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린의 변화
“가, 갑자기 꿇으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전 이해가 가질 않아서...”
“마지막 기회다. 더 이상은 말로 하지 않아.”
“으으...”
마지막이라는 서늘한 단어에 캐스윈의 전신이 진동이 온 핸드폰처럼 드르르 떨렸다.
캐스윈이 이번에도 모른 척을 한다면, 이 자리에서 그를 처리 할 생각이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보여줄 예시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턱.
“죄, 죄송합니다!”
캐스윈이 눈동자를 굴리다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절박한 목소리로 자신의 잘못을 빌었지만 나는 그런 연기에 넘어갈 정도로 무른 사람이 아니었다.
“뭘?”
“네?”
“뭘 잘못했는데?”
“부, 불법 도박을 한 것을...”
“...”
난 그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며, 기세로 불러일으켰다. 캐스윈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도박장의 주인들에게 돈을 받고, 건물 기록에서 도박장을 지워준 것을...”
“...”
“도, 돈을 받고, 신고를 무마시켜 준 거...”
내가 무표정으로 쳐다보며 압박을 가하자, 캐스윈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계속해서 밝혔다
“신고한 사람들을 구, 구타했고, 용병들이 사고 친 것을 돈을 받고 무마시켜 주었고, 도박꾼의 돈을 강탈했고...”
캐스윈의 말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그와 똑같이 도박장에 관계된 위병들조차 그가 말하는 범죄에 눈살을 찌푸렸겠는가.
“그, 그리고...”
“됐어.”
“아...”
덜덜 떨면서 자신의 죄를 밝히던 캐스윈은 내 말을 듣고 혼절할 것처럼 휘청거렸다.
“적었습니까?”
“네. 모두 적었습니다.”
파이란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대답했다. 그도 캐스윈이 비리를 저질렀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일단 위병들의 관리자가 도박장과 어울려 저지른 비리만으로도 중죄인데, 돈을 강탈하고, 신고자를 구타까지 했으니 이것 또한 중죄입니다. 서로 다른 죄니, 여러 죄들이 중첩되어서...”
파이란이 말끝을 흐렸다. 그것만으로도 그에게 적합한 처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볼 것도 없이 사형이군.”
“헉!”
“아,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전 사람을 죽인 적은 없습니다. 사형까지는...”
눈으로 캐스윈의 상태를 계속 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도박장을 신고한 사람을 위병 다섯이랑 구타하다가 죽인 뒤 에킬 산에 묻어놓았고, 도박꾼의 돈을 강탈 할 때도 그가 말을 듣지 않자, 배를 걷어차서 죽인 뒤 강에 던지고서 거짓말까지 하네?”
“헉! 그, 그걸 어떻게...!”
내 말을 들은 캐스윈은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놀라더니 뒤로 넘어갔다. 뒤쪽에 있던 위병들에게서도 신음 소리가 들렸는데, 캐스윈과 같이 신고자를 때렸던 놈들인 모양이다.
“자, 잠시 만! 이곳의 위병들을 관리 할 사람은 저뿐입니다. 저를 죽인 다면...”
“웃기고 자빠졌네.”
캐스윈은 끝까지 자신이 뭐라도 되는지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너 하나 없어도 세상은 아주 자알 돌아간다. 한 번 더 개소리 하면 지금 이곳에서 형을 집행해주지.”
“으어...”
절망에 빠져있는 캐스윈을 버려두고, 이름이 호명되지 않은 위병들을 쳐다보았다.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어도, 분명 도박장과 관계를 맺은 자가 있을 거다. 자수하려면 지금 하도록. 나중에 잡히면 지금보다 더 큰 처벌을 내릴 것이다.”
10명 정도의 위병이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나와서 다른 사람들처럼 무릎을 꿇었다.
“가관이군. 가관이야. 백성들을 지켜야 할 위병의 1/4이 뇌물을 받고 비리를 저질렀다니. 하.”
많을 줄을 알았지만, 상상이상이다.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자작님.”
옆을 보니, 아린과 크라이드가 10명이 좀 넘는 하인들을 데리고 오고 있었다. 위병들보단 수가 적었지만, 이쪽 역시 대충 넘길 수 없는 숫자였다.
“지금 뇌옥에 공간 남나?”
“도박꾼들이 대부분 풀려나서, 지금은 도박장주와 관리인들만 남아있습니다. 들어갈 자리가 꽤 됩니다.”
크라이드가 방금 보고 온 것처럼 바로 대답했다.
“이들을 모두 뇌옥에 가두고, 죄에 대한 자백을 받도록, 거짓을 말하는 자가 있다면 네 방식대로 처리해도 좋다.”
“알겠습니다!”
크라이드가 위병과 하인들을 보며 서늘한 미소를 짓자, 무릎 꿇은 위병들이 몸살이라도 걸린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음...”
크라이드와 아린이 위병들을 데려가려고 했지만, 수가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할 때 였다.
“뭣들 하는 건가! 빨리 도와드리지 않고!”
위병들의 가장 앞에 있던 판톤이 앞으로 나오면서 말을 하자, 다른 위병들도 그를 따라 몇 분 전만 해도 자신들의 동료였던 죄인들의 팔을 붙잡았다.
“저 판톤이라는 위병은 어떤 사람입니까?”
“제가 이곳에서 가장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실하고, 단백하며, 백성들을 생각하는 좋은 친구입니다. 다만 외골수적인 면이 강해서 전임 영주에게 잘못을 따지다가 말단병사로 강임 당했습니다.”
“그렇군요.”
계급장이 한 줄이지만 느껴지는 위압이 있어서, 왠지 강임 당했을 거라 생각했었다.
“자신까지 이곳을 떠나면 남은 사람들이 더 힘들 거라고, 캐스윈에게 모욕을 받으면서도 그는 끝까지 말단병사로 남아 있었습니다.”
파이란이 판톤의 말을 하며 조금 울먹거렸다.
“정말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보면 알겠죠.”
캐스윈을 뇌옥으로 데려갈 준비를 마친 판톤의 앞으로 갔다.
“판톤이라 하셨죠.”
“그렇습니다. 각하!”
“일단 그 팔 놓고 잠시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알겠습니다.”
판톤이 잡고 있던 캐스윈의 팔을 다른 위병에게 넘겨주었다.
“지금 위병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가장 급한 문제는 현재 인원의 1/4이상이 수감됐기 때문에 근무와 순찰을 돌 인원이 부족합니다. 근무 역시 캐스윈이 자기 편할 대로 짰기 때문에 한 달 동안 근무 한 번 없는 병사도 있고, 한 달 내내 근무가 있는 병사도 있습니다. 장비 역시 노후화 되어 있고...”
판톤의 말은 끝이 없이 이어졌다. 단순히 고집이 센 사람이 아니라, 좀 더 먼 곳을 보고 있는 사람이었다.
“많은 것을 보고 있었군요.”
“계속 말단으로 있다 보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병사들을 잘 챙겨줄 수 있겠네요. 직접 겪었으니.”
“예? 아, 그렇습니다.”
“판톤, 당신을 임시 치안관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앞으로 당신이 하는 것에 따라 앞에 있는 임시가 떨어질 수도 뒤에 있는 치안관이 떨어질 수도 있겠죠.”
“어...”
생각해보지도 않았는지, 내 말을 들은 판톤이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은요?”
“아, 알겠습니다!”
판톤이 차렷 자세를 유치한 채 하늘을 올려보며 크게 소리쳤다.
“좋습니다. 먼저 위병들을 모집하세요. 실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인격과 성정입니다. 무력을 올려주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중요한 건 사람이죠. 오늘 이 꼴들을 봤으니,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인원은 원래 인원의 2배 정도로 뽑도록 하세요.”
“그렇게 되면 자금 문제는 어떻게...”
“일단 압수한 도박 자금이 넘쳐나니 괜찮아요. 후에 돈 나올 곳도 있으니, 신경 쓰지 말고 좋은 사람들로 뽑으세요.”
지금 압수한 도박 자금만 해도 양이 상당했고 지금도 브리카가 숨은 도박장을 찾고 있으니, 돈은 더욱 늘 것이다.
앞으로 개방할 광산도 있으니까.
대충 정리가 끝나면, 바로 광산을 열 생각이니, 가이린 영지는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가이린엔 용병들이 많죠. 그들은 자유를 갈망하다가도, 정착하기를 바랍니다. 성격과 능력 모두 괜찮은 용병들이 있다면 월봉을 올려서라도 받으세요.”
“알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장비 노후화에 대해서는 보고서를 올리고, 근무와 순찰에 관해서도 일단 조율을 한 뒤 보고서를 올리세요.”
“알겠습니다!”
판톤이 흥분을 감출 수 없는 눈으로 크게 소리쳤다. 그의 뒤에 있는 위병들의 눈에도 희망의 빛이 나오고 있었다.
“한동안은 사람이 줄어서 고생 할 테고, 신입이 들어와서 가르치느라 고생 할 테지만, 이전보다 훨씬 마음 편하고 자랑스러운 영지로 만들어 줄 테니, 믿고 기다리도록.”
판톤과 그의 뒤에서 열의를 가진 채 나를 쳐다보는 병사들에게 마지막 말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자작 각하!”
판톤의 외침에 뒤에 있던 위병들이 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감사합니다! 자작 각하!”
**
위병들의 일을 일단락 한 뒤 집무실로 페루와 파이란을 불렀다.
“성의 사람들하곤 모두 인사했어?”
“네. 제가 자작님 집사라니까 모두 엄청 잘해주셨어요. 저택에서 없던 인기를 지금 여기서 누리네요.”
“잘 됐네. 모두에게 인사도 했으니, 앞으로 파이란 관리관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워.”
“네?”
“넌 앞으로 아버지의 집사인 필로님처럼 내 대리로 업무와 관리도 할 수 있어야 해.”
“엑!”
페루가 깜짝 놀랐는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맹한 얼굴을 했다.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데 가만히 있을 거야? 너도 성장해야지. 파이란 관리관의 일처리는 후작가의 관리관들 이상이야. 좋은 스승이 될 거다.”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작님의 집사는...”
페루는 흥분된 상태에서도 내 걱정을 놓지 않았다.
“하인과 하녀들 있으니 괜찮다. 넌 파이란 관리관에게 일을 배우는 것을 최우선으로 신경 쓰도록.”
“넵! 알겠습니다!”
페루의 듬직한 대답을 들은 뒤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파이란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녀석을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똘똘하니, 가르치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난 자작령에서 유유자적하게 영주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페루와 파이란을 잘 가르쳐서 이곳의 대리를 맡긴 뒤 나는 대륙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스토리를 해결해 나갈 생각이다.
“흠...”
파이란의 대답을 들은 뒤 잠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해보았다. 가장 급한 것은 사람이었다.
“일단 카렌스 백작령에서 놀고 있는 마나석 광부들을 불러오세요.”
“마나석 광부요?”
“네.”
마나석은 함부로 다루는 물건이 아니다. 일반인이 꺼내려고 하다간 마나석이 손상 되서 가격이 심각할 정도로 떨어진다.
드워프같은 손재주가 있거나 많은 경험을 겪은 광부들이 나서야 제 형태와 저장된 마나를 보유한 채 꺼낼 수 있다.
에킬 산에 있는 마나석 광산의 양과 질은 역대급이라, 전문적으로 일하는 광부들이 있어야 효율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카렌스 백장령에 있는 광부들을 놀고먹은 지 6개월이 넘어 갑니다. 일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할 테니, 좋은 광산에서 일을 하게 해준다고 하면서 데려오세요.”
“광산이요? 이곳에 그런 게...”
“일단 데려오면 알게 될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파이란이 당황한 와중에도 날 믿는 듯 알겠다고 대답했다.
“마탑의 워프를 사용해도 좋습니다. 광부들의 대표라도 먼저 데려와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몇 달 지나면 다른 마나석 광산이 나타나서 그들을 데려갈 거다. 그전에 먼저 손을 써야 한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네. 부탁합니다.”
파이란과 페루가 바로 카렌스 백작령으로 떠나기 위해 방을 나갔고, 난 보던 보고서를 덮고 마나석 광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일단 광산을 여는 건 문제가 없을 테고, 그 이후에 마나석의 냄새를 맡은 몬스터들을 처리 할 방법이 문제군. 위병을 늘릴까, 용병을 고용할까...”
쾅.
“응?”
갑자기 마을 입구 쪽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무엇인지 보려고 창을 열려는 순간, 문 쪽에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자, 자작 각하!”
“뭐야?”
얼마나 급했는지, 페루가 노크조차 하지 않고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헉! 헉! 자작 각하. 큰일 났습니다!”
“숨 좀 돌리고 말해.”
“갑옷을 입은 무언가가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갑옷? 무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워 되물었다.
“갑자기 마을 입구에 검은 색 갑옷을 입은 무언가가 나타나서 마을을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먼저 소식을 들은 아린님과 크라이드님이 그쪽으로 급하게 움직였습니다.”
“갑옷을 입었는데 왜 자꾸 무언가라고 하는 거지.”
“저도 잘은 모르는데 사람이 아니라 무슨 연기 같은 게 갑옷을 입고, 마을 입구를 부수고 있다고 합니다!”
“뭐?”
사람이 아니라 연기라니, 갑옷을 입고 그 안을 연기로 채우는 존재는 딱 하나 밖에 없다.
“그 리빙 아머가 나온 건가?”
“리빙 아머요?”
“그래. 죽은 기사의 혼이 갑옷에 묶여버린 몬스터다. 그런데...”
검은 갑옷의 리빙 아머는 마나석 광산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보스 몬스터다. 에킬산 쪽도 아니고 마을 입구 쪽에 나타난 이유를 모르겠다.
“설마...”
누가 광산에 침입해서, 광산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마을 입구 쪽으로 나타난 건가? 놈은 강하지만, 그런 머리는 없을 텐데...
“일단 움직여 봐야 알겠군.”
옷도 걸치지 않고, 창틀에 올라섰다.
“자, 자작님?”
“먼저 간다.”
“엑!”
거리낌 없이 바로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자작님!”
빠지지직.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페루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뇌익을 극성으로 사용해서 마을 입구로 내달렸다.
“리빙 아머는 언데드 속성에 핵까지 있는 몬스터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