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애닌 (61/241)

애닌

“쯧!” 

탁! 

드워프 마을 입구를 향해서 활을 겨누고 있던 다르가 혀를 차더니, 활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마을을 쳐다보는 그의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짜증이 돋아나 있었다. 

“이 새끼들은 대체 뭘 하는 거야!” 

계획대로라면 마을 주변에 불을 질러서 마을 안에 있는 드워프와 유렌, 성기사 놈들이 밖으로 뛰쳐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불을 지르긴커녕, 늑대들은 한 놈도 나타나지 않았다. 

“바로 시작하라고 했건만!” 

화가 솟구친 다르는 마을에서 시선을 떼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이 시퍼렇게 빛나기 시작했다. 

“뭐야... 왜 한 놈도 안 보여?” 

다르가 익힌 코비스의 궁술에는 야간에도 사물을 식별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 능력을 사용해도 늑대들은 한 놈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늑대들이 보이지 않는 것에 당황하여 더 먼 곳까지 쳐다보던 다르의 눈에 전신을 시꺼멓게 물들인 복면인이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저 놈은 어딜 가는 거야?” 

늑대는 드워프 마을과는 반대로 산을 내려가려고 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쫓기는지 늑대는 달리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어?” 

달려가던 늑대의 머리에서 뭔가가 반짝이더니, 늑대가 픽하고 쓰러졌다. 잠시 뒤 늑대가 쓰러진 곳에 사람이 한 명 나타났다. 

꽤나 먼 거리에 깜깜한 밤이지만, 다르는 늑대 앞에 서있는 사람이 누군지 단 번에 알아차렸다. 

“유렌 록스...” 

다르가 용암이 타오르는 것 같은 격양된 목소리로 유렌의 이름을 내뱉었다. 

“어떻게 저놈이 저기 있는 거야!” 

다르는 이제야 늑대들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유렌은 자신을 사냥하러 온 늑대들을 역으로 사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으...” 

다르는 발소리를 죽여 가며 유렌이 있는 곳을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리고 유렌이 자신의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 분노를 담아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고오오. 

다르의 화살에 불길한 보라색 오라가 덮어지기 시작했다. 코비스의 궁술 중 최속과 최강의 위력을 가진 파쇄의 화살이다. 

“뒤져라!” 

다르는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면서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파앙! 

** 

“이 놈까지 해서 20명, 다 잡았군.” 

지시를 내리는 늑대들의 조장부터 잡았기 때문에 당황한 늑대들을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와 다름이 없었다. 

“이제 다르만...” 

슈아아앙! 

넓게 펼쳐 놓은 기감에 무언가가 내 정수리를 향해 미친 듯이 쇄도하는 것이 느껴졌다. 

뭐가 날아오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다르의 화살이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을 때 화살이 날아왔다면 당황했겠지만, 난 이미 다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이이잉! 

화살이 날아왔을 때 뒤로 넘어갈 정도로 허리를 젖혀서 화살을 피했다. 무협에 자주 나오는 철판교라는 수법이다. 

콰아앙! 

내 머리카락 몇 올을 스쳐지나간 다르의 화살은 뒤쪽에 박혀서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버렸다. 

화살이 아니라, 포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모습이다. 

“파쇄의 궁사라고 불릴만하네. 막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다르는 자모환을 이마에 맞고 기절했기 때문에 무조건 내 머리를 노릴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대로 화살은 내 머리 정중앙을 향해 날아왔다. 

파앙! 

다르에게서 화살이 하나 더 날아왔다. 하지만 그의 화살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콰아아앙! 

철판교를 쓸 필요도 없이, 한 걸음 움직인 것으로 그의 화살을 피한 뒤 앞으로 튀어나갔다. 

“위치 파악 끝났다.” 

다르는 첫 발에서 날 놓쳤으면 바로 도망갔어야 했다. 다시 나를 노린 것은 자신을 제발 죽여 달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위이잉! 

온슬론의 감시탑으로 눈과 귀를 번갈아 강화하면서 녀석의 위치를 파악하며 움직였다. 

파아앙! 

하지만 감시탑을 쓸 필요도 없었다. 다르가 도망치면서 날려주는 보라색 화살 덕분에 놈의 위치는 계속해서 훤히 보이고 있었다. 

“이 주변을 돌고 있군.” 

놈은 뒤로 쭉 빠지는 것이 아니라, 드워프 마을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내게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위험할 때 드워프들을 인질로 삼으려는 모양이다. 

“그럼, 빨리 끝내야겠네.” 

쾅! 

바닥이 파여 나갈 정도로 소룡지보를 극성으로 밟았다. 바람이 꿰뚫리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다르의 표정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익! 네놈!” 

파아앙! 

다르는 당황하고 있는 와중에도 보라색 오러가 담겨있는 화살을 날려 왔지만, 고갯짓 한번으로 피해버렸다. 

콰아아앙! 

뒤에서 바위가 터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더욱 빠르게 돌진했다. 

“고마운걸.” 

다르가 화살을 날리지 않고, 조용히 도망 다녔다면 추적하기 힘들었겠지만, 계속 화살을 날려주니, 손쉽게 내 암기의 사정거리까지 추적할 수 있었다. 

“다르! 이거 알지?” 

손가락에 쇠구슬을 끼워서 다르에게 보여주었다. 다르가 지금 이 꼴이 되게 만든 자모환이다. 

다르도 구슬을 알아차렸는지, 놈의 입술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파아앙! 

피식 웃으며 자모환을 날리자, 다르는 몸을 굴리면서 두 개의 자환과 모환을 피했다. 하지만. 

픽! 

“크아악!” 

다르의 움직임을 계산해서 날린 세 번째 암기 백영석 단검은 피하지 못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귀신처럼 나타난 백영석 단검은 다르의 왼쪽 허벅지 꽂혔다. 

“엄청나군.” 

실험삼아 던져본 백영석 단검은 날린 나도 찾기 힘들 정도로 주변에 녹아들어갔다. 

거기다 날아가는 소리까지 거의 들리지 않아서, 던진 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상 누구라도 피하기 힘들 것 같았다. 

“이익!” 

다르는 단검을 뽑고 다시 도주하려고 했지만, 10초도 되지 않아 걸음을 멈추고 무릎을 꿇었다. 

“아악! 누, 눈이!” 

다르는 손을 덜덜 떨면서 자신의 양 눈을 미친 듯이 비비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다르, 잘 지냈어?” 

다르의 괴성을 들으며, 천천히 걸어가서 그의 앞에 섰다. 

“내, 내 눈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눈이 안 보이는 거야!” 

다르는 초점 없는 눈으로 내가 아니라, 하늘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독에 중독 됐으니까.” 

“도, 독? 이런 치사한 새끼!” 

“치사는 개뿔. 활로 기습 해놓고 뭐라는 거야. 이 정신 나간 놈이.” 

퍽! 

“커헉” 

헛소리를 하는 다르의 주둥아리를 날려버렸다. 

백영석 단검에 발라놓은 독은 두 가지다. 블라인드 마우스에게서 얻었던 시각을 잃게 하는 절맹귀산과 장기를 끊는 고통을 느끼게 하는 단장독이다. 

“어? 크아아악!” 

“이제 시작됐군.” 

이제야 단장독의 독기가 돌았는지, 다르가 자신의 배를 찢을 것처럼 꼬집으며 비명을 질렀다. 

“이, 이건 또 뭐야? 크허헉!” 

“그것도 내 독이지.” 

“유, 유렌!” 

다르는 부서질 것처럼 이빨을 갈며 내 이름을 부르짖었다. 

“베일은 잘 지내?” 

“헉!” 

내 입에서 베일이라는 이름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다르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다르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내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았다. 

“무, 무슨 소리냐?” 

“베일이 내가 가져간 이빨 가져오라고 널 보낸 거잖아.” 

“어, 어떻게...” 

“베일은 이빨로 뭘 노리는 거지?” 

“그, 그건...” 

다르는 대답은 하지 않고 고통을 참는 신음소리만 내뱉었다. 

저 모습은 비밀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베일의 의도를 모르는 거다. 

“하긴 네가 알 리가 없겠지. 베일은 자기 부하를 믿지 않으니까.” 

정곡을 찔렀는지, 다르의 표정이 더욱 창백해졌다. 내 소설에서도 베일은 자신의 비밀을 부하들에게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너도 세피로스냐?” 

다르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세, 세피? 그게 뭐지?” 

“흠.” 

거짓말 하는 반응은 아니다. 

세피로스를 모르는 것을 보니 역시나 다르는 늑대들과 다를 바 없는 베일의 소모품일 뿐이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그래도 걱정마라, 고문하는 취미는 없으니, 바로 보내주지.” 

일부러 주변 숲에 들릴 만큼 목소리를 높인 다음, 비수를 들어서 다르의 머리를 겨누었다. 

“크흑...” 

“거기까지!” 

비수를 내려치려고 할 때 오른쪽 수풀 속에서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부티나는 잘생긴 어린 아이가 나타났다. 

많이 봐줘도 15살 정도의 아이였지만, 입고 있는 옷은 성인 귀족이 입는 복장이었다. 

“그 쓰레기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거든. 헤헤헤.” 

아이는 누워서 빌빌대는 다르를 비웃으며,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이의 웃음소리엔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사기가 끼어있었다. 

“성기사들 때문에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렇게 유렌을 꺼내주다니. 정말 잘했다. 쓰레기.” 

“누, 누구야!” 

“곧 죽을 쓰레기는 알 필요 없어. 헤헤헤.” 

귀여운 외형과 목소리와는 다르게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소름끼치기 그지없었다. 

아이의 새까만 눈동자 속엔 붉은 색의 소용돌이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 이놈이군. 

이 아이, 아니 이놈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사실 누군가 수풀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르를 죽이려고 할 때 일부러 목소리를 높인 건데, 예상외의 인물이 튀어나왔다. 

[이름: 애닌 아라더스] 

[특성: 현혹lv3, 최면lv3, 잠입lv3 스피릿 스토우 ] 

[호감도: 0 (중립) ] 

[현재 기분: 어떻게 자살하게 할 지, 고민 중.] 

이 녀석은 세피로스에 속해있는 악인으로 다른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추잡하기론 제일가는 놈 중 하나다. 

포메라에게 현혹을 걸어서 타락하게 만든 놈도 바로 이놈이다. 

“헤헤헤!” 

쨍! 

[락토르의 강철 성벽이 당신의 정신에 침범하려는 현혹을 막아냅니다.] 

맑은 종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애닌은 다르와 대화를 하는 척을 하며, 웃음소리를 이용해서 내게 현혹을 걸었지만 놈의 현혹술은 강철 성벽에 막혀서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넌 누구지?” 

아무 것도 모르는 척을 하며 현혹에 걸린 것 같은 넋나간 목소리로 애닌에게 질문을 던졌다. 

“흐흐흐. 앞으로 네 주인이 되실 몸이지.” 

애닌은 현혹술이 실패했다는 것을 모르는지, 내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주인...?” 

“생각보단 단순하군. 잘 걸린 모양이야.” 

애닌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시작할까?” 

애닌이 뭐라고 중얼거리자, 나와 다르의 이마에 암울한 회색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가만히 있었다. 내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본 애닌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쨍! 

[락토르의 강철 성벽이 당신의 정신에 침범하려 한 스피릿 스토우를 막아냅니다.] 

스피릿 스토우는 다른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능력이지만 내게는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하고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 

스피릿 스토우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한 나와는 다르게 조금까지만 해도 비명을 지르던 다르는 멍한 표정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으...” 

다르처럼 눈동자에 힘을 빼고 멍하니 앞만 바라보았다. 애닌은 나처럼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지배를 당한 것처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놈의 스피릿 스토우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이용한 것이다. 

“역시 몸 쓰는 놈들은 단순해서 편하다니까. 헤헤헤!” 

빠삭. 

애닌은 나도 정신지배에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빙긋 웃으며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하나 꺼내서 깨물었다. 

“가까이 와라.” 

다르의 걸음걸이에 맞춰서 얼빠진 표정으로 애닌의 앞에 섰다. 

“일단 드워프에게 보내서 이빨을 가져오게 한 뒤에 왕도에서 둘이 싸워서 서로 죽이게 만들까? 아니면 사고를 치게 만든 뒤에 자살을 시킬까? 고민되네. 헤헤헤!” 

“지랄한다!” 

“어?” 

빠가각! 

“크아악!” 

나와 다르를 번갈아 쳐다보며 비웃던 애닌이 사탕을 입에 가져갈 때 주먹을 놈의 입속에 쳐 박아서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렸다. 

“갸아아악!” 

이빨이 뭉텅이로 뽑혀나간 애닌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어, 어떻게! 분명 먹혔는데!” 

애닌은 기겁해서 뒷걸음질 치며 전신을 덜덜 떨었다. 

“먹히긴 뭘 먹혀!” 

“이, 이놈! 카이라...” 

애닌의 주문에 다시 내 머리에 회색빛이 번쩍였다. 하지만. 

쨍! 

[락토르의 강철 성벽이 당신의 정신에 침범하려 한 스피릿 스토우를 막아냅니다.] 

“미안하지만, 나한텐 그거 안 통해.” 

“헉!” 

퍽! 

“컥!” 

도망치려던 애닌의 배를 걷어찼다.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 녀석은 이미 나이 50이 넘은 변태다. 

때리는 것을 주저할 필요는 전혀 없다. 

빡! 

“카악!” 

배를 맞고 허리를 굽히던 애닌의 턱을 올려쳐서 날려버렸다. 

“대체 스피릿...” 

“내가 네 스피릿 스토우를 어떻게 막았는지 보다는, 네 미래를 걱정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 되지 않아?” 

“윽! 무, 무슨 짓을!” 

녀석의 입을 억지로 벌려서 두 종류의 독을 집어넣었다. 

“아까 숨어 있을 때 들었지? 고문에는 취미 없다고, 하지만 난 할 때는 하는 남자거든.” 

“우억!” 

애닌이 헛구역질을 하려 했지만, 독은 이미 그의 몸속을 파고 들어갔다. 

“세피로스 소속의 애닌 아라더스. 지금 나이가 55인가?” 

“너, 넌 대체...” 

“네가 아는 모든 것을 말해줘야겠어.”


0