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애닌 (2) (62/241)

애닌 (2)

“너, 너 대체 누구야!” 

“나를 노리고 와놓고, 내 이름은 왜 자꾸 묻는 거지?” 

광기에 휩싸였던 애닌의 눈이 겁먹은 붕어처럼 쪼그라들었다. 

“어떻게 내 나이를 아는 것이냐! 거기다 세피로스는 록스가의 망나니 따위가 알만한 이름이 아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앞으로 질문은 내가 할 거니까 입 닥치고 있어.” 

“으...” 

계속 애닌의 눈을 노려보자, 놈은 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슬쩍 돌렸다. 

“이제 아이 행세는 그만 두기로 했나? 말투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순식간에 할아버지가 되어버렸군.” 

평소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것의 반동인지, 애닌의 얼굴과 목엔 주름이 자글자글 지어져 있었다. 

“크으으...” 

“현재 세피로스의 총원은?” 

“열네 명. 어?” 

애닌은 스스로 말해놓고, 자기가 놀라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뭐, 뭐야! 내가 왜 대답을!” 

애닌에게 먹인 독 중 하나, 자백제의 효과다. 

멘탈이 바스스 부서져 내린 애닌에게 자백제는 완벽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열네 명이라...” 

자백제가 효과를 작용하고 있으니, 놈의 말은 사실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내가 설정한 세피로스의 인원은 12명이었다. 내가 모르는 놈이 2명이나 늘었다. 

“정말 열네 명이 맞아?” 

“그, 그렇다.” 

“베일과 너를 제외하고 누가 있는 거지? 아니, 질문을 바꾸지. 가장 늦게 들어온 두 명은 누구지?” 

“그건 또 어떻게...” 

내 말을 들은 애닌의 두 눈동자가 튕긴 기타 줄처럼 부르르 떨렸다. 

“언제, 어떻게 들어왔지?” 

“며, 몇 년 전에 삼공이 데려온 놈들이 두 놈 있다. 아, 삼공은...” 

“삼공이 너희들의 대장인 건 아니까, 데려온 놈들이 누군지나 말해.” 

“헉!” 

삼공은 세피로스를 처음 세울 때부터 존재했던 놈들이다. 그들은 세피로스에서 장로로 대우를 받으며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거, 검귀와 권패라고 부르는데, 한 놈은 검을 가지고 다니고, 한 놈은 손에 검은 색 너클을 끼고 있다. 꽤나 실력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뭐하는 놈들인지 나도 잘 몰라.” 

검과 주먹을 쓴다는 정보는 너무 광범위해서 없느니만 못했다. 

“왜 뭐하는 놈들인지 모르는 거지? 베일의 성격이면 분명 조사해봤을 텐데?” 

“그들은 우리와 달리 외부 역할이 없다. 삼공을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는 강아지 같은 놈들이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군.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너와 베일이 이빨을 구하려던 목적은?” 

“...” 

더 이상은 말하기 싫은지, 할 수 없는 건지, 애닌이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순순히 말하는 게 좋았을 텐데... 난 참을성이 없거든.” 

“뭐?” 

딱! 

신호를 주듯이 손가락을 튕겨서 경쾌한 소리를 내었다. 

“뭐, 뭐하는...” 

애닌은 내가 왜 자신을 자유롭게 놔두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 크윽!” 

10초도 지나지 않아, 애닌이 새빨개진 얼굴로 바닥에 배를 비비면서 자신의 갈비뼈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고통에 녹아든 애닌의 비명이 공허한 밤하늘을 울렸다. 

“크어억! 그, 그만... 제발! 다, 다 말해줄게!” 

독이 발동하고 10초도 되지 않아서 애닌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신발을 잡고 빌기 시작했다. 

“하!” 

수백 명 이상의 인간을 가지고 놀다가 죽인 살인마가 독을 10초도 견디지 못하는 꼴을 보니 코웃음이 나왔다. 

“으으...” 

독을 풀어주자, 애닌이 끙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일과 네가 이빨을 구하려던 목적은 삼공의 제거인가?” 

“그, 그걸 어떻게...” 

“흑검도 관련되어 있겠군. 너와 베일 흑검 3명이 계획한 것인가?” 

“대, 대체 당신은...” 

난 베일의 목적을 두 가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신살의 무기로 한 영물을 잡고 영물이 지키던 아이템을 가지는 것, 두 번째가 신살의 무기로 삼공을 노리는 것이다. 

베일의 목적은 후자였던 모양이다. 

“하긴 인간이 아닌 괴물들을 잡으려면 그 정도 이빨정도는 있어야지.” 

“무슨...” 

애닌은 내가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것에 놀라서 입조차 제대로 열지 못했다. 

“너희가 삼공을 노리는 이유는 권력에 대한 욕심과 그들이 세피로스를 마음대로 주무른다고 생각해서겠지. 아마, 신입을 자기들 마음대도 받은 것도 있을 테고.” 

삼공이 데려온 검귀과 권패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세피로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파악이 끝났다. 

“...” 

애닌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본 얼굴 중 가장 충격을 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녀석의 상태를 보니,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내게 겁을 집어 먹은 상태였다. 

“이빨이 크라시스 왕국의 보고에 있다는 정보는 어떻게 얻은 거지?” 

“그, 그건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베일이 혼자 가져온 정보입니다.” 

애닌은 내 존재 자체에 겁을 먹었는지 말을 높이기 시작했다. 

“현재의 세피로스가 어떤 상태인지 안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수확이군.” 

“그, 그럼 저를...” 

내 말에서 한줄기 희망이라도 봤는지, 세월을 2배로 쳐 맞은 것 같은 애닌의 얼굴이 약간 밝아졌다. 

“고통 없이 보내줄게.” 

** 

“냄새는 안 나겠지.” 

화골산으로 뒤처리까지 끝내니, 한참 늦은 시간이 되었다. 달은 이미 하늘의 중앙선을 까딱이며 넘어가버렸다. 

“조용히 들어가야겠네.”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마을로 돌아갔지만, 마을 중심부는 대낮처럼 훤하게 밝혀져 있었다. 

10명 정도의 성기사들은 구석에 자그마한 막사를 쳐놓고 쉬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대놓고 졸고 있는 바이렉이 보였다. 

다른 10명의 성기사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마을외곽에 서있었고, 나머지 10명은 한 건물 앞을 철통처럼 지키고 있었다. 

“대공자님.” 

마을 입구에서 서성이던 아린이 나를 보자마자 다가왔다. 

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전신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내 상의에 묻은 혈흔에서 멈췄다. 애닌의 주둥이를 날릴 때 튄 피였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는 아린의 배려가 참 고마웠다. 

“이거 내 피 아니니까 걱정 말고. 시간이 늦었으니, 가서 쉬어.” 

“알겠습니다.” 

아린은 알겠다고 하고선 내 뒤에 붙었다. 내가 쉬지 않으면 자신도 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아린과 같이 테스테인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간 앞엔 몇몇 드워프들이 팔짱을 낀 채로 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화르르르. 

창! 

창! 

“주무셔야 하는데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 무기를 만드는 거라...” 

입구 가까이에 있는 갈색수염의 드워프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했다. 

“미안해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영감탱이가 저러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요. 자다가 일어나서 망치를 두드릴 때도 있는 게 드워프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허.” 

영감탱이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이 드워프는 테스테인과 친한 사이인 것 같다. 

“거기다 저렇게 밤새 작업을 하는 건, 저나 다른 드워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낌이 올 때 작품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드워프 마을에서 망치소리는 자장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사실일 뿐이니까요.” 

갈색수염 드워프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대장간의 내부가 보이는 왼쪽으로 걸어갔다. 

쩡! 

쩌정! 

“좀 더 꽉 잡아!” 

“알겠습니다!” 

다행히 기라녹스를 쫓아내지 않았는지, 기라녹스는 테스테인의 옆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보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녀석 왜 반짝이는 것 같지.” 

불과 땀이 넘치니 밝아 보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기라녹스에겐 그 이상으로 하얀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이름: 기라녹스] 

[특성: 마병창조(魔兵創造), 화염친화lv3, 집중lv3, 정교lv2, 판단lv1, 감정lv1, 장인의 혼lv1] 

[호감도: 77(깊은 신뢰) ] 

[현재 기분: 최고의 작품을 만들고 싶음. ] 

“어?” 

애닌이 이곳에 나타난 것 이상으로 깜짝 놀랐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라녹스는 내가 나갔다 온 사이에 테스테인이 가지고 있던 장인의 혼이라는 특성을 베껴버렸다. 

기라녹스는 자신에게 새로운 특성이 생긴 줄도 모르고 눈앞에 있는 어금니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미쳤군. 내가 얻은 최고의 행운 중에 하나가 저 녀석을 데려온 것일지도 모르겠어.” 

기라녹스의 성장은 내가 봐온 사람들 중 역대 급이다. 내 사람으로 데려온 것은 정말 신의 한수였다. 

기라녹스의 빠른 성장에 감탄을 하면서 성녀가 있는 곳을 향했다. 

챠챵! 

두 번째로 고쳐진 대장간, 10명의 성기사들이 성벽처럼 호위를 서고 있는 대장간 안에 이레아가 있었다. 

챵! 

대장간의 정비가 끝나자마자, 성석의 세공이 시작됐고, 이레아는 성석 안에 있는 신성력이 터지거나, 넘치지 않도록 신성력의 미세한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대단하신 분이군요.” 

언제 따라왔는지 아까 테스테인을 영감탱이라 부르던 갈색수염 드워프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이전에 제가 성석의 세공을 할 땐 신관 5명이 왔는데, 혼자서 저 거대한 신성력을 조절 하다니, 엄청난 능력입니다.” 

“그렇군요.” 

성석의 세공은 한두 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못해도 내일 아침이나, 정오까지는 해야 할 텐데, 이레아는 미소를 지으며 조곤조곤한 어조로 드워프들을 격려까지 하고 있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은인. 편히 쉬십시오.” 

이레아를 조금 더 지켜보다가, 아린을 데리고 우리에게 배정된 숙소로 향했다. 

“편히 쉬시길.” 

아린이 방에서 나가는 것을 본 뒤에 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흠.” 

이레아와 기라녹스, 테스테인의 얼굴이 머릿속에 남아서 오늘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대로 눈을 감고, 만독자전신기를 운용했다. 내공의 흐름에 집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가득 채웠던 잡생각들이 빠져나가고 순식간에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철거덕. 

터텅. 

심법에 젖어있기를 한참, 밖에서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밖으로 나가자,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모든 성기사들이 이레아가 있는 대장간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에 가보니, 그녀는 어제 밤 보았던 불편해 보이는 자세와 보는 사람이 편안해지는 미소를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대단하지 않소?” 

바이렉이 내 옆으로 슬쩍 나타나서 중얼거렸다. 

“원래 성석의 세공엔 장인도 중요하지만, 신관도 중요하오. 저 크기의 성석이면 못해도 신관 4명은 필요하지만, 성녀께선 홀로 감당하고 계시오.” 

바이렉은 실컷 자다 나와 놓고 자신이 힘쓴 것처럼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왼쪽 눈에서 눈곱까지 보이는데, 정말 뭐하는 놈인지 모르겠다. 

챵! 

“거의 다 됐군.” 

챠앙! 

드워프가 마지막 정을 내리치자, 평범한 바위처럼 모나있던 성석은 완벽한 비율의 아름다운 칠각형으로 변해있었다. 

“끝났소!” 

“하아, 수고하셨습니다.” 

이레아는 드워프에게 인사를 하다가 대장간에 주저앉아버렸다. 

“서, 성녀님!” 

“성녀님!” 

기사들이 헐레벌떡 뛰어가서 이레아를 둘러싸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괘, 괜찮아요. 조금 피곤해서...” 

“물을 가져와!” 

“음식도!” 

“허...” 

이레아의 정신력과 집중력, 인내심에 자연스럽게 탄성이 나왔다. 내 옆에서 빌빌대고 있는 멍청한 부기사단장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쩌엉! 

쩡! 

망치소리를 듣고 테스테인의 대장간에 가보니, 테스테인과 기라녹스도 집중력이 깨지지 않은 채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여긴 아직 멀었군.” 

“그렇습니다.” 

그들의 작업을 보고 있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나를 따라다녔던 갈색수염 드워프가 다시 나타났다. 

귀신같이 등장하는 드워프다. 

“기라녹스는 잘 하고 있는 겁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기라녹스가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에게 질문을 했다. 

“정말 잘하고 있습니다. 저 영감탱, 아니 테스테인이 좀 까다로운 구석이 있어서, 같이 일하려면 피곤한데 기라녹스가 어디서 뭘 주워 먹고 왔는지, 합이 정말 잘 맞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유렌님.” 

흐뭇한 얼굴로 기라녹스를 보고 있을 때 조금은 기운을 차린 것 같은 이레아가 다가왔다. 

“성녀님, 가서 쉬시지 않고...” 

“지금 바로 산을 내려가야 해서요.” 

“네?” 

“지금도 신관님들과 성기사분들이 마계화를 막고 계세요. 빨리 가서 성석을 설치해야 땅을 정화 시킬 수 있어요.” 

“그래도 조금은 쉬시는 게...” 

“괜찮아요.” 

이레아는 내 머리위에 있는 태양처럼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무기가 완성되는 대로 바로 남쪽으로 향하겠습니다.” 

“네. 빌어먹을 마계화부터 제어를 해야 하니, 조사를 나설 때 까진 조금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저도 준비를 해놓을 게요.” 

이레아는 피곤한 와중에도 한 마디 욕을 남기고 성기사들과 산을 내려갔다. 

쩡! 

쩌정! 

기라녹스와 테스테인의 망치질을 조금 더 보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심법을 휘돌렸다. 

저 망치소리가 멈추기 전까지는 나도 잠을 자지 않고 심법에 매달리기로 결정했다. 

쩡! 

쩡! 

하루, 그리고 그 다음 하루가 꼬박 지나고 나서야 마을을 울리던 망치소리가 완전히 그쳤다. 

“으아아아!” 

“이야아아아!” 

망치소리가 멈추자마자, 테스테인과 기라녹스의 기쁨에 젖은 함성이 들려왔다. 

“드디어 완성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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