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정령수 (2) (68/241)
  • 정령수 (2)

    “어떤가? 훨씬 움직이기 편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후라켄의 말에 생각 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싸우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네. 닿기만 하면 언데드를 녹여버리는 능력, 전장을 파악하는 넓은 시야, 적의 약점을 노리는 침착성까지 모두 굉장했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자네의 이동법이었네.”

    “이동법...”

    “훌륭한 걸음이며, 멋진 이동법이었네. 걷는 것 같지만 뛰는 것보다 빠르고 안정적이었지. 그 상태에서도 자네를 잡을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이동법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았네.”

    고작 한 번 보고 소룡지보의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보완점까지 찾아내다니 역시 기본기로 마스터에 오른 남자다웠다.

    “말씀대로입니다. 공작 각하께서 지적해 주신 대로 움직이니, 더욱 안정적이면서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럼 다행이군.”

    처음 소룡지보를 배울 때 어디를 밟아야 하는지, 발의 움직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았지만, 상체의 움직임은 흐르는 대로만 맡기고 있었다. 

    무게 중심에 신경을 쓰니,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그럼 다음 자세를 취해보게.”

    “알겠습니다.”

    “거기선 무게 중심의 20%정도를 오른쪽으로 넘겨보게. 이렇게.”

    후라켄에게 두 번째 자세를 보여주자, 그는 바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직접 자세를 취해서 알려주었다.

    “네.”

    그의 말대로 오른쪽으로 무게 중심을 넘기자, 발의 움직임과 몸을 회전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신체는 오히려 안정화 되었다. 

    띵!

    [소룡지보의 성취도가 상승합니다.]

    바로 성취도가 오르는 것을 보니, 역시나 이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보기만 하고도 최적의 무게 중심을 찾는 후라켄의 능력에 소름이 끼쳤다.

    “이것도 각하의 말씀대로 하니,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허허! 나도 아직 안 죽은 모양이야.”

    내 말을 들은 후라켄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자네 혼자서 할 수 있겠지?”

    “네?”

    “내가 자네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알려 줄 수도 있네. 하지만 훗날을 위해서 자네가 스스로 자신의 움직임을 생각하고, 무게 중심을 파악하는 것을 권하네.”

    귀찮다거나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다. 후라켄은 한 치의 장난기도 들어있지 않은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준 힌트로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정말 나를 생각해주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졌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역시 자네는 말을 빨리 알아들어서 좋다니까. 답답한 녀석들은 여기서 또 붙잡고 매달리거든.”

    특성도 얻었고 길도 알려줬으니, 이정도면 후라켄에게 모든 것을 다 받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자, 그럼. 아린 나오게나.”

    “네!”

    후라켄의 부름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린이 한 걸음 만에 앞으로 달려 나왔다.

    “이름도 아십니까?”

    “실력도 좋고, 인성도 훌륭한데다가 외모까지 받쳐주는 미래의 기대주인데 이름 정도는 알아 둬야지. 하하.”

    후라켄은 청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상큼한 웃음을 지었다.

    “휴우...”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아린이지만 마스터에게 가르침을 받는 다는 것에는 참을 수 없는 흥분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녀의 뺨에 얇게 홍조가 띄워져 있었다.

    “나와 자네는 나라도 다르고, 무슨 검술을 익혔는지도 모르니, 대련으로 할 생각인데 어떤가?”

    “여, 영광. 윽. 영광입니다!”

    아린은 말을 더듬다가, 자신의 혀를 씹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시원시원한게 유렌과 똑같아서 좋군.”

    챠앙!

    아린은 바로 세검을 뽑은 뒤 자신에게 모든 정령 마법을 걸었다. 후라켄은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았다. 

    “그럼 가겠습니다!”

    팡! 

    파앙!

    아린은 단 두 걸음으로 8미터 이상 떨어져있던 후라켄에게 접근해서 그의 옆구리에 검을 찔러 넣었다. 

    컁!

    후라켄은 어느새 검을 뽑아서 그녀의 찌르기를 왼쪽으로 튕겨냈다.

    “좋네! 수련기사라고 하더니, 웬만한 기사보다 훨씬 나아!”

    집중에 들어간 아린은 후라켄의 칭찬에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캬컁!

    챙!

    왼쪽 가슴, 오른쪽 어깨, 목젖, 팔꿈치까지 아린은 시계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지만, 후라켄은 아린의 모든 공격을 먼지를 털어내듯 손쉽게 막아내었다.

    “검도 빠르고, 움직임도 빠른데다가 눈도 좋군. 자신의 장점을 아주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캬앙!

    “음...”

    후라켄이 아린을 강하게 밀쳐냈다. 공격을 막았는데도 아린은 5미터 이상 밀려났고, 충격을 벗어나지 못해서 팔을 부르르 떨었다.

    “난 자네보다 더 빠르고 강하다네. 그럼 어떻게 할 텐가?”

    “그래도... 갑니다!”

    “허허.”

    아린은 낭랑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다시 후라켄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기꺼운지 후라켄이 이레아를 볼 때처럼 부드러운 웃음을 띄웠다.

    “요새 젊은 친구들은 한 번 졌다던가, 밀린다던가 하면 바로 포기하는데, 좋은 마음가짐일세!”

    챠챵!

    아린은 후라켄과 10번의 검격을 주고받은 뒤 다시 뒤로 밀려났다. 

    “핫!”

    뒤로 밀려나간 아린은 충격의 여파를 풀자마자, 오뚜기처럼 다시 자세를 잡고 후라켄에게 돌진했다. 

    컁!

    캬컁!

    “흠, 계속 도전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 생각을 할 필요가...”

    후라켄이 달려드는 아린의 검을 9번 막은 뒤 10번째 공격으로 다시 그녀를 밀어내려고 할 때였다. 

    샤악!

    아린과 후라켄의 검이 부딪쳤을 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소리가 들렸다.

    “흘리기!”

    “핫!”

    아린은 후라켄이 횡으로 휘두르는 강검을 흘려서 힘을 넘긴 뒤 그의 가슴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하하! 좋은 반격일세!”

    후라켄은 더욱 즐거워 졌는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슈욱.

    그는 몸을 회전시켜 찔러오는 검을 회피한 뒤 어깨로 아린을 밀치려고 했다. 하지만 아리은 후라켄이 피한 것과 똑같이 몸을 회전시켜서 공격을 피한 뒤 다시 검을 휘둘렀다. 

    “하!”

    컁!

    아린이 방금 보여준 자신의 회피 방법을 그대로 써먹는 것엔 후라켄도 깜짝 놀랐는지 검압을 발생시켜서 그녀를 밀어내었다. 

    “허어...”

    후라켄이 검을 내린 뒤 입을 벌리고 아린을 쳐다보았다. 

    “마지막에 내가 검을 휘둘렀으면 또 검을 흘리려고 했나?”

    “...그렇습니다.”

    “허, 참...”

    후라켄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젓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이 친구는 뭔가?”

    “제 호위인 아린입니다.”

    “그게 아니라, 저 침착함과 성장 속도는 뭐냔 말일세. 단 두 번 만에 내 밀치기를 파악해서 검을 흘려 내다니. 허어, 오랜만에 어이없는 친구를 보는군.”

    검을 흘리는 것은 상대 검술의 속도와 힘을 모두 파악해야 쓸 수 있는 것인데 아린이 단 2번 만에 자신의 검을 흘렸다는 것에 후라켄은 엄청나게 놀란 모양이다.

    이게 바로 그녀의 특성 명경지수의 무서움이다. 

    “흐음, 자네는 데리고 다니는 사람마저 범상치 않군. 좋아. 아린, 다시 오게나. 자네가 어떤 검사인지 확실히 확인해 봐야겠네.”

    “가겠습니다!”

    후라켄의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아린은 다시 눈빛을 빛내면서 후라켄의 왼쪽으로 달려들었다.

    “구경만 할 때가 아니지.”

    아린과 후라켄이 검을 부딪치는 것을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린은 놔둬도 알아서 잘 할 테니, 난 내 수련을 할 때다.

    “세 번째.”

    소룡지보의 세 번째 걸음은 상대의 뒤로 이동하는 걸음이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무게 중심을 앞으로 쏠리게 하는 것이 맞겠지만, 내 감이 뒤를 향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무게 중심 특성이 생겼으니, 감을 따라볼까.”

    무게 중심을 뒤로 쏠리게 해서 세 번째 걸음을 밟아보았다. 

    확연히 빨라진 속도, 그리고 상대의 시야를 제한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났지만 성취도 상승 메시지는 없었다.

    [소룡지보의 성취도가 상승합니다.]

    무게 중심의 비율을 바꿔가며 여섯 번째 시도를 해서야 성취도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제 확실히 알겠어. 

    소룡지보 12걸음의 완벽한 무게 중심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감을 잡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세.”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후라켄의 말에 아린이 땅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유렌, 저 친구 절대 놓치지 말게. 아직은 미숙하지만 훗날 자네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될 걸세. 내 장담하지.”

    검을 집어넣은 후라켄이 감탄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물론입니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죠.”

    아린을 쳐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 사람이 칭찬을 듣자, 내가 칭찬을 듣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난 할 업무들이 밀려있어서 돌아가 봐야겠네.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후라켄이 같이 돌아가겠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저는 조금 더 수련을 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천천히 하게나. 오 일 뒤에 성왕 폐하께서 자네를 보자고 했으니, 그때까진 마음대로 하게나.”

    “네?

    “성왕 폐하께서 자네를 보고 싶다고 하셨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성자소리까지 들었으니, 당연히 성왕과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 했다. 특히나 그곳에서 얻을 것 도 있었고.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네. 자네가 활약을 한 것에 폐하께서 상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니.”

    “설마요.”

    겸손이 담긴,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일세. 우리나라는 상벌이 확실하거든. 후후, 기대하고 있게나. 그 때까지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내 집사에게 말하도록 하고.”

    “신경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나중에 보세나.”

    **

    전날 밤까지 수련을 하고, 그 다음날에도 새벽부터 후라켄의 개인 연무장에 나왔다. 

    후라켄은 바쁜 일이 있는지, 보이지 않아서 바로 소룡지보의 수련을 시작했다.

    ”후...”

    띵!

    [소룡지보의 성취도가 상승합니다.]

    “이제 찾았군.”

    수련을 시작한지 이틀째 정오가 넘어서야 소룡지보 12걸음에 맞는 최적의 무게 중심을 찾아냈다. 

    무게 중심을 잡은 대로 반복 수련만하면 보법의 경지를 빠르게 상승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음?”

    한숨 돌리고 있을 때 휴식터에 이불로 감싸둔 정령수가 움찔 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제야 일어났나?”

    정령수에게 꾸준히 내공을 넣어줬는데, 3일이 지난 지금에서야 정신이 든 모양이다. 이불이 조금씩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빼...”

    휴식터로 가서 이불을 살짝 들춰보니, 자물쇠처럼 잠겨있던 정령수의 눈이 반쯤 떠졌다. 녀석은 고개를 살짝 돌려서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빽.”

    정령수는 통통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고, 날개를 붕붕 휘둘렀다. 날고 싶지만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보니, 무지막지 하게 귀엽네. 역시 뱁새로 하길 잘했어.”

    정령수는 하얀 솜뭉치에 반짝이는 눈이 두 개 달린 것 같이 귀여운 뱁새의 모습이었다. 

    “빽.”

    날개를 파닥거리는 녀석을 양손으로 들어올렸다. 

    “음?”

    뒤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어느새 다가온 아린이 불타는 눈으로 정령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어쩜 이렇게...”

    아린은 정령수가 움직이는 것 자체가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피가 날정도로 힘껏 주먹을 쥐고 있었다.

    “빽.”

    정령수는 나와 아린을 보더니, 고개를 옆으로 틀고 울음소리를 내었다.

    “하악, 어, 어떻게!”

    그 모습을 본 아린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대, 대공자님. 이 아이에게 밥이라도 줘야하지 않나요? 이름도 지어줘야 하구요.”

    “밥은 과일이면 될 것 같고, 이름이라...”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벨로아]

    정령계와 인간계 사이에서 살고 있는 정령수 중 하나. 정령수는 4대 정령 중 한 가지의 속성을 타고나지만 벨로아는 어떤 속성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속성 : 무

    특성 : 길잡이.

    어?

    속성이 무인 것은 맞고 상관도 없다. 이 녀석은 훗날 4대 속성을 모두 얻게 되니까. 

    그런데 저 길잡이는 왜 붙었는지 모르겠다. 원작에는 없었던 특성이다.

    “대공자님.”

    “응?”

    “이 아이 이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원래는 원작과 같이 벨로라는 이름을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녀석은 원작과는 다른 녀석이 되었다. 

    이름도 바꿔줘야 할 것 같다.

    “이름이라, 빽빽 거리니까. 빽빽이 어때?”

    “대공자님. 지금 그게 하실 말씀입니까?”

    아린은 처음 봤을 때 처럼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 귀여운 아이에게 어떻게 그따위 이름을 주냐는 표정이다.

    “빽!”

    하지만 정령수는 마음에 드는지, 울음소리를 내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빽빽아.”

    “빼액!”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듯 빽빽이가 기똥차게 울음을 터트렸다. 아린이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이, 이런 아이에게 빽빽이라니, 말도...”

    “빽!”

    빽빽이의 울음에 아린이 입을 다물었다.

    **

    “후우...”

    후라켄의 저택에 있는 동안 심법수련 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소룡지보에 투자했기 때문에 소룡지보의 숙련도는 그래프를 뚫듯이 쭉쭉 상승해나갔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고 준비하러 가야겠네.”

    내일이 성왕을 알현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오늘은 오전 수련까지만 끝내고, 알현 준비를 해야 했다. 

    타악.

    완벽한 무게 중심을 찾은 소룡지보를 방위대로 밟기 시작했다. 속도, 안정감, 보법의 효과까지 이전의 소룡지보와 지금의 소룡지보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었다.

    [띵!]

    새롭게 바뀐 소룡지보의 열두 걸음을 완벽하게 해내고, 뿌듯해 하고 있을 때 메시지 창이 줄줄이 올라왔다.

    [소룡지보의 성취도가 상승합니다.]

    [소룡지보의 성취도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소룡지보가 뇌인신법(雷刃身法)으로 변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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