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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열쇠 (2) (72/241)
  • 열쇠 (2)

    “설마, 나와 같은 걸 찾으러 온건 아니겠지?”

    나중에 이 숲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지만, 지금은 평범한 몬스터들 밖에 없는 곳이다.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홉 고블린을 죽인 놈의 목적은 왠지 나와 같아보였다. 

    탁.

    옆에 보이는 커다란 나무 위로 올라갔다. 

    “몬스터들 울음소리밖에 안 들려.”

    나무 위에서 온슬론의 감시탑을 켜 봐도 들리는 건 몬스터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찾았다.”

    시력을 강화해서 사방을 둘러보자, 가운데 방향에 쓰러져있는 홉 고블린이 보였다.

    파악!

    나무와 나무를 뛰어넘으며 쓰러진 홉 고블린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파앙!

    신체능력이 2.5%이상 올라서 그런 건지 이전보다 몸이 가벼웠고, 발을 박찰 때 마다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큰 차이까진 아니어도 확실한 변화였다.

    “같은 놈에게 당했군.”

    이 녀석 역시 일격에 머리가 터졌다. 이 녀석만이 아니다. 주변에 널려있는 고블린들의 시체에도 상처는 하나뿐이다. 

    고블린들의 시체를 길잡이 삼아서 쭉 따라갔다. 시체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자, 숲의 색이 더 짙어졌다.

    필로세 숲의 초입을 넘어 중간으로 들어온 것이다.

    “흠.”

    중간 숲에 들어가자마자, 4미터는 넘을 것 같은 오우거가 머리가 터진 채 죽어있었다. 

    숲의 초반부는 고블린과 홉 고블린, 코볼트들이 있고 중간 숲에 들어가면서 베어울프와, 트롤,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들이 나온다. 

    깊은 숲으로 가면 더 강한 놈들이 나오지만, 오늘 갈 곳은 그곳이 아니다. 

    “쿠어어!”

    오우거의 시체를 넘어 가니, 곰의 몸에 늑대의 머리가 달린 몬스터, 베어울프가 울부짖으며 내게 돌진해오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놀아줄 때가 아니다.”

    퍼억!

    쿵.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놈의 정수리에 비수를 박아 넣었다. 놈은 내 앞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바닥에 몸을 뉘었다.

    “음.”

    죽은 베어울프의 뒤로 다른 베어울프의 시체가 보였다. 놈을 찾을 흔적이 다시 나타났다. 

    “더 이상 지체 할 시간이 없군.”

    지지직.

    생각보다 거리가 많이 차이나는 것 같아서 뇌익을 극성으로 사용해서 달려 나갔다. 지금은 추적을 들키는 문제보다, 시간을 먼저 생각할 때였다. 

    슈아앙!

    극성의 뇌익을 사용하자, 시야가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했다. 강화된 신체와 뇌인신법의 결합은 내 생각이상의 속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여기서 서쪽이라니.”

    중간 숲 가운데에는 하늘을 뚫을 것 같은 높다란 나무가 있다. 놈은 이 나무에서 서쪽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이제 확실해졌다. 내 앞에 있는 인간은 나와 같은 열쇠를 노리고 있었다.

    죽어있는 몬스터들을 따라 서쪽으로 쭉 이동하니, 벼락이 쳐서 벽을 쪼갠 것 같은 동굴이 있었다.

    동굴의 세로는 길었지만, 가로 폭은 인간 한명만 들어 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입구를 보니, 내가 찾던 동굴이 맞았다.  

    쿵.

    쾅.

    동굴에 들어가면서 감사탑으로 청각을 강화하니,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지지직.

    다시 뇌익을 극성으로 사용해서 밑으로 달려갔다. 이 안엔 작지만 강력한 몬스터인 플랑코가 존재하는데, 그 플랑코들의 시체가 바닥에 줄줄이 늘어져 있었다.

    우우웅.

    번쩍.

    동굴의 끝, 플랑코들의 보스인 플랑코 투사의 방에서 무언가 시동되는 소리와 번쩍이는 빛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스르르.

    방에 들어갔지만, 그곳엔 플랑코보다 덩치가 크고 피부색이 붉은 플랑코 투사만 죽어 있었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벽에 있어야 할 열쇠의 자리도 텅 비어 있었다. 먼저 열쇠를 가져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어.”

    열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열쇠로 열리는 곳에 있는 아이템이 중요한 것이다. 

    어차피 열쇠로 그곳을 여는 순간 동시에 들어 갈 수 있다.

    “지금 당장 마탑에 가면...”

    이 숲까지 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마탑에 가서 워프를 하는데 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모 될 것이다.

    “아니지. 마탑에 갈 필요 없지.” 

    내겐 편리한 휴대용 마법사가 있었다. 마법 주머니에서 허여멀건 구슬을 꺼내들었다.

    “빽!”

    구슬을 꺼내자마자, 빽빽이가 달려들려고 했다. 이 구슬이 사악한 구슬인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잠시만 기다려. 포메라!”

    포메라의 혼의 구슬을 들고 이름을 부르자, 구슬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부우웅.

    허공에 매연같이 시꺼먼 연기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짜리몽땅한 꼬마해골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오. 주인.”

    “응?”

    “무아지경에 빠져서 혼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는데, 정말 아쉬운 일이오.”

    이 녀석 말투가 또 왜이래.

    “너 뭐 하고 지냈냐?”

    “무슨 소리요. 주인. 나는 주인이 시킨 대로 하루 종일 마나 명상을 했을 뿐이오.”

    “근데 말투가 왜 그래. 예전에 거의 로봇이었는데, 지금은 무슨 도인이 되어서 왔어.”

    “도인?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포메라를 자세히 보니, 빈 눈구멍에서 거세게 타오르던 푸른 불꽃이 가스레인지처럼 잠잠해져 있었다.

    “빽!”

    “응?”

    빽빽이가 포메라를 보며 계속 울어대고 있었다. 아마, 포메라에게 있는 어둠의 마력을 느낀 모양이다.

    “괜찮아. 빽빽아. 이 해골 내 부하야.”

    “빽?”

    빽빽이가 날개 짓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 저 새는 무엇이오?”

    “너랑 같아.”

    “나랑?”

    “그래. 내 부하지.”

    “그렇소?”

    빽빽이와는 달리, 포메라는 별 반응 없이 자신의 두개골을 만지작거렸다. 이상하리만큼 침착한 모습이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이름: 포메라]

    [특성: 구현lv3, 마나 설계lv3, 마나응용lv3, 리치(Lich), 명상lv2, 환혼lv2 ]

    [호감도: 43 (호감) ]

    정말 마나 명상만 계속했는지, 명상에 관한 새로운 특성이 2개나 생겼다. 내가 원했던 특성이 혼을 빛내는 환혼이다. 

    [현재 기분: 오랜만에 봐서 반갑지만, 빨리 돌아가서 마나 명상을 계속하고 싶음.]

    명상을 계속하고 싶다니, 명상에 완전히 빠진 모양이다. 기분과 말투를 보니, 외모를 빼면 그냥 도인이 돼서 나타났다.

    “명상 열심히 한 모양이네.”

    “처음엔 머릿속에서 누가 말을 거는 거 같아서 잘 되지 않았소. 하지만 참고 참으며 집중을 하다 보니, 빠져들게 되었소. 주인의 말 대로였소.”

    “뭐가?”

    “마나명상만 계속 했을 뿐인데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론이 이해가 되고, 내 존재가 커진 느낌이 들었소. 마나 명상이라는 거 하면 할수록 즐겁소. 알려줘서 정말 고맙소. 주인.”

    포메라가 삐걱삐걱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근데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 내 물건을 훔친 놈을 따라가야 하거든. 지금 워프 할 수 있지?”

    “족제비 같은 주인의 물건을 훔치다니, 대단한 자인가 보오.”

    “됐고, 빨리 워프 준비나 해줘. 시와라 사막이랑 가장 가까운 곳으로.”

    포메라가 생각을 해보는 듯 고개를 들어 올려 동굴의 천장을 보았다.

    “시와라 사막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뉴아마을이오. 그곳도 사막마을이지.”

    “좌표 알고 있지? 그곳에 보내줘.”

    “주인. 빠르고 느림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오. 기다림이란...”

    “닥치고, 빨리 준비해.”

    “알겠소.”

    포메라는 낑낑대더니, 자신의 주머니에서 이것저것을 꺼내기 시작했다.

    “주인 이 녀석은 무엇이오? 플랑코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플랑코 투사라는 플랑코들의 보스야.”

    마법진을 그리던 포메라가 플랑코 투사를 만지며 물었다.

    “주인, 이 녀석 내가 가져도 되겠소?”

    “가진다고?”

    “그렇소.”

    “어둠의 부활을 말하는 거야? 그거 해도 데려갈 수는 없잖아.”

    “페프리 치...”

    포메라는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뭐라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치이이잉!

    그러자 포메라 뒤에 일렁거리는 어둠의 커튼이 나타났다. 바람도 없는 곳이지만 어둠의 커튼은 펄럭이고 있었다. 

    “내 어둠의 군세를 모을 어둠의 커튼이오. 이전에는 마력이 있어도 만들 수 없었는데 명상을 하고나니 만들 수 있게 되었소.”

    “허...”

    마나응용의 레벨이 올랐던데 그 덕인 건가보다. 이 커튼은 네크로멘서가 자신의 언데드들을 보관하는 창고다.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는 좀비나 구울 같은 게 아니라 데스나이트 같은 고위 언데드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커튼 안에 뭐가 있지?”

    “아무도 없소.”

    “응?”

    “마나 명상을 한 이후 한 번의 살생도 하지 않았소.”

    살생이라는 소리까지 하는 것을 보니, 이 녀석 진짜 도인 같아졌다.

    “네 마음대로 하고, 워프만 빨리 준비해줘.”

    “물론이오. 주인. 하지만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어차피 이루어질 일은 늦든, 빠르든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을 일은...”

    말 많은 해골을 무시하고 주변을 살폈다. 

    딱 열쇠만 가지고 갔네.

    플랑코들이 모아놓은 반짝이는 보석들을 놔두고 오직 벽에 박혀있던 있던 열쇠만 가지고 가버렸다. 

    “열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온 거야. 그렇다면 그곳도 알겠지.”

    열쇠를 안다는 것은 자물쇠도 알 것이다. 가져간 열쇠로 열 수 있는 자물쇠는 시와라 사막에 있었다. 

    “끝났소. 주인.”

    한 시간이 지나서야, 포메라의 워프 준비가 끝났다. 그동안 나는 동굴에 있는 보물들을 챙겼다.

    “바로 출발하자.”

    “알겠소.”

    워프 마법진 위에 올라가자, 포메라가 바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쿠구궁.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심한 진동이 느껴졌다. 

    번쩍.

    눈을 깜박이자, 컴컴하고 칙칙한 동굴은 사라지고 모래가 쌓인 산이 보였다. 내가 있는 마을과 주변마저도 온통 모래로 덮어져 있었다.

    부글부글.

    내 머리위에서 모래먼지들이 모이더니, 반투명한 포메라가 나타났다. 

    -제대로 도착했소. 주인.

    “여기서 에인트 오아시스는 어느 방향이지?”

    -에인트 오아시스... 동쪽이오. 주인.

    “알겠어.”

    뉴아 마을에서 식량과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한 후 바로 동쪽으로 떠났다. 놈과 나는 1시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있었지만 난 놈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놈은 내가 쫓는 것을 모르니까.”

    놈은 나를 보기도 전에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어서 사라졌다. 자신이 추적당한다는 것을 모를 테니, 충분히 잡을 수 있다.

    **

    “역시.”

    5일이 지나서야 에인트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오아시스의 물은 속이 비칠 정도로 맑았고, 주변엔 대추야자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아직 오지 않았어.”

     만약 놈이 열쇠를 사용했다면 지금 저 오아시스는 무너져 내려서 존재하지 않았어야 했다. 내가 놈보다 먼저 도착한 것이다. 

    이제 놈이 올 때 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열쇠를 가져간 놈은 내가 쫓고 있는 것을 모른다. 이 오아시스에만 있으면 놈이 이곳에 와서 열쇠로 미궁의 문을 열 때 동시에 들어 갈 수 있다.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놈이 미궁에 들어갈 때 먼저 아이템을 차지하면 그만이다.

    “빽빽아. 시원한 물이나 마시자.”

    “빽!”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는 함부로 마셔서는 안 되지만, 이곳의 물은 먹어도 괜찮다. 이 오아시스에서 나오는 물은 사막과는 관련 없으니까.

    “음?”

    물을 마시고 나무에 기대서 쉬고 있을 때 남쪽에서 낙타와 말, 사람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그들의 복장과 짐을 보니, 상단의 상인들과 그들이 고용한 용병들 같았다.

    타타타탁.

    그들은 휴식을 취할 생각인지, 나와 반대편에 있는 오아시스에 자리를 잡았다.

    “사막에 상단이라, 뭐 하러 온 거지?”

    용병과 상인들은 짐을 풀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내 열쇠를 가져간 놈이 있나 찾아보았지만, 오우거를 일격에 죽일 자는 보이지 않아서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걸음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중년의 상인 한 명이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희가 상단이다 보니, 언제 도적이 습격할지 몰라 항상 주의를 하고 있습니다. 무례하게 쳐다본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뇨. 당연한 일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평범한 여행객 복장을 하고 있었다. 중년의 상인은 내가 자신보다 어리고 귀족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말을 놓지 않았다. 

    “이거 하나 드셔보겠습니까?”

    “이게 뭐죠?”

    상인은 자두 같은 과일을 2개 건네주었다. 과일은 자두와는 달리 초록색을 띄고 있었고, 껍질에 잔털 같은 것이 붙어있었다.

    “두락이라는 과일입니다.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죠.”

    혹시나 해서 눈을 켜보았지만, 독이 없는 평범한 과일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식감은 대추 같았지만, 맛은 오렌지와 사과를 합쳐놓은 것 같이 달달하면서도 상큼함이 느껴졌다. 

    “시원하니 맛있네요.”

    “하하. 그렇죠?”

    “빽.”

    “그래.”

    빽빽이가 자신도 달라는 듯 내 손바닥으로 내려앉았다. 

    “호오, 이 새는...”

    “제가 키우는 녀석입니다.”

    “빽!”

    두락의 맛을 본 빽빽이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나와 상인 주변을 미친 듯이 돌기 시작했다. 

    “하하하.”

    “빽.”

    “정말 귀엽게 생긴 녀석이군요.”

    상인은 빽빽이를 보며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런 사막까지 상행을 오신 겁니까?”

    “돈만 되면 사막이든 바다든 가는 게 상인이죠.”

    “그렇죠. 그런데 사막에도 그런 물건이 있나요?”

    “이곳에 사는 부족에게만 얻을 수 있는 특산품이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제 소개도 하지 않았네요. 저는 시리온상회에 속해 있는 모카건이라고 합니다.”

    “어?”

    시리온 상회, 그것도 모카건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모를 리가 없다. 지금은 상회에 속해있는 평범한 상인일뿐이지만, 모카건은 나중에 대륙에 이름을 떨치는 거상이 된다. 

    “그럼 지금...”

    모카건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였다. 

    두두두두!

    멀리서 거대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수백의 인마가 이 오아시스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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