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개방
“저희에게 의뢰를 맡긴다는 말씀이십니까?”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갑작스러운 말이었는지 거트는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어떤 의뢰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맡길 의뢰는 경계와 호위입니다.”
“아, 그거라면...”
내가 어려운 의뢰를 말할 줄 알았던 건지, 경계와 호위라는 말에 거트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저희 용병단이 특히나 자신있어하는 의뢰가 경계, 호위입니다.”
“그럴 것 같아서 제안한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몬스터를 막아서고 사람들을 대비시킨 다는 건 말은 쉬워도 직접 하긴 어려우니까요. 당신들을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봐도 될까요?”
“일단 앉으세요.”
그에게 앉으라고 손짓을 한 뒤 나도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볼카누이스 용병단은 몇 명이죠?”
“120명이 조금 넘습니다.”
“충분하네요. 일단 의뢰 기간은 일 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 걸리는 기간은 그 열배는 될 테지만.
사실 가이린에 있는 마나석 광산은 일 년 가지고 캘 수 있는 양이 아니다. 내가 보지 못한 땅속이나 벽 속, 천장 속에도 마나석은 줄줄이 박혀있다.
많은 양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광부들을 고용해도 마나석을 모두 캐려면 십 년은 걸릴 거다.
그렇다고 용병들을 십 년 동안 고용 할 필요는 없지.
용병단을 일 년 이상으로 고용하는 것 보다는 위병을 육성 시킨 뒤 그곳을 지키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일 년 동안 만 고용할 생각이다.
“일 년이라면 정말 좋은 조건이네요.”
거트는 일 년이라는 기간에 만족을 한 듯 표정이 밝아졌다. 용병들이 원하는 것은 너무 짧지도, 너무 길지도 않은 적당히 긴 의뢰니까.
“애들에게 물어봐야겠지만, 아마 모두 환영할겁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의뢰 대상은 한 장소입니다. 나중에 알려 줄 장소를 밤낮으로 경계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호위하는 것이 제 의뢰입니다.”
“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병들과 상의가 끝나면 성으로 찾아와주세요.”
“네!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몸조리 잘하시고 나중에 보죠.”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작님! 감사합니다.”
일어나서 구십 도로 인사를 하는 거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다른 부상자들이 있는 곳에 가자.”
“네? 부상자들을 모두 보러가시게요?”
“그래야지.”
페루의 안내를 받으며 부상자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상태를 살펴보았다. 부상자들은 내가 찾아오자, 깜짝 놀라면서도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다행이야.”
부상자들을 만나고, 피해를 받은 시민들까지 살피고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네? 뭐가요?”
“내가 영주가 되자마자 이런 일이 터졌으니, 좋지 않은 징조라고 생각할 만도 한데 사람들의 표정이 나쁘지 않잖아.”
“그거야 당연하죠. 그 사건을 터트린 몬스터를 자작님이 직접 처리하셨잖아요. 마을을 쳐들어온 몬스터를 영주가 직접 나서서 때려잡는 건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건데, 그걸 실제로 봤으니, 자작님을 칭송하지 않고 배기겠어요? 지금 사람들은 역대 최고의 영주가 왔다고 난리가 났어요.”
“그렇게나?”
“네. 전 못 봤지만, 자작님이 싸우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무신 같았다고 하던데요.”
무신이라니, 거창해도 너무 거창해서 입에도 담기 어려운 단어다. 차라리 성자가 나을 정도로.
“됐고, 파이란에게 가자.”
“넵.”
페루와 같이 파이란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들은 대부분 치웠고, 뒷정리 정도만 하면 될 것 같았다.
“파이란 관리관.”
“자작님. 다녀오셨습니까.”
“작업 지휘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과 용병들이 고생해 주었죠.”
파이란이 지금도 일을 해주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친 용병들은 평소엔 사고뭉치들이지만, 이럴 때는 믿음직한 일꾼이 되어주었다.
“파이란 관리관. 쉬지도 못하게 해서 미안한데, 지금 바로 카렌스 영주로 가야 할 거 같습니다. 일이 급해졌어요.”
“알겠습니다.”
파이란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내 말에 의문조차 갖지 않는 것 같았다.
“에킬 산에서 마나석 광산이 발견됐어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조용히 속삭였다.
“역시 그렇군요.”
마나석 광부들을 불러오라고 했을 때부터 예상을 했는지, 파이란은 전혀 놀라지 않고 있었다.
“그럼 전 준비를 하러 성으로 돌아가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파이란을 보낸 뒤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후속 조치까지 해주고 성으로 돌아왔다. 빽빽이에게 과일을 쌓아준 뒤 피곤해서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사수라, 곧 만나겠군.”
**
똑똑.
서류를 보고 있을 때 집무실 밖에서 페루의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자작님. 파이란 관리관이 돌아왔습니다.”
“일주일 만인가?”
“네. 딱 일주일 됐습니다.”
“같이 온 사람은?”
“남자 2명과 같이 돌아왔습니다. 중년인과 청년이었습니다.”
광부들을 데려왔다면 끝난 게임이다. 저들은 광산을 보자마자 일하게 해달라고 내게 빌 것이다.
“응접실에 있어?”
“네.”
“가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응접실로 향했다. 내가 응접실에 도착하자, 앉아있던 파이란과 광부 두 명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년으로 보이는 광부는 덩치도 크고 근육이 우락부락 했지만 순박한 눈을 가지고 있었고, 중년인은 보통의 체격이었지만, 단단해 신체에 침착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자작님을 뵙습니다.”
“자작님을 뵙습니다.”
파이란의 인사에 광부들도 한 쪽 무릎을 꿇고, 내게 예를 갖췄다.
“모두 일어나시오.”
그들의 인사를 받고 광부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앉으시오.”
파이란은 내 옆에 섰고, 광부들은 눈치를 보다 자리에 앉았다.
“파이란 관리관.”
“예!”
“수고하셨습니다. 아리스가 아빠를 일주일째 못 봐서 우울해 하고 있으니 그만 가보세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가보세요.”
“감사합니다. 실례하겠습니다.”
파이란이 내게 고개를 숙인 뒤 응접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본 광부들은 나를 보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진심이기도 하지만, 이건 정 많고, 부하와 허물없이 지내는 영주를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었다.
“오는 길에 문제는 없었습니까?”
“파이란님이 여러 가지로 챙겨주셔서 편히 왔습니다.”
중년인 광부가 입을 열었다. 이 단단해 보이는 남자가 광부들의 대표인 모양이다.
“다행이오.”
“저는 차돌 광부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먼딜이라고 합니다.”
“저, 저는 광부단의 루단이라고합니다.”
광부들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광부들을 꽤나 거칠게 설정 해놨는데 이들은 예상보다 내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유렌 록스라고 하오. 가이린에 잘 왔소.”
“유렌 자작님의 명성은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네! 음유시인에게 자작님의 활약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제 낙중 하나였습니다.”
광부들 특히 루단은 내 팬이라도 된 것처럼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자작님. 저희는 마나석을 캐는 일밖에 모르는 놈들입니다. 저희를 왜 부르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파이란님은 오면 알 수 있다고만 해서...”
파이란이 비밀이 새어 나갈까봐 이곳에 마나석 광산이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당연히 당신들을 고용하기 위해서 불렀소.”
“가이린엔 마나석 광산이 없지 않습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지만 운이 좋았는지 우연히 마나석 광산을 발견했소.”
아직은 내 사람들 밖에 모르지만, 이들을 고용하며 대대적으로 소문을 낼 생각이다.
“저, 정말이십니까?”
“그렇소. 평생을 마나석만 봐온 당신들도 처음 보는 광산일 거요.”
“죄송하지만, 지금 바로 볼 수 있겠습니까? 저희도 봐야 결정을 내리고 견적을 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이오. 페루.”
“네. 자작님.”
“이분들을 성의 뒷문으로 안내해 드려라 나도 준비를 한 뒤 나오마.”
“알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광부들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직접 안내해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한 일 아니오.”
방으로 가서 옷을 챙겨 입은 뒤 뒷문으로 나갔다.
“준비됐으면 출발하겠소.”
“네!”
앞장서서 광부들을 안내했다. 광부들은 체력은 자신있을 테니 쉬지 않고 에킬 산의 동굴까지 향했다.
“이 동굴 안에 있소. 어두우니 조심히 따라오시오.”
동굴의 끝에 있는 구덩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 밑이오.”
“동굴의 안의 구덩이 밑에 있다니, 신기하네요.”
“그렇소?”
“네. 보통 깊은 동굴에서 발견되니까요. 구덩이 밑에 있어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군. 먼저 들어갈 테니, 따라오도록 하시오.”
밑으로 들어가자, 광산을 밝히는 마나석의 푸른빛이 나를 반겼다.
사실 일주일동안 매일 이곳을 오가며 마나석에 이끌린 몬스터들을 처리해왔기 때문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헉!”
“무, 무슨!”
광산으로 내려온 광부들은 내려와서 앞을 보자마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게!”
“말도 안 돼!”
그들은 양 벽과 천장, 바닥에 빼곡히 박혀있는 마나석에 기절하듯 놀라서 뒤로 자빠져버렸다.
“세, 세상에...”
“이런 크기, 이런 양이라니!”
“단장 이거 땅에 묻혀있는 것까지 하면 못해도 보이는 양의 두 배는 될 거 야!”
“아니, 이 정도 양이면 세 배는 될 거다. 이런 광산이 존재했다니, 자, 자작님. 여긴 대체...”
“처음 보는 광경을 보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소.”
광부들의 반응은 내 예상대로 기겁하듯 놀라고 있었다.
“정말입니다. 이런 크기의 마나석은 일반적인 광산에서 10개가 나올까 말까한데 이렇게 우수수 박혀 있다니...”
“일단 좀 더 살펴보죠.”
“자작님.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마나석 광산에는 몬스터가 있습니다.”
“이미 처리했소.”
“어, 어떤 몬스터였습니까?”
내 팬으로 보이는 루란은 내가 어떤 몬스터를 처리했는지 알고 싶은 건지, 자신의 양손을 꼭 잡고 질문을 해왔다.
“리빙아머였소.”
“크헉! 마나석 광산을 지키는 몬스터 중 가장 강력한 놈 중 하나가 리빙아머인데! 그놈을 처리 하신 겁니까?”
“딱히 어렵지 않은 놈이었소.”
“역시!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많고, 질도 좋다니. 여긴 정말...”
먼딜은 광산의 깊은 곳으로 들어 갈수록 더욱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일을 하고 싶은지 손가락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저희 대장은 광산 일을 정말 좋아하는데, 저희가 육 개월째 일을 찾지 못하고 놀고 있어서 저런 겁니다. 일만 시작하면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줄 겁니다.”
루단이 먼딜의 뒷모습을 보며 내게 속삭였다. 일을 하고 싶어 근질거리다니 당연히 환영이다.
“끝방이다!”
“단장!”
광산의 끝 둥근 방에 도착하자, 광부들은 그 안으로 달려갔다.
“크아아!”
“우와아아!”
광부들은 광산에서 가장 큰 마나석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더럽게 크네. 거의 내 허벅지 만한데요.”
“이거 애들한테 말해줘도 안 믿겠지.”
“안 믿죠.”
둘은 커다란 마나석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 진짜 초대형 마나석은 내 마법 주머니에 있다.
포메라가 깔끔하게 위장해 놨네.
저기서 광부들을 놀래 키고 있는 마나석은 포메라를 시켜서 이 광산에서 두 번째로 큰 마나석을 땅에 박아 놓고 위장해 놓은 것이다.
“자, 자작님. 이 크기의 마나석은 정말 부르는 게 값일 겁니다.”
“그렇소?”
“예. 광부로 일하며 이런 크기의 마나석은 처음 봅니다.”
“이 광산은 어떻소? 일 할만 할 것 같소?”
“최고입니다. 저희를 고용해주신다면 내일 당장이라도 와서 작업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오는 시간이 있을 테니, 내일은 무리일 테고, 앞으로 잘 부탁하오.”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광부들은 준비를 한 뒤 10일 내로 다시 온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고, 나는 위병들을 선발하는 시험을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시험에는 500명 정도 왔나 보네요. 총 신청 인원이 2000명이 넘으니까, 4일에 걸쳐서 하는 건가요?”
내 옆에서 페루가 밑에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대충 세면서 입을 열었다.
“맞아.”
“자작님이 위병들의 근무여건을 좋게 해준 것도 있지만, 유렌 자작님이 가이린에 계신 것만으로도 이곳에서 일하거나 살고 싶어서 찾아온 사람들도 많대요.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요.”
“고마운 일이지만, 신청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야.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한 거지.”
“그건 그렇죠.”
위병 신청자가 많이 온건 좋은 일이지만, 제대로 된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
1차 체력시험은 수준을 평균보다 조금 어렵게만 해놔서 꽤나 많은 사람들이 1차를 통과 할 거다.
“용병들이 꽤나 많네요.”
“일단 조건이 괜찮고, 정착하고 싶어 하는 용병들도 많거든.”
“그렇군요. 하긴 용병은 평생을 떠돌아다니니까.”
보고서를 훑으면서 페루의 말에 간단하게 대답해주었다.
“어? 저 여자 전에 본 사람 아니에요? 유명한 사람이라던데 여기 왜 왔지? 돈 다 뺏겨서 그런가?”
“여자?”
보고서를 내리고, 페루가 쳐다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말대로 여기에 올 이유가 없는 여자가 몸을 풀고 있는 것을 보였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