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카
“흠, 도둑길드가 교체되고 있다라...”
고풍스러운 책상에 턱을 괴고 서류를 읽던 록스 후작의 입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밀린 일들은 모두 끝냈는지, 그의 책상은 이전과는 달리 몇 개의 서류 외엔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원래 뒷세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지만, 세대교체가 너무 빠른데...”
똑똑.
록스 후작이 턱수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고민하고 있을 때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음.”
후작은 노크 소리만으로 밖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1집사 필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들어오게.”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후작 각하.”
후작의 대답이 들려오자마자, 1집사 필로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예를 갖췄다.
“괜찮네. 자네가 웬일로 이 시간에 찾아 온 건가?”
“왕궁에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왕궁에서? 이 시기에 날 찾을 리는 없겠고, 유렌 녀석 때문이겠군.”
“그렇습니다. 그게...”
“하하. 우리 첫째 아들 정말 대단하지 않나?”
필로의 말에 록스 후작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신이 난 얼굴이 되었다.
“맞습니다. 그런데...”
“신성국에서 성자라고 불리다니, 내 아들이지만 정말 엄청난 녀석이라니까. 이미 내 품을 벗어나서 창공을 날기 시작했어.”
록스 후작도 유렌이 신성국에서 데스나이트와 마계수를 해치우고, 대지를 정화해 성자라고 불린 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저 후작각하 지금...”
“처음엔 누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지.”
무기를 만들러 간다는 유렌이 갑자기 성자라는 칭호를 얻었다고 들었을 때 록스 후작은 얼빠진 얼굴로 몇 분 동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응접실에...”
“이제 유렌 녀석 가만히 놔두어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할 것 같아. 그렇지 않나? 좀 더 경험을 쌓으라고 내보내도 되겠어. 나 때는 말이지...”
“하아...”
필로는 록스 후작이 유렌의 자랑을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의 말이 벌써 4번째 끊겼어도 후작에게 전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
“후작 각하! 손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응? 아, 그렇지. 응접실에 있나?”
“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보면 알게 되겠지. 아마 외교에 힘써준 것으로 상을 내린다는 거겠지. 가보세.”
록스 후작은 손님을 너무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필로의 말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후작각하.”
“응?”
“지금 응접실에 계신 분은 우리 왕국 사람만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신성국의 외교관도 같이 와 있습니다.”
필로가 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인가? 외교관이 왜?”
“유렌님을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유렌에게 외교관까지 찾아오다니, 이거 참 기분이...”
“후작 각하!”
후작의 유렌 자랑이 시작되면 또 시간이 낭비되기에 필로가 후작을 강하게 불렀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왕궁에서 오신 분은 국왕 폐하의 제3 보좌관이신 카이리오 자작입니다.”
“카이리오가?”
국왕이 보좌관을 보냈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중요한 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걸 왜 지금 말한 건가.”
“...죄송합니다.”
필로는 차마 ‘후작님이 말이 너무 많으셨습니다.’ 라는 말 할 수가 없었다.
“그분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대공자를 왕궁으로 데려오라는 폐하의 명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겠지. 그러니까 카이리오를 보내셨겠지. 폐하의 직접 호출이라니, 이게 몇 년 만인지...”
록스 후작은 코트를 걸치며 바로 집무실을 나섰다.
“이놈은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볼 일 다 봤으면 빨리 집에 들어오지!”
**
[이름: 브리카]
[특성: 검위(劍衛), 정검lv2, 무게중심 활용lv1, 정교한 움직임lv2, 강철 체력lv2, 오러적응lv2, 오러응용lv2 ]
[호감도: 39 (호감) ]
[현재 기분: 큰 반가움을 느끼고 있음. ]
이 녀석이었어?
소설의 서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몰라봤지만, 창조주의 눈으로 보니 이 남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았다.
이 남자는 록스의 미친개가 아니라, 주군을 지키는 검위의 특성으로 원작에서 자신이 죽어가면서도 주인공의 뒤를 끝까지 지켜냈던 수호자 브리카였다.
그런데 왜 얼굴에 큰 상처가 있고, 오러는 느껴지지 않는 거지.
몇 년 후 주인공과 만날 때 브리카는 얼굴의 상처도 없고, 강력하고 섬세한 오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데 지금 그에게선 오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겪어야 하는 사건을 아직 겪지 않은 모양이다.
가장 신기한 건 본적도 없는 놈이 날 형님이라 부르고, 호감도는 과할 정도로 높은 것이었다.
“큰형님이라고?”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큰형님!”
브리카가 투박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전형적인 뒷세계의 인사였다.
“날 왜 큰형님이라고 부르는 거지?”
“아, 소개가 늦어 죄송합니다! 저는 브리카라고 합니다. 큰 형님의 부하인 페루의 친구입니다!”
“페루?”
“그렇습니다.”
여기서 페루의 이름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친구의 형님은 제 형님이죠. 거기다 이 록스 땅의 주인이 되실 분 아닙니까. 저희들끼린 이미 큰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브리카는 거친 외모와 다르게 순박한 눈망울로 날 쳐다보고 잇었다. 그의 정직한 눈만큼은 원작과 같았다.
“이놈들이 왜 널 노린 거지?”
이 복면인들을 제압한 이유는 이들의 움직임을 보고, 피메라 산을 찾아왔던 베일의 늑대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 놈들이 저희 길드를 기습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길마, 부길마, 중간 관리자급까지 대부분이 죽었고, 말을 듣지 않는 길드원까지 학살당했습니다. 제가 놈들의 밑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니, 저까지 죽이려고 한 겁니다.”
“길드?”
“전 록스에 자리를 잡고 있는 정보길드 푸른 상어에 속해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간부들이 대부분 죽어서 행동대를 맡고 있던 제가 푸른 상어의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큰형님.”
브리카의 말을 듣고, 마비되어 있는 늑대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노골적으로 나오네.”
후작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달았다. 베일은 이곳의 정보를 직접 얻기 위해 록스 후작령의 정보길드를 집어삼키려고 한 것이었다.
나쁜 방법은 아닌 것이, 뒷세계 길드의 주인은 자주 바뀌니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일이었다.
내게 들키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그럼 지금 길드원은?”
“살아남은 길드원들은 놈들 밑에 들어갔고, 제 직속에 있던 녀석들만 겨우 남았습니다. 방금 큰형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저까지 죽어서, 푸른 상어는 정말루다가 상어밥이 되었을 겁니다.”
“브리카! 괜찮아?”
브리카와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주 들어본 반가운 목소리였다.
“헉!”
고개를 돌리자, 오랜만에 보는 페루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대, 대, 대공자님!”
“페루. 오랜만이네.”
“대체 어떻게 여기에...”
“페루! 큰형님이 날 도와주셨어!”
“이런 미친놈! 뒤지고 싶어? 대체 누구한테 큰형님이라는 거야!”
“컥!”
페루는 순식간에 브리카에게 달려들어서 그의 멱살을 잡고 빨래처럼 털털 흔들었다.
“대공자님 이놈이 어렸을 때 머리를 다쳐서 조금 모자랍니다. 아니, 엄청 모자란 놈입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페루가 브리카를 무릎 꿇린 다음 자신도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으며 빌기 시작했다.
“야, 너도 나랑 술 마실 때 큰형님이라고 불렀잖아. 진짜 형처럼 잘 챙겨주신다고 좋아했잖아!”
“이 정신 나간 망아지야! 죽기 싫으면, 제발 좀 닥쳐!”
페루가 거의 울기 직전의 얼굴로 브리카를 노려보았다. 그에 반해 브리카는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역시 수호자 브리카가 맞다.
“하하하!”
“빽!”
둘의 꽁트를 보고 있으니,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터진다. 빽빽이도 웃긴지, 파닥거리고 있었다.
“대공자님?”
“괜찮아. 보는 눈이 많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은 별 상관없어.”
“대, 대공자님.”
“브리카를 도와주러 온 거야?”
“그, 그렇습니다. 위험하다고 들어서...”
“좋은 친구사이네. 집에는 별일 없지?”
“별일 있습니다. 지금 난리가 났어요. 그 덕에 나오긴 했지만...”
“난리?”
딱히 사고 친 기억은 없는데 왜 난리가 났단 말인가.
“지금 저택에 국왕 폐하의 보좌관과 신성국의 외교관이 와 있습니다. 대공자님을 왕궁으로 데려가려고 왔대요.”
“그래?”
신성국에서 보낸 사자가 왕궁에 도착해서 내 이야기를 전한 모양이다. 그것을 들은 국왕이 날 데려오라고 명령을 내린 거고.
“집에 안가길 잘했네. 갔으면 한동안 못 빠져 나갔을 테니.”
“예?”
내 말을 들은 페루가 벙찐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폐, 폐하가 부르시는데...”
“난 못 들은 거야.”
“헉!”
페루가 넋이 나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간의 크기를 재보고 싶은 눈이었다.
“그건 그렇고, 둘이 친구라고?”
“그렇습니다. 큰형님. 어렸을 때 같이 자랐슴다. 방도 같았죠.”
“그럼 둘 다 그 가문에서...”
“네. 저희 둘 다 리빙타인 가문에서 키워졌습니다. 전 독술사로 저 녀석은 검사로 키워졌죠.”
페루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페루가 리빙타인 가문을 떠난 후에 놈들이 원하는 대로 살기 싫어서 전 2년 전에 도망쳤습니다. 덕분에 얼굴에 이런 상처를 입고, 오러도 잃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하하.”
브리카가 자신의 얼굴에 길게 난 상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가 오러를 쓰지 못하고 얼굴에 상처가 난 이유가 그 때문인 모양이다.
예상대로 브리카는 주인공을 만나기 전에 어떤 사건을 겪고 얼굴의 상처와 오러를 회복하는 것 같다.
“그럼 둘은 어떻게 다시 만난 거지?”
“페루가 푸른 상어에서 독을 살 때 만났습니다. 저를 바로 알아보더군요.”
브리카가 페루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다.
브리카는 페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페루가 떠날 때 까지 기다리다가 도망친 모양이다. 역시 이 녀석은 믿을 수 있는 남자다.
“브리카.”
“네!”
“이 놈들 정보 아는 거 전부 말해봐.”
“사실 갑자기 기습을 당해서 파악한 것이 없습니다. 놈들이 하루에 한 번 씩 임의의 장소에 모여서 정보를 교환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정보교환! 그거 자세히.”
“밤 12시가 조금 넘으면 놈들은 한 장소를 정해서 정보교환을 합니다.”
“최고의 정보다.”
장소는 내 밑에서 마비되어 있는 놈들에게 캐물으면 된다.
늑대들이 모이는 장소엔 아무것도 모르는 늑대들과 달리, 베일의 명령을 직접 듣는 늑대들의 조장도 있을 거다.
이곳에서 선택지가 나뉜다.
첫 번째는 모른 척하고 집에 들어가서 왕궁에 들어간 뒤 한참 뒤에나 베일을 치는 것.
두 번째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늑대 조장을 잡아서, 역으로 정보를 캐내는 것.
“선택 할 것도 없지.”
베일은 점점 노골적으로 나올 것이다. 잘못되면 내 주변의 사람들이 놈에게 당할지도 모른다.
“브리카.”
“네!”
“오늘밤 너희를 건드린 놈들을 치자. 내가 도와주지.”
“감사합니다! 큰형님!”
이번 일로 수호자 브리카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오러를 못 쓰는 거야 고쳐줄 방법 많다.
“베일, 빠르게 처리해야겠어.”
이제 끝을 볼 때다.
**
시꺼먼 어둠에 그림자마저 잡아먹힌 밤.
슈슈슉.
록스 후작령 서쪽, 버려진 공터에 전신을 검은색으로 뒤덮은 30여명의 인영들이 귀신처럼 나타났다.
저벅.
“왜 3명이 없지?”
그 중에 한 명, 복면에 작은 글자가 새겨진 늑대들의 조장이 가운데로 나오며 말했다.
“미친개를 잡으러 간 인원들입니다.”
“설마 그놈에게 당했다고? 오러도 쓰지 못하는 놈에게?”
“놈이 살아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조력자가 붙은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우리 밑에 들어오지 않은 놈들을 제거하는데 전력을 기울여라.”
“알겠습니다.”
늑대 조장의 말에 모두가 입을 맞춘 것처럼 대답했다.
“보고하라.”
“록스 후작가에 카이리오 자작이 나타났습니다.”
“마탑의 워프를 이용한 사람 중에 유렌 록스는 없었습니다.”
“동쪽 입구를 이용한 사람 중에 유렌 록스는 없었습니다.”
“록스 후작가에서 유렌 록스의 집사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유렌 록스의 집사? 놈은 어디로 갔지?”
“성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성당? 왜 성당을...”
조장이 다시 질문을 하려고 할 때 자신의 허벅지에 무언가가 파고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
소리도, 빛도 없이, 어느새 늑대조장의 허벅지에 칠흑같이 어두운 단검이 박혀있었다.
“아!”
“무, 무슨!”
“이런!”
늑대 조장만이 아니라, 모든 늑대들의 신체 여기저기에 단검이 박혀있었다.
“말도 안...”
입을 열려던 그는 자신의 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꼈다. 아니, 혀만이 아니라 눈동자를 제외한 그의 모든 신체가 말을 듣지 않았다.
픽.
픽.
자신의 부하들이 장작개비처럼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공포에 잠길 때 그의 눈앞에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그림 같은 미남이 나타났다.
“나 찾았다며?”
그가 그토록 찾기를 원하던 유렌록스가 바로 앞에 있었지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물어볼게 좀 많은데, 대답해 줄 거지?”
“끄읍!”
유렌의 말을 들은 늑대조장의 눈동자는 끊어진 기타줄처럼 미친 듯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