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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마계화 (4) (66/241)

마계화 (4)

어차피 이 투명한 구슬은 나밖에 볼 수 없으니, 먼저 이레아를 챙겼다. 

“성녀님! 괜찮으세요?” 

“으으...” 

이레아는 창백해진 얼굴을 한 채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계수에게 물린 이레아의 오른팔엔 가시가 박힌 것 같은 수십 개의 상처가 있었는데, 그 상처를 통해서 많은 양의 시독이 들어간 모양이다. 그녀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우웅. 

[흡독지력이 대상에게서 독(시독)을 흡수합니다.] 

흡독지력을 운용해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시독들을 모두 흡수하자, 그녀의 안색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으음...” 

이레아에게 내공을 불어넣어서 뭉쳐있는 탁한 기운을 풀어주자, 그녀가 작은 신음 소리를 내더니 정신을 차렸다. 

“유렌님...” 

“성녀님. 독은 제가 제거했습니다. 힘드시겠지만, 바로 팔의 치유를 하셔야 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휴우.” 

화아악. 

이레아는 숨을 몰아쉬더니, 자신의 오른팔에 신성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오염된 검은 피가 밀려나온 후에 그녀의 상처가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다. 

“걱정 마세요. 치유는 제 특기에요.” 

이레아는 고통 속에서도 걱정 말라는 듯 옅게 웃음을 지었다. 

“괜찮으냐?” 

후라켄은 마계수를 땔감 수준으로 조각내놓고, 이레아에게 달려왔다. 진즉에 오고 싶었겠지만, 그는 마계수를 확실하게 죽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런 떠그랄! 지랄 맞은 나무 놈이! 네 보석 같은 팔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쾅! 

후라켄은 이레아의 팔에 남아있는 상처자국을 보고 바닥을 부수면서 다시 분통을 터트렸다. 

“이 좆도 안 되는 마계수의 뿌리를 뽑아버리겠어!” 

이제 보니, 이레아의 욕은 이 아저씨한테 배운 모양이다. 화가 나니 별의별 욕이 다나온다. 

“공작 각하. 진정하시지요.” 

“크으....” 

일단 공작을 말렸다. 저 밑엔 내가 가져야 할 보상이 있으니, 뿌리는 지금 뽑으면 안 된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금방 나을 거예요.” 

“하아, 미안하다. 내가 제 때 나섰어야 했는데, 방심을 하다니...” 

“제가 방심한 거예요.” 

“아니다. 나도 마계수가 갑자기 입을 벌릴 줄은 몰랐다. 놈들에 대해선 정보가 적으니...” 

“괜찮아요. 다음엔 이렇게 당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레아는 후라켄의 손을 잡으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하아, 일단 이곳에서 나가자꾸나. 마계화는 멈췄지만, 이곳의 독기는 네 몸에 더 좋지 않을 게다. 자네, 이레아 좀 데리고 밖으로 나와 주겠나?” 

“네.” 

숲을 나가기 전에 이레아를 부축한 채로 발밑에 있는 맑은 구슬을 쥐었다. 

번쩍! 

구슬에서 터져 나온 빛 때문에 눈을 감았다가 뜨니, 샤크라이 킹 때와 마찬가지로 하얗고 갈라진 방이 눈앞에 나타났다. 

“역시 안 되는 건가...” 

일부러 이레아를 잡은 상태에서 구슬을 만졌는데, 이동된 것은 나 혼자였다. 구슬도 나만 볼 수 있고, 이곳에 올 수 있는 것도 나 혼자인 모양이다. 

파삭. 

손에 든 구슬은 자동으로 날아가서 왼쪽 벽에 흡수됐고, 갈라진 금 하나를 지우고 사라졌다. 

[세계의 회복에 일조하셨습니다.] 

[당신의 적성을 파악하여 보상을 제공합니다.] 

[보상 선택 완료.] 

[흡독지력의 성취를 두 단계 상승시킵니다.] 

“뭐? 흡독지력?” 

번쩍! 

대답 따윈 없다. 

넌 할거 했고, 난 줄 거 줬으니 바로 돌려보내주는 참으로 스피디하고 심플한 방식이다. 

“유렌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가시죠.”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이레아를 데리고 숲 밖으로 나왔다. 호숫가에서 오염 되지 않는 바위 위에 그녀를 앉혔다. 

“우와아아아!” 

“끝났다!” 

“신성왕국 만세!” 

후라켄이 마계수를 잡은 소식을 전했는지, 호수에서 대기하던 성기사와 신관들이 진심어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번쩍! 

숲 쪽에서 회백색이 번쩍이는 것을 보니, 정화조의 인원들도 쉴 틈 없이 작업을 진행하며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것 같다. 

“성녀님. 팔은 어떠신가요?” 

“이, 이제 괜찮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구해주시고, 해독도 해주시고, 부축까지 해주시다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이레아는 귀까지 빨개진 채로 속삭이듯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건 아니에요!” 

“맞아. 그건 아니지.” 

성기사들과 대화를 하고 있던 후라켄이 어느새 내 뒤로 와있었다. 

“이레아가 마계수의 팔에 물렸을 때는 나조차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네. 그곳에서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던 것은 자네밖에 없었네.” 

“그렇게 보였을 뿐입니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마계수의 급소를 찾고, 그곳을 노리는 신중함도 대단했네. 자네의 말에 따르지 않았다면, 이레아가 더 심하게 다쳤을지도 몰라. 내 손녀를 구해줘서 정말 고맙네.” 

후라켄은 고맙다는 말을 하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이러지 마십시오!” 

얼른 일어나서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후라켄은 허리를 펴지 않았다. 

“진심일세. 정말 고맙네. 자네가 없었다면 더 큰일이 생겼을지도 몰라.” 

중년인으로 보이지만, 후라켄의 나이는 60이 넘었다. 거기다 그의 지위는 왕국의 총 기사단장이며, 대륙 전체에 명성을 떨치는 소드 마스터다. 

그런 후라켄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주변의 모두가 침묵에 잠겼다. 

“자네들도 이리오게!” 

후라켄의 말에 성기사와 신관들이 내 앞으로 몰려왔다. 

“마계수를 죽이고, 이레아를 구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 친구일세. 아니지, 이 유렌 록스 일세.” 

“아...” 

“저, 정말입니까?” 

“그래. 모두 사실이네.” 

후라켄의 진심이 가득 담긴 말에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이 확연히 달라졌다. 

“감사합니다! 유렌님!” 

“정말 감사합니다.”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성기사와 신관 모두가 내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운 것도 고마운 거지만, 난 자네에게 빚을 하나 졌네.” 

“빚이라뇨?” 

“손녀의 목숨을 구해 주었으니, 그게 빛이지.” 

“그렇게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죠.” 

“아니, 빚일세. 난 빚을 갚지 않으면 잠도 못 자는 성격이지. 자네가 요청하면 언제, 어디라도 달려가서 도와주겠네.” 

“하아, 그렇게 까지 말하시니, 알겠습니다.” 

다른 생각 없이 이레아를 구하기 위해 행동한 거지만 소드 마스터를 포함한 모두의 호감을 얻고, 훗날 마스터에게 도움을 청할 기회도 얻었으니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단장님! 정화조가 도착했습니다!” 

내가 신관들의 인사를 받고 있을 때 호수의 입구 쪽에서 성기사와 신관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대지의 정화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드디어 여기까지 도착한 모양이다. 

“이 호수와 숲 안쪽을 제외한 모든 땅의 정화가 끝났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아닙니다. 단장님이 언데드들을 모두 처리하고 가셔서 정화 작업이 손쉽게 진행됐습니다.” 

후라켄이 남기고 왔던 그의 부관이 보고를 시작했다. 

“난 한 거 없네. 쟤네들이 다했지.” 

후라켄이 고갯짓으로 나와 이레아를 가리키면 히죽 미소 지었다. 

“그렇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관이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도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흠, 그런데 이 호수와 숲 안쪽은 성석으로도 정화가 될지 잘 모르겠군.” 

“땅으로 흘러간 독기가 너무 심해서 바로 정화하기 힘들 것 같아요.” 

이레아도 그것이 걱정 되는지, 후라켄의 말을 듣고 입술을 깨물었다. 

“탁한 안개도 문제지만, 바닥의 시독이 너무 심하네.” 

“시독이라...” 

후라켄의 말에 듣자 조금 전에 얻은 것이 생각났다. 

상태창을 켜서 바뀐 흡독지력의 정보를 읽어보았다. 

[흡독지력]- 6성. 

대상에게 존재하는 독을 흡수해서 자신의 내공으로 삼는다. 6성 달성의 효과로 생명체 이외에서도 독을 흡수할 수 있다. 

“이거 되겠는데...” 

** 

“어떤가?” 

“음, 공중을 떠다니는 마계의 공기도 공기지만, 바닥의 독기가 너무 심합니다.” 

“으음...” 

“바닥의 독기만 없어도 바로 정화를 할 수 있겠지만, 이대로라면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정화 작업을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아, 갈 때도 그냥 가질 않는군. 참 지랄 맞은 나무야.” 

정화조의 조장인 신관의 말에 후라켄이 어두운 안색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이레아, 너도 마찬가지인 게냐?” 

“마계수의 뿌리가 사방으로 시독을 흘려보냈어요. 마기라면 제가 정화 할 수 있겠지만, 대지에 퍼진 독은 어려워요. 먼저 시독을 뽑거나, 제거하지 않으면 정화는 힘들겠어요.” 

이레아까지 어렵다는 말을 하자, 성기사와 신관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거 그럼 얼마나 지나야 정화를 진행...” 

“제가 해봐도 될까요?” 

“응?” 

지금까지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내가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서자 후라켄, 성기사와 신관들까지 벙찐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유, 유렌님!” 

이레아만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양손을 모아잡고 날 쳐다본다. 

“자네가 해보겠다고?” 

“바닥에 깔린 시독이 문제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맞네. 이것만 해결되면 바로 마계화 된 대지를 정화 할 수 있을 거 같네.” 

“그럼. 제가 시독을 모두 정화해보겠습니다.” 

일부러 시독의 흡수나 해독이 아닌, 정화라는 표현을 섰다. 

“저기 유렌님은 신성력이 없지 않으십니까?” 

“네. 없습니다.” 

신관 중 한 명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해왔다. 

“하지만 다른 정화 방법이 있습니다.” 

“유레님은 하실 수 있어요!” 

이레아가 내 뒤에서 손을 들고 외쳤다. 열성 신도가 생긴 느낌이다. 내게 왜 이정도의 믿음을 가지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것저것 해본다고, 손해 볼 건 없잖아.” 

“그렇긴 한데...” 

“하긴, 저분이 그냥 나서진 않으실 겁니다.” 

“데스나이트까지 녹이시고, 마계수를 처리한 분이시니...” 

후라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데스나이트를 녹이고, 마계수를 잡고, 이레아를 구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모두의 눈에 조금이지만 신뢰가 엿보였다. 

“그럼 하겠습니다.” 

마계수의 밑동 바로 아래의 땅에 손을 짚었다. 

“휴우...” 

한 숨을 한번 내쉬고, 흡독지력을 운용했다. 

“음...” 

땅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시독들이 모두 느껴졌다. 뿌리에서 시독을 뿌렸기 때문에 이곳에서 퍼져나간 모든 독을 흡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우웅! 

빨대로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양손으로 시독을 빨아들였다. 

[흡독지력이 대지에서 독(시독)을 흡수합니다.] 

[흡독지력이 만독자전신기의 운용을 돕습니다.] 

[흡독지력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역혈곡(易血哭)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흡독지력은 대지에 퍼져있는 시독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흡수된 시독은 만독자전신기의 운행에 따라, 내공으로 바뀌어서 단전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시독의 양 때문인지, 역혈곡의 성취도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일정비율이 아니라, 퍼져나간 시독의 전부를 흡수할 수 있었다면 바로 만독자전신기 6성을 찍었을 지도 모르겠군. 

“자, 잠깐만!” 

“이, 이거...” 

“정화가 되고 있어요!” 

대지에서 시독을 계속 흡수하자, 시독에 의해서 부글거리던 땅이 조금씩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진짜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저, 정말 유렌님이 독을 정화하고 계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본 성기사와 신관들은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지고, 닫지 못한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유렌님! 전 해내실 줄 알았어요!” 

이레아가 기쁨에 들떠서 양 주먹을 귀엽게 흔들었다. 

우우웅. 

내 감각에 잡히는 모든 시독을 흡수했다. 독이 흡수된 대지는 가뭄이 난 논처럼 갈라져 있었지만, 죽음의 대지에서 벗어나 조금씩 숲의 형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신관과 이레아의 힘으로 대지의 정화를 할 수 있을 거다. 

[역혈곡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역혈곡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역혈곡의 성취도가 한계에 도달하여 상위 독이 개방 됩니다.] 

[시령혈(屍令血)이 개방됩니다.] 

와, 새로운 독의 개방, 개꿀이네. 

다른 독에 비해 최근에 개방된 역혈곡의 성취도가 한계까지 올라서 새로운 독이 개방 되다니, 내가 요새 시독을 많이 먹긴 한 모양이다. 

“아...” 

“오...” 

대지의 시독을 흡수했으니, 다음으로 대기에 퍼져있는 레이크 스모그를 빨아들이려고 할 때 뒤에서 탄성소리가 들렸다. 

“음?” 

뒤를 돌아보자, 신관이 손을 부르르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독이 정화 됐으니 놀라는 거야 이해가 가지만, 저 정도 반응을 할 일인지 의아하고 있을 때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신관의 입이 열렸다. 

“서, 성자님!” 

“성자?” 

“성자님이 나타나셨다!” 

내가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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