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쿠솔의 미궁 (3)
“그래. 미궁이라면 이것도 나와 줘야 예의지.”
스콜프온을 잡고 나오니, 천장이 막혀 있는 직사각형의 통로가 나타났다. 벽은 온통 회색이었고, 벽과 천장, 바닥엔 해와 달의 그림이 반복되어 그려져 있었다.
“유렌님. 여긴 대체 뭐죠?”
“보이는 대로 미로에요.”
“이게 미로라구요?”
“미궁이라면 당연하게 나와야 하는 곳이죠.”
“으으...”
모카건이 손톱을 깨물며, 미로의 입구에 머리만 살짝 집어넣고 살펴보았다.
“유렌님.”
“네.”
“혹시 이 미궁에 와보셨나요?”
“그럴 리가요.”
“그런데 어떻게 손톱만큼도 당황하시지 않고, 이곳에서 사셨던 것처럼 척척 움직이시는지...”
“딱히 어려운 게 없으니, 당황할 필요가 없죠. 전부 쉬운 것뿐이었잖아요.”
“세상에...”
모카건이 내 대답에 놀랐는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모카건에서 내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말이기도 하지만 정말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제가 상행을 다니며 많은 영웅들을 봤지만, 그중에 유렌님이 가장 놀라운 분이신 것 같습니다. 제가 아까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했던 거 취소하겠습니다.”
“별소리를 다 하시네요.”
“전 진심입니다!”
피식 웃고 모카건에게서 시선을 뗀 후 다시 앞의 입구를 보았다.
“그건 그렇고, 미로는 불편하긴 하지.”
아무리 내가 작가라도 미로의 갈림길을 알 수는 없다. 출구가 11시 방향에 있다는 것 정도는 기억나지만 그곳 까지 가는 길은 당연히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빽빽아.”
“빽?”
내 어깨에서 털을 고르던 빽빽이가 한쪽 발을 들었다. 말을 하라는 뜻인 것 같다.
“다시 네 차례다. 빽네비. 가라.”
“빽?”
빽빽이가 ‘뭐래?’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빽빽.”
“응?”
빽빽이가 출발은 하지 않고, 내게 부리를 들이밀었다.
“빽.”
자기를 쓰려면 먹이를 바치라는 듯 빽빽이는 부리를 쩍 벌렸다.
“허.”
어이가 없었지만, 아쉬운 건 나니까 주머니에서 참외같이 생긴 과일을 꺼냈다. 맛은 별로지만 수분 보충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과일 포리안이다.
“빽!”
“응?”
빽빽이는 내가 포리안을 꺼내자마자, 내 어깨에서 떠나 모카건의 배낭에 내려앉아서 그의 배낭을 두드렸다.
“저 녀석...”
저 행동의 의미를 모른다면 저 얍삽한 녀석은 다루지 못한다.
“모카건님.”
“네?”
“아까 제게 주신 과일 더 있나요?”
“네! 당연히 있습니다. 드릴까요?”
“그럼 하나 만 주시겠어요?”
모카건이 가방에서 두락을 두개 꺼냈다. 그것을 받아 들고, 빽빽이에게 흔들었다.
“빽.”
빽빽이가 빨리 달라는 듯 다시 내 어깨로 와서 날 툭툭 쳤지만, 난 녀석에게 앞의 길을 가리켰다.
“끝나면 줄게.”
“빽.”
빽빽이가 숨을 한 번 내쉬더니, 파닥거리며 먼저 미로로 들어갔다.
“고놈 움직이게 하기 힘드네.”
“과일 안 주실 건가요?”
“저 녀석이 보기엔 귀여운데 좀 얍실한 녀석이라, 과일을 먼저 주면 먹고 잘지도 몰라요.”
사실 정말 급하다고 생각되면 녀석이 먼저 움직일 거다. 저렇게 늦장을 부리는 것을 보니, 우리가 이 미궁에서 가장 앞에 있는 모양이다.
“그, 그렇군요. 특이한 아이네요.”
“그렇죠. 정말 특이해요.”
원작의 정령수인 벨로는 착하고, 성실하고 희생정신까지 있는데, 빽빽이는 특성하나 생겼다고 누굴 닮아서 저렇게 뺀질거리는지 건지 모르겠다.
“빽빽이가 기다리네요. 가시죠.”
“네!”
빽빽이는 첫 갈림길에서 볼 것도 없다는 듯 바로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세 방향의 갈림길에서도 거칠 것 없이 바로 가운데로 향한다.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우리는 11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빽!”
“유렌님. 끝인 거 같아요. 빛이 보입니다!”
“잘했어. 빽네비.”
별 생각 없이 빽빽이를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미로의 끝에 도달했다. 회색 일색이던 미로에 노을빛의 문이 생성되어 있었다.
“빽!”
빽빽이에게 두락을 건네주자, 녀석은 조롱거리며 두락을 쪼아 먹기 시작했다. 이 과일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가시죠.”
“아, 네!”
**
“이제 8번짼가.”
미로를 통과하고 다시 4개의 몬스터와 함정들을 넘었다. 이번에 들어가는 방이 8번째 방이니, 최후의 시련인 10번째 방까지 2개의 방만 남아 있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유렌님. 저는 따라가기만으로도 벅찬데...”
8개의 방을 지나며 모카건은 아예 내 신도가 되어 있었다. 내게 전 재산을 바치라고 해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줄 기세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들어가죠.”
“따르겠습니다.”
지이잉.
“음.”
“어라?”
8번째 방은 공터나 작은 운동장처럼 둥그런 공간이었다. 이 방엔 몬스터도 함정도 없었지만, 방의 가운데 있는 투명한 벽이 방을 반으로 나누고 있었다.
“여기서 이게 걸리네.”
이 방은 원작에서 낮의 길에 있는 주인공과 밤의 길에 있는 적이 맞붙는 전투의 방이다. 길이 3개다 보니, 랜덤으로 내가 뽑힌 모양이다.
“여긴 싸우라고 만들어 놓은 곳 같네요.”
“눈치가 빠르시네요.”
“니들끼리 싸워봐 하는 곳으로 보여서요.”
모카건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누가 올까요?”
“글쎄요. 누가와도 상관없어요.”
“그, 그렇겠네요. 유렌님이 계시니.”
내 능력을 본 모카건은 나를 완벽하게 신뢰하고 있었다.
“저희 상회 사람들이 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발 모두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모카건은 조용한 곳에 있으니, 동료생각이 난 모양이다.
“...”
희망의 말을 해줄 수도 있었지만, 난 아무 말도하지 않았다. 모카건의 동료들은 모두 산사람이 아닐 거다.
“윽...”
모카건이 울먹이는 것을 보니, 그 역시 자신의 동료들이 어떤 상태일지 알고 있는 거 같다.
“아, 제가 청승을 떨었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이해합니다.”
“아직도 제가 뭔지 모를 미궁에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드네요. 아우쿠솔의 미궁이라고 했죠?”
모카건은 눈물을 삼키고,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말하니 잘 모르시는 군요. 이 미궁엔 다른 이름이 있어요.”
“다른 이름이요?”
“말하면 아실 걸요. 재생의 미궁이라고.”
“어!”
깜짝 놀랐는지, 모카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나를 쳐다봤다.
“저, 정말입니까? 이곳이 그 10대 은지 중 하나인 재생의 미궁이라니.”
“맞아요.”
“아...”
미궁의 진정한 정체를 안 모카건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이곳이 어려웠던 이유가 있군요. 재생의 미궁이라니. 역시...”
“지금까진 딱히 어려운 게 아니에요.”
“네?”
“재생의 미궁의 진정한 어려움은 10번째 방에서 시작 되거든요. 그전까진 전부 준비운동일 뿐이죠.”
“그, 그럼 그건 어떻게...”
“제가 알아서 깰 테니, 지금까지처럼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하아...”
모카건이 속이 쓰린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면목이 없네요. 이곳에 와서 모든 것을 유렌님께 맡기다니, 이렇게 자신의 한심함을 크게 느낀 건 처음입니다.”
“괜찮아요.”
“유렌님!”
모카건이 이런 천사가 어디 있지 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물론 난 천사가 아니다. 여기서 도움을 준만큼 밖에서 신나게 부려 먹을 거다.
지이잉.
우리의 반대편에서 차원문 같은 것이 생겨났다.
“오, 오나 봐요.”
차원문에서 누군가의 오른발이 나왔다. 사막용 신발이다. 그렇다면 볼 것도 없었다.
“이번엔 뭐야? 아까처럼 기다리는 건가? 크크큭!”
“대주님! 아까 저희 애들을 죽인 놈이 있습니다.”
“오, 이것 봐라! 여긴 네놈을 썰어버리라고 만들어진 곳 같은데? 크흐흐.”
핀돌프와 마적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아까 상인과 용병까지 해서 70명은 되어보였던 놈들은 30명으로 확 줄어있었다.
거기다 30명 중에 상인과 용병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전부 마적들이었다.
“겁에 질려서 말도 못하는 건가? 아까처럼 입 좀 털어보지 ? 크크크.”
“으하하하!”
“크하하하!”
핀돌프와 마적들이 나를 보고 비웃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핀돌프뿐 아니라 마적들까지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마적들은 핀돌프에 대한 공포와 미궁에 대한 불안으로 미쳐있는 것 같았다.
“행수님은 어디 있어! 몰리는! 크란은! 한 명도 없다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너의 자랑스러운 행수는 한참 전에 뒈졌지. 엉덩이에 구멍이 났던가?”
“맞습니다. 크하하!”
“몰리랑 크란은 누군지 모르겠네. 천장에서 내려온 주먹에 찍힌 놈이려나?”
“크흐흑! 악마 같은 놈들!”
동료들의 죽음을 의심하던 상황에서 그게 사실이 되자, 모카건의 눈에서 진한 핏줄이 섰다. 그는 입술을 덜덜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 걔네들 대신에 너에게 고맙다고 해줄게. 네 친구들 덕분에 우리가 안전하고 편하게 왔거든. 함정마다 하나씩 집어넣는 재미가 아주 끝내줬다고! 크흐흐”
“하하하!”
“크크크.”
“어,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가!”
[이곳은 전투의 방이다.]
모카건이 울부짖으며 땅을 내리칠 때 미궁의 정령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이 방에서 다음 방으로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1분뒤 벽이 사라진다.]
“가라면 가고, 죽이라면 죽이면 된다니, 여긴 정말 간단해서 좋다니까!”
“맞습니다. 크흐흐.”
“내가 말했지. 어디든 쫓아가서 죽여 버린다고, 이렇게 빨리 만날지 몰랐지?”
“하하하!”
핀돌프와 마적들은 나를 겁에 질리게 싶은지, 계속 압박을 했지만, 난 계속 무표정을 유지했다.
“모카건님.”
“크흑.”
“제가 처리하고 올게요. 여기 계세요.”
“네?”
그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고 방 가운데 있는 벽으로 향했다.
지이익.
벽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리를 잘라서 데려가 주마! 키헤헤!”
마적 하나가 칼을 뽑아들고 재빠르게 달려왔다. 피를 보고 싶은 욕구에 놈의 눈은 반쯤 돌아가 있었다.
팍.
“억!”
가볍게 날린 비수에 정수리를 내준 마적은 내 근처에도 오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어?”
“무, 무슨!”
“단검?”
뒤에서 달려들려고 하던 마적들은 내가 비수를 까딱이는 것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뭐해? 나 죽인다며, 이러면 기다리다 늙어 죽겠는데?”
“뭣들 하는 거야! 빨리 죽여!”
내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핀돌프는 나서지 않고 마적들을 먼저 보냈다. 날 관찰하려는 모양이다.
퍼엉!
“뭐, 뭐야!”
“갑자기 무슨 연기가!”
“컥컥!”
“너희 같은 쓰레기에게 딱 맞는 물건이다.”
핀돌프의 명령을 들은 마적들이 내게 접근해올 때 놈들의 중심부에 붉은 연기를 터트렸다.
“이, 이게 뭐야!”
“그놈은 어디 있어!”
“연기는 신경 쓰지 말고 놈을 잡으라고!”
연기를 터트린 후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어? 으아아악!”
“괴물이다!”
“몬스터, 몬스터가 나타났어!”
연기에 휩싸인 마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내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이, 자기들끼리 죽이게 만들도록 살혼연을 터트린 것이다. 저항력이 약한 마적들은 5초도 지나지 않아, 살혼연에 완전히 잡아 먹혀버렸다.
“정신 차려! 뭣들 하는 거야!”
“으아악! 스콜피온이야!”
“새, 샌드웜!”
살인의 광기에 미쳐있는 놈들은 바로 옆의 마적들을 향해서 칼을 날렸다.
1분.
마적 30명이 서로에게 칼을 찌르며 전멸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네놈...”
살혼연의 연기가 닿지 않은 사이드로 핀돌프가 나타났다. 이 방 전체를 살혼연으로 덮을 수도 있었지만, 핀돌프를 그렇게 간단하게 죽일 수는 없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너희들 미치는 거 좋아하는 거 같아서 제대로 미치게 만들어 줬잖아.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빠드득. 그 따위 잡술! 내겐 통하지 않는다!”
핀돌프가 오러로 가득 채운 시미터를 휘어잡고 내게 돌진했다. 그의 속도와 움직임은 마적들보다 훨씬 가볍고 날렵했다.
슈웅!
순식간에 내 앞에 이른 핀돌프가 대각선으로 칼을 내리쳤다.
쾅!
핀돌프의 칼이 나를 내려치기 전에 뇌영을 사용해서 그의 뒤로 이동했다. 놈의 칼이 떨어진 땅이 지지직거리며 터져나갔다.
“이 놈!”
슈아악!
핀돌프는 내가 뒤에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칼을 뒤로 휘둘러서 나를 베어내려고 했지만 다시 뇌영을 써서 놈의 뒤로 이동했다.
“예고 하나 하지.”
“뭐?”
“너는 날 보지 못하고 죽을 거다.”
“개잡놈이! 내가 누군지 알고!”
핀돌프가 물결치듯 칼을 휘두르며 내 몸통을 노렸지만 이미 난 놈의 뒤로 돌아가며 비수로 놈의 팔에 상처를 냈다.
“이 비겁한 놈! 모습을 드러내라! 크윽!”
연속되는 뇌영에 핀돌프는 내 그림자조차 보지 못하고 뱅뱅 돌고만 있었다. 뇌영을 쓸 때 마다 놈의 이곳저곳을 비수로 찔렀다.
“이따위 상처론 나를 죽일 수 없다. 날 죽이려거든 내 목을 베어야 할 거다!”
“그럴 필요 없어.”
“네놈이 끝까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움직여 주마! 크하하!”
핀돌프가 내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저놈을 죽여도 네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을지 어디 보자고! 크크큭.”
핀돌프는 방의 끝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모카건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딱.
“어?”
내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호랑이처럼 달려가던 핀돌프가 움직임을 멈췄다.
“뭐, 뭐야!”
핀돌프는 주먹으로 자신의 눈을 맹렬하게 비비기 시작했다.
“누, 눈이 안 보여! 커헉!”
눈을 비비던 핀돌프가 무릎을 꿇고 자신의 배를 찢을 것처럼 움켜잡았다.
“으아아악!”
배를 잡은 그의 오른팔이 녹아내리고, 왼팔은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무릎을 꿇은 그의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커허어억! 이, 이게... 아아악!”
핀돌프는 아예 드러누워서 바닥에 전신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지독한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놈에게 10개의 상처를 내며 주입한 10개의 독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넌 나를 보지 못하고 죽을 거라고.”
“크허헉, 사, 살려...”
핀돌프는 마비 독의 효과로 극한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눈동자만 지진 난 것처럼 흔들었다.
“홀로 지옥의 고통을 느끼며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