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리빙아머 (96/241)
  • 리빙아머

    콰아앙! 

    “벌써 시작됐군.” 

    가는 도중에 마을 입구가 아닌 마을 안쪽에서 포탄이 터진 것 같은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놈이 입구에서 안쪽까지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꺄악!” 

    “뭐, 뭐야!” 

    “무슨 일이 터진 거야.” 

    마을 사람들이 커다란 소음과 퍼져 나오는 연기를 보며 혼란스러워 하고 공포에 사로 잡혀 있었다. 

    “곧 끝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멀리 떨어져 계세요.” 

    “아! 여, 영주님!” 

    “유렌 자작님이다!” 

    “영주님이 나서신다!” 

    마을 사람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말을 해준 뒤 계속 앞으로 달려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본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지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사람이 저렇게 빠르다니...” 

    “무슨 말보다 빠른 것 같아.” 

    “부츠에서 빛이 터지던데.” 

    콰콰콰쾅! 

    여신상이 세워진 분수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메케한 연기로 둘러싸여 앞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안에 불도 났는지, 연기는 심해지고, 불길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쾅! 

    컁! 

    여러 명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위태위태한 움직임이 느껴지고 있었다. 

    “빽빽아.” 

    “빽!” 

    “바람을 불러와서 연기 다 날려버려!” 

    “빽!” 

    빽빽이가 허공으로 올라가서 파닥거리며 날갯짓을 시작했다. 

    후우우웅! 

    주먹보다도 작은 오목눈이에게서 나오는 소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할 바람 소리가 녀석의 날개에서 터져 나왔다. 

    휘아아앙! 

    빽빽이의 날개에서 나온 바람이 시꺼먼 연기들을 날리고, 작은 불씨를 꺼버렸다. 

    “빽!” 

    촤아악! 

    잡히지 않은 큰 불씨들이 바람을 타고 더욱 난동을 치려고 할 때 빽빽이는 알아서 커다란 물 덩어리를 소환해서 불에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중요한 순간에는 믿음직하네.” 

    빽빽이에게 불을 맡기고, 아래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아린과 크라이드가 대치를 하고 있고, 몇몇 용병들도 검을 들고 검은 갑옷의 앞을 막고 있었다. 

    “확실해. 마나석 광산을 지키고 있어야 할 리빙아머야. 근데 저 마크는...” 

    검은색의 갑옷은 악어의 등껍질을 벗긴 것처럼 울퉁불퉁한 뿔이 우수수 솟아 있었고, 갑옷의 틈새에선 속을 거북하게 하는 검회색 연기가 안개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설정하지 않은 이상한 형태의 마크가 갑옷의 정중앙에 작게 박혀있었다. 

    [리빙아머] - 이어드의 흑갑 

    리빙아머는 갑옷을 입은 채로 죽은 기사가 생전의 원한을 잊지 못해서 언데드로 되살아난 몬스터다. 리빙아머가 사용하는 삭혼검은 자유자재로 형태가 변하고 늘어나기 때문에 상대하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갑옷 주인의 생전의 능력에 따라 리빙아머의 수준이 달라진다. 

    콰아아아! 

    리빙아머가 창 이상으로 길어진 삭혼검을 휘둘러서 아린과 크라이드를 동시에 공격했다. 

    쿠웅! 

    “크으윽!” 

    아린은 검을 피했고, 크라이드는 자신의 검으로 삭혼검을 맞부딪쳤다. 하지만 크라이드는 놈의 검압에 밀려, 집을 부수며 뒤로 밀려나 버렸다. 

    “물러나도록.” 

    “자작님!” 

    “여긴 저희가..” 

    아린과 크라이드가 쉽게 상대 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그들의 경험을 쌓아주는 것도 좋겠지만, 마을에 더 이상 피해를 입힐 수는 없어서 앞으로 나섰다. 

    “더 이상 피해를 늘릴 순 없어. 내가 하겠다.” 

    귀왕살을 뽑아들고, 놈의 모습을 제대로 살펴보았다. 

    일단 핵은 심장에 있군. 

    하지만 핵은 단단한 갑옷으로 보호되고 있고, 놈의 안개는 물질을 투과한다. 다른 사람들에겐 답답한 상황이겠지만. 

    “내겐 아니지. 둘 다 겪어보았으니.” 

    갑옷은 뚫어버리면 되고, 안개는 암기를 내공으로 둘러싸면 공격 할 수 있다. 저 갑옷 괴물을 잡는데 문제가 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흠.”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영주가 되자마자 이런 일이 터져버렸으니, 불안에 휩싸인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해 지금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다. 

    휘아아앙! 

    내가 한 발 앞으로 나서자마자, 리빙아머가 채찍처럼 변화시킨 삭혼검을 내리쳤다. 몸의 방향을 살짝 트는 것으로 놈의 공격을 피한 뒤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퍼어엉! 

    놈의 삭혼검이 내려친 바닥에 지진 난 것처럼 갈라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놈에게 향했다. 

    후우웅! 

    놈은 이번엔 삭혼검을 성인남자보다 큰 대검으로 만들어서 좌에서 우로 휘둘러왔다. 피하지 않고, 귀왕살을 들어 올려 놈의 공격을 그대로 막았다. 

    쩌엉! 

    단검과 대검이 맞부딪쳤다고 생각되지 않는 충격음이 대기를 울렸다. 

    쿠구궁. 

    거대한 충격파가 터졌지만, 난 귀왕살을 움켜쥔 채 단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대검을 잡은 리빙아머가 귀왕살에 들어 있는 만독자전신기의 반발력에 밀려 검과 몸을 휘청거렸다. 

    “세상에...” 

    “말도 안 돼...” 

    놈에게서 겨우 버티던 용병들이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듯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목소리를 냈다. 

    끼긱. 

    그건 리빙아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해 할 수가 없는 듯 놈에게 기름칠 하지 않은 기계소리가 났고, 갑옷 속 연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이만 끝내자.” 

    기이이잉! 

    화골산을 바른 귀왕살에 전사력의 내력을 둘러 놈의 핵을 향해 날렸다. 

    우우우웅. 

    리빙아머가 삭혼검을 몽둥이 같은 형태로 변화시켜 귀왕살을 날려버리려고 했지만, 전사력을 닮은 귀왕살은 퉁퉁한 삭혼검을 그대로 갈라버렸다. 

    캬캬컁! 

    삭혼검을 찢어버린 귀왕살은 멈추지 않고, 리빙아머의 갑옷마저 뚫고 핵을 부숴버렸다. 

    기기기긱! 

    핵이 뚫리자, 놈이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발악도 잠시, 화골산의 힘으로 놈의 본체인 연기가 물에 푼 설탕처럼 녹아 사라졌다. 

    철커덩. 

    검은색 갑옷은 리빙아머의 혼을 잃고, 평범한 갑옷이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저, 저놈을 저렇게 간단히...” 

    “소문이 사실이었어...” 

    “젊은 영웅 중에 제일이라더니...”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넋이 나간 것처럼 나와 떨어진 검은 갑옷을 쳐다보았다. 

    사륵. 

    “어?” 

    리빙 아머의 갑옷은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에 주우려고 다가갈 때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갑자기 갑옷이 사라져버렸다. 

    “마력! 설마, 아까 그 마크는...” 

    “영주님. 감사합니다!” 

    “영주님! 수고하셨습니다!” 

    “자작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크흑.” 

    갑옷의 마크에 대해 생각을 할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내게 몰려들어 감사인사를 해왔다. 

    “빽.” 

    일을 모두 끝낸 빽빽이가 내 머리위로 내려와서 사람들이 하는 감사인사에 자신의 고개를 끄덕였다. 

    “빽빽아.” 

    “빽?” 

    “조금만 더 고생하자. 물 좀 뽑아봐. 상처치료 되는 걸로.” 

    “빽...” 

    “상큼한 과일로 네 방 꽉 채워줄게.” 

    “빽!” 

    빽빽이가 다시 날아올라서 말라버린 분수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오늘은 녀석도 고생을 했으니, 잘 챙겨줘야 할 것 같다. 

    “자작님!” 

    페루와 파이란이 미친 듯이 말을 몰며 달려왔다. 

    “괘, 괜찮으십니까?” 

    페루와 파이란이 내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전 다친 곳 없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마침 잘 왔어요. 저기 있는 물 보이시죠?” 

    “네? 네!” 

    “저 물은 상처 난 곳에 효과가 있는 물이니까. 신관들이 오기 전까지 부상자들에게 발라주세요. 그리고 이곳의 정리를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작님은...” 

    “전 이 일을 벌인 개자식을 잡아 올게요.” 

    ** 

    “확실해. 마법사야.” 

    에킬 산으로 달려가며 다시 그 마크를 생각해보았다. 그건 마법사들이 자신의 가디언이나 소환수에 하는 마킹이다. 거기다 마지막에 갑옷이 사라졌을 때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스토리가 바뀌어서 어떤 마법사가 그 광산을 발견했고, 그곳을 지키는 리빙 아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건가?” 

    하지만 그 리빙아머를 이곳으로 보낸 이유를 모르겠다. 

    그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누군가 그 광산을 발견해서 들어왔고, 그들을 처리는 했지만, 또 누군가 올까봐 걱정 되서 마을입구를 습격한 것 정도다. 

    “가보면 알게 되겠지.” 

    마나석 광산을 잃게 된다면 계획의 상당부분이 틀어진다. 절대 놓칠 수 없다. 

    빠지지직! 

    내력을 극성으로 돌려 뇌익을 사용했다. 에킬 산의 중턱 쯤 올라갔을 때 호랑이 모양의 큰 바위를 찾았다. 

    “이곳에서 동쪽...” 

    바위에서 동쪽으로 쭉 움직이니, 위태로운 자리에 거인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은 동굴이 나타났다. 

    “맞군. 입을 벌린 것 같은 동굴.” 

    동굴의 끝으로 들어가서 안쪽에 있는 구덩이를 발견했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충분히 대비와 계산을 한 뒤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파아아. 

    “아직 가져가진 않은 건가?” 

    자신을 뽐내는 것 같은 마나석들이 벽, 천장, 바닥에 수없이 달려 있었다. 여유가 있다면 구경하며 천천히 가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간 없었다. 

    “2명, 아니 한 명과 한 마리인가.” 

    마나석의 마나들이 방해를 했지만, 안쪽에 꽤나 큰 마나를 품고 있는 존재와 검은 사기를 풍기는 것이 있었다. 

    “리빙아머가 두 마리였다니.” 

    방금 상대하고 왔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있다. 지금 안쪽에 있는 것은 한 명의 마법사와 아까와는 다른 리빙아머다. 

    창조주의 눈을 켜고, 기감을 넓게 펼쳐 경계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철컥. 

    광산의 끝으로 보이는 둥근 원형의 방 같은 곳에서 두 인영이 밖으로 나왔다. 

    “클클. 진짜 미친 듯이 빠른 놈이군.” 

    나온 것들은 검은 로브를 입은 노인과 황금 갑옷을 입은 리빙아머였다. 

    노인은 키가 땅딸만하고, 얼굴은 나무껍질처럼 주름이 자글자글 지어져 있었다. 황금 갑옷의 리빙아머는 좀 전에 처리하고 온 검은 갑옷의 리빙아머보다 훨씬 커다란 사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름: 카르도르 갤빈] 

    [특성: 암흑친화lv3, 사령술lv3, 마나제어lv3, 시체술lv3, 흑혼 제어lv2] 

    [호감도: -87 (살해 충동) ] 

    [현재 기분: 숙성시킨 대형 마나석을 빼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방해를 받아서 굉장히 짜증이 나있음.] 

    사령술을 보니, 마을에 리빙 아머를 보낸 놈이 확실했다. 거기다 황금 갑옷의 리빙아머는 손에 검은 갑옷조각들을 들고 있었다. 

    “네가 리빙 아머를 마을에 보냈군.” 

    “침입자가 있어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 보낸 건데, 이거 늑대가 아니라 호랑이가 찾아와 버렸군. 가만히 놔둘 걸 그랬어. 클클.” 

    예상대로 이 광산에 누군가가 찾아왔고, 누군가가 또 오기 전에 시간을 벌려고 리빙 아머를 마을에 보낸 것이었다. 

    “여긴 어떻게 알아낸 거지?” 

    “네놈의 마력을 추적해서 따라왔다.” 

    “하! 내 마력의 냄새를 맡고 왔다고? 무슨 개새끼도 아니고. 내가 당황을 많이 하긴 했나봐. 클클. 나도 참 멀었어.” 

    그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놈을 칠 준비를 했다. 대화는 일단 잡고 시작해도 늦지 않으니까. 

    “리빙 아머의 눈으로 보았다. 유렌 록스. 네놈 소문대로 강하더군. 하지만 내게도 비장의 수는 있다. 클클.” 

    황금색 리빙 아머가 카르도르를 지키듯이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건 이미 예상한 바다. 황금색 리빙아머가 검은색 보다 강한 힘을 품고 있지만, 그뿐이다. 

    “그 놈으론 날 막지 못한다.” 

    “알고 있다. 세피로스에 들어 갈 때 까진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세피로스?” 

    여기서 세피로스가 나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놈도 세피로스에 들어가게 된 건가? 

    “네놈이 오기 전에 이미 주문은 완성 되었다! 락페른!” 

    카르도르가 날 비웃으며 시동어를 외우자, 황금 리빙 아머가 들고 있던 검은 갑옷이 황금 갑옷에 달라붙으며 어둠 그자체인 것 같은 검은 빛을 내뿜었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바닥에 깔려있던 열 개의 마나석에서 빛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마나석의 푸른빛이 모두 사라졌을 때 검은빛은 은빛으로 변해버렸다. 

    파아앗. 

    “이건...” 

    황금 리빙아머는 방금 만든 것 같은 번쩍이는 은색의 갑옷으로 변해버렸다. 모습만이 아니다. 느껴지는 사기는 이전의 리빙아머 두 마리의 사기를 합친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져 있었다. 

    “됐어! 됐다고! 역시 최상급 마나석이야! 크하하하!” 

    카르도르는 마법이 성공한 것에 기뻐서 방방 뛰고 있었지만, 내 생각에 이건 전혀 성공이 아니었다. 

    “네놈의 힘으론 저것을 다룰 수 없다. 지금이라도 해제하는 게 좋을 거다.” 

    “클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 겁에 질려...어? 이, 이게...” 

    푸칵! 

    말을 하던 카르도르의 왼쪽 가슴에 은색의 건틀릿이 튀어나와 있었다. 놈의 뒤에 있던 은색의 리빙아머가 카르도르의 심장을 뚫어버린 것이다. 

    “아...” 

    퍽! 

    리빙아머는 카르도르의 심장을 그대로 터트려버리고, 쓰러져버린 카르도르의 머리통을 짓밟았다. 

    “저 미친놈이 괴물을 만들어 냈군.” 

    새로운 리빙아머를 보며, 2가지를 깨달았다. 

    리빙아머에 그려져 있던 카르도르의 마킹이 지워졌다는 것, 그리고 리빙 아머에게서 풍기는 어둠의 사기가 카르도르 보다 훨씬 높아져서 놈이 감당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은색의 리빙 아머는 카르도르 따위가 지배 할 수준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지운다...” 

    은색의 리빙아머에서 쇠를 치는 것 같은 같은 기분 나쁜 소리가 나왔다. 말까지 하다니, 나를 또 놀라게 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지운다...” 

    리빙아머가 건틀릿을 까딱이며 내게 다가왔다. 

    이 리빙아머는 혼자서 가이린 영지를 멸망시킬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질 요소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있으면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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