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마계화 (3) (65/241)
  • 마계화 (3)

    데스나이트.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언데드 몬스터다. 

    해골과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지만, 해골과 데스나이트는 그 존재 자체가 다르다. 

    텅빈 눈에서 황금빛 광명을 토해내며, 마계의 불꽃을 태우고 있는 데스나이트의 모습은 고위 신관이나 성기사들 조차 뒷걸음질 치게 만들 정도의 위암감을 가지고 있다. 

    “그 데스나이트가 이곳에 있다는 건가.” 

    후라켄의 말대로 이곳에 데스나이트가 있다면 원래의 스토리보다 난이도가 꽤 많이 올라갔다. 

    듀라한도 나름 강력한 몬스터지만 데스나이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나야 이곳에 뭐가 있든 상관없지만. 

    데스나이트든, 리치든, 듀라한 로드든 상관없다. 언데드라는 속성이 있다면 누가와도 내 밥일 뿐이다. 

    거기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독기가 계속 몸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몬스터들은 손쉬운 언데드고, 내공은 알아서 쌓이고 있으니, 이곳은 내게 꿀단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언데드가 더 이상 나오지 않네요.” 

    “한 곳에 모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레아가 주변을 둘러보며, 아쉽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렇게 언데드를 때려잡아놓고 아직도 부족한 모양이다. 

    “아, 그렇군요.” 

    듀라한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몬스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해골이 소환되는 소리가 났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마계수 앞에서 끝을 보자는 것 같다. 

    “음.” 

    “정지.” 

    내가 앞에 있는 몬스터들의 기척을 느꼈을 때 후라켄에게서 정지명령이 내려왔다. 

    그 역시 앞에 몬스터들이 있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앞에 언데드들이 모여 있다. 대략 100마리는 넘는 것 같군.” 

    “100마리가 넘는다니...” 

    “100마리가 넘는 언데드 중에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몬스터는 딱 한 마리뿐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데스나이트...” 

    후라켄의 말에 앞에 있던 신관이 홀린 것처럼 데스나이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래. 데스나이트가 있지. 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어. 너희들은 놈이 소환한 해골과 남아있는 언데드들을 처리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럼 데스나이트는...” 

    후라켄은 나와 이레아를 번갈아 보더니, 내게서 고개를 멈추고 어떤 의미가 있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상대해 보겠나?” 

    “네?” 

    데스나이트는 당연히 후라켄이 잡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의외의 제안이었다. 

    “뭘, 그리 놀라나, 충분히 해결 할 수 있으면서.” 

    “그게...” 

    “자네는 언데드를 녹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나. 그게 데스나이트에게 적용되는지 한 번 시험해봐야지.” 

    시험해볼 필요 없다. 

    언데드인 이상 통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기회를 주셨으니, 해보겠습니다..” 

    “역시 시원시원하구만. 그럼. 데스나이트는 자네에게 맡기겠네.” 

    어찌됐든 후라켄이 내게 배려를 해준 거니,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놈을 잡고 나오는 전리품도 챙길 수 있고. 

    “유렌님. 다른 썩을 것들이 방해되지 않도록 확실하게 막아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다른 놈들이 방해되지 않게 해준다며 주먹을 쥐는 이레아의 모습은 후라켄보다도 믿음직스러웠다. 

    우리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기기긱. 

    그르르르. 

    얼마 이동하지 않아, 숲의 중앙에 있는 호숫가에 도착했다. 언데드들은 호숫가의 왼쪽 공터에 우르르 몰려있었다. 

    “저기 듀라한이 있습니다.” 

    “저 대가리는 제가 처리 할게요!” 

    이레아가 듀라한을 발견하고서, 눈빛을 빛내면서 어깨를 휘돌렸다. 

    “저놈인가.” 

    다른 사람들이 듀라한에 관심을 가질 때 나는 해골무리의 중앙을 보고 있었다. 

    그곳엔 평범한 해골과는 달리 거대한 어둠의 마력이 일렁이는 회색의 해골이 있었다. 

    빛바랜 은빛의 갑옷을 입고, 얄팍한 검을 들고 있었지만, 놈의 눈에선 황금색 빛이 번쩍이고, 놈의 뼈 사이사이에선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데, 데스나이트...” 

    “진짜 데스나이트야.” 

    “으, 위압감이...” 

    사람들은 이제야 데스나이트를 알아본 듯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창조주의 눈이 발동합니다.] 

    [데스나이트]-소벌디 

    최하급의 데스나이트. 무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외형은 해골과 비슷해 보이지만, 마계의 불꽃을 소환하는 다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고, 자신의 뼈로 해골들을 소환할 수 있다. 

    기술: 다크 블레이드(물리,마법), 해골 소환(소환), 신속(보조), 복구(보조) 

    소벌디라. 

    데스나이트의 등급은 소벌디로 가장 낮은 최하급의 데스나이트였다. 

    “쯧, 저 데스나이트. 예전에 본 녀석보다 한참 약한 놈이군.” 

    후라켄도 데스나이트의 능력을 파악했는지. 약하다며 혀를 차고 있었다. 

    “자네에겐 간식꺼리도 되지 않겠어. 그렇지만 약하다고 해서 방심해선 안 되네.” 

    “물론입니다.” 

    “모두 전투준비!” 

    “전투준비.” 

    “으라라라!” 

    이제 익숙해진 이레아의 기합을 들으며 몸을 가볍게 풀었다. 

    딱딱. 

    “지...킨...다...” 

    우리가 무기를 뽑자 데스나이트가 자신의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인간의 언어를 뱉어냈다. 

    “마, 말을...” 

    “언데드가 말을 하다니...” 

    “뭘 그거 가지고 놀라나, 데스나이트 중에 강한 녀석들은 농담까지 던지는데.” 

    후라켄이 피식 웃으면서 긴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등을 툭툭 쳤다. 

    “죽...여...라...” 

    기기기긱. 

    따따딱. 

    데스나이트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서 우리를 가리키자, 놈을 둘러싸고 있던 언데드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길을 열어주마!” 

    부우우웅! 

    후라켄의 검에서 2미터는 될 것 같은 푸른색 오러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마스터의 상징, 유형화된 오러를 검에서 뿜어내는 오러 블레이드였다. 

    콰앙! 

    파사사삭! 

    후라켄이 오러 블레이드를 일직선으로 내리치자, 달려들던 언데드들이 터져나가며 앞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가겠습니다!” 

    “말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군. 역시 마음에 들어!” 

    후라켄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죽...인...다...” 

    화르르르. 

    데스나이트가 자신의 검에 불꽃을 두르기 시작했다. 다크 블레이드의 불꽃에 닿은 마계의 대지가 지지직 거리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슈우웅! 

    빠르게 끝내기 위해 곡사를 사용해서 비수를 던졌다. 

    챵. 

    두개골을 향하던 비수는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서 놈의 쇄골을 향했다. 하지만 데스나이트는 검을 기괴하게 돌려서 내 비수를 막아냈다. 

    “곡사로는 안 되네. 너무 무시했나?” 

    이번에는 아그네스로 구슬 2개를 만들어냈다. 2개의 백광환이다. 

    팡! 

    파앙! 

    2개의 백광환으로 왼쪽 어깨와 오른쪽 갈비뼈를 동시에 날렸다. 

    쩡! 

    쩌정! 

    데스나이트는 다크 블레이드를 x자로 휘둘러서 백광환 2개를 모두 날려버린 다음 내게 달려들었다. 

    파앗! 

    뼈다귀라고 생각되지 않는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그럼 이건?” 

    손가락에 다시 백광환을 끼웠다. 

    “통하지...않는...” 

    “아닐걸?” 

    피앙! 

    놈의 말에 싱긋 웃어주며 놈의 검이 내게 닿기 직전에 일섬뢰를 튕겼다. 

    퍽! 

    좀 전에 쓴 백광환보다 2배는 빠른 속도, 거기다 근거리에서 튕긴 덕에 데스나이트는 반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신의 두개골을 구슬에게 헌납해주었다. 

    “크악...!” 

    “이건 좀 전과는 다른 물건이거든.” 

    “카...악!” 

    데스나이트에게 붉은빛이 돌고 있는 신살의 백광환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놈은 그것을 보기도 전에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비명을 지르다니, 신살의 능력인가.” 

    화골산에 녹아내리기 전에 데스나이트는 비명을 질렀다. 신마영정의 속성을 가진 놈들의 영혼에 치명적인 충격을 주는 신살의 능력 때문인 모양이다. 

    “응?” 

    무너진 데스나이트의 갑옷 사이에서 구슬이 하나 나왔다. 새까만 안개 같은 것이 구슬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흑마옥] 

    순수한 어둠의 마력이 담겨있는 구슬이다. 

    “이건 쓸 만하겠네.” 

    순수한 마력이라는 설명을 보자, 어디다 써야할지 바로 생각이 났다. 

    흑마옥을 챙기고 뒤를 돌아보니, 후라켄과 신관들이 입을 쩌억 벌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언데드를 처리하고 내 싸움을 보고 있었다. 

    “데스나이트가 비명을?” 

    후라켄은 내가 데스나이트를 쉽게 잡은 것보다도, 데스나이트가 비명을 지른 것이 놀라운 모양이다. 

    “데스나이트는 신성력을 맞아도 신음을 흘릴 뿐인데 비명을 지르다니, 자네 대체 뭔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팠나본데요?” 

    백광환을 데스나이트의 머리에서 회수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언데드가 아프다니, 자네는 정말...” 

    후라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보고 고개를 젓다가, 데스나이트가 지키던 나무길 사이로 들어갔다. 

    “음.” 

    숲길에 들어간 후라켄은 몇 걸음 이동하지도 않고, 멈춰서 바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기부턴 안개가 짙어지고 독해지네. 거기다 바닥에선 시독까지 올라오고 있지.”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달달한 독들이 있다는 소리였다. 

    “지금부터는 더욱 소수로만 가야겠군. 자네는 당연히 가겠지?” 

    “물론입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갈 생각인데 거부 할 리가 있나. 

    “그럼 빨리 끝내지. 여기만 끝내면 바로 돌아갈 수 있겠어.” 

    후라켄은 돌아가서 성기사와 신관들에게 대기하라는 지시를 내린 뒤 이레아와 같이 돌아왔다. 

    “이레아, 신성력으로 온 몸을 덮...” 

    “네?” 

    후라켄은 이레아에게 조언을 하려다가 그녀의 전신에서 타오르는 신성력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니다. 잘하고 있어. 바로 가자꾸나.” 

    후라켄은 싱긋 웃고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나는 이레아와 눈을 한 번 마주친 후에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흠,” 

    안개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이레아도 잘 보이지 않고, 끈적하고 음습한 무언가가 부츠를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만독자전신기(萬毒磁電神氣)가 독(레이크 스모그)을 흡수합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자괴연(紫怪煙)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만독자전신기(萬毒磁電神氣)가 독(시독)을 흡수합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역혈곡(易血哭)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짙어진 레이크 스모그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시독도 모두 내겐 영약이 될 뿐이다. 

    “괜찮으세요?” 

    “당연하죠.” 

    이레아는 내가 히죽이는 것을 보고 걱정되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계화의 주범이 이놈이었군.” 

    후라켄이 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에는 재가 뿌려진 것 같은 회색의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마계수라니.” 

    다른 나무들과는 확연히 다른 외형. 

    인간의 얼굴과 알 수 없는 괴물들의 얼굴이 나무 여기저기에 튀어나와 있었고, 나무의 줄기 사이사이에는 검은 액체가 수액처럼 흐르고 있었다. 

    나무에 붙어 있는 수많은 얼굴 중 유일하게 꿀렁거리고 있는 인간의 얼굴이 보였는데 그게 바로 놈의 심장이다. 

    역시, 내가 설정한 마계수와는 달라. 

    나는 이 녀석보다 작고, 얇은 최하급 마계수를 설정했건만 눈앞에 있는 것은 그 놈보다 레벨이 높은 녀석이다. 

    “보통 놈이 아니야. 못해도 하급 정도는 되어 보이는군. 거기다 이 크기! 이미 대지의 정기를 뽑아 먹을 대로 뽑아 먹었어!” 

    후라켄은 분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마계수를 노려보았다. 

    “더 이상 퍼먹기 전에 제거해야 하겠어. 이레아!” 

    “네. 단장님.” 

    후라켄은 이번엔 이레아의 경험을 쌓게 해주려는 모양이다. 

    “으아아!” 

    이레아의 오른손에서 거대한 신성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하앗!” 

    이레아는 주먹에 짐볼만한 신성력을 모은 뒤에 마계수에게 직접 달려들었다. 

    쩌억! 

    “키아아!” 

    이레아의 주먹이 마계수에 닿으려고 할 때 마계수의 중간부분이 입처럼 갈라지더니, 다가오는 이레아의 팔을 그대로 집어 삼켜버렸다. 

    쩍쩍쩍! 

    “까아악!” 

    “이런!” 

    마계수는 신성력에 몸이 타고 있으면서도 이레아를 놔주지 않고, 그녀의 팔을 계속 씹고 있었다. 그냥은 죽지 않겠다는 최후의 발악이었다. 

    “아악!” 

    “이레아!” 

    후라켄이 바로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냈다.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졌다. 

    “잠시 만요!” 

    “뭔가!” 

    “지금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했다간 성녀님까지 다칠 수 있습니다.” 

    “그럼 어쩌자는 건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허리춤에 있는 조금 긴 비수를 잡았다. 

    챵! 

    짙은 녹색의 검집에서 나온 귀왕살이 시리도록 차가운 살기를 뿜어냈다. 

    마계수의 속성은 마 그 자체다. 신수, 악마, 악귀를 죽이는 신살수의 무기라면 놈의 혼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슈아아앙! 

    유일하게 약동하고 있는 인간의 얼굴, 놈의 심장인 그곳을 향해 귀왕살을 날렸다. 

    퍼억! 

    “키아아악!” 

    “꺄악!” 

    마계수는 귀왕살이 박히자마자,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더니, 잡고 있던 이레아를 뱉어버렸다. 

    “잘했네!” 

    부아아앙! 

    쩌어억! 

    내가 던져진 이레아를 받아들자마자, 후라켄은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해서 마계수의 몸통을 갈라버렸다. 

    쿠쿠쿵. 

    마계수는 몸통이 반으로 쪼개지면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귀왕살이 심장에 박혔을 때 이미 죽은 모양이다. 

    부우웅! 

    “이놈!” 

    손녀가 다친 분노를 푸는 듯 후라켄은 마계수를 조각내기 시작했다. 

    “성녀님. 괜찮으세...” 

    도르르. 

    탁. 

    이레아의 팔의 상처를 보려고 할 때 마계수의 심장에서 나온 투명한 구슬이 내 앞으로 굴러왔다. 

    “이 구슬...” 

    마계수에게서 나온 구슬은 샤크라이 킹에게서 나왔던 구슬과 같은 맑은 빛을 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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