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덫을 치다 (3) (86/241)

덫을 치다 (3)

“으어어...” 

조금 전까지 베일을 보호하고, 독을 막아주던 살의의 오러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지자, 놈이 나사가 빠진 것 같은 음성을 내뱉었다. 

“그러게 왜 뒤지기 직전인데, 살극을 쓰냐.” 

“커허억!” 

베일의 최후 능력인 살극은 그 위력만큼이나 반동이 강력해서, 놈은 3일 동안 오러를 불러올 수 없다. 지금 베일은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으아아아악!” 

베일은 무너져 내리는 자신의 신체를 쥐어 잡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독을 버텨주던 오러를 잃었으니, 이대로라면 5초도 되지 않아 몸이 녹아버릴 것이기에 마비를 제외한 모든 독을 해독해 주었다. 

“크허허억...” 

“그새 꽤나 늙었군.” 

중년과 청년의 사이에 있던 미남자 베일은 독에 중독된 영향과 정신적 충격으로 세월을 폭삭 내려맞은 것처럼 늙어있었다. 

“흠...” 

원작의 베일은 이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고, 주인공과 그 동료들을 죽음의 위기까지 몰아붙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10개의 독에 중독되었고, 환영미리진이 놈의 감각을 방해한데다가 자괴연으로 원래의 능력까지 저하되었다. 

추가로 내가 놈의 모든 능력을 파악하고 대비까지 했으니 쉽게 잡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특히나 마지막이 가관이었지.” 

베일의 3단계 살귀는 트롤 이상의 재생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귀왕살에 있는 회복불가 능력이 재생을 막고 독을 퍼트려서 놈은 꼼짝도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스스로 회복하지 못하던 베일이 여자의 피를 흡수해서 힘을 복구했지만, 그건 죽음에 발을 집어넣은 것과 다르지 않은 행동이었다. 

“늦든 빠르든 이렇게 될 거긴 했지만, 알아서 독 구덩이로 발을 담가주다니, 참 고맙다.” 

베일은 시꺼멓게 변한 안색으로 부들부들 떨며 내 눈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힘도 살기도 보이지 않았다. 

“너 때문에 여기저기서 꽤나 귀찮았거든. 왜 이렇게 집요한지. 일단 맞고 시작하자.” 

빡! 

빡! 

이 이상 놈에게 독을 쓰면 즉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자백제만 먹이고, 내 속이 시원하도록 신나게 두드려 주었다. 

“흡!” 

아픈 혈도만 얻어맞은 베일이 핏발선 눈으로 날 쳐다보았지만 그 의미는 살기가 아니라 절망과 공포였다. 

“이제 대화를 해볼까?” 

“크헉...” 

속이 풀릴 정도로 놈을 패고 난 뒤 베일의 목 위만 마비를 해제했다. 

“일단 네가 나를 찾고 노린 이유인 이 이빨, 이걸로 뭘 노리고 있었지?” 

주머니에서 남은 반쪽의 이빨을 꺼내 보여주었다. 

“괴, 괴물들을 찌를 비장의 수로 쓸 생각이었다. 억!” 

베일은 정신이 하늘로 유유히 날아간 상태인데다가 얻어맞았기 때문에 내 질문에 대답하고 자신이 깜짝 놀라고 있었다. 

“이, 이거였군. 방금 먹인 흰색 약! 그걸로 내 정보를 알아낸 거였어.” 

“넌 네 늑대들에게 어떤 정보도 넘기지 않았잖아. 그런데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럼 어떻게...” 

“질문 하는 건 나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지껄이지 말고 대답만 해라.” 

“크으...” 

베일은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노려보았지만, 눈동자가 떨리는 것은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괴물이라는 건 세피로스의 삼공을 말하는 거겠지?” 

“어, 어떻게 네놈이 세피로스를 아는 거냐! 거기다 삼공은...” 

퍽! 

“커헉!” 

내게 역으로 질문을 하려고 한 베일의 이마를 한 대 날렸다. 

“질문은 내가 한다고 했지. 삼공을 노리려던 이유가 뭐지? 사이가 좋지 않기는 해도 건드릴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그 괴물들은 세피로스를 자신들의 하인 집단으로 만들 생각이다. 새 인원들을 우리에게 통보도 없이 받아들이고, 다른 자들 역시 자신들의 하인처럼 다루고 있다. 그놈들...” 

“그게 다가 아니라, 더 있을 텐데?” 

원작에서도 삼공이 세피로스를 자신들의 개인세력으로 쓰는 것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들과의 실력차이를 알기 때문에 베일은 뒤로 욕할지언정 나서지 않았다. 

베일은 애닌처럼 단순하고 멍청하지 않다. 분명 베일이 나선 이유 혹은 나서도록 자극한 인물이 있을 것이다. 

“삼공, 그 괴물 놈들을 죽일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그걸 누구에게 들었지?” 

“아카사...” 

“아카사? 예언자 아카사?” 

“그녀까지 알고 있다니. 네놈은 정말...” 

“그럼 왕실 보고에 있던 이빨에 관한 것도 그 여자에게 들었겠군.” 

“그...렇다. 그 여자가 내게 이빨에 대한 정보와...” 

베일의 말이 뚝뚝 끊기며 점점 알아듣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바한의 반지에 대해...” 

“바한의 반지! 그래. 바한의 반지와 이빨로 만든 무기라면 가능성이 있어.” 

신살수의 송곳니로 무기를 만들고, 바한의 반지를 낀 후 기습을 한다면 베일이 삼공 중 하나를 잡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반지까지 받았나?” 

“이빨이 확인되면 넘겨준다고 해, 했다.” 

“거래 조건이 뭐였지?” 

“삼공 중 에블린을 노리는 것. 그녀를 죽인 뒤 그 시체를 양도하는 것이다. 에블린을 공격할 때 지원도 해주겠다고 하더군.” 

“이제야 네 모든 움직임과 활동이 이해가 가네. 아카사가 네 뒤에서 조종했기 때문이었어.” 

“크흑. 조, 조종이라니! 나는 그 따위...” 

베일의 눈에서 빛이 점차 꺼져가며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조종이 맞다. 이 멍청한 놈아. 그녀는 어디 있지?” 

“크윽! 때가 되면 알아서 찾아온...컥...” 

말을 하던 베일의 고개가 툭하고 떨어졌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아카사...” 

아카사가 가진 예언의 능력은 원래 자신의 능력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도 많고, 불완전하다. 

그녀는 그 불완전함을 해소하고 더욱 강해지기위해 세피로스의 에블린을 먹으려고 한 것이다. 

“이 시점에 아카사가 에블린을 노리다니. 원작과는 거리가 멀어.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거지? 내가 엔비를 건드린 것과는 상관없을 텐데...” 

아카사는 그저 인간 상태의 가명일 뿐이다. 

그녀의, 아니. 그 것의 진정한 이름은 그런 것이 아니다. 

“글러트니. 이미 활동을 시작했었군.” 

** 

“이제야 집에 들어가네. 그러고 보니, 넌 처음이지?” 

“빽.” 

빽빽이가 상큼한 울음소리로 대답했다. 

베일의 안가를 모두 정리하고, 포메라를 불러 이오칼 왕국으로 다시 이동한 뒤 마탑의 워프를 이용해서 록스 후작령으로 돌아왔다. 

포메라가 대체 뭐하는 짓이냐는 눈치를 보냈지만, 여러 가지 의심에 대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다. 

“대, 대공자님!” 

“오랜만이네.” 

“아!” 

오른쪽에 있던 위병이 정신을 차리고 저택에 보고를 시작했다. 

“왜 이렇게 놀라? 무슨 일 있어?” 

“후작 각하께서 대공자님을 계속 찾고 계셨습니다. 거기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공자님을 뵈려고 왕궁에서 찾아온 손님들도 계셨습니다.” 

다른 위병이 문을 열어주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정말?”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며 깜짝 놀란 연기를 해주었다. 

“어제까지 계셨다고?” 

“네. 일주일가량 머물다가 어제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신성국에서 온 분도 같이 계셨는데, 그분은 신성국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런, 알겠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연기에 박차를 더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대공자님!” 

다급한 얼굴을 한 페루가 저택으로 향하던 내 앞으로 달려왔다. 

“헉, 헉! 이제 오셨군요!” 

“왕궁에서 온 사람들 돌아갔다며?” 

“일주일간 기다려도 대공자님이 오시질 않고, 연락도 없으니, 이곳에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겠죠. 어제 모두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남기고 간 말이 있겠지?” 

“맞습니다. 카이리오 자작님이 돌아가기 전에 유렌님이 돌아오는 대로 꼭 왕궁으로 오시라는 말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렇겠지. 폐하께서 불러오라고 하셨을 테니.” 

크라시스 왕국과 신성국 이오칼의 외교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에 상을 내리려고 하는 것일 거다. 

아마, 왕실 보고를 열어서 보물 한두 개를 가져가라고 할 거 같은데. 

“먼저 후작각하께 들리셔야 할 거 같습니다. 각하께서 바로 집무실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알겠어.” 

페루에게 짐을 넘겨주고, 바로 후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오셨군요.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집무실 앞에서 대기하던 필로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작님은 안에 계십니까?” 

“네. 다만 연락을 하지 않으신 것에 조금 화가 나 있으십니다.” 

“그렇겠죠.”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에 노크를 했다. 

“들어와라.” 

후작의 무감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음...” 

책상 앞에 서있던 후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먼저 내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없습니다.” 

연락조차 하지 않고 위험한 곳에 간대다가, 일이 끝난 이후에도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는데도, 후작은 무내 걱정을 가장 먼저 하고 있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에게 진정으로 죄스러움을 느꼈다. 

“지난번에도 했던 소리지만, 마탑에 들려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후작의 눈에는 화도 담겨 있었지만, 그 깊숙한 곳엔 걱정과 염려가 담겨 있었다.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솔직하게 미안함을 전했다. 

“후우...” 

후작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이제 스물이 넘었으니, 네 처신은 알아서 하겠지만,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구나.” 

“죄송합니다.” 

후작은 내가 부담스러움을 느낄 거라 생각했는지, 카이리오 자작이나 신성국의 외교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말 고마운 배려였다. 

“그래. 신성국에선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놓고 어딜 갔느냐? 아린에게 내가 임무를 주었다는 거짓말까지 하고서,” 

“수련을 했습니다.” 

“수련?” 

생각도 하지 못했는지, 후작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데스나이트와 마계수를 잡으며 여러 심득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동굴에 틀어박혀서 수련을 하고 왔습니다.” 

“어디서?” 

“아린과 기라녹스를 보내고, 다시 피메라 산으로 올라가서 그곳에 있던 동굴에서 수련했습니다.” 

솔직하게 베일을 처리하고 왔다고 말 할 수는 없었으니, 가장 그럴듯한 수련 핑계를 대기로 했다. 실제로 수련을 하기도 했으니. 

“그랬군. 왠지 크고, 단단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꽤나 성취가 있던 모양이야.” 

“조금 얻은 것이 있습니다.” 

“후후, 대체 뭐 하고 놀았나 했더니. 수련이라. 너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되었구나.” 

“빽.” 

후작의 기분이 풀렸는지 가볍게 웃음을 짓자마자, 빽빽이가 주머니에서 튀어나왔다. 여전히 분위기는 무지하게 잘 읽는 녀석이다. 

“이 새는?” 

“마계수를 잡고 나서 구한 정령수입니다.” 

“아! 이 아이로군.” 

“빽빽.” 

빽빽이가 애교를 부리듯 후작의 머리 위를 맴돌며 조롱조롱 울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순식간에 나보다 후작이 더 높은 위치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빽빽.” 

“그래. 그래. 정말 귀여운 녀석이구나. 하하!” 

후작은 벌써 빽빽이에게 넘어갔는지, 자신의 책상에 있던 포도를 떼어주고 있었다. 

“유렌. 거기 앉아 보거라.” 

후작의 말에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후작은 내 맞은편에 앉으며 포도를 뜯고 있는 빽빽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느냐?” 

“물론입니다.” 

“그럼 벌을 내려야겠군.” 

후작이 턱수염을 긁으며 미소 지었다. 

“벌로 네 이야기를 해 보거라.” 

“네?” 

“나는 네 활약상을 남들에게 소문으로만 들었다. 아들의 칭찬이라 기쁘긴 했지만, 제대로 알지를 못해.” 

“아...” 

“네가 어떤 일을 어떻게 겪었는지 네 입으로 들어보고 싶구나.” 

후작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내 눈을 쳐다보았다. 다시 한 번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마주 미소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무기를 만들러 갔던 드워프 마을에서부터 시작하지요. 그곳에 가자마자 용암 골렘이...” 

** 

“후...”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작은 내 등을 두드리면서 내 이야기 보다도 길게 칭찬을 했다. 특히나 후라켄과 친해졌다는 것에 경악을 하며 함박웃음꽃을 피웠다. 

“나중에 들린다는 것을 알면 기절하시겠군.” 

후작이 기뻐하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정말 그와 가족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건 그렇고, 하루 쉬고 또 이동해야하다니.” 

후작은 국왕이 기다리고 있으니 내일 바로 왕궁으로 출발하라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정말 빡빡한 느낌이다. 

“점검이나 해볼까.” 

오랜만에 내 침대에 드러누워서 상태창을 켜보았다. 사천당가 특성을 쭉 내리며 이것저것을 확인하다가 무공 카테고리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잠금 해제.] 

[세 가지 무공 중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