 진중함이 담겼다. 

“그렇습니다. 가이린에 금탑을 세우는 것이 제 조건입니다.” 

지체하지 않고, 바로 내 조건을 말했다. 브레든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입을 열었다. 

“흠,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탑의 설치를 조건으로 거실 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랬을 것이다. 가이린에 마탑이 없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을 테니까. 

“앞으로 가이린은 크게 발전해 나갈 겁니다. 거주 인원, 유동 인원도 훨씬 많아 질 겁니다. 처음엔 손해가 나가겠지만, 멀리 봤을 때 이곳에 탑을 세우는 것은 금탑에게도 절대 손해가 아닐 겁니다.” 

금탑과 거래를 하려는 이유가 바로 가이린에 마탑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마탑은 존재 자체만으로 영지 방어에 큰 도움이 된다. 만약 마탑이 있었다면 리빙아머 사건 때 건물피해가 반 이상으로 줄었을 거다. 

편리한 워프 마법도 있고, 부수적인 도움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제대로 된 도시가 되기 위해서 마탑은 꼭 필요한 필수요소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마스터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금탑주님이요?” 

“네. 마스터께서는 자작님이 금탑을 세우는 것을 요구한다면 들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네. 자작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브레든이 살포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마스터께선 마나석 보단 자작님을 보고 제안을 받아들이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작님의 성장 속도와 인지도는 역대 급 입니다. 자작님이 앞으로도 큰 성장을 하실 것을 확신하고 저희와의 끈을 연결해두려는 거죠. 간단히 말하자면 아부랄까요. 허허.” 

내가 금탑과 선을 만들려는 것처럼 금탑 역시 나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한 모양이다. 역시 금탑을 선택하길 잘한 것 같다. 

“금탑의 탑주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앞으로 바쁘겠는데요.” 

“허허허! 그런가요?” 

이야기가 잘 풀렸기 때문에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내 가벼운 농담에도 브레든은 기분이 좋은 듯 웃고 있었다. 

“거래가 성사된 기념으로 먼저 채굴된 마나석 6개를 넘기겠습니다. 가격은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최상급 마나석의 3배로 하겠습니다.” 

“흠, 크기나 질이나, 그 정도 가격이면 딱 적당하군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판 마나석을 다른 곳에 넘기거나 팔지 않는 것이 조건입니다.” 

“그야 물론이죠. 저희 쓸 것도 부족하니까요. 조건이랄 것도 없네요.” 

정말 내 마음에 꼭 맞게 거래가 진행 되고 있다. 

“그럼 세부 사항을 이야기 해보죠.” 

** 

“깔끔해 졌네.” 

마을을 보니 리빙아머에게 받은 건물 피해는 모두 복구가 끝났고, 마을의 중앙에 마법사들과 건축가들이 모여서 금탑 설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채굴도 수월하게 진행 중이고.” 

차돌 광부단 역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고, 볼카누이스 용병들은 광부들과 주변을 철통처럼 보호하고 있었다. 광산은 톱니바퀴가 돌아가듯이 술술 움직이고 있었다. 

“신입 병사들 역시 나쁘지 않고.” 

병사들도 모두 면접까지 진행하며 쓸 만한 사람들로 꽉 채운 뒤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기존 병사들이 조금 힘들겠지만, 훈련이 끝나면 한 동안 여유가 있을 거다. 

“이제야 좀 사람 사는 곳 같네.” 

아직 바꿀게 많지만, 처음에 왔을 때에 비하면 가이린은 180도로 달라졌다. 주민들의 얼굴에 있던 그늘이 조금은 걷힌 느낌이다. 

“이제 사수를 잡을 준비를 해볼까.” 

다시 떠날 때가 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