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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덫을 치다 (84/241)
  • 덫을 치다

    “화, 화끈하신 건 변하지 않으셨군요.” 

    베로아는 테이블위에 쏟아진 금화들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도 지부장이라 그런지 그녀는 금방 금화에서 시선을 떼고 정신을 차렸다. 

    “그래? 그럼 돈 많은 거 말고도 내 장점이 하나 더 있었네. 화끈한 거.” 

    “아...” 

    베로아가 붉은 입술을 살짝 벌리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군요.” 

    그녀는 겉으로는 평온한 표정을 회복했지만, 예전에 왔을 때와 똑같이 내게 상당히 당황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그녀가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 딴판의 만남이 되었을 테지. 

    “잡설은 됐으니, 바로 본론으로 가지.” 

    “알겠습니다. 어떤 정보를 먼저 받아보시겠어요?” 

    베로아가 가볍게 호흡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 

    “의뢰하신 정보는 모두 세 가지로 첫 번째는 저자가 카볼인 검술서나 체술서를 찾아달라는 의뢰, 두 번째가 카렌스 백작, 포비앙 남작, 이리안 남작, 바버린 남작들의 정보였고...” 

    두 번째 의뢰에 있는 귀족들의 이름은 베일 포비앙을 제외하면 혹시나 랙커드에서 정보가 빠져나갈 것을 대비해서 껴놓은 인물들이다. 

    “마지막으로 리파마을 출신의 라시드라는 사람의 근황이었습니다.” 

    “모두 맞아. 그러면 먼저 카볼의 책부터 시작할까.” 

    “알겠습니다.” 

    베로아가 벽에 창구처럼 나있는 구멍으로 다가가서 가죽 가방을 하나를 꺼냈다. 

    슥. 

    그녀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들어 내게 건네주었다. 

    “일단 원하신 책의 위치는 다른 의뢰와 시간을 맞추느라, 완벽하게 조사를 하지 못했어요. 그 기간 동안 저희가 찾은 책은 모두 여섯 권이에요.” 

    “짧은 시간인데, 생각보다 많이 찾았는데.” 

    “후후, 저희는 랙커드니까요.” 

    귀족들의 정보야 어느 정도 정리된 것이 있었을 테니 한 달로도 충분하겠지만, 책은 새로 의뢰를 받았고 기간도 짧아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여섯 권이면 기대 이상으로 많이 찾은 것이다. 

    랙커드에게 계속 책의 수배를 맡겨도 되겠는데.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책들은 모두 카볼의 책입니다. 첫 번째 크라시스 왕국 기본 검술서 록스 후작가 록스 후작의 집무실.” 

    방금 크라시스라는 소리가 나왔을 때 미리 표정을 굳혀놓지 않았다면 신음소리를 냈을지도 몰랐다. 록스 후작가 내부에도 랙커드의 일원이 있는 모양이다. 

    그들은 내가 읽고 나서 후작에게 돌려준 검술서를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도서관에서 찾아서 현재는 내 수중에 있는 두 번째 검술서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신성국 이오칼의 젠버그 가문, 후라켄 젠버그 공작의 개인 서재에 있습니다.” 

    “그렇군.” 

    아쉽게도 지금까지 나온 3권이 모두 내가 읽은 것들이다. 그녀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 번째 검술서는 제국에 있는 사이온 후작가에 있습니다.” 

    “사이온 후작가? 그 화검(火劍)의 사이온을 말하는 거야?” 

    “맞습니다. 전장을 태우는 화마의 폭검, 화속성의 오러로 유명한 사이온 후작가가 맞습니다.” 

    “음...” 

    사이온 후작가문은 제국에서도 이름 높은 검술 명가로 그 가문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의 오러엔 화속성이 담겨있어서 궤를 달리하는 위력을 낸다. 

    그 능력만큼이나 자존심도 쎄고, 가문 전체가 굉장히 건방진데, 네 번째 검술서를 챙기려면 꽤나 고생해야할 듯싶다. 

    “다섯 번째인 히로스 왕국 검술서는 용병 로디엔이 가지고 있습니다.” 

    “로디엔이라고?” 

    “알고 계시나요? 뛰어난 검술 실력으로 요즘 가장 인정받는 용병이죠.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모든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했어요. 거기다 외모도로, 그 기행으로도 이름 높죠.” 

    사이온에 이어 아는 이름이 나왔다. 로디엔 역시 내가 아는 인물이고, 원작에서도 비중이 있는 인물이다. 

    “지금 로디엔의 위치는?” 

    “가이린에 있습니다.” 

    “가이린? 록스 옆에 있는 주인 없는 영지?” 

    “가이린에 주인이 없는 것까지 아시다니, 견문이 넓으시군요. 맞아요. 로디엔은 몇 달째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용병 로디엔이 왜 가이린에 있는지 확신 할 수 있었다. 베로아의 말대로 그 자의 기행 때문인데 히로스 왕국 검술서는 생각보다 쉽게 얻을 수 있을 거 같다. 

    “마지막은?” 

    “여섯 번째 책은 이곳에 있습니다.” 

    베로아가 그 말을 하며 가죽가방에서 책을 한권 꺼냈다. 초록색 하드커버로 감싸져 있는 고풍스러운 책으로, 내가 본 카볼의 책과는 형태가 조금 달랐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어렵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수고했어.” 

    아마, 고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구했을 거다. 그런 말을 하면 가격이 깎이니 말을 하지 않는 것일 테고. 

    “이건 체술서로군. 브라움 근접전투 방어술이라...” 

    “원하시던 게 아닌가요?” 

    “아니, 맞아. 필요하던 거야.” 

    이미 4권의 책을 읽어봤기에 카볼의 필체는 이미 외우고 있다. 겉에 적힌 글씨만 봐도 카볼의 글씨임을 알 수 있었다. 

    펄럭. 

    체숙서엔 검술서와 마찬가지로 자세와 설명이 있었는데, 방어술이다 보니, 적의 모습까지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차분하게 검술서의 그림과 내용을 읽으며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창조주의 눈에 예속된 천안이 브라움 근접전투 방어술 1장 충차를 각인합니다.] 

    [특성 천무지체로 인하여 충차를 즉시 재현하실 수 있습니다.] 

    1장을 모두 읽고 나자, 검술서와 마찬가지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 책은 카볼이 만든 정품이 맞았기에 충분히 익힐 가치가 있었다. 

    탁. 

    책을 덮은 다음 테이블에 올려놓고 베로아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좋아. 이 책까지 포함해서 모든 정보를 구매하지.”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래.” 

    베로아가 마주 미소 지으며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서 건네주었다. 

    “원하시던 귀족들의 정보에요. 궁금하신 부분이나 추가적으로 원하시는 게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그래.” 

    첫 장은 페이크로 끼워 넣은 카렌스 백작의 정보였다. 그의 나이, 무력수준, 가족관계, 취미와 특기에 이어 성적 취향 같은 비밀까지 모두 적혀 있었다. 

    그녀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지며, 페이크 인물들의 정보를 대충 읽은 뒤 마지막으로 베일 포비앙의 서류를 펼쳤다. 

    “사실 손님의 의뢰를 듣고,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의뢰하신 귀족들의 정보를 다시 조사했어요. 그 결과 대부분의 귀족들은 저희가 조사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어요. 하지만...” 

    내가 베일의 서류를 들자, 베로아가 심각하게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베일 포비앙, 그 사람만은 이전에 적혀있던 내용과 많이 달랐습니다. 그 서류에 적힌 것도 그의 모든 것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 정도인가?” 

    “성실하고, 배려심 많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이 베일 포비앙의 대외적인식이죠. 하지만 그는 많은 것을 숨기고 있어요. 알려진 것처럼 백면서생이 아니라, 굉장한 무력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 저희의 판단입니다. 거기다 숨겨놓은 안가도 여러 개였어요.” 

    “그래?” 

    그런가보다 하는 말투로 그녀의 말을 받아넘겼지만, 속으론 조금 놀라고 있었다. 

    굉장하군. 

    아직 세피로스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인데도 베로아는 베일의 정보를 모으며, 그의 진정한 모습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훨씬 유능한 여자였다. 

    “베일 포비앙 남작은 왕궁에서 큰 인정을 받아서 조만간 작위마저 상승 시킬 수 있을 거란 소문이 들렸는데, 왕궁 일을 그만 둔다고 하더군요.” 

    “뭐? 언제?” 

    “최신 정보에요. 인수인계는 이미 끝났고, 내일 퇴임식이 예정되어 있어요.” 

    이빨이 없어졌으니, 왕궁에 있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왕궁의 정식직책을 맡은 것만 아니었다면 베일은 내가 이빨을 가져간 순간 일을 그만 두었을 것이다. 

    그 덕에 많은 시간을 벌었지. 지금 아주 좋은 타이밍이야. 

    베일은 왕궁을 나와서 포비앙 영지가 아니라, 가장 먼저 자신의 안가로 향할 것이다. 

    “그를 먼 거리에서 미행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안가의 정확한 위치는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내게 준 서류엔 베일의 안가로 의심되는 장소가 적혀 있었는데, 이 정로라면 충분했다. 늑대들의 정보와 이 서류의 정보면 홀로 찾아 낼 수 있다. 

    “이 정보들 역시 구매하지.” 

    “감사합니다.” 

    “그럼 마지막은?” 

    만족스레 미소 짓던 베로아가 석고상처럼 얼굴을 굳혔다. 

    “찾을 수 없었습니다.” 

    “뭐?” 

    “손님께서 라시드란 남자가 리파 마을 출신이라고 하셔서 그곳부터 시작했는데 그 누구도 라시드라는 사람을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라시드를 모른다고 했다고?” 

    “네. 단 한 명도 라시드라는 이름을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마을에서 평생을 산 저희 길드원이 있는데 그 역시 라시드란 남자를 몰랐습니다. 혹시나 해서 아스성 쪽도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누구도 라시드라는 이름은 알지 못했습니다.” 

    “아...” 

    그녀의 말을 듣고, 등줄기에 차가운 소름이 돋아 올랐다. 리파 마을은 원작의 주인공이 살았던 마을인데 주인공의 존재를 모르다니. 

    틀림없이 무언가가 벌어졌다. 

    “내가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 것이 아니냐고 묻지 않는군.” 

    “의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손님을 다시 보니 그런 것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보였습니다.” 

    “그런가...” 

    “그럼 다시 수색을 할까요?” 

    “아니. 됐어.” 

    일이 이렇게 되면 이들로는 라시드를 찾을 수 없다. 다른 능력자를 찾아가야 한다. 

    “이걸로도 충분해 수고했어. 의뢰비를 가져가도록.” 

    “그럼 수금하겠습니다.” 

    “다 가져가도 상관없어.” 

    “저희는 일한만큼만 가져간답니다.” 

    “알아.” 

    랙커드는 자신들이 일한 만큼만 받아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테이블위에 금화를 쏟아 부은 것이다. 어차피 가져가지 않을 것을 아니까. 

    “후후, 손님은 정말 특이하시네요.” 

    “카볼의 책은 계속해서 찾아줘. 나중에 다시 들리지.” 

    “랙커드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문대로 카볼의 책의 수색은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그녀의 인사에 뒤로 손을 흔들어주고, 파랑새를 떠나 밖으로 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라시드를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에 검은 머리는 적긴 해도 없는 것은 아니니까. 

    “찾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일단 베일부터 처리하고 움직이자.” 

    지금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여기인가?” 

    랙커드의 정보와 늑대들의 정보를 합치니 그리 어렵지 않게 베일의 안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 

    마을과는 떨어진 곳에 세워진 평범한 저택이었는데, 은신처라는 용도와는 다르게 깔끔하고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확실하군.” 

    확인을 위해 나무 위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는데, 역시나 움직임과 특성이 베일의 늑대들이 확실했다. 

    “베일의 퇴임식이 바로 오늘이니, 오늘밤 혹은 내일 이곳을 찾아오겠지. 그리고 놈의 성격상 이곳을 버릴 거야.” 

    오늘이 베일에게 덫을 칠 마지막 기회다. 

    주변에서 돌과 나뭇가지 몇 개를 챙긴 뒤 유령처럼 발걸음 소리를 죽여서 저택 근처로 다가갔다. 

    “이쯤이면 되겠네.” 

    늑대가 단 한 마리라도 도망치게 되면 계획은 완전히 실패하기 때문에 저택 주변에 역으로 환영미리진을 펼치기로 했다. 

    “삼재(三才)와 육합(六合)을 역순으로...” 

    원래의 환영미리진은 삼재와 육합의 순서를 합쳐서 외부에서 내부를 보호하는 진이다. 

    환영리미진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영향을 받지 않는데, 그것을 역순으로 펼쳐서 저택 내부에 있는 늑대들을 진안에 가둬버리는 역진을 설치하고 있는 것이다. 

    “자축, 인해, 묘술, 진유...” 

    우우우웅. 

    육합과 삼재에 따라 마지막 돌멩이 하나를 입구 옆에 놓자, 하늘과 땅의 위치가 뒤바뀌는 감각이 느껴지며, 진이 발동 된 것이 느껴졌다. 

    내가 있는 밖에선 모든 것이 잘 보이지만, 안에서는 이미 혼돈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럼 베일의 깜짝 파티를 준비해볼까.” 

    퍼어엉. 

    자괴연. 

    자색과 은빛이 섞인 연기가 갇힌 것처럼 오직 저택만을 뒤덮었다. 

    ** 

    삼십 분도 되지 않아, 저택의 모든 늑대들을 처리하고 자괴연을 해제했다. 

    “좋은데.” 

    처음으로 실전에서 써본 자괴연의 힘은 생각이상으로 효과가 좋았다. 거기다 암기에 혜택까지 붙으니, 안 쓸 이유가 없다. 

    지이잉. 

    역진을 해제한 후 다시 정방향의 환영미리진을 저택에 설치해 놓고, 새로 얻은 독들로 베일을 위한 함정까지 설치해 놓았다. 

    “놈은 진법을 알 수가 없을 테지.” 

    진법은 이 세계에 없는 기예인데다 베일의 성격에 맞춤형으로 설치를 해 놨으니, 의심을 하래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브라움 근접전투 방어술을 모두 체득하셨습니다.] 

    [브라움 근접전투 방어술이 천무지체에 예속 됩니다.] 

    [여섯 가지 감각이 소폭 상승합니다.] 

    베일을 기다리며, 이번에 얻은 체술서를 모두 읽자, 내 뇌리에 브라움 근접전투 방어술의 모든 체계가 박혔고, 동시에 모든 감각이 조금 확장된 것이 느껴졌다. 

    “흠.” 

    그 감각에 저택의 정문 앞에 누군가가 다가온 것이 잡혔다. 이 저택의 정문을 이용 할 수 있는 자는 오직 베일뿐이다. 

    “사냥감이 도착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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