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가이린 (2) (91/241)

가이린 (2)

버서커의 정신 상태는 세 단계로 나룰 수 있다. 

오직 파괴만을 생각하는 본능의 일 단계. 

이성과 본능이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서로 싸우는 이 단계. 

버서커의 파괴력과 냉철한 이성 전부를 가지는 완전체 삼 단계. 

하지만 저 순서가 강함의 순서는 아니다. 이성과 본성이 싸우는 2단계는 오히려 1단계보다도 어중간한 상태가 된다. 

“크아아아!” 

그렇기에 2단계에 이른 크라이드는 아예 일 단계로 돌아가서 이성을 버리고, 본능에 몸을 맡긴 채 버서커의 불꽃을 태우기 시작했다. 

“저, 저기 저 사람 미친 것 같은데요.” 

“물러나서, 잘 보고 있어.” 

브리카에게 경고를 해준 뒤 전신에 만독자전신기의 내력을 휘돌렸다. 혈도에 도도하게 흐르는 육성의 내력은 무엇에도 이를 것 같은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크아!” 

크라이드는 상반신에서 타오르는 버서커의 불꽃 덕에 키가 2.5는 되는 화염의 화신 같았다. 

“와라.” 

슈아아앙! 

크라이드는 대검을 든 상태 그대로 나를 찔러왔다. 움직이는 속도와 검의 중심이 일체하여, 바람이 찢기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텅! 

오른발을 뒤로 빼서 크라이드의 돌진을 피하며, 주먹으로 옆구리를 쳤지만 생각이상으로 반발력이 강했다. 흡사 강철을 친 것 같은 반응이다. 

후우웅! 

옆구리를 얻어맞은 크라이드는 나를 노리며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검에서 공기를 태우는 것 같은 위력이 느껴졌다. 

지지직. 

허리를 회전시켜 공격을 피한 뒤 주먹에 자전의 뇌기를 모았다. 

퍼엉! 

“쿠어억!” 

전뢰상권의 일 권 전사권에 가슴을 강타당한 크라이드가 뒤로 물러나며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지지지직! 

전사권에 맞은 녀석의 가슴부위에서 지지직거리는 뇌전이 버서커의 불꽃을 잡아먹고 있었다. 

“힘 조절을 좀 더 해야겠네.” 

권은 미숙하지만, 그 동력은 우수하다 못해 넘쳐흐를 정도다. 힘 조절을 하지 않으면 버서커 상태의 크라이드라도 크게 다칠지 모른다. 

후웅! 

크라이드의 자세가 바뀌었다. 크라시스 왕국 검술 용조세다. 

카카카강! 

쾅쾅! 

용이 발톱으로 내려찍은 것처럼, 크라이드의 검격에 연무장 바닥이 갈려나가기 시작했다. 

빠지지직! 

“크헉!” 

쾅!쾅! 

다섯 번에 걸친 크라이드의 용의 발톱을 피한 뒤 녀석의 양 옆구리에 이룡출수를 박아 넣었다. 

“위력이 미쳤는데.” 

전뢰상권의 권격은 상대의 오러를 잡아먹고, 그 안에 충격을 주는 강력한 무공이다. 크라이드의 버서커 오러가 뚫릴 정도니, 다른 기사들을 말할 것도 없을 거다. 

“커헉!” 

강한 충격을 먹은 크라이드의 왼쪽 눈이 원래의 순박한 눈으로 돌아왔다. 잠시 이성을 깨운 모양이다. 

“대, 대체 무엇을 배우신 겁니까. 주먹으로 이런 관통력이라니...”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하아, 정말 대공자님은 따라 갈 수가 없네요.” 

“그래도 여기서 끝은 아니지?” 

“물론입니다.” 

말을 마친 크라이드가 검을 다시 꽉 부여잡고, 오러를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화르르르.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인 것처럼, 그의 검이 오러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꽃은 검 끝에 모여 하나의 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플레어 소드로군.” 

원작에서 크라이드가 사용하는 기술 중에 하나로 수십의 몬스터들을 일격에 지워버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저 위험한 기술을 내게 쓰려는 것을 보니, 나에 대한 신뢰가 상당한 모양이다. 

“그럼 나도 보여줘야겠네.” 

피하지 않고, 부딪쳐주기로 했다. 주먹에 뇌기를 가득 담아 전뢰상권의 팔 초식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공기를 튀겨버릴 것 같은 뇌기가 내 주먹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후우웅! 

빠지지직! 

크라이드가 검 끝에 모인 플레어 소드를 날리는 순간, 뇌기에 휩싸인 주먹을 뻗으며, 손을 펼쳤다. 그 안에서 당구공만한 우레의 구슬이 생성 됐다. 

빠지지직! 

타오르는 거대한 화염의 구에 먹혀버릴 것 같은 작은 뇌구(雷球). 하지만 그 안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내력이 압축되어 있었다. 

콰아아앙! 

전뢰상권의 팔초식 극뢰포(極雷砲)는 플레어 소드와 맞부딪친 순간 거대한 구멍을 내며 화염의 구를 소멸시켜버렸고, 뒤에 있던 크라이드는 그 여파를 막다가 손아귀가 찢겨지며 검을 놓쳐버렸다. 

미리 방향을 조절했기 때문에 크라이드가 검을 놓친 것으로 끝났지, 정면이었다면 크게 다쳤을 것이다. 바닥에는 이무기가 지난 것 같은 자국이 남았다. 극뢰포가 날아간 흔적이었다. 

“크학!” 

버서커 모드가 꺼진, 크라이드가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은 말할 힘도 없이 혼란스러워보였다. 

“대, 대공자님...” 

“어어어...” 

옆에 있던 브리카는 뒤로 주저앉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극뢰포는 강심장인 그조차 식겁해서 식은땀을 흘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미안해. 힘 조절을 했는데도, 상처를 입혀버렸네.” 

“마, 말도 안 돼...” 

크라이드의 표정이 귀신을 본 것처럼 핼쑥해졌다. 힘 조절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손 줘봐.” 

크라이드의 손의 혈도를 만져서, 임시로 출혈을 막았다. 

“가서 치료 받고, 가이린으로 너도 떠날 준비해. 합격이다.” 

“가, 감사합니다.” 

크라이드를 보내고 난 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브리카에게 다가갔다. 

“크, 큰형님. 아, 아니, 자, 자작님!” 

극뢰포가 충격이긴 한 모양이다. 저 간 큰 녀석이 내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있으니. 

“됐고 일어나봐.” 

브리카가 다리를 사시나무처럼 떨며 겨우 일어났다. 

역시 거궐혈, 유문혈, 기문혈까지 손상됐군. 

그의 혈도를 파악해보니, 오러를 이용하는 통로가 꽉꽉 막혀 있었다.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아도,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뒤로 돌아봐.” 

“네?” 

“뒤로 돌라고.” 

“아, 네!” 

브리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돌았다. 그의 등에 손을 얹어 내 내력을 집어넣었다. 

“윽!” 

“따끔 할 거야. 절대 입을 열지 마.” 

“알겠...” 

“말하지 말라고.” 

“흡!” 

내력으로 브리카의 막혀있는 혈도들을 자극했다. 큰 고통을 느끼는지 브리카의 몸이 계속 움찔 거린다. 

이 작업은 모래성을 쌓을 때 밑에 터널을 뚫는 것과 비슷하다. 너무 강해서도, 너무 약해서도 안 된다. 창조주의 눈으로 보며, 최대한 조심하면서 그의 혈도를 자극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윽, 방금 그건 대체 뭔가요? 시원하면서도 굉장히 아픈데요?” 

“네 오러를 되돌릴 치료방법이다. 몇 번 더 해야 하니까. 아침, 저녁으로 찾아오도록.”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브리카가 꿈을 꾸는 것 같은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 어깨 인사 좀 하지 말고.” 

“알겠슴다!” 

“푸른 상어인가 하는 길드는 정리했어?” 

“네. 믿을 만한 녀석에게 맡겨주었습니다. 바로 떠날 수 있습니다!” 

“떠나는 날짜가 정해지면 페루를 통해 전해줄 테니, 너도 준비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브리카를 보내고, 홀로 남은 연무장에서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전뢰상권의 위력은 강대했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배울 것도 숙련되어야 할 것도 많았다. 

“아직 멀었어.” 

** 

이주일 후. 

우리는 록스를 떠나 가이린으로 향했다. 후작은 줄 거 안 줄 거 다 챙겨주려고 했지만, 거절하고 꼭 필요한 물품들과 몇몇 일 잘하는 하인들만 데리고 출발했다. 

“그런데 대공자님.” 

“왜?” 

“아, 죄송합니다. 자작님.” 

“상관없어. 근데 왜?” 

“저희 왜 이렇게 초라하게 가는 건가요? 영지 부임인데 화려한 마차에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하지 않나요?” 

페루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지금 우린 20명 정도의 인원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간단한 여행복을 입고 있었다. 영주가 가는 것 치곤 말도 안 될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다. 

“이러고 가야. 가이린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네? 그게 대체...” 

“너도 가이린이 사고뭉치 영지인 건 알 거 아니야. 아무리 걔네들이 머저리여도 영주가 왔으면 일단은 눈치를 보겠지.” 

“그, 그러겠죠.” 

“난 가이린이 어디까지 망가졌는지. 본 모습을 보고 싶거든.” 

“아!” 

페루와 다른 사람들이 이해했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깊은 생각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자작님!” 

“됐어.” 

크라이드와 페루에게 손을 내젓고 앞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흰색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저곳이 가이린입니다. 다 도착했네요.” 

브리카도 건물들을 본 듯 내 옆으로 다가왔다. 

“최근에 온 게 언제지?” 

“육 개월 전쯤에 왔었습니다.” 

“그럼 아는 사람 많겠네?” 

“얼굴은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그럼 사람들에게 날 호구라고 소개해. 겉으로는 손님이라고 하고 뒤에서 호구로 보는 그런 거 있잖아.” 

“네. 네?” 

브리카가 기가 막히다는 듯 핏대를 올렸다. 

“제, 제가 감히 어떻게...” 

오러가 회복되고 있는 브리카는 지금 나를 거의 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그는 절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는 원래도 호구를 무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건달의 자존심이...” 

“건달의 자존심이고 뭐고, 내가 괜찮으니까 해.” 

“알겠습니다...” 

브리카가 끙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보다는 평범하군.” 

브리카와 대화를 하는 중에 어느새 입구에 도착했다. 

가이린 자작령의 마을은 겉보기엔 좀 낡은 것 빼곤 평범해 보였다. 구석에서 대낮부터 주먹질을 하고 있는 덩치들을 제외하면. 

“가이린에선 흔한 일입니다. 위병도 적고, 보더라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요.” 

“그래?” 

“네. 수시로 싸워대니까요. 저기 보시면 응원하며 내기를 하는 놈들도 있어요.” 

브리카의 말에 다시 그쪽을 보니, 옆에서 돈을 쥐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브리카의 말대로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럼 지금부터 지시를 내린다.” 

내 말에 모두가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브리카, 여기 도박장 많지?” 

“많죠. 거짓말 좀 보태면, 열 집 마다 하나씩은 도박장입니다.” 

“가장 유명하고, 돈이 많이 움직이는 도박장의 이름을 말해봐.” 

“레드 드래곤, 블랙 오크, 키메이라 3군데가 가장 잘나가는데, 그 중에서도 블랙 오크가 최고입니다.” 

블랙 오크, 술집의 이름이지만 그건 위장일 뿐이고, 속은 도박장이다. 

“아린.” 

“네.”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영주 성으로 가서 일단 짐을 정리하고, 3시간 후에 블랙오크라는 도박장으로 모든 위병들을 데리고 오도록.” 

“알겠습니다.” 

“브리카는 나랑 같이 가자.” 

“네!” 

자신만 따로 움직인다는 생각에 브리카가 기분이 좋은지, 씩 웃었다. 

“너 자작님 똑바로 모셔.” 

“걱정 마시라.” 

“으... 진짜 부탁 한다.” 

“알아, 잘할게 인마.” 

페루가 걱정되는지 성으로 향하면서도 계속 브리카를 뒤돌아보았다. 

“브리카. 블랙오크로 가자.”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블랙 오크가 바로 내가 찾던 도박장이다. 블랙 오크는 골목 사이에 있었는데, 겉으로는 영락없는 술집일 뿐이었다. 

“어! 브리카!” 

“주인장. 오랜만이야.” 

브리카가 안으로 들어가자 카운터에 있던 중년인이 아는 체를 해왔다. 술집 안도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고, 평범해 보인다. 

“록스에서 바쁘다고 들었는데?” 

“이제 해결 됐거든. 안에 들어가도 되지?” 

“응? 너 도박 안하잖아.” 

“손님이 들어가고 싶다고 하셔서.” 

브리카가 나를 손짓하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주인장이 내 위아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이 무지하게 잘생겼네. 여자 여럿 울리겠는데.” 

주인장은 카운터에서 슥 나오더니, 옆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곳이 도박장으로 향하는 통로다. 

“여기를 넘어가면 도박장이 나옵니다.” 

“그래.” 

“아린님이 잘 찾아오실 수 있을까요?” 

“걔 똑똑하니까 괜찮아.” 

통로를 따라 30m정도 이동을 하자 꽤나 큰 양문이 나오고, 키가 2m는 되어 보이는 험악한 덩치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손님 모시고 왔다. 문 열어줘.” 

그 둘은 나와 브리카를 한 번씩 보더니, 옆으로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쿵. 

문이 열리자마자 역한 담배 냄새가 풍겨 나왔다. 도박장은 술집보다 4배는 넓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박을 즐기고 있었다. 

시설이 꽤나 잘 만들어져 있어, 카지노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저는 어떻게 합니까?” 

“아까 말했듯이 나를 돈 많은 호구 도련님으로 소개해.”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브리카가 관리인들과 이야기 하게 해놓고, 도박장들을 둘러보았다. 룰렛, 카드, 주사위 여러 가지를 하고 있었지만, 내가 찾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떴다!” 

여성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머리가 벗겨진 중년인과 젊은 청년 그리고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초록색 머리카락을 가진 미녀가 앉아 있었다. 

“찾았군.” 

더 이상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고, 그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오, 처음 보는데? 신입인가?” 

“늪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야, 못 보던 절정 꽃미남이잖아! 이 누나가 꽃미남 정말 좋아하는데!” 

각자 특징이 있는 말이다. 이 중에서 내가 주목하는 사람은 초록머리의 미녀였다. 

“와, 미쳤어. 진짜 내 타입인데? 아가야. 오늘 누나랑...” 

“패 돌리시죠.” 

가볍게 웃으며, 딜러에게 게임을 시작하자고 말했다. 

“성격도 딱 마음에 드는데?” 

“내가 그렇게 만나자고 해도 눈길도 주지 않더니. 이런 취향이었어?” 

“난 젊고 잘생긴 남자가 좋거든.” 

“저는요?” 

“넌 젊지만 잘생기지 않았잖아.” 

“이거 참 부모님을 원망 할 수도 없고...” 

“큭!”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딜러까지 포함한 4명의 얼굴과 패를 차분히 쳐다본 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다. 

“뭐야? 꽃미남. 패가 나쁜가 보지?” 

“처음부터 죽으면 끗발이 떨어진다네.” 

“첫판은 무조건 가야죠.” 

끗발? 패? 그런 것이 아니다. 

딜러를 포함한 4명 모두의 패와 심리가 창조주의 눈에 대놓고 보이고 있었으니까, 웃음이 안 나올 수 있나. 

지고 싶어도, 질수가 없네. 

“첫판부터 죽을 수는 없죠.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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