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왕과의 조우
“베일이 너희에게 내린 명령은?”
“로, 록스 후작령에 있는 정보길드를 집어삼켜서 유렌 록스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모아오라고 하, 하셨습니다. 흡!”
자백제와 독을 동시에 먹인 늑대 조장은 자기 자신이 놀랄 정도로 정보를 술술 불기 시작했다.
“그, 그리고 록스 후작가 내부와 닿을 수 있는 끈까지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물어보지 않은 부분까지 국수 뽑듯이 쭉쭉 말해주고 있었다.
“예상대로네. 베일이 급하긴 급했나보군.”
“으으...”
내 시선을 받은 늑대조장은 눈동자를 옆으로 피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너희가 베일에게 정보를 보내는 방법은?”
“이, 일주일에 한 번씩 베일님에게서 찾아오는 늑대에게 보고서를 넘깁니다.”
“보고서?”
“임무 달성 정도와 유, 유렌 록스...님에 대한 정보를 적어놓은 보고섭니다.”
놈은 내 앞에서 내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하는지 고민 하다가, 늦게 님자를 붙였다.
“그 정보원이 오는 날짜는?”
“오, 오늘입니다.”
“오늘이라. 운이 좋은 건가.”
자연스럽게 씩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 베일의 늑대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보고서를 넘긴다면 일주일의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그 시간동안 놈을 잡을 준비를 할 수 있을 거다.
“좋아. 장소와 시간을 말해.”
**
브리카에게 뒤처리를 맡긴 뒤, 늑대 조장에게 접선 방식에 대한 모든 정보를 듣고, 그의 옷과 복면을 입고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여긴가.”
연결책과 만나는 장소는 이 공터의 반대편에 있는 버려진 폐가였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왔나.”
잠시 기다리니, 이곳으로 접근하는 가벼운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낡아 부서질 것 같은 문을 열고, 체형이 작은 흑의인이 들어왔다. 당연히 남자가 올 거라 생각했는데, 들어온 늑대는 예상외로 여자였다.
슥.
늑대 조장에게 들었던 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 거짓 보고서를 내밀었다.
그녀는 보고서를 품에 챙긴 뒤 잠시 내 눈을 쳐다보았다.
“정보 길드 장악은 얼마나 진행되었지?”
“완전히 끝났다.”
혹시나 질문을 해올지도 모른다고 예상했기에 당황하지 않고 목소리를 바꿔서 입을 열었다.
“한 놈이 방해 된다고 들었는데.”
그녀가 말하는 사람은 브리카인 모양이다.
“그놈과 그 밑에 놈들까지 모두 죽였다. 이제 임무에 방해되는 것은 없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까닥하더니, 의문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
“거죽을 벗어봐.”
거죽은 늑대들이 임무 수행을 할 때 쓰는 복면을 말함이다.
“왜지?”
복면을 벗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늑대조장에게 들었을 때 그녀와 조장의 서열은 똑같았다. 여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듣는 것이 더 이상할 거라 생각했다.
“한 번에 말을 듣지 않는 건 여전하네.”
그녀가 먼저 자신의 복면을 벗었다. 눈매가 날카로운 차가운 인상을 가진 외모였다.
“정말 귀찮게 하는군.”
그녀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나도 천천히 복면을 벗었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을 뿐이야. 빈틈없이 임무를 완수하도록.”
그녀는 잠시 내 얼굴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런 말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
“흥.”
여자는 가볍게 콧소리를 내고, 폐가를 떠나갔다.
“미리 준비하길 잘했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이곳에 오기 전에 아그네스를 사용해서 조장의 얼굴을 내 얼굴에 덮었다. 점 하나, 상처 하나 까지 똑같이 재현했는데, 세밀하게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이걸로 일주일은 확실하게 벌었어.”
저 여자가 다시 찾아올 때 까지 일주일, 그 시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한다.
“이렇게 되면 육성에 도전해도 되겠는데.”
내공의 양은 한참 전에 만독자전신기 육성에 도전하고도 남을 정도로 많이 쌓인 상태고, 익히고 있는 암기와 독술 역시 높은 성취를 이루고 있다.
시간도, 능력도 육성에 도달할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폐가를 나와서 브리카를 찾아갔다.
“형님 오셨습니까!”
브리카가 먹이를 본 강아지처럼 달려 나왔다.
“이제 놈들이 너희를 노릴 일은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큰형님!”
“길드 정리는 너 혼자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제가 처리 할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브리카는 믿어달라는 듯 눈동자를 빛냈다.
“나를 봤다는 말은...”
“당연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내 제안인데 길마는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넌 수련을 시작하는 게 어때?”
“네? 수련이라니요?”
“오러를 잃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큰형님. 도망치다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평생 고칠 수 없다고...”
“그거 고칠 수 있으니, 다시 제대로 검을 잡아.”
“예?”
브리카는 넋이 나간 얼굴로 내 눈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서 꺼져 있던 희망의 불씨 번쩍였다.
말로는 오러를 포기했다고 했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겠는가.
“그, 그게 정말 이십니까?”
“그래. 내가 회복시켜 줄 테니, 다시 검을 잡고, 수련을 시작해.”
이미 베일에 의해 브리카의 스토리가 꼬였다. 그가 원작처럼 상처와 오러를 회복 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도와주고, 그를 얻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큰형님을 믿고, 죽을힘을 다해 수련하겠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의심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타고난 성격과 나에 대한 높은 호감도 덕인지, 그는 내 말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들리마.”
“형님! 살펴 가십시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브리카는 내가 없어질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고, 어깨인사를 하고 있었다.
**
“안 느껴지네.”
포메라가 마나 명상 수련을 하고 있는 자연동굴이 있는 곳으로 왔는데, 딱히 녀석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 명상 효과에 기척과 기세를 지우는 효과라도 있는 건가? 거의 자연과 일체가 되어있는데.”
기감을 넓고 세밀하게 펼쳐서야, 녀석이 어느 동굴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포메라가 있는 동굴 속에 들어가 보니, 굴은 좁지만 깔끔했고, 벽과 바닥에는 이름 모를 난 같은 것들이 올라와 있었다. 정말 도인이 수련을 하는 장소 같았다.
“와, 제대로 네.”
포메라는 내가 심법수련을 할 때처럼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작달만한 해골이 안짱다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꼭 동자승 같았다.
녀석은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지, 안구에 항상 보이던 푸른 불꽃이 아예 꺼져 있었다.
“빽.”
빽빽이가 주머니에 나와서 조용히 울자, 포메라의 안구에 푸른 불꽃이 살며시 켜졌다.
“주인이랑, 성질 더러운 새로군.”
“빽!”
빽빽이가 헛소리 하지 말라는 듯 크게 한 번 울었다.
“너 그러다 성불하는 거 아니냐?”
“성불? 그게 무엇이오?”
“모르면 됐고.”
“하루도 안 되서 찾아오다니, 또 무슨 일이오?”
“줄게 있어서.”
대답을 하고 나서 마법 주머니를 열어 그에게 구슬을 꺼냈다.
“이건 무엇이오?”
구슬을 건네주자, 포메라가 떨떠름하게 구슬을 받아들고 질문했다.
“데스나이트를 잡고 얻은 흑마옥이다.”
“데스나이트!”
“저주가 박힌 아이자크의 구슬과는 다르게 순수한 어둠의 마력이 들어있으니, 구슬의 마력을 흡수해.”
“데스나이트를 잡았소?”
포메라는 네크로멘서답게 흑마옥보다 데스나이트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마계화 된 땅에 수호자로 나타났었어.”
“주인 없는 데스나이트라니, 아깝소.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바로 내 것으로 만들었을 텐데...”
“네가 거기 있었으면, 넌 강제 성불 당했을 거다.”
이레아가 짐승 같은 기합을 지르며, 포메라의 두개골을 뽀사버리는 것이 상상되었다.
“어찌됐든, 그 구슬의 마력을 흡수하도록. 그 마력은 네게 좋은 방향으로 도움이 될 거야.”
“음, 고, 고맙소.”
포메라가 구슬을 챙기며 쑥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명상은 잘 되고 있는 것 같네.”
“그렇소. 마법 연구만큼이나 행복한 시간이오.”
“조금만 더 고생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고생이 아니라, 정말 즐겁소. 그런데 주인은 이것을 주려고 온 거요?”
“그것도 있고, 나도 수련 좀 하게.”
“그럼 정말 잘 온 거요. 이곳은 조용하며, 누구의 방해도 없소. 가끔 들리는 파도소리는 마음을 풀어주지.”
포메라가 양팔을 벌리며 자신의 집을 자랑하듯 해안 동굴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나도 수련을 해야 하니, 간다.”
“고맙소. 주인.”
포메라가 손에든 구슬을 흔들며 말했다.
“빽.”
“그래. 성질 더러운 새 너도 잘 가라.”
“빼액!”
당장 덤벼들려는 빽빽이를 말리고 그의 동굴을 나와, 깨끗해 보이는 동굴로 들어갔다.
“나쁘지 않네.”
안을 살펴보니, 짐승이나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깔끔한 동굴이었다.
“빽빽아.”
“빽.”
“나 건드리지 말고, 누가 여기 들어오면 무조건 막아.”
“빽!”
빽빽이가 믿어달라는 듯 기똥차게 울었다. 빽빽이 앞에 녀석의 먹이를 놔두고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6성이라...”
6성에 도달했을 때 어떤 능력이 생길지, 무슨 변화가 있을지 기대가 되어 손이 조금 떨렸다.
“시작해볼까.”
동굴에 앉아 살짝 눈을 감고, 만독자전신기의 내공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넘치는 내공은 급류처럼 시원하게 흐르며, 내 전신을 휘돌기 시작했다.
내공이 많긴 한데.
단전을 세밀하게 관조하니, 쌓여있는 내공이 생각이상으로 거대했다. 진즉에 6성에 도전했어도 충분했을 정도로 많은 상태였다.
쿠쿠쿠쿠.
과도할 만큼 쌓인 내공이 뚫리지 않은 세맥들을 가볍게 돌파하며 내 전신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내공을 움직이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하니, 내 정신은 늪처럼 순식간에 무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공의 양이 비정상적으로 많습니다.]
[익히고 있는 암기술과 독술의 성취도가 모두 높습니다.]
[잠금해제]
[만독자전신기가 연동됩니다.]
[천수암왕(千手暗王)과의 조우를 발동합니다.]
뭐라고 메시지가 뜬 것 같았지만,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내력을 돌리려고 할 때 내 몸이, 아니 내 정신이 풍선처럼 붕 뜨는 것이 느껴졌다.
번쩍.
‘뭐야...’
죽림.
해안 동굴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던 나는 어딘지 모를 대나무 숲에서 정신이 들었다.
‘움직일 수가 없어.’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고, 그저 앞의 대나무 숲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저건 비수잖아.’
신기하게도 죽림의 중앙에 있는 대나무에 내가 쓰는 당가의 비수가 하나 박혀있었다.
저벅.
세상 모든 것을 주목시키는 걸음소리.
저벅.
긴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은 남자가 죽림으로 걸어왔다. 그는 화려한 녹황색의 장포를 입고 있었는데, 소설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본적 없는 형태였다.
“웃기...이야...”
그는 죽림의 앞에 서서, 뒷짐을 지고, 하늘을 쳐다보며 뭐라 중얼거렸다. 그의 말은 노이즈가 낀 것처럼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시선을 내린 남자는 천천히 뒤를 돌아, 내가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그저 이쪽을 쳐다봤을 뿐이지만, 그에게서 천하를 굽어보는 절대자의 기세가 느껴졌다. 손이 덜덜 떨리는 것 같았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그가 내 쪽을 쳐다보는 것은 느껴졌지만, 그의 얼굴은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먼...후예...성취...”
‘뭐라고?’
남자가 뭐라 말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 차이로 인하여 대상을 제대로 확인 할 수 없습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 차이로 인하여 대상과의 합일이 실패합니다.]
그의 목소리와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할 때 메시지가 나타났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 차이? 설마!’
아주 잠시 그의 오른쪽 눈에서 안개가 사라지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완벽하게 정지된 그의 눈을 본 순간 머리가 굳은 것처럼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만독...5성...나쁘지...후예.”
‘읽혔다. 보는 것만으로 내 만독자전신기를 읽어냈어...’
“후후, 거짓이...아니...”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자는 나를 보며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아보였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 차이로 인하여 대상과의 합일이 실패합니다.]
갑자기 아까 보았던 메시지가 다시 나타났다.
“아쉽... 대신...”
남자가 뒷짐을 풀고,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렸다.
저벅.
한 걸음.
한 걸음을 걷자, 그는 이미 죽림의 중앙에 가 있었다.
저벅.
두 번째 걸음에 그는 내 앞에 나타났고, 그의 손엔 어느새 비수가 들려있었다.
“보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