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룡의 보의
시험을 치르고 있던 모카건을 깨워서 같이 보상의 방으로 들어왔다.
보상의 방은 하늘색이 은은하게 비치는 정사각형의 작은 방이었는데, 한 가운데엔 은빛으로 번쩍이는 상자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저는 분명 어렸을 때로 돌아갔는데! 왜 갑자기 여기에...”
“저 여우가 시험을 한다고 했잖아요. 모카건님이 어렸을 적으로 돌아간 건 저 녀석의 정신 공격이었습니다. 그 정신 공격을 뚫어내는 게 미궁의 마지막 시련이었죠.”
“아!”
모카건이 깨달음의 탄성을 내지르고, 나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유렌님이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신 거군요!”
“네. 운 좋게 통과했습니다.”
“하하하! 뭐가 그렇게 운이 좋습니까. 다 실력이시면서! 유렌님은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놀랍고 신비로운 분입니다. 미궁을 정복하신 거 정말 축하드립니다!”
“맞다. 운이 좋기는 개뿔. 저 인간은 괴물 중에 괴물이다. 이 미궁의 역사상...”
모카건의 말에 기분 좋게 웃고 있을 때 모구러스가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물어볼게 있다. 여우.”
“여우라고 부르지 마라. 난 모구러스, 이 미궁의 정령이자, 관리자로...”
“됐고.”
시험을 끝낸 모구러스는 다시 털이 부드러워 보이는 사막여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내게 패배한 이후 녀석의 꼬리는 땅에 박힐 정도로 축 내려가 있었다.
“으, 너는 미궁 역사상 가장 건방진 인간이다.”
“10번째 방에 남은 놈은 어떻게 되는 거지?”
원작에서 미궁에 최종적으로 남은 건 항상 주인공 혼자였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때 미궁이 클리어되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그는 임의로 대륙 어딘가로 보내진다.”
“임의로?”
“그래. 나조차 그가 어디로 보내지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오아시스가 있던 곳으로 나오는 거지?”
“그렇다.”
“그럼 그 녀석도 그대로 놔두면 안 돼?”
오비스를 사로잡으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잡고 싶었다.
“불가능하다. 그건 내 능력이 아닌 이 미궁의 시스템이니까.”
“그런가...”
시스템이라는 소리가 나왔다면 모구러스가 통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이건 미궁의 승리자를 위한 배려다. 혹시나 보상을 받지 못한 자들이 미궁의 통과자에게 해코지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별 필요 없는 배려네.”
“너, 너는 정말 이 미궁의 역사상 가장 건방지고 거만한 인간이 확실하다.”
“거참 말 많네.”
“빽!”
빽빽이가 동의한다는 듯 모구러스의 눈앞으로 날아가 조롱조롱 울었다.
“으, 너도 정령의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내게...”
“빽!”
“...조용히 하겠다.”
빽빽이 조차 뭐라고 하니 기가 완전히 죽은 모양이다. 꼬리에 이어 모구러스의 양쪽 귀가 축내려갔다.
“상자나 열어.”
“빽.”
주우웅.
모구러스가 자신의 손을 은빛 열쇠로 바꿨다. 그는 열쇠로 바뀐 손을 보상의 방 가운데 있는 상자의 열쇠구멍에 집어넣었다.
챠아악.
모구러스가 열쇠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자, 탄산이 터지는 것 같은 시원한 소리가 들리면서 상자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샤르륵.
열린 상자에서 둥실거리며 옷이 하나 떠올랐다. 옷은 전체적으로 은은한 금색이었지만, 중간중간에 불꽃같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옷은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고, 바늘로도 찢을 수 있을 정도로 얇아보였다.
“이것이 이번 아우쿠솔 미궁의 보상이다. 이 옷의 이름은...”
“명룡의 보의.”
“어?”
내 대답에 겨우 돌아왔던 모구러스의 정신이 다시 빠져나갔다. 녀석은 벌린 입을 한참동안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명룡의 보의]
명룡이라 불린 드래곤의 비늘을 갈아, 피닉스의 깃털로 이어붙인 전설의 보의로 불과 물에 영향을 받지 않고, 검과 창에 잘리지도, 뚫리지 않는다. 4서클이하의 마법을 무시한다.
특수 능력: 레비타스.
혹시나 다른 아이템이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도 원작과 같은 아이템이 나왔다. 저 레비타스라는 특수 능력이 내가 원하던 능력이자, 베일의 특수 능력을 막을 힘이었다.
“너,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모구러스는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난 피식 웃으며 대답 없이 내 할 말을 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거 없고, 약속을 지킬 차례다. 모구러스.”
“윽!”
내 날카로운 시선에 질린 모구러스가 내게서 한 발 물러났다.
“약속대로 보의에 2가지 능력을 부여하도록.”
“무, 물론 약속은 지킨다. 하지만, 내가 보상에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임의로 결정된다. 즉, 나도 어떤 능력이 저 옷에 붙을지는 모른다는 거지. 흐흐.”
“웃기고 있네.”
“엉?”
내 말에 모구러스가 눈만 꿈뻑꿈뻑 거렸다.
“9개의 능력 중에 네가 선택해서 능력을 부여하는 거잖아. 어디서 약을 팔아.”
“어, 어...어?”
[무카렉히!]
얼마나 놀랐는지 말 많던 모구러스는 더 이상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사용했다.
“공용어로 해줄래?”
“너는 누구냐고! 인간 주제에 왜 허락되지 않은 지식을 알고 있는 것이냐!”
“아까도 말했지. 네가 알 바가 아니다. 여우야.”
“으으...”
모구러스는 이제 여우라고 부리지 말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얼빠진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사실 저 녀석이 미궁의 보상에 자신이 선택한 능력을 부여 할 수 있다는 정보는 원작에서도 2번째 미궁이 열렸을 때 나오는 내용이다.
풀지도 않은 정보를 아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놀랄 수밖에.
“어설픈 거짓말 그만하고 네 능력이나 불러봐.”
“아...”
“빨리.”
“그, 그게 먼저 무기의 공격력을 올려주는 공격력 강화와 방어구의 방어력을 올려주는 방어력 강화 그리고 저항력을...”
멘탈이 나가다 못해 바스스 가루가 되어버린 모구러스는 풀려버린 눈을 한 채 자신이 부여 할 수 있는 능력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흠...”
사실 모구러스의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생각을 해놓았다. 녀석의 말을 듣는 건 그저 확인의 이유일 뿐이었다.
“먼저 속성 저항력을 넣어줘.”
“알겠다. 하지만 네가 알아 두어야 할 게 있다. 저항력은...”
“수치가 임의로 붙는 다는 거겠지.”
“아...”
이제 놀랄 힘도 없는지, 모구러스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사막여우의 모습은 꽤나 귀여웠다.
“먼저 속성 저항력을 보의에 부여하겠다.”
“밝게 해. 밝게.”
“뭐?”
“그렇게 힘없이 해서 좋은 수치가 뜨겠어?”
“저, 전혀 상관없다만...”
“내가 상관있으니. 밝은 목소리로 해. 웃으면서.”
“아, 알겠다.”
멘탈이 휴지조각이 되어 날아갔기 때문에 모구러스는 내 말을 명령이라도 된 듯이 아주 잘 듣고 있었다.
“그럼 능력을 부여하겠다!”
“하하하!”
“빽.”
사막 여우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고 외치는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귀여웠다. 모카건도 참던 웃음을 터트렸다.
부웅.
모구러스의 손에서 오색 빛이 살며시 새어나와서 보의에 흡수됐다.
“됐다.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게 됐을 지는 나도 모른다.”
“하하!”
“응?”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보의에 새로 속성 저항력이 생겨났는데 그 수치가 50이 넘어갔다.
이 정도라면 보의가 가지고 있는 기본 저항력을 합쳐서 5서클 마법은 보의만 입어도 견딜 수 있을 거다.
“이건 잘 됐고, 다음은 상태이상 저항 능력을 부여해줘.”
“뭐?”
내 말이 의외였는지, 모구러스가 나를 돌아보았다.
“방어력 강화가 아니라?”
“난 물리 공격은 맞을 일이 없거든.”
“건방진 인간...”
“시끄럽고, 빨리 부여해.”
부우웅.
모구러스는 뭐라 중얼 거리면서 보의에 흑백이 어우러진 빛을 심었다.
“후...”
창조주의 눈으로 보의에 들어간 상태이상 저항 수치를 본 내 입가엔 자연스럽게 우물이 생겨났다.
이 정도 수치라면, 이제 베일 사냥 진행해도 되겠어.
**
“모두 끝났다. 인간.”
“고맙다.”
“네 입에서 고맙다는 소리가 나오다니. 신기하군.”
모든 능력 부여가 끝났고, 이제 이 미궁에서 볼일은 모두 마쳤다. 한 가지만 빼고.
“이제 미궁은 1년간 잠이 들것이다. 새로운 곳에 자리를 잡을 것이고 미궁의 열쇠도 새로 생겨 날거다. 미궁의 이름도, 나오는 보상도 달라질 거다.”
“알아. 그래서 재생의 미궁이잖아.”
“그건 인간들이 지은 이름일 뿐이다. 미궁은 미궁일 뿐이다.”
나는 다음 미궁이 어디에 생길지, 열쇠가 어디 있는지, 무슨 아이템이 나오는지 그리고 모구러스가 다음엔 어떤 동물이 되어 있을지 모두 알고 있었다.
“인간, 너와는 평생 보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볼일이 없을 거다.”
“난 아쉬운데? 너랑 또 보고 싶어. 여우야.”
“윽, 절대 사양한다.”
모구러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여우.”
“왜?”
이제 여우라는 말에 대답까지 하고 있었다.
“전 방에 있는 놈 이곳에 데려올 수 있어?”
“데리고 와봤자. 이곳에서 싸울 수 없다.”
“상관없어. 그리고 저 사람은 안보이게 해줄 수 있지?”
“간단하다.”
모구러스는 모카건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이 여우는 빽빽이보다 훨씬 내 말을 잘 듣고 있었다.
“으으...”
모카건을 투명하게 만든 뒤 모구러스는 오비스를 불러왔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은 상태로 내 앞에 나타났다.
“여긴...”
“어이, 고마워. 네 덕분에 가만히 있다가 미궁을 정복했네.”
“네놈...”
오비스의 눈은 보는 사람이 미쳐버릴 정도로 붉어졌다.
“네놈의 사지를 찢어 개먹이로 주마.”
“이곳에선 전투가 금지 된다.”
“상관없다!”
모구러스의 말을 듣고도 오비스는 내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벽에 막힌 것처럼 다가오지 못했다.
“망할! 이거 치워!”
“이 옷 보여? 네 덕에 엄청 좋은 거 얻었어! 이 은혜는 언젠가 갚을게.”
오비스의 앞에서 보의를 깃발처럼 흔들며 놀려댔다.
“크으으. 이곳을 나가자마자 숨 쉴 틈도 없이 죽여주마.”
“너 쟤 놀리려고 불렀냐?”
모구러스가 한심하다는 듯 실눈을 뜨고 날 쳐다보았다.
“아니.”
물론 놀리려는 의미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오비스의 성질을 건드려서 떠보기 위함이다.
“근데 너 명령 실패했는데 괜찮겠어? 같이 가서 빌어줄까?”
오비스의 눈빛이 더욱 소름끼칠 정도로 변했다. 흡사 호랑이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네놈 누구인가!”
“그 여자가 많이 실망 하겠는데? 유물과 보물을 모으는 중이지? 다음 보물은 내가 가져다가 그녀에게 전해줄까?”
꿀꺽.
오비스가 충격을 먹었는지, 이빨을 부딪치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네, 네가 에블린님을 어떻게...”
오비스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세피로스 삼공 중 한명 에블린!
예상대로였다.
세피로스의 삼공 중 인간을 부하로 다루는 자는 그 여자뿐이다. 많은 제약이 있지만, 그녀의 능력을 사용하면 보물이 어디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의심했던 대로 미래의 피스트 마스터 오비스는 에블린의 종복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알긴, 난 떠봤을 뿐인데 네 표정과 말이 다 알려주고 있잖아.”
“뭐?”
“나는 그 여자의 이름도 말한 적 없는데? 에블린이라고 하는 구나, 고맙다.”
이제 내가 떠봤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오비스의 인상이 나무껍질처럼 찌그러졌다.
“네놈이 어디에 있건 간에 가서 죽여주마! 네가 기필코! 너와 관계된 인간까지! 끝가지 쫓아가...”
“됐어. 쟤 다시 보내.”
“죽여버리...”
슈욱.
모구러스의 손짓에 벽을 부술 것처럼 내리치던 오비스가 사라졌다.
“뭐하는 건지 모르겠군.”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었어. 고마워.”
“이제 10초 뒤 이 미궁은 사라질 거다.”
“근데 여우야.”
“여우라고 부르지 말라고!”
“나랑 내기를 할 때 능력을 부여 해주겠다고 했지, 어떤 능력을 주겠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내 지시대로 능력을 부여해 줘서 고맙다.”
“어?”
나를 그만 본다는 생각에 웃고 있던 모구러스가 순식간에 나라 잃은 표정이 되었다.
“아악!”
이제 깨달았는지 모구러스가 자신의 귀를 잡고 흔들었다.
“네가 눈치 채서 보의에 공격력 강화 같은 거 부여해도 난 할 말이 없었는데, 내 말대로 능력 부여를 해주고, 시키는 거 전부 해줘서 정말 고마워! 복 받을 거다. 여우야.”
“이, 이! 얍삽한 인간! 내 정신이 무너졌을 때를 노렸구나! 너는 이 미궁의 역사상 최악의...”
파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